눈 쌓인 언덕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그 아래 낮고 허술한 집들이 보인다(서울, 1980).

두 사진 모두 이번에 출간된 김기찬 대표사진 선집 골목안 풍경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유족들이 보관해온 사진 중에서 새로 발굴한 것이다.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이다(서울, 1973).

김기찬(1938-2005)은 ‘골목 사진가’로 불렸다. 1968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30여년에 걸쳐 중림동, 문래동, 행촌동, 행당동, 도화동 등 서울의 달동네를 다니며 골목 풍경을 찍었다. 서울역 뒤 산동네인 중림동을 특히 사랑했다.

그는 2003년 출간한 마지막 사진집 ‘골목안 풍경 30년’에서 골목을 테마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1960년대 말. 사진 찍는 것이 좋아서 카메라 한 대만 달랑 메고 서울역과 염천교 사이를 오가며 삶에 지친 사람들을 찍다 흘러든 곳이 중림동 골목이었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의 테마는 골목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안 풍경, 이것이 내 평생의 테마다’라고 결정해 버렸다.”

김기찬은 생전에 ‘골목안 풍경’이란 제목의 연작 사진집을 6권까지 출간했다. 사후에는 그의 전작을 모아 만든 ‘골목안 풍경 전집’(2011년)이 제작돼 8쇄까지 찍었다. ‘격동기의 현장’ ‘윤미네 집’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진집이 되었다.

김기찬의 사진은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린 서울의 골목 풍경과 도시 서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 재개발로 살던 집과 동네를 잃어버린 서울 토박이들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옛 앨범이 되었고, 지금의 아파트 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으로서도 가치를 갖는다.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사진집 / 눈빛 / 312쪽 / 6만원

이번에 출간된 ‘골목안 풍경’은 김기찬 사후 18년 만에 발간되는 대표사진 선집이다. ‘골목안 풍경’ 1∼6권에서 사진을 고르고, 유족이 보관해온 필름 중에서 새로 골목 사진을 발굴해 100여장을 추가해 총 277장의 사진을 실었다.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는 “김기찬의 사진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골목일기’라고 할 수 있다”면서 “사진집이 모두 절판된 이후 대중판으로 만든 ‘골목안 풍경 전집’ 외에 변변한 대표사진집 한 권이 없어 늘 아쉽고 송구스러웠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새로 공개되는 사진들은 작가의 부재로 정확한 촬영일자와 장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필름 파일에 적힌 생산일자를 따라 ‘서울, 1967-1970’ 식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록된 사진은 모두 흑백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가난한 풍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너무나 환하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놀이터였다. 어른들에게도 골목은 공유공간이자 사랑방이었다.

마지막 5부는 골목의 마지막 풍경을 스산하게 보여준다. 집들은 부서졌고 골목은 사라졌다. 건물 잔해 위에 집 한두 채, 사람 한두 명이 위태롭게 서있다. 그렇게 김기찬의 골목 사진 작업도 끝났다.

“1980년 중반부터 시작한 재개발 사업은 공덕동으로 번지고 공덕동에서 인왕산 밑 행촌동으로 건너뛰었다. 1997년, 결국은 중림동도 그 운명을 다했다.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곳에 살던 골목안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사진집 출간과 함께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김기찬 사진전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4월 3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엄선한 골목 사진 30점을 선보인다.

국민일보 /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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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속 이미지] 기억나니?… 277장 추억이 방울방울


미공개 사진 100여장 포함
1968년~1990년대 풍경 담아

▲ 김기찬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골목의 풍경들. 1989년 8월 서울 아현동. 눈빛 제공

골목 한구석에 모이거나 길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아파트 빌딩 숲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옛 골목은 점점 준다. 구석진 골목은 위험해 보이고 배달 오토바이들이 쌩쌩 달려 골목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이 책에는 ‘골목 작가’로 불렸던 김기찬(1938~2005)의 미공개 사진 100여장을 포함해 1968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찍은 골목 풍경 사진 277장이 실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라며 기억을 소환하게 하는 사진들이지만 카메라 프레임 속에 잡힌 어른들의 눈에서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내몰린 도시 주변부 서민의 슬픔이 읽힌다.

 

그래도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는 것은 힘겨운 일상을 살아 내는 서민들 모습 너머로 보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덕분이다.


책 출간과 함께 서울 종로구 ‘갤러리 인덱스’에서 다음달 3일까지 사진전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가 열린다고 하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신문 / 유용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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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컷] 선행학습이 없던 시절 아이들은

골목 사진가 김기찬의 사진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

 

▲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의 풍경 / .서울 1970-1974.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꼬마들이 작은 칠판에 간단한 산수 문제를 적어놓고 퀴즈 풀이를 하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한다는 ‘선행 학습’이란 단어조차 없던 1974년 서울의 어느 골목안 풍경은 작고한 사진가 김기찬의 사진이다. 답을 안다고 손을 번쩍 든 아이들보다 몰라서 쑥쓰러워하는 아이들이 더 많지만 문제를 낸 아이의 표정은 즐겁다.

 

추억이 돋는 1970년대와 80년대 서울의 골목길 풍경들은 1968년부터 30여년 동안 서울의 골목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김기찬의 사진들이다. 사진가의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인덱스갤러리에서 열린다.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안 풍경, 서울 1992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부서진 TV 상자 안에서 노는 아이들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온 것처럼 좋아하고, 트럼펫을 연주하는 어른 앞에서 아이는 시끄럽다며 귀를 막는다.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안 풍경, / 서울 중림동 1982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등에 업은 동생이 힘들지도 않은지 누나는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고, 발목까지 눈이 쌓인 한 겨울날에도 집배원 아저씨는 기다리는 누군가의 편지를 배달하러 어느 곳이라도 찾아갔다.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안 풍경, 서울 중림동1976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정겹고 친근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표정들을 사진가는 어떻게 찍을 수 있었을까?

김기찬은 어느날 회사 선배로부터 ‘사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작은 카메라를 들고 출퇴근을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중구 중림동의 골목을 들어섰을 때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종로구 사직동 골목과 비슷해서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후 사진가는 틈나는 대로 골목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안 풍경, 서울 1970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그도 처음엔 부끄러워서 주민들 앞에 카메라조차 꺼낼 수 없었지만, 매일 카메라를 메고 오는 사진가를 알던 골목에 살던 아이들과 주민들은 사진가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고, 김기찬은 그런 어린이들과 주민들의 평범한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은 것이다. 김기찬은 언젠가 이 골목들도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안 풍경, 서울 1973-1974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기자는 지난 2015년 겨울 국내 1세대 원로사진가였던 고 김한용 선생을 인터뷰 한적이 있다. 6.25 전쟁때는 종군사진기자였으며, 역대 대통령들과 기업인들을 촬영하고 한국 영화계의 스틸사진과 광고사진계를 개척했던 그는 기자에게 “하루 4시간씩 자면서 남보다 3배는 더 일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가 김한용도 “나도 수십년 사진을 열심히 찍었지만 김기찬의 사진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한 것들이 사진에서 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안 풍경, 서울 1981 / 사진= 갤러리인덱스 제공

 

조선일보 / 조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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