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겹쳐 바쁜 하루를 보낸 것은 괜찮으나, 복에 없는 차를 바꾸게 되었다.

지난 8일은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열린 정영신의 ‘장날’전도 철수해야 하고,

예약해둔 자동차 검사를 받는 등 할 일이 많은데, 마지막 일이 순탄치 않았다.

전시철수야 일사불란하게 마무리했으나, 자동차검사에 불합격한 것이다.

그것도 간단한 정비로 끝날 게 아니라, 폐차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중고차를 구해야 하는데, 죽기 전에 폐차 장의사 신세는 면키 어려울 것 같다.

 

그 날은 준비할게 많아 일찍부터 서둘렀다.

녹번동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데, 요쿠르트 아줌마가 왔다.

인사 건 낼 틈도 없이 돌아서는데, 설날 지난지도 며칠 되지 않아 선물 받아 둔 과자라도 준 것이다.

뜻밖의 선물에 반색 하지만, 선물이란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게 더 기분 좋다.

 

이 분은 매주 한 번씩 요구르트를 세 개씩 갖다 주는데, 난 3년째 받아 먹는다.

독거노인에게 요구르트를 전해주는 일은 10년이나 된 지자체의 복지사업이다.

늘어나는 노인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한 방편이지만, 좀 더 세심한 관심이 요구된다.

현재 동자동에 주는 분이 80여명이라는데,

몸이 불편하거나 외부와 소통이 많지 않은 분들은 대부분 빠졌기 때문이다.

 

녹번동에 차 가지러 가기 위해 지하철로 내려가니,

양말도 없는 노숙인의 맨발이 눈에 밟혔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노숙인 보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

 

정동지를 차에 태워 '돈의문박물관마을' 전시부터 철수하러 갔다.

사진을 포장하여 차에 옮겨 실었는데, 비좁은 공간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80일간 수고해 주신 '돈의문박물관마을' 큐레이트 전영주씨에게

조그만 소품 한 점 선물하며 마지막 기념사진으로 마무리했다.

 

그나저나 그 많은 액자를 들여놓을 곳이 마땅찮았다.

지난 년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의 전시를 치렀으니 보통 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정선으로 옮겨 보관했으나 집이 불탔으니 가져갈 수 없었다.

비좁은 녹번동 집 방 하나가 창고로 변한지 오래되었는데,

그 사정을 아는 아산의 김선우씨가 보관해 주기로 한 것이다.

두 번째 '준비하는 공유공간 '마인' ‘백암길185 미술관’에 보관한다지만,

그 곳 또한 문을 열게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판이다.

 

그 날 김선우씨가 사진을 실어가기로 했으나 일이 생겨 예정보다 늦어 진 것이다.

자동차검사 예약시간이 임박해, 짐을 내려놓고 '성산자동차검사소'부터 갔다.

예전에는 예약 없이 검사받으러 다녔으나 절차가 많이 바뀌었더라.

며칠 전 검사받으러 왔다가 허탕치고 예약 해 둔 것이다.

순서가 돌아와 검사가 진행되었는데,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검사에 통과하려면 정비비용만 80여 만원이 소요되는데,

엔진에 문제가 많아 고쳐도 오래타지 못한단다.

 

문제의 디젤 ‘크루즈’는 제 작년 여름 300만원에 구입했는데,

일 년 육 개월 동안 33,000km 타고 폐차하기에 이른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힘이 딸려 오르막에서 시동이 꺼지는 등 애를 많이 먹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녹번동으로 끌고 가야 했다.

 

마침 아산의 김선우씨가 도착해 있었다.

자동차 사정을 듣고는 폐차가 답이라며 아산에서 쓸 만한 중고차를 알아 보겠단다,

싫은 기색 한 번 하지 않고 방에 쌓아둔 액자를 옮겨 싣고 아산으로 내려갔다.

그 다음 날 선우씨가 만사를 제쳐두고 중고차 보러 다닌 것 같았다.

수시로 쓸 만한 차의 정보를 보내주었는데, 그 중 가격이 싸고 쓸 만한 차가 현대 투싼이었다.

 

다음 날 오후1시 무렵, 아산에서 선우씨를 만났다.

구입한 '투싼'은 178,500km 운행한 차인데 190만원이란다.

그 날 차량 명의변경과 폐차를 한꺼번에 처리할 준비해 두었는데,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자동차보험이전에서부터 차량압류해제 등 모든 걸 전화로 해결하는데, 일을 똑 소리 나게 처리했다.

 

새로 구입한 현대 ‘투싼’을 점검하기 위해 잘 아는 정비소에 데리고 갔다.

아산에서 ‘월드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는 송계석씨를 찾아 간 것이다.

시운전을 해 보며 부속들을 꼼꼼히 점검해 주는데,

엔진이나 다른 곳은 이상이 없으나 하체 부식이 심하다고 했다.

비포장 도로나 도로 턱을 조심해 운행하면 삼 년 쯤은 무난히 탈 수 있겠단다.

자동차기능이나 주의해야 점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어 고맙기 그지없었다.

좌우지간 선우씨는 마당발이기도 하지만, 인간관계가 진득했다.

 

새로 구입한 투싼은 차체의 중량감도 있지만, 자동이라 운전하기가 편했다.

인사동에서 오후 다섯시에 열리는 박재동 화백 시사만평전, ‘한판 붙자!’에 갈 생각이었지만,

일이 지체된 되다 차까지 밀려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머리 아픈 일들을 마무리해 날아갈 듯 발길은 가벼웠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내버려 둔 정선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농사철이 오기 전에 다시 측량하여 콘테이너 박스부터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적공사에 전화해 측량할 날자 까지 잡아놓고 같이 자자는 전화가 왔다.

허구한 날 지극정성으로 도와주는데,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지은 복이 어디 가겠냐마는 올해도 좋은 일 많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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