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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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선생의 ‘격동한국 50년’사진전에서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개막식이 끝나고 헤어지기 아쉬워, 몇몇 분들이 시세이선생 내외분을 모시고 인근 맥주 집을 찾았다.

 

자리에 함께한 분으로는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전민조, 김보섭, 이기명, 이규상, 안미숙, 정영신, 김남진,

안해룡, 이상엽, 김지연, 이상봉, 김승혜, 조성호, 견석기, 남 준, 곽명우씨 등 20명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모자를 돌려 술값을 걷을 작정이었으나, 담배 피우러 나간 사이에 시세이선생께서

먼저 계산하고 일어 나셨다. 가난한 원로사진가의 주머니를 털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이후 대부분 자리를 떠났으나 김보섭, 안해룡, 김남진, 이상엽, 조성호, 견석기씨 등 여러 명이 남아 술을 더 마셨다.

 

그 때 옆자리에 앉은 안해룡씨로 부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사진가들은 관람객이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안부 사진을 찍었지만, 제목만 없다면 그냥 할머니 사진이지 아무도 위안부사진이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은 조선족 학교의  오랜 역사를 말하기 위해 그 학교에서 배웠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의 삼 세대를 함께

교정에 세워 찍었다고 한다. 그 사진 한 장으로 조선족 학교의 역사가 설명되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집 제작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진들의 나열식 편집에서 벗어나 부분적인 내용끼리 모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었다.

 

그는 다재다능한 후배다.

80년대 후반 ‘사진집단 사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90년도 나의 ‘전동동588’전시 팜프렛도 그 친구가 만든 것이다.

일찍부터 사진은 물론 편집에도 남다른 재능이 있었는데, 지금은 취재에다 다큐영화까지 여러 가지 일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각 자의 길을 가느라 만남의 시간이 없었지만, 가끔 만나 그의 조언을 듣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 동안 컴퓨터와 씨름했더니, 온 몸에 좀이 쑤셨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산책삼아 인사동으로 나갔다.

 

무작정 걷고 싶었으나, 수요일 오후라 전시장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썩 발길 잡는 전시는 없었다.
사진전도 두 군데나 있었으나, 동명이인이거나 아마추어 전시였다.

'인덱스'에서는 최건수씨를, '가나스페이스'에서는 김가중, 곽명우씨 등

아는 분도 여럿 보였으나, 마음이 바빠 그냥 지나쳤다.
인사동 거리에서는 사진가 이갑철, 이상일씨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전시장과 인사동거리를 쏘다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시장마다 아는 분도 있고, 술과 음식이 즐비했지만 마다했다.
인사동나와 이 날처럼 술 한 잔 없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

 

가고싶은 술집도 술 벗도 없으니, 차라리 우리집 주막이 더 나은 듯 했다.

인사동의 낭만도 전설이 되어가는 요즘, 왜 인사동을 못 잊고 떠돌까?
늘 고향 같았고, 고향 동무 같은 벗 들이 있었으니까...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1일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개장된 정영신, 조문호의 ‘장에가자’ 사진전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개장식에서 만난 분으로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 행위예술가 무세중, 무나미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시인 강 민, 민 영, 황명걸, 서정춘, 김신용, 천성우, 조준영, 김명성, 송상욱, 김낙영, 김영재씨, 만화가 박기정씨, 사진가 육명심, 한정식, 전민조, 엄상빈, 김남진, 김지연, 이석필, 김문호, 배병수, 안해룡, 이수만, 김상현, 이수영, 곽명우, 고 헌, 권양수씨, 서양화가 신학철, 강찬모, 장경호, 전인경, 정복수, 박불똥, 성기준, 전강호, 허미자, 서길헌, 조경석씨, 한국화가 황외성, 주승자씨, 미술평론가 곽대원씨, 건축가 임태종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무용평론가 이만주씨, 팝페라가수 전은주씨, 인터리어 디자이너 김의권씨, 최혁배변호사, 이성 구로구청장, 김수복 정선군청 문화과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성윤미씨, 조경연, 김우진, 배성일, 강인구, 박시교, 신신자, 하재은, 김윤한, 정승재, 김민철, 김 구, 남연정, 백영웅, 방동규, 정정은, 장종수, 장한결, 이명옥, 김상현, 이기남, 임경일, 강선화, 홍성식, 공윤희, 이지녀, 한진희, 임계재, 클라라, 곽성훈, 김윤한, 하태웅씨 등이다.

그리고 전시 개막식과 뒤풀이를 비롯하여 초상사진 촬영 등 이번 전시회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 ‘사진바다’의 사진가 곽명우씨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사진 / 곽명우 : 글 / 조문호

 

 

 

 

 

 

 

 

 

 

 

 

 

 

 

 

 

 

 

 

 

 

 

 

 

 

 

 

 

 

 

 

 

 

 

 

 

 

 

 

 

 

 

 

 

 

 

 



 

사진 / 곽명우

 

 

부부 장돌뱅이 사진가

 

정영신·조문호 부부 사진가를 볼 때마다 나는 세상의 어느 부부가 저렇게 붙어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쉰 살을 고비로 데면데면 살아간다는데 이들은 언제나 일심동체의 부부애를 과시한다. 나는 그것을 이들이 세계사진사에서 보기 드문 부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전국의 장터를 함께 순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그들의 금슬의 반은 5일장을 돌면서 형성된 동료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조문호 사진가는 지금까지 반평생은 사진을 찍고 반평생은 술집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만년에 장터로 이끈 이가 정영신 사진가다. 소설가이기도 한 정영신은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5일장 모두를 촬영한 근력 있는 사진가다. 전국 522곳의 5일장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동안 호기롭게 살아온 조문호 형이 운전기사를 자청하며 마지막 장터까지 함께 돈 것도 그러한 저력과 끈기에 기가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의 5일장은 소통의 공간이었다.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광장이요 공공공간이었다. 게다가 동학혁명이나 3·1운동도 장날을 계기로 전개되었다 하니 5일장의 사회적 의미는 지대한 것이었다.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왔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윗세대들은 당신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뤄놓았다고 자랑하지만 오히려 교묘하게 가난해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부인해선 안 될 것이다.

남들은 100년 200년 걸려 이뤄온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우리는 불과 2-30년 동안 해치우면서 우리의 전통은 불도저로 밀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시인 김수영식으로 말하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은 것일진대 우리는 남겨두어야 할 것들을 사정없이 솎아내 버렸다. 가족이 해체되고 경조사를 함께해 온 친척이 사라졌으며, 약자를 배려하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던 미풍양속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오로지 능률과 성과 그리고 경제적 부(富)만이 인간사의 가치기준이 되어 버렸다.

 

5일장은 서구형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던 곳이 아니라 5일간의 일용한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서구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간들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 5일장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외래문화와 경제적 효율성을 앞세워 온 사회에서는 적합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개점한 이케아 쇼핑몰 앞에 줄선 사람들을 보라. 그러니 어디 조문호의 스산한 장터 사진이 보여주듯이 5일장인들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허리 굽은 노인들만의 시장으로 방치해 둔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아파트 단지에도 매주 장이 서는 것을 보면 ‘전통시장 살리기 운동’이 비관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탕아가 뒤늦게 뉘우치고 귀가하듯이 비로소 전통으로의 복귀가 시작된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승리자보다는 패배자를, 강자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기록하는 사진 장르이다. 따라서 사회의 음지와 사라져가는 것들을 찍는 다큐 사진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큐 사진가가 즐겨 감수해야만 하는 숙명인 것이다. 숙명에 충실한 사진가만이 소멸되어 가는 것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정영신·조문호 부부는 공교롭게도 둘다 다큐 사진가이므로 그들의 생활이나 작업이 두 배로 힘들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남들은 정년퇴임할 나이에 걸핏하면 멈춰 버리는 고물자동차를 타고 그들이 장돌뱅이처럼 장터를 돌며 찍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과 정체성이 아직 거기에 끝물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금슬은 보너스다.

 

 

ㅡ 이규상 출판인, 눈빛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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