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아내 정영신과 함께 약수동의 이명동선생 댁을 찾았다.
몇 일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으나, 년 말의 바쁜 일정에 밀려
26일 오찬을 함께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찾아뵈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매번 밥값이나 찻값을 선생님께서
내셨는데, 이 날은 꼭 저가 사겠노나고 다짐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씰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니가 므슨 돈이 있노?”

일식집에서 초밥을 맛있게 먹은 후, 찻집에서 오래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은 아무리 들어도 재미있는 한국사진의 이면사인데,
이 날은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선생님! 오늘은 선생님께서 바람피웠던 옛날 이야기 좀 해주이소.”
“어! 내가 뭔 바람을 피워?”
“동아일보 계실 때, 신문사 주변의 다방 마담은 모두 선생님꺼라 던데 예!”
“다방마담들이야 다 그렇고 그런 상대이지 연애 걸 상대는 아니지.
딱 한사람, 서울대학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있었지”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그 간호사를 너무 좋아해 엄청 찾아 다녔다고 하신다.
그녀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 여러 가지 도움도 많이 주었지만,
결국은 파독 간호사로 갈 수 있도록 주선해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그 길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을 왜 몰랐겠는가마는...
마음 여린, 선생님의 잊혀져가는 옛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졌다.

대개의 사람들이 잊혀져가는 오래된 연인이 한 사람 쯤은 있을게다.
가끔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거나 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잘 되지 않는다.
뭔가 마음이 허전해 가는 황혼기에 접어들면 옛 연인이라도 한 번 만나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관절 산다는 것이 뭔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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