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12주년을 맞은 ‘사람 사는 세상’전'이 오는 24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특별관(B1)에서 열린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노대통령을 추모하는 전시로 '사람사는 세상전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하고

'구구갤러리'와 '마루아트센터'가 주관하며 노무현재단에서 후원했다.

 

 

 

지난해 수묵화가 유준씨를 비롯한 여섯 명의 작가들이 ‘묵향만리-사람 사는 세상’ 전시를 개최한 데 이어 두 번째 마련한 추모전이다.

 

 

 

이번 '사람 사는 세상'전에는 작가들이 출품한 작품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살아생전 명연설 영상도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란 바람개비 만들기’와 '노통에게 쓰는 편지' 등 다채로운 체험 행사도 마련되었다.

노란가게 팝업스토어에서는 캔들, 티셔츠, 양말, 도자기 컵 등 5월 기획 상품도 내 놓았다.

 

 

 

노무현 정신의 기본은 ‘사람’에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며 정치의 중심에 권력자 대신 국민을 세우고자 애쓴 유일한 대통령으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향하여 인간적인 눈 맞춤을 시도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특권 없는 세상을 위해 권력자들의 불의와 특권의식에 분노했다.

그렇지만 부패한 기득권 세력들은 인간적인 노무현대통령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

다시는 그런 대통령을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전시에는 유준, 박재동, 임옥상, 이하, 박건, 하일지, 아트만두, 강레아, 임동은, 황예숙, 박세라 등 99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나, 무엇보다 보는 이의 눈길을 끈 작품은 노무현대통령의 전속 사진가로 일했던 장철영씨의 특별사진전이었다.

 

 

 

가식 없는 노대통령의 살아 생전 모습에서 소탈한 인간적 면모를 만날 수 있었는데, 한편으론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아무쪼록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던 사람 사는 따뜻한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이제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는 24일 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서둘러 노무현대통령 만나러 인사동 가자.

 

 

사진, 글 / 조문호

 

 

도예가 황예숙씨의 ‘노랑 드레스 입은 도자의자’ 초대전이

지난 9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황예숙씨는 실용적 속성을 바탕으로 조형적 유희를 담아내는 도예가다.

정해진 기법에 따라 반복하는 그렇고 그런 도예가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도예를 전공하고 홍익대학원에서 도자조각을 공부했다.

세계 각국에서 스물 여덟차례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역량 있는 작가다.

그동안 건축물의 도자조각과 환경조형물 같은 대작들을 많이 제작해 왔다,

 

지금은 여주에서 ‘후후아트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주국제도예협회장’으로 한국도예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도예계 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이유는

고인이 된 남편 박권수 화백의 유명세에 가린 탓도 있다.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일보다 남편의 유작을 펼쳐 보이는데, 온 힘을 쏟아왔다.

 

며칠 전, 황예숙씨로 부터 전시를 연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요즘은 가급적 전시 보러 가는 일은 자제하지만, 안갈 수가 없었다.

작가를 알게 된지가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

여지 것 사진으로만 작품을 보았지 실제 작품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전시는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가 아니던가.

 

지난 9일 정영신씨와 손님 몰리는 개막식을 피해 이른 시간에 전시장을 찾았다.

황예숙씨는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보완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은 도자의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의자만 놓여 있으니, 앉아 쉬기도 좋았다.

 

고난도의 제작과정과 소성과정을 거쳐야하는 돌덩이 같은 도자 의자를

연약한 여성의 힘으로 어떻게 구워냈는지 모르겠다.

온 몸을 불사르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투박하면서도 간결했다.

대담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의자들은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했다.

자칫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 도자의자를 포근하게 이끈 색깔 또한 매혹적이었다.

몸체에 입힌 유약이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 4번 이상 소성해 완성했다고 한다.

 

작품이 도발적이고 육감적이지만, 어머니 몸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실용성은 물론 장식성까지 두루 갖춘 작품에는 정겨운 여성의 감성이 물씬 묻어났다.

모양이 다르고 삐딱해도 안정감을 주는 의자 다리,

거칠어 보이면서도 섬세한 조형감각도 돋보였다.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지만,

거실이 넓은 집에 옮겨 놓으면 집안의 격이 달라질 것 같았다.

즉, 작품의 예술성 뿐 아니라 상업성도 겸비했다는 말이다.

 

소설가 박인식씨는 서문 말미에 이렇게 적고있다.

 

"황예숙의 의자는 신통하다.

생각하는 사람을 앉혀 사랑에 미친 짐승으로 바꿔 놓을만하다.

이 의자는 한글 자음의 'ㄴ'이다. 여기 시가 앉아 신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여태 보지 못했던 사랑의 형상 Shape of love를 본다.

 

누가 황예숙의 의자에 시를 앉히는가

당신은 어떤 사랑의 형상으로 그 의자에 시로써 앉겠는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전시는 오는 15일까지지만,

여주 '경기세계생활도자관'전시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야 이 개새끼야~ 우당-탕 탕술 자리에 난리가 났다.

지난 14일 새벽, 완주 한봉림씨 작업실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술 취해 졸다 시끄러워 눈을 떠보니, 꿈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듯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고함소리만 들렸다.

소화기 포말 냄새로 보아 불이 난 걸로 착각했다

슨 일로 왜 싸울까 궁금했지만, 꿈 꾸듯 헷갈렸다.

옆 자리에는 자다 깬 송상욱, 이만주, 박인식씨가 놀란 망아지처럼

우두커니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우는 사람은 바로 이상훈씨와 김명성씨였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와 의자를 집어던져 벽의 통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가 서길헌씨는 이상훈씨를 부여 잡았고, 김영국씨는 김명성씨를 떼어놓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작업실에 있던 한봉림씨가 방에 들어나자

이상훈씨의 화살이 그 곳으로 날아가는 걸 보니, 이상훈씨와 한봉림씨 싸움 같았다.



    


나이 많은 선배에게 행패부리는 것을 김명성씨가 그냥 두고 볼리 없기 때문이다.

힘에 부친 김영국씨가 손을 다쳐, 김각환씨가 나서서야 간신히 김명성씨를 제압했다.


결정적인 것은 한봉림씨가 2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100호쯤 되어보이는 그림에

술병을 날렸는데, 캠퍼스천을 뚫으며 액자가 바닥에 나 뒹군 것이다.





간신히 이상훈씨가 밖으로 밀려 나가서야 사태가 수습되기 시작했다.

김시인씨가 쓰레기를 한데 끌어 모아 대충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진 찍을 자격도 없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카메라를 들고 놀았으나, 왜 그 기막힌 현장을 찍지 안했을까?

무의식적으로 카메라에 눈은 갔으나, 차마 잡을 수 없었다.

벗들이 죽자 살자 싸우는 그 다급한 판에 어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사진은 냉정함을 요하니, 차라리 사진가이기를 포기하는 게 낳겠다.



   


뒤늦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한봉림씨의 술 취한 퍼포먼스를 이상훈씨가 과잉 대응한 것 같았다.





다들 하루종일 술을 너무 많이 퍼 마셨다.

낯부터 전주 막걸리골목에서 마시고, 한봉림씨 댁에 준비된 술은 물론 비축주마저 씨를 말리지 않았던가.

자정이 지나서는 그마저 없어져 콜택시에 연락해 전주에서 소주 한 박스와 맥주 두 박스를 사 오게 만들었다.

얼마나 기분좋게 놀았는지, 내 생애 최후의 화려한 만찬이라 했다가,

그 자리에 정영신씨가 없어 최후란 말은 거두었다.




 

술 마시며 재미있게 놀다 분위기가 식은 시간은 새벽 두시 무렵이었다.

두시부터 시작되어 새벽 네 시 무렵에야 사태가 진정 되었으니,

무려 두 시간 동안 난장을 벌인 것이다.



 


분위기가 시들해서 포커 판을 벌였는지,

포커 판 때문에 술자리 열기가 식었는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이상훈씨등 네 사람이 벌인 포커 판이었다.



 


나 역시 포커하는 게 싫어 자리에 누웠지만, 다들 그 때부터 술자리에서 물러난 것 같았다.

그 무렵, 작업실에 있던 한봉림씨가 갑자기 소화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처음엔 벽난로의 불이 옮겨 붙는 착각에 소화기를 잡았는지 모르지만,

느닷없이 포커 판 쪽으로 소화기를 쏜 것이다.



 


그래서 직격탄을 맞은 이상훈씨가 난리를 친 것이다.

하나의 퍼포먼스 였으나, 이상훈씨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했다.

차라리 하얀 눈가루를 맞으며 춤이라도 너울너울 추었으면 좋으련만...




 


무작정 한봉림씨에게 욕하며 달겨드니, 김명성씨가  빰을 몇 대 때렸다고 한다.

그래서 분풀이로 기물을 때려 부수며, 난장판을 벌인 것이다.



 


사태가 어느정도 수습되고 나니, 사고 친 이상훈씨를 비롯한 다섯명은 콜택시를 불러 탈출하고 없었다.

미처 차를 부르지 못한 김상현씨는 아코디온과 기타 통을 둘러메고 한 시간 반을 걸어 읍내까지 나갔다고 했다.

어두운 눈길을 걸어가며, 살아남은 유랑악단의 설움을 절절히 씹었을 것이다.





그 난장판을 피한 사람도 있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숙소에 들어간 전활철씨 가족과 김혜련, 황예숙씨만

그 사실을 깜쪽같이 몰랐는데, 현장을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남은 사람이라고는 김명성, 서길헌, 김영국, 송상욱씨 등 다섯 명인데,

이불은 소화기 가루가 뿌려져 버슥 버슥했지만 그 위에 쓰러져 잠시 눈을 붙여야 했다.





아침 무렵, 한 숨 자고 나온 한봉림씨가 현장을 보고 한 말이 죽인다

하하하~ 대단한 퍼포먼서였어


포말가루 자욱한 컵들을 씻어 커피 한 잔씩 마셨으나, 한봉림씨는 남은 맥주로 속을 풀어야 했다.




 

한참 후, 버스타고 올라가며 보내오는 메시지도 각양각색이었다.

화가 강찬모씨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날아가는 나비만 보았다고 적었고,

무용평론하는 이만주씨는 소화 분말을 많이 마셨더니, 속에 있는 울화가 다 사라졌다고 적었다.





 

인사동 풍각패의 유랑 길에 어찌 이 정도의 풍파를 거세다 할소냐?



 

 

전주로 유배 떠난 지가 몇 달된 음유시인 송상욱씨께 위문공연 가자는 이야기는 지난 년 말부터 나왔다.


난, 새해 첫날부터 감기에 걸려 두문불출하고 있었는데, 년초에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일 간에 전주 가야하는데, 전주 가는 날을 형이 잡아라고 다잡았다.

일주일 후에는 감기가 나을 것 같아 토요일로 정했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감기도 완쾌되지 않았지만, 창원의 양철수씨가 보냈다는 택배를 받아 노숙인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데,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누가 가는지도 모른 채강남고속터미널로 나갔더니,

이만주씨와 김상현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주모자인 김명성씨가 무작위로 불러 모은 사람이 공교롭게도 십 팔명이었다.


십 팔년의 첫 유랑 길에 십 팔명이 떠난다는 암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지만,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아무튼 괜찮은 년일 것 같은 예감은 들었다.





뒤이어 박인식, 김혜련, 황예숙, 김시인, 서길헌, 김각환, 이상훈, 김영국, 이만주,

강찬모, 전활철씨와 아들 시원이, 딸 예원이 까지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사동 창예헌농심마니 팀으로 이루어 진 잡탕이었.



 


전주터미널에 도착하니, 송상욱선생과 한봉림씨가 나와 있었다.

첫 코스는 송상욱선생 작업실이 있는 전주 막걸리 골목이었다.

처음들린 집이 옛촌 막걸리였는데, 공교롭게도 바가지 집이었다.






술에 안주가 따라 나오는 게 아니라 안주를 시켜야 술이 한 주전자씩 나왔다.

많은 안주를 시킬 수 밖에 없어 잠깐 동안 마신 술값이 무려 40만원이나 되었다.

전주의 맹주 한봉림씨가 내려는데, 김명성씨가 먼저 내버려 구역침범했다며 화를 냈다.

그보다 엄청난 바가지 골목이 되어버린 막걸리골목의 못된 장삿속에 더 울화가 치민 것 같았다.

인터넷에 올려 아무도 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펄펄 뛰었다.





그 자리에서 황예숙씨는 송상욱선생께 도예작품을 이주선물로  전하기도 했다.

이어 송상욱씨의 재미있는 노래와 김상현씨의 구성진 연주가 이어졌다.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 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이어지는 열두냥짜리 인생도 들었고, 김상현씨가 부른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도 들었다.



    


지척에 있는 송상욱선생의 무대로 옮겨갔다.

입구에는 송상욱선생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무무놀랑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안에는 송상욱선생께서 노래 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 져 있었고,

부인이 춤 출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벽에다 거울을 붙여 그런지 엄청 넓어 보였는데, 더 놀라운 것은 가게 임대료였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쪽방  임대료가 23만원인데, 그 넓은 작업실이 한 달에 20만원이라는 것이다.





그 곳에서 송상욱선생의 아내인 김미옥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인사동 아라가야에서 처음 만난 지가 벌써 10이나 흘렀는데,

세월이 빠른 건지, 사는 게 급한 건지, 나도 모르겠.


김미옥여사가 준비한 다과에다 보드카도 한 잔 씩 마셨다.

방음된 공연장에서 듣는 아코디언 연주와 노래소리는 좀 달랐다.  

역시 뽕짝은 술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는 맛이 좋더라.



    


늦을세라, 한봉림씨 아지트가 있는 완주 소양면 종남산 자락으로 옮겼는데,

그런 귀 막힌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앞서 말했지만, 그 날만큼 재미있게 논적도 드물었다.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의 노래도 한 몫했다.

달래듯, 빈정대듯 하소연하듯 상대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며 부르는

쌍팔년도 포크송에 세 여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양한 춤이 어우러진 가무 또한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듯 싶었다.



 


그런데 종남산자락의 집터가 샌 것인지, 오래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창예헌가을여행과 농심마니산행이 겹쳐진 10년 전에도

이곳에 전국각지의 명물 100여명이 모였는데, 그때도 가관이 아니었다.


영화사를 운영하던 임정하씨가 술이 취해 넘어져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고,

관객모독의 연출가 기국서씨가 여우 공격법으로 한봉림씨를 활킨 사건은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의 사건 사고였다.





그 날이 한봉림씨 모친 구순 생신이라 다들 인사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젠 백수를 넘기도록 종남산을 지키고 계시니, 보통 명당은 아닌 듯싶다.



 


한봉림씨의 안 서러운 배웅을 받으며 10시버스로 다들 전주 시내로 나왔다.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달랜 후, 또 다시 술집을 찿았다.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술집을 물어물어 갔더니, 가는 날이 공일이라 문이 잠겼다.

하나님 만나러 간다나...





닥치는 대로 찾아 들어간 집은 '구일집'이었다.

생각 밖의 맛있는 음식집이었다. 김밥도 가락국수도 나오는 음식이 모두 맛있었다.



 


오후3시 무렵에서야 서울로 올라오며, 지난 일들을 곱씹었다.


술이 취한 상태지만, 이상훈씨가 너무 무례했다. 그렇게 막 나갈 군번이 아니었다.

젊은 혈기라 그런지 모르지만 나이 많은 선배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한 것 같았다.

좀 지혜로웠다면 소화기를 빼앗아 퍼포먼스를 대신 할수도 있잖은가?



 


그리고 이런 술자리에서 포커판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일단 돈 냄새나면 역겹다. 꼭 해야 한다면 방을 빌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한다.

어쩌면 호탕한 성격의 노장 한봉림씨의 거침없는 가르침 일 수도 있다.


어떻게 자기집에 찾아 온 손님에게 포말을 쏠수 있냐고 흥분하였지만,

남의 집이 아니고 자기가 청소할 집이니 가능한 것이다.





이번 일은 남의 기물을 망가트린 손해배상에 앞서 진정한 사과가 따라야 한다.

한 쪽 모서리가 터진 작품은, 또 하나의 훈장을 단채 의미를 더할 것이다.





아무튼, 술판의 돈 놀이를 채찍질한 훌륭한 퍼포먼스라 생각된다.

오랫동안 추억할 일이 틀림없으니, 이게 좋은 유랑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2016서울한옥박람회 개막식에 내외빈들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전통장인들의 대장간 가마 재현에서 정자 건축까지, 전시와 체험으로 한옥의 전통과 미래를 만나볼 수 있는
‘2016 서울한옥박람회’ 개막식이 지난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렸다.

서울시와 아시아투데이가 주최하고 2016 서울한옥박람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김덕룡)가 주관한

이번 한옥전문박람회는 전통장인에서부터 작가, 한옥 건축‧자재업체, 대학교 등 200여 곳이 참여한 최대의 규모다.
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구본홍 아시아투데이 부회장과 우종순 사장, 게르하르트 자바틸 유럽연합대사 등
주요 인사 및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최근 집을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셀프'로 한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우리 전통 한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어,
전통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한옥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한옥문화예술관’에서는 한옥에 어울리는 다양한 작품전도 열린다.

전통공예와 전통가구를 비롯하여 ‘민예총’에서 주관한 우리가옥미술전, 박권수화백 초대전, 여주도예작가협회전,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의 아리랑관도 마련되어 있다.

‘민예총’의 우리가옥미술전에는 장터사진가 정영신의 사진에서부터 고선례씨의 그림과 조각 , 도예가 황예숙씨와

김희갑씨 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박람회는 21일까지 나흘간 진행된다,


                                                                

 인사말을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23일 열린 박권수씨 추모전 뒤풀이가 인사동 산수갑산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박권수를 사랑하는 모임’(박그사)이 마련했는데, 소설가 박인식, 방송인 전유성,

영화배우 최민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탤런트 이효정, 시인 송 현, 연극배우 이호성, 행위예술가 심철종,

화가 강찬모, 106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날, 100여 만 원이나 되나 뒤풀이 술값을 아라아트김명성씨가 낸 것이다.

전시장도 그냥 빌려주었는데, 뒤풀이까지 내겠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여지 것 인사동 지인들의 전시 때마다 숱한 도움을 준 그였지만, 지금은 자기 코가 석자다.

당장 빈손으로 물러나야 할 처지를 훤히 아는데...

돈이 없어, 후배 이지하씨에게 200만원 상당의 판화를 줄 테니 대신 내라는 것이다.

 

전생에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태어난 팔자인지는 모르지만, 코끝이 찡했다.

끝 날 무렵 불어 준, 김정남씨의 피리소리가 구슬프게 했다.

 

이날 뒤풀이에 함께한 분은 미망인 황예숙씨와 그의 아들 박상하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전유성, 김명성,

이효정, 이성용, 이호성, 이상철, 이두엽, 강찬모, 김대웅, 송일봉, 주홍수, 정영신, 김행수, 김정남, 조해인,

장경호, 최인선, 김진석, 이정아, 박관식, 김희갑, 권경희, 서길원, 서혜운, 노광래, 이영기, 백남이, 이지하,

임경일씨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글 / 조문호















 

 


 

 

 

 

 

 

 

 

 

 

 

 

 

 

 

 

 

 

 

 

 

 

 

 

 

 

 

 

 

 

 

 

 

 

 

 





박권수씨 10주기를 추모하는 내일 더 빛날전이 지난 23일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렸다.

 

고인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82, 서울미술회관 데뷔전을 시작으로 32차례나 개인전을 열었다.

86년 뉴욕 화단에 진출한 이래 미국, 프랑스, 일본, 소련 등 여러 곳에서 전시를 열어왔다.

왕성하게 활동하다 쉰다섯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10여 년 동안 그려 낸 인간 군상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이 된 듯한 소외된 인간상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표정과 동작이 하나같이 굳어있어,

극단의 고통 속에 일그러진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표정들이었다.

 

이 날 박인식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에는 황예숙, 전유성, 이효정, 김명성, 송 현씨 등 여러명의

추모 인사말과 음유시인 송상욱씨의 추모 노래도 들었다.

서천문화원장 조순희씨는 작가의 고향을 소개하며 함께한 지역 분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박그사 공동대표 / 박인식, 전유성, 최민식)가 주최한 이번 유작전 개막식에는

미망인 황예숙씨와 그의 아들 박상하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전유성, 김명성, 이효정, 송상욱, 송 현, 이성용, 이호성,

서정춘, 구중관, 이상철, 이두엽, 강찬모, 심철종, 김대웅, 송일봉, 주홍수, 정영신, 김행수, 김정남, 조해인, 장경호,

최인선, 노형석, 김진석, 이정아, 박관식, 김희갑, 권경희, 서길원, 김호근, 김낙영, 서혜운, 전활철, 노광래, 이영기,

조명환, 마기철, 백남이, 이지하, 임경일, 조순희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아라아트지하1층부터 지상3층까지 4개 층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고인의 유작 전부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진,/ 조문호































































 

 



저승에서도 그림을 그리겠다던 박권수화백이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세 번째 유작전이 오는 10월31일부터 11월9일까지 ‘서천문화원’에서 열린다.

'농심마니'와 '박그사'가 함께하는 오프닝은 10월31일 오후5시다.

“지인들이여! 그 시절을 돌아보며, 도예가 황예숙(미망인)씨와 눈 맞추자.
그리고 함께 어울려 술잔을 들자.


전시 오프닝과 연계한 '농심마니'의 산삼심기 행사도 서천 천방산에서 있다.

서울의 '농심마니' 버스는 10월31일 오후2시에 서울'세종문화회관' 뒷편에서 출발한다.

함께 할 분은 '농심마니'총무 이상철(010-9063-5510)씨에게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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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철 “마치 도화살”전 개막식이 지난 20일 오후6시 인사동 ‘아라아트’3층 전시실에서 열렸다.
전시장에서 작가 오만철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공윤희, 공창호, 이상철, 이길원, 임채욱, 정영신, 황예숙,

김은경, 김희갑, 유근오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돌아 오던 길에는 택시를 기다리던 구중서, 주재환선생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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