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터줏대감들께서 모처럼 나오신다기에, 신년 인사드리려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동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요즘, 유일하게 인사동을 챙기는 분이 강민선생이시다.
용인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야하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나오시는
선생의 인사동에 대한 애착에 그져 고개가 숙여 질뿐이다.
삭막하게 변해가는 인사동을 보면 속만 답답하실 텐데 말이다.






점차 친구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재작년엔 소설가 이호철선생과 극작가 신봉승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셨고,
작년에는 심우성선생마저 공주 요양병원으로 떠나지 않았던가.
살아 남은 분이라도 자주 만나고 싶어하시나
다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으시니, 잘 나오지 않는단다.






년초부터 감기에 걸려 이틀 동안 누워지내다 3일에서야 간신히 추수릴 수가 있었다.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약속장소인 ‘나주곰탕’으로 갔더니, 강민선생을 비롯하여 김승환, 장봉숙선생이 와 계셨다.
너무 반가운 만남이었다. 페북에서야 가끔 인사 드리지만, 뵌 지가 몇 달은 된 것 같았다.

선생께선 낮에만 나오시고, 난 올빼미처럼 밤에 출몰하니 잘 만날 수가 없었는데,
다들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곰탕 건더기를 안주삼아 조촐한 신년하례식을 가졌는데,
강민선생은 방동규선생께 미처 연락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셨다.
방동규선생이 계셔야 호탕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모처럼 식사 한 끼 대접하려 했으나 장봉숙선생께서 먼저 계산해 버렸다.

새해부터 어른들께 신세지는 일을 없애려 했으나, 첫날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커피 마시러 ‘인사동 사람들’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곳은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인사동을 사랑하는 옛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는 말이다.


붙잡아도 머물어 주지 않는 세월을 원망해야 할지,
갈수록 야박해지는 세상을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 둘 변하고 사라지는 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커피를 마시다 선생님들 앞에서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감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술이 오르니 갑자기 잠이 몰려온 것이다.

눈을 떠보니 정영신씨 혼자 남아 있었는데, 선생께서 일어나시면 깨워야 하지 않는가?

죄 없는 정영신씨만 원망하고 있으니, 전활철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민선생께서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유목민잠시 들렸다고 했다.

그 곳에서 강민선생은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김승환, 장봉숙선생은 떠나시고 없었다.

그동안 말씀이 없어 잘 몰랐는데, 강민선생께서 오래전 넘어져 다친 팔목이 아직 불편하다고 했다.

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계셔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빨리 완쾌하셔야 할텐데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화 그리는 장춘씨가 '유목민'에 나타난 것이다. 

홍두깨처럼 나타났다 증발해 버리는 그의 행적이 늘 궁금했기에,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가웠다.

오죽하면 북한의 지령받고 움직이는 간첩이 아닌가 생각했을까?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장춘씨와 정영신씨를 '유목민'에 남겨두고, 강민선생 따라 일어서야 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이종민씨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밑에 잃어버린 카메라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찍힌 사진파일이 더 필요했고,

그 사진파일보다는 그와의 인간적 신의를 되돌리는 것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해에는 더 이상 절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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