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사랑’이 인사동에 문을 연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이곳은 96년 한학자 최동락씨가 차린 학당이자 대폿집이었다.
걸죽한 올갱이 탕이 좋아 가끔 들렸는데, 매주 월요일은 논어 공부도 했다.
장소는 옛날 ‘실비식당’이 있던 골목으로, 인사동8길 끝집이다.
‘사동면옥’을 지나 ‘대감집’을 꺾어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이다.

그런데, 단골만으로 운영하기엔 힘이 부쳤는지, 3년 전 점포를 넘겨버렸다.
그 뒤 콩으로 만든 두부음식 전문의 술집이었으나, 그 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몇 일전, '민예총'의 대부였던 김용태씨의 딸 보영이가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운현궁 옆 골목에 있던 ‘낭만’이 헐려 인사동으로 진출했다는데,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사동에 죽칠 곳이라고는 고작 ‘유목민’ 뿐이었는데, 한 곳 더 생긴 것이다.

일단은 술꾼들의 입맛을 잡고 있는 보영 엄마의 안주 솜씨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경호씨로 부터 몇 차례 전화는 받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해 들리지 못했다.

지난 주말 13차 촛불집회 행사장에서 만난 장경호씨가 오늘 저녁은 ‘풍류사랑’에서 먹기로 했으니,

8시까지 그 곳으로 오라고 했다. 광화문광장은 눈이 내려 온 종일 돌아다니려니 힘에 부쳤다.

더구나 땅까지 미끄러워 다리에 신경이 쏠려 그런지 어깨까지 땡겼다.

시간 되기가 무섭게 인사동 ‘풍류사랑’으로 갔더니, 보영이 모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안에는 이종률, 성기준씨 일행이 있었고, 밖에는 술상만 여러 군데 차려놓았더라.

‘민미협’에서 예약한 자리라기에, ‘광화문미술행동’팀 자리로 알고 퍼져 앉았다.

그들도 ‘민미협’ 맴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오면 탕을 끓이려고 기다렸더니,

방에 있던 성기준씨는 민미협’ 총회가 늦는 모양이라며 먹던 술과 안주까지 챙겨 주었다.

광화문에서 사진 찍던 정영신씨까지 불러 언 몸을 녹이는데, 예약한 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최석태씨를 비롯하여 박홍순, 김치중, 천호석, 최연택, 김영중, 나중기, 백창흠, 이재민씨 등

대부분 아는 분이었으나, 미술행동 팀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정영신씨는 좌석이 부족해, 자기가 끼일 자리가 아니라며 먼저 일어났다.

난 오랜만에 만난 분들이라 자리를 지키고 앉았으나,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다른 때처럼 광화문 ‘남원추어탕’에서 식사를 할 것이었다면,

미끄러운 길 따라 인사동까지 오지 않아도 될 것을, 왜 잘못된 정보를 주었을까?

추측컨대, 이인철씨가 회장으로 있는 ‘민미협’ 모임을 기록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낭만’이 인사동 ‘풍류사랑’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인사동 풍류를 소개해 온, 나 역시 늘 숙제로 남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풍류사랑’은 '민예총'에 소속된 작가들의 아지트로 자리잡았다,

이 글을 올리는 중에도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인터넷에 떴는데,

신학철, 임옥상, 김정헌, 박재동, 박현수, 유홍준, 민정기, 박불똥, 이인철씨 등 명사들이 잔득 모여 있었다.

그래도 모르는 분은 한 번 들려 볼만한 주막이다.

인사동 구석에 위치해 젊은이들이 판치지 않는데다, 음식이 맛깔스럽다.

인사동의 마지막 풍류이기도 한데다, 운이 좋으면 예술계의 대가들과 친분도 나눌 수 있다.


주소는 종로구 인사동8길 12-7이고, 전화는 02-739-0809, 010-2770-8022번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사진은 지난25일 김보영씨가 찍어 페북에 올린 사진을 스크랩했다.







지난 9월2일 오후6시, '인디프레스'에서 ‘한국현대 형상회화 2016’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화가 장경호가 인사동 ‘관훈미술관장’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열어 온 전시다.

한 푼 없는 가난한 화가 입장에서 매년 치룬 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아직까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형상미술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그의 고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형상미술은 80년대 초반, 민주화가 진행 중인 시대에 격렬한 예술로서 시대적 위기에 맞선

인간과 삶의 문제를 풀어가던 우리 미술의 한 축이기도 하다.

그 무렵 세상 밖으로 밀려나온 민중미술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당시 한강미술관장으로 있을 때, 젊은 에너지를 일으켜 장경호를 민중작가로 보는데, 그 건 아니다.

민중미술보다 형상미술이 삶과 시대현실에 더 강하게 다가가게 했다는 점을 그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경호는 화가이기에 앞서 이론가이고 기획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통해 잘 못된 세상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진정한 형상미술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 해답으로 장경호가 끌어낸 작가가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보아도 참신하고 신선했다.

지난 해와 달리 박불똥에서 정복수로 일부 선수가 교체되었지만, 모두가 말하려는 개성이 뚜렷했다

공성훈, 성병희, 이샛별, 이세현, 이흥덕, 장경호, 정복수, 차혜림, 최경선, 최경태, 황세준씨 등 열 한명의 작품이 걸렸는데,

내가 몰랐던 또 다른 가치를 일깨우게 한 전시였다.

장비처럼 호방하게 생긴 장경호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 그림이 많지 않다.

왼 만하면 내 놓아도 될 텐데, 쪽팔리기 싫어 지우기를 반복하니, 그림이 남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한,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좋지만, 오래전 본 최시형의 초상화가 더 강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올 해 중에 열릴 ‘나무화랑’ 초대전이 벌써 기다려지는데, 이 친구가 외로움을 너무 많이 타,

술 자리를 넘보아 그게 맘에 걸리지만, 살아남기 위해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

‘한국현대 형상 회원전’에 장경호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가 주도하는 전시이기도 하지만,

형상미술하면 그를 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날 작가들 외에도 김세균 정의당 공동대표인 김세균선생,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사진가 정영신, 강고운시인,

김정대 관장, 노광래 관장, '아라리오 서울'의 박선영씨, 배성일씨 등 많은 분들과 어울려 ‘청하’에서 취했다.


이 전시는 통인동에 있는 '인디프레스'(010-7397-8498)에서 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0일은 통의동과 인사동을 오갔다.
대전에서 전시중인 정복수씨와 울산에서 올라 온 오세필씨로 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먼저 정복수씨를 만나러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통의동 ‘인디프레스’로 갔다.


경복궁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을 접어더니 장경호씨와 유근오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 술 마시다 담배 피우러 나온 모양인데, 반가움보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깝게 지낸 사이지만,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일 년 가까이 등 돌리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했으니, 이제 화해가 된 듯싶었다.

술집에 채현국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분이 있다지만, 약속시간이 늦어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좀 있다 보자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정영신, 오세필, 최백호씨를 비롯한 열 여명의 모르는 여인네들이

커피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세필씨 부탁으로 아침 일찍 전시 안내하러 간 아내를 길에서 만난 것이다.

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 그리고 ‘아라아트’의 브레인 워시전을 거쳐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인디프레스’로 왔다는 것이다.

인사만 나누고 정복수씨가 기다리는 전시장으로 급히 갔더니, 조금 전에 나갔다는 것이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며 돌아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전시장 옆 ‘메밀꽃 필 무렵’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 곳에는 교장선생님인 정복수씨 부인도 함께 있었다. 몇일 전 대전 전시장에서 뵙기는 했으나, 반가웠다.

미색도 출중하지만, 정복수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정복수씨가 반평생 신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인 덕이었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기 바쁘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미술 평론가 최석태, 유근오씨와

화가 장경호씨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소주나 마실 것이지, 남 따라 장에 간다고 잘 마시지 않는 막걸리를 마셨더니, 금방 취했다.

아마 맞은편 미녀 눈길 닿는 게 쑥스러워 벌컥벌컥 마셨던 게 원인이 아닌가 짐작된다.

김정대씨와 합류하여 어딘가 이차를 간듯한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오세필씨와 인사동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김명성씨의 전화를 받고서야 자리를 옮겼는데, 그 자리에는 이성 구로구청장을 비롯하여, 최백호,

박인식, 오세필, 김명성, 최석규, 정영신, 임태종씨 등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카메라불도 꺼졌지만, 술이 취해 횡설수설해대니, 옆에 있던 아내가 가자며 눈치를 주었다.

왜 술만 취하면 오버하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뭉친 불만을 술이 밀어내는 걸까?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의 화랑들이 새로운 작품들로 채워지는 수요일은 언제나 분주하다.
전시장들은 DP를 마무리하고,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고,
길거리는 축하 화분을 배달하는 사람이나 꽃다발을 안은 젊은이들이 총총걸음한다.

전시장마다 화환들이 화려하다. 이제 화환이나 화분은 가급적 보내지 말자.
돈 들여 보내봤자 짐만 늘리는 꼴이라 대개 반가워하지 않는다.

전시할 때마다 화분을 사양한다는 말들을 하지만, 기어이 보내는 분들이 있다.

울긋불긋한 꽃들이 작품 감상에 방해 될뿐더러 때로는 꽃 전시인지 작품 전시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렇게 받은 화분들이 아까워 집에 갖고 가지만, 한 번도 살려 본적이 없었다.
차라리 전시 도록이라도 한 권 사주는 게 작가들에 도움 되지않을까 생각된다.

‘미술세계갤러리’에서 열린 김반석씨의 ‘글 그림, 한글 품다’전시에는 많은 축하객들이 몰려 있었다.

흙, 모래, 종이 등 갖가지의 재료들을 사용한 독창성이나 작가의 자유로운 정신은 돋보이나, 

그 그림과 글들이 이루는 부조화스러움은 나만의 생각일까?

인사동거리에서는 미술평론가 최석태씨와 강선화씨를 만났고, 지하철에서는 정동석씨를 만났다.


2015,10, 7

사진, 글 / 조문호






























 

 

“꽝~ 퍽~ 쨍~
승용차를 오함마로 두들겨 부수는 통쾌한 소리다.
폐차일지라도, 세월호에 성난 국민들의 분노고
음모의 틀을 깨부수라는 원혼들의 절규였다.“

이건 성남에서 열린 '저항예술제' 퍼포먼서 한 장면이다. 
이 퍼포먼스 하나가 저항예술제의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양혜경씨는 어린 원혼들을 위한 넋전 춤을 추고 있었고,

삐라가 어지럽게 늘린 행사장 주변에는 다양한 게릴라성 퍼포먼서가 이루어졌다.

사진가 김영준, 장영식, 정남준씨가 참여하는 '저항전'도 눈에 띄었다. 



한국민예총과 성남민예총이 공동 주최한
'제1회 저항예술제' ‘예술대단지사건’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지난 23일, 신학철화백을 비롯하여 최석태, 하태웅, 강고운시인과
성남 오리공원에서 열리는 '저항예술제'에 참여하기로 작정했다.

충청도에서 함께 지내다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고물 핸드폰이 꺼져버려 연락이 끊겨 버린 것이다.
일행들의 전화번호 하나 외우지 못했으니 난감했다.

여기 저기 다니며 사람 찾느라, 진득하게 보진 못했으나
눈에 띄인 '저항예술제'의 면면을 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을 하직 한지 어언10년이 넘은 김진석화백의 유작을 찾아 길을 떠났다.
미망인 강고운시인과, 절친이었던 신학철화백, 그리고 후배 장경호화백과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무예가 하태웅씨 등 가까운 몇 명이 조를 맞추어, 흐릿해져 가는 그의 혼 불을 찾아 나선 것이다.

길을 떠난 22일은 윤주영선생의 사진전과 민미협 ‘역사의 거울전’ 개막식이 동시에 열리지만,

오래전부터 나들이 약속을 잡아둔 터라 펑크 낼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강고운씨는 인사동 가게 문까지 걸어 닫고 떠날 준비를 한다는데...

사실 김진석화백의 유작전을 위해 작품들을 촬영하려는 이유였으나,
패밀리를 자처하는 이들 끼리 콧바람 한 번 쐴 계략도 한 몫 한 것이다.
아침 일곱시에 만나 작품들이 보관된 충청도로 떠났다.

현장 창고에 보관된 작품들을 훑어보니, 이게 장난 아니었다.
작품들도 많지만 100호나 되는 대작들을 밖으로 끌어내기가 만만찮았다,
유리 낀 작품들은 신경이 쓰였으나,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학철선생의 지휘로 하태웅씨가 끌어내면, 강고운씨는 걸레로 닦고,

최석태씨가 규격과 내용을 메모해 두면 장경호씨가 정리하는 식인데, 셔터만 누르는 내가 제일 편했다.

최석태씨는 바닥에 쓰인 깨알 같은 글씨를 판독하느라 아예 땅바닥을 기었고,

장경호씨는 미술관장의 오랜 관록을 보여주듯 안전하게 작품들을 정리해 넣었다.

김진석화백은 80년 국전대상 수상작가로, 홍익대를 거쳐 전북대 미대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2월경에,

환갑도 넘기지 못한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 마음이야

그 그림들이 원수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오랜 세월 창고에서 먼지만 쌓였던 것이다.

고인의 유작들은  황토 길을 헤집은 개미집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시멘트 바닥의 기포 같은 물질적 표상들을

패턴화하고 있었다. 작품마다 작가의 깊은 고뇌와 사유가 엿보였다.

그러나 창고 깊숙이 들어앉은 먼지 쌓인 작품일수록, 감성이 출렁였다.

학창시절이나 젊을 때의 작품들은 마치 물감이 캔버스 밖으로 밀려날 것 같았다.

김진석화백의 초창기 작품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그 많은 작품들을 훑어보며 한 작가의 변천 과정도 읽을 수 있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외출하게 될 그의 혼 불이 재조명되어, 많은 영감을 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너댓시간의 작업을 끝마친 후 계곡에 가서 토종 닭을 안주로 몸보신도 했다.

때로는 절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자연 속에서 마시는 술은 잘 취하지도 않았다.

'앵두나무'에서 '오동동'으로 넘어가는 메들리로 시작하여 '성냥공장'에서 '봄날'까지 모조리 불러재꼈다.

얼마나 꼬라지가 불쌍하게 보였으면 팁으로 신사임당 지폐가 두 장이나 나왔겠는가?

 

술이 객기에 부채질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너무 과해 제풀에 꺾여 잠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중계방송이 중단된 것이다. 이건 분명 직무유기로 파면감이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0일 이른 시간, 화가 장경호씨를 만나 술집에 마주 앉았다.

인사동 '툇마루'로 평론하는 최석태씨와 화가 김진두가 차례로 나타났다.

이차를 간다며 '백련'으로 옮겼더니 배성일씨와 헨리 윤까지 등장했다.

 

헨리 윤은 만난 지가 오래되어 무지 반가웠다. 아마 7-8년은 지난 것 같다.

한 때 인사동 '작은 뜨락'을 들락거리며 밤이슬에 젖은 적이 어저께 같은데...

펀드메니저가 '대한다인회'를 이끄더니 서양화와 사진에도 진출했었다.

이젠 시와 수필에도 등단했다니, 그의 예술에 대한 욕구는 끝이없어 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술이 취해 깜빡 잠들었는데, 다른집으로 옮기자며 깨웠다.

삼차로 들린 '무다헌'에는 먼저 자리 잡은 주객들로 부산스러웠다.

소주에서 위스키로 격상된 것은 좋았으나, 더 마시기 싫었다.

내가 무슨 이팔청춘이라고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실 형편은 아니지 않는가.

 

그 날은 돈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나 위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장경호씨의 '뒷동산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노래 소리 들어며 퇴각해야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기획초대전 '국토'가 지난 15일 오후5시30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1-2층 전시실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우리나라 산과 강의 혈맥들을 섬뜩하게 드러낸 정비파씨의 방대한 목판화 작품들을 보며 기가 번쩍 솟는 느낌을 받았다.

한 작가의 끈질긴 집념이 이루어 낸 결과들인데, 그 6미터에 달하는 대작들을 경주 작업실에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도 궁금했다.

이 날 개막식에는 작가 정비파 가족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건달 할배 채현국선생, 서양화가 신학철, 임옥상,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미술평론가 곽대원, 최석태, 유근오씨, 무도가 하태웅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사진가 정영신씨, 소설가 구중관씨, 손예진, 오덕훈, 신상철, 한소라, 김영진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광복7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정비파 목판화전은 오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꼭 한 번 볼만한 전시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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