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만 바뀌면 정동지가 선물타령을 해댄다.

해 바뀌는데 선물도 없나?"

씰대 없는 소리라며 깔아 뭉갠지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끔은 선물공세로 알랑방귀라도 뀌면

밥 한 술 얻어먹기가 훨씬 편할텐데, 그게 잘 안 된다.

요즘 같은 여인 천하에 살아남은 것만도 용타싶다.

 

지난 년말에는 진흥마켓에서 회 한 팩 사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오는 길에 이층 다이소에서 선물도 하나 사란다.

다이소에서 뭘 사지?매장을 몇 번이나 돌았으나 살게 없었다.

"그래 선물 좋아하는 어린애니 장난감이나 사자"며

이천 원짜리 모형 카메라를 샀다.

덤으로 초록색 사과 양초까지 샀다.

송년회에 촛불로 분위기를 잡고 싶어서다.

 

정동지 입이 째졌다.

일단 카메라작전은 성공이었다.

앙증맞은 카메라가 액자 밑에 제자리를 잡았는데,

사과양초까지 따라 붙었다.

 

선물 택배도 연이었다.

떡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대전의 박순규씨와 아산의 김선우씨가 떡을 보내왔다,

난리가 나도 굶어 죽을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공유공간 마임'의 선우가 보낸 연하장에는 그림 같은 집이 튀어 올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으라는 메시지다.

건축가 임태종씨는 인사동 사진을 사겠다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도 주었다.

 

그것도 백만원짜리 큰 사진을 사람이라고는 개미새끼 한마리 없는 사진만 골랐다.

난, 사람찍는 찍사가 아니던가?

  사람 없는 사진만 고르는 것을 보니, 이제 사람 장사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새해에는 불 난 집터에 조그만 집도 짓고 보내 준 떡도 잘 먹을게요.

다들 고맙습니다.

 

둘 만의 송년회에 앞서 먼저 들릴 곳도 있었다

'스마트협동조합'에서 맛있는 홍어를 준비했단다.

서인형, 최석태, 정영신씨와 사무실 모퉁이에 끼어 앉았는데,

홍어 애 맛이 애간장을 녹이더라.

 

그동안 어려운 예술가들 돕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아무 단체에서도 못한 일을 창립한지 삼년밖에 안 된 '스마트협동조합'에서 해 낸 것이다.

더 큰 발전을 위해 다 같이 건배를 들었다.

 

녹번동 아지트에서 가진 둘 만의 송년회는 신년회로 이어지는 연속상영이었다.

내시와 광대 역할을 두루 섞은 십구금 퍼포먼스는 웃음없이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였다.

눈물나도록 웃었는데, 통쾌하게 웃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나?

 새해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 많이 만들기를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며칠 전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인사동에서 초촐한 망년회라도 한번 해야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방콕에서 해방된 날은 28일이었다.

날 잡은 김에 다 만날 작정으로 녹번동부터 갔다.

 

정동지 일로 충무로 가려는데, 조해인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응암동 콩나물국밥'에서 김수길씨와 한 잔 한다는데, 어찌 모른척 할 수 있겠는가?

 

일이 늦게 끝나 바쁘게 찿아 갔더니, 이미 술자리는 파장이었다.

사이클이 맞지 않아 부어 주는 쪽쪽 마시다보니 금방 취해버렸다.

김수길씨는 "'케이비에스'에서 동자동을 소개한 방송을 보았냐?"고 물었다.

쪽방은 물론 정동지 집에도 티브이가 없으니, 세상돌아 가는 걸 잘 모른다.

인사동 약속시간을 30분 남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인사동은 연말분위기가 실종된지 오래다 

옷 가게들이 점령해 가는 거리 풍경은 낮 설기만 하다.

 

인사동만 나오면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장면에 그 장면이지만, 출근부 도장 찍듯 찍는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고)김용태씨 미망인 박영애여사가 운영하는 ‘낭만’이었다.

어디쯤 왔느냐의 전화를 받고서야 인사동 순찰을 마쳤는데,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공윤희, 임태종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두기 지침에 맞추어 네 사람만 모인 것이다.

 

박영애여사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잔뜩 차려주었다.

돔 찜에다 돼지수육과 홍어, 그리고 과메기까지 등장했다.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지, 술 마시며 안주를 그렇게 많이 먹어본 적이 없다.

 

나온 사람 몇 명 없는 조촐한 '인사동 사람들' 망년회지만, 음식이 너무 푸짐했다.

공윤희씨가 먼곳에서 공수해 온 꼬냑까지 꺼냈다.

난, 일편단심 민들레만 마셨다. 양년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레 겁 먹은 것이다. 

 

최석태씨가 ‘유목민’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에 자리를 옮겼다.

장경호, 김이하, 안완규씨도 있었으나, 술이 취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새해에는 신나는 일만 주렁 주렁 열리길 바란다.

코로나 끝나는 봄 날, 때거리로 한번 젖어보자.

 

사진, 글 / 조문호

 

가끔 인터넷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찾아본다.

띠별로 몇 줄 적어 논 운세를 믿지는 않으나 재미로 보는 것이다.

운세가 나쁘면 그만이지만, 행여 좋은 운세라도 나오면 괜히 기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 날은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는 좋다 마는 김빠지는 운세였다.

 

지난 주말은 녹번동 정동지 집에서 개겼는데, 뜻밖에 손녀 하랑이가 찾아왔다.

아들 햇님에 안겨 온 손녀 하랑이가 그 날따라 사진 포즈는커녕 눈 맞추기도 싫어했다.

땡초 처럼 머리를 빡빡 민 할애비가 낯설기도 하지만, 무서웠던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잠들어 버렸다.

 

잠든 손녀의 천진한 모습에 빠져 행복감에 젖었는데,

손녀 빰에는 하랑이라 적힌 스탬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아들이 올린 하랑이 춤추는 사진을 보아

춤추는 멋진 손녀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결국 자리가 파할 때 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잠자는 손녀를 안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닭 쫓던 개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 내외가 가고 좀 있으니,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찾아왔다.

요즘 고 김용태씨 DMZ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미군부대 주변 사진관에서 수집한 기념사진들을

스캔 받는 작업을 정영신씨와 같이 해 녹번동에서 술 한 잔 할 기회가 잦다.

 

그 날은 정영신씨의 장터 기획전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와 스캔 받는 일은 뒷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야사에 대한 강의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비단 미술계뿐 아니라 잘 알려진 정사보다 뒷이야기인 야사가 더 흥미로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 번쩍 뜨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런 내용을 책으로 묶는다면 대박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 이사장과의 약속시간이 되어 그만 일어나야 했다.

 

스마트협동조합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푸짐한 안주에다 사무실에서 공수해 온 보드카로 술자리가 걸판졌다.

그러나 독주가 목구멍에 들어가니 금방 돌아버렸다.

 

평소에 마시는 진로를 주량에 맞추어 천천히 마셔야 하는데,

좋은 술이라며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제풀에 간 것이다.

술이 취해 할 말과 안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콩팔 칠팔 지껄인 것은 물론

술집 주인아주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추태까지 부린 것이다.

 

내 딴에는 만들어 준 술안주도 좋았지만,

가져 온 술을 영업집에서 마신데 따른 죄송함의 큰절이었으나

그만 몸매에 대한 칭찬까지 곁들이는 오버를 해버린 것이다.

절 받는 분의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던 것 같았다.

 

뒤늦게 정동지로부터 이야기 들어 알았지만,

필름이 끊겨 중간 중간 기억 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제 버릇 개주지 못한다는 정동지의 푸념에 감 잡을 뿐이었다.

 

다 같이 녹번동 집으로 돌아와서 손님들 앞에 대마불사주를 꺼내놓고 잠자리 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찍힌 사진을 보니 같이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진도 있었다.

그 이튿날 정동지에게 물어보니, 내복차림으로 한참 주접 떨다 잤단다.

 

아이쿠! 고려장 할 나이에 이 무슨 추태던가?

그 날 아침에 본 오늘의 운세가 딱 들어맞았다.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정영신의 장날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작가갤러리에서 지난 16일 개막되었으나

전염병 때문에 별도의 개막식은 생략되었다.

 

조해인, 김수길, 백승호, 장경호, 곽명우, 최석태, 손귀현씨 등

몇몇 지인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전시를 축하했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오붓한 뒤풀이를 마련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열린다.

 

 

 

2021.10.5

보름 동안의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연이은 술 폭탄에도 살아남은 걸 보니 목숨이 질기긴 질기다.

전시를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정영신씨 전시에 빌붙어 나팔 분 일이 힘은 들었지만 보람은 있었다.

언제 그분들을 다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겠는가?

반가운 분들과 지난날을 돌이켜 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몸이 마음 같지 않았다.

술에 절어 뵙지 못한 분도 많았고, 매일 올리던 일기도 쓰지 못했다.

카메라에 남은 이미지를 살피며 며칠간의 기억을 더듬었는데,

어떤 분은 성함이 기억나지 않아 블로그를 뒤지기도 하고

어떤 분은 취중의 실수가 생각나 쩔쩔매기도 했다.

모든 실수를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지난 31일은 좀 늦게 나갔더니,

태국에서 온 고영준씨가 다녀가며 축의금을 맡겨 두었더라.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무슨 급한 일이 있었을까?

그날은 노인자, 이대훈씨 내외를 비롯하여 추대희, 김지영, 송춘애, 손민광,

송주원, 이동환, 김미란, 이경지, 유근오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갔지만,

술자리에 퍼져 앉아 사진을 못 남긴 분이 많았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었다.

일하기 싫어하는 불량한 사람으로 구제할 수 없다는 편견 말이다.

물론, 일하는 것보다 술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고 더러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질고 착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 지병이 있어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다.

엄밀히 말해 알콜 중독자도 환자에 다름아니다.

병원에 강제수용하더라도 병부터 고쳐주고 일을 하게 하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주어야 한다.

 

그들은 돈이 좌우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자일 뿐이다.

부도덕한 몇몇 노숙인 때문에 선한 사람들까지 함께 몰 수는 없는 것이다.

악한 것으로 친다면 권력 가진 정치인이나 재벌에 비길 수 있겠나?

 

그다음 날인 10월 2일은 일찍부터 함평 출신의 사진가들이 모였다.

정영신, 이 민, 김기수, 박상문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좀 있으니 관악주민 사진반을 지도하는 양시영씨와 김진옥 반이정, 전영순씨가 오셨다.

몇 가지 사진에 관한 질문에 답 했는데, 흡족한 답을 하지 못한것 같다.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전시팀장 전영주씨와 오셨더라.

돈의문에서 정영신씨 ‘한국의 장터’ 전시를 제안해 와 다음 달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뒤이어 박흥순씨가 산에서 주웠다는 밤을 삶아 와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정복수, 나떠구, 박영선, 류국헌, 박종규, 최유진, 김혜련씨도 오셨다.

 

오후에는 20여 년 만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삼성카메라클럽’이라는 조직에서 일할 때 함께 했던 신상덕씨였다.

최근 페친으로 연결되어 찾아왔는데,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있어 몰라보았다.

지난 이야기에 모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밤늦게는 정복수, 박건씨와 술을 마시다 우이동 박건씨 집으로 쳐들어갔다.

 

덕분에 혼자 살아가는 공산품 예술공장도 볼 수 있었고.

사랑한 어머니를 비롯한 살아 온 지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지난 개천절에는 인사동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정신 나간 놈도 있었다.

 

‘나무화랑’에는 정영신씨와 동향인 심재상, 김문수씨를 비롯하여

김준권, 이태호, 김곤선, 양정애, 오현주, 김순남,

김일하, 김밝은씨 등 많은 분이 찾아주셨다.

 

‘유목민’에는 지리산에 들어간 임헌갑씨가 찾아왔다.

 

전시 기획자인 김곤선씨가 첫 술자리를 만들어 주었으나, 카메라가 사라져버렸다.

한동안 사진을 찍지 못해 안절부절했으나, 차 안에 두고 찾은 것이다.

김곤선씨로 부터 정암사 전시프로젝트에 관한 근황을 들었다.

 

안해룡씨를 비롯하여 유병용, 박찬호, 임동은, 이휘경,

안지현, 김문기씨 등 반가운 손님이 줄줄이 찾아왔다.

 

페북에서만 보아 온 소녀 같은 임동은씨 부인의 실제 모습도 보았다.

보기드문 잉꼬부부였다.

 

어둠이 몰리기 시작하니 장경호, 노광래, 헨리윤, 배성일, 우문명,

최석태, 황경애, 현기영, 이미례, 신상철 씨 등 많은 분이 오셨으나,

너무 취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뒷자리에 누워 차에 실려 갔다.

 

전시를 철수하는 마지막 날은 술이 덜 깨 그런지 온종일 비실거렸다.

전시장은 조명숙, 김태인, 이만주씨가 다녀갔더라.

정영신씨 전시를 취재하러 오신 김문경, 운현선씨와

‘툇마루’에서 마신 해장술 몇 잔에 전날로 되 돌아간 것이다.

 

김문경씨와 마시던 술자리는 ‘유목민‘으로 이어졌는데,

지나가던 김발렌티노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초장부터 술이 취해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닌지라 그 뒤로는 찍은 사진조차 없었다.

아무리 취해도 카메라는 놓지 않는데, 맛이 가도 완전히 간 것 같았다.

 

아산에서 김선우, 양햇살, 김온 군이 찾아와 전시를 철수했으나,

전시장을 오르내리긴 했으나 사진 찍는 일조차 잊었다.

다들 끝내고 식사하러 갔지만, 차에 들어가 뻗어버렸다.

일이 끝나 긴장감이 풀리니 갑자기 녹초가 된 것 같았다.

 

아무튼 여러분의 격려와 도움으로 살아남았고, 전시도 잘 마쳤다.

찾아주신 모든 분에게 거듭 감사 인사 드린다.

항상 좋은 일 많으시고 편안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2주 전 인사동 마당발로 통하는 노광래씨가 인사동 이야기사진집 제판을 찍자는 제안을 해 왔다.

이 책은 11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책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어 저자도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노광래씨가 인사동 풍류 40이란 책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았으나 책이 없어 다시 찍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없는 책을 다시 찍겠다는 걸 말릴 일도 아니지만 그의 인사동을 사랑하는 애착이 고마워 돕기로 했다.

그러나 출판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여 선구매를 요구해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락된 사람을 추가로 추천하므로 개정판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미 많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은 출판사로 송금한 분도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다.

당장 노숙인책 출판과 전시 준비로 내 코가 석 자인데다 전시만 끝나면 진인진출판사와 계약한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어야 할 처지라 난처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칼을 뽑았는데...

 

시간이 없어 추가로 찍을 분은 촬영일을 잡아 서너 명씩 세 차례로 나누어 찍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자꾸 늘어났다. 추가 인원을 열 분 정도를 생각했으나 20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 인사동과 관련된 분이기도 하지만, 몇몇 분은 예전에 찍으려고 추진하다 빠트린 분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 촬영까지 했으나 지면이 부족해 게재하지 못한 분도 십여 명이 남아있었다.

 

막상 촬영을 마무리하여 원고를 보내려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다시 찍은 만큼 빼야 하는데 누구를 뺀단 말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열 분이나 되지만 그분들은 더더욱 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인사동 풍류의 주체이며 인사동 역사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이 늦은 것도 고민에 고민을 하다 묘안이 없어 하소연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유목민으로 바꾸어 글을 없애고 초상사진으로만 만들던지,

아니면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오래된 인사동이 아닌 지금의 인사동으로 바꾸려면 촬영 방법이나 편집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7일 오후 3시에 마지막 촬영 일정이 잡혔다.

이날은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선생과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찍기로 했다.

그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석태, 화가 황경애씨 등 네 분을 찍기 위해 나갔는데,

전날 정선에서 묘지 이장하느라 곤죽이 되어 잘 마무리할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리더니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나게 만들고, 사진 찍기는 좋았다.

누군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겠다며 걱정했으나 그건 사진을 모르는 소리다.

햇빛이 쨍쨍한 날은 밝은 부분의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가급적 삼가한다. 더구나 사람 찍는 초상사진은...

인물사진은 확산광이 퍼진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오는 날이 더 운치가 있다.

 

약속 장소인 나무화랑으로 올라 가니 김진하 관장이 있었고,

마침 미얀마 민주주의 후원을 위한 더불어 붓글씨전인 미얀마 민중과 함께 여는 새날이 29일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김창남, 이지상, 김성창, 백인석, 구자춘, 이상필, 최 훈, 서연순, 성화숙, 최성길씨 등

서예가 열 분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전시기간이 남았으나 작품이 다 팔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신학철, 이효상선생 내외분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진하, 최석태, 장경호씨와 더불어 술자리부터 잡아두고, 신학철선생 촬영을 마치고 오니 박재동화백도 등장했다.

인사동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박재동화백의 구수한 유행가 자락에 어찌 술맛 나지 않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모처럼 만난데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누적된 피로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신학철 선생께서 핸드폰을 열어 최근에 그린 작품 두 점을 보여 주었는데, 눈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연작이라는데, 그처럼 아름다운 춘화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달구지 위에서의 사랑놀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꼴페미로 남녀 관계가 소원해진 현실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작품이 틀림없었다.

 

신학철선생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임경일, 우문명, 김윤기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두 자리에 나누어 앉아 여기저기 옮겨가며 술 마시기도 바쁜데, 약속한 화가 황경애씨는 계속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유목민에서 인사아트프라자를 두 번이나 찿아가서야 찍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찍겠다는데, 추억하고 싶은 인사동 거리를 보여 주는 입상사진의 촬영 취지와 달랐다.

덕분에 거리를 오가며 사진 찍느라 술은 덜 마셨지만...

 

그런데 통큰 갤러리일층에 포토이즘 박스란 새로운 업소가 들어와 있었다.

리모컨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공간인 것 같은데, 별의별 업소가 다 생긴다.

 

유목민으로 돌아가니 전시작품 출력하러 갔던 정영신씨까지 찿아와 이제 술 마실 일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금지곡까지 한 곡 뽑았는데, 제 버릇 개 주지 못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누군가 돌아가신 사진가 최민식선생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분이 준 인간사진집 때문에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말했더니,

박재동화백은 그 말과 더불어 지껄이는 쌍다구까지 그려 보여 주었다.

세상에! 속기사도 그리 빠른 속기사는 처음 보았다.

 

술만 취하면 배배 꼬며 염장 지르는 장경호의 술버릇도 여전했다.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이효상선생의 채근에 다들 일어섰는데, 술값을 박재동 화백이 계산해 버렸네.

내가 만든 자리라 꼬불쳐 둔 신사임당 두 장이 굳어 좋긴 하다만 거지 체면은 말이 아니다.

 하기야! 그 돈으로 마신 술값이나 되겠는가?

 

원님 덕에 나팔 분 즐거운 하루였지만, 꼬인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진, / 조문호

 

 

 

지난 일요일은 아산의 문화 공유공간 ‘마인’으로 전시 보러 가는 날이었다.

 정영신씨와 오래 전 약속한 일인데, 가는 길에 미술평론가 최석태씨를 태웠다.

 

그런데, 구로에서 그를 만나고 부터 차 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앉자마자 시작된 구라는 도착할 때까지 잠간도 쉬지 않았다.

아는 게 많고, 하는 일이 강의라 달변가인 줄이야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재벌 집안의 더러운 내막에서부터 모르는 게 없었다.

이야기에 빠져 고속도로에서 뒷걸음질 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조선 최고의 구라로 꼽을 만 했다.

여지 것 백기완, 방동규, 황석영선생을 조선의 3대 구라로 꼽았는데,

얼마 전 백기완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지 않았는가?

그 빈자리에 추천해도 전혀 손색없는 조선 최고의 구라였다.

 

듣다보니, 금세 아산에 도착했는데,

김선우씨를 비롯하여 김온 군과 양햇살 양이 반겨주었다.

전시장은 오밀 조밀 정겹게 꾸며 놓았더라.

 

쉬거나 일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책장에는 ‘눈빛’의 예술산책 서고를 옮겨 놓은 듯 반가운 책이 많았다.

 

오히려 벽에 걸린 모듬전 스타일의 내 사진이 챙피했다.

물론 내가 정한 사진이 아니라 정해 준 사진을 만들어 보냈지만,

다양한 사진이라 잡화상 같았는데,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에게 조언하던 최석태씨 지적도 따랐다.

이런 사진보다 정영신의 아산장 같은 사진이

지역민에게 더 친숙하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었다.

그 외에도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단다.

숨겨 둔 캐잌과 오래된 함지와 재봉틀을 가져왔다.

 

축하받아야 할 자리는 아니지만, 졸지에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정영신씨에게는 함지와 재봉틀을 주는 등, 송구스럽기만 했다.

 

아산 온천동 상가 1층에 있는 ‘마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인데,

여지 것 여러 차례 공간을 빌려 주었는데, 반응이 좋았단다.

시일과 시간만 예약해 둔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같이 일하거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사진집이나 좋은 책들을 골라 볼 수 있고 커피도 내려 마실 수 있었다.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도 있어 모든 걸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구입할 책은 무인시스템으로 결제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업무 협력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 끼리 생일잔치 하기도 좋았다.

 

개방전 마지막 날이라 전시 보러 온 김종우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오찬으로 육회비빔밥도 얻어먹었는데, 돈만 있다면 내가 사고 싶었다.

 돈도 없고 쓸 곳도 없지만, 돈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어찌 지역문화를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에게 밥 한 끼 사주지 못할망정, 주머니를 털게 한단 말인가?

 

그 곳에서 기획, 추진하는 일이 또 있다고 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동네잡지도 만든단다.

공중파나 주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

인문적 사유와 삶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로 꾸민다고 한다.

머지않아 ‘마인’에서 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이 점쳐졌다.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최석태씨도 할 일이 있지만,

아산으로 이사 간 신학철 선생 댁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산으로 이사 간지 일 년이 넘었으나

그동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걱정이었다.

더구나 낯선 동내에 지은 큰 작업실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최석태씨의 안내로 꼬불꼬불 시골 길로 들어갔는데,

동네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이 공장 같다지만, 내가 볼 땐 박물관 같았다.

신학철 선생은 지난 번 백기완선생 장례식장에서 뵌 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옆에서 수족처럼 도와주는 분이라고 소개했는데,

‘동학혁명실천시민행동’ 대표로 계신 이요상씨였다. 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십 여년 아내 간병으로 혼자 끓여 먹는 것이 생활화되긴 했지만,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드실 수 있었겠는가? 이제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작업실에는 신학철선생 작품 DB작업 하러‘나무아트’ 김진하관장도 있었다.

그런데, 작업 중인 작품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전체적인 메시지가 강열했다.

 

그동안 팔려 나간 작품을 찍어둔 조그만 사진도 펼쳐 놓았고,

옛날 교편 잡던 시절의 제자 작품도 보여주었다.

작업 진척이 늦어 전시를 일 년 연기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서고와 작업실 곳곳을 보여 주었는데, 이전 아파트와는 비교도 못 할 작업장이었다.

이젠 천장이 높아 대작 그리는데 전혀 지장이 없겠더라.

 

밖으로 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사방이 전원 이었다.

위쪽에는 낮은 산능선이 병풍처럼 둘러 싸 있었는데,

집 가까이 밭은 신학철 선생께서 일구는 텃밭이라 했다.

이웃사람들이 거들어 할 일이 없다지만, 그래도 농사는 농사다.

 

이요상선생게서 서울 갈 약속이 있다기에 먼저 일어났지만,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끝나는 날, 제대로 된 집들이 한 번 해야지...

부디 훌륭한 대작이 태어날 산실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예전에는 인사동에서 술 마실 기회가 많았지만,

요즘은 은평 지역에서 마실 기회가 더 많아졌다.

그 곳에 정영신씨를 비롯하여 조해인, 김수길, 김명성, 서인형씨등

가까운 분들이 많이 살아 종종 술자리가 만들어진다.

예술인 ‘스마트협동조합’이 녹번동에 있는 것도 한 몫 하는 셈이다.

 

지난 25일 오후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녹번동 있으면 ‘마포나루’로 오라는데, 나의 움직임을 훤히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역에서 녹번동으로 이동 중에 전화를 받아 술집부터 먼저 들렸는데,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조해인, 김수길, 백승호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포나루’는 서부경찰서 뒤편에 있는 조그만 횟집인데,

가격이 저렴한데다 주인의 넉넉한 인심까지 한 몫해 김명성씨 단골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가격이 싸다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찾기에는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원님 덕이 아니라 김명성씨 덕에 매번 나팔 부는 집이다.

지척에 이청운씨 화실도 있으나, 함께 못함이  마음에 걸린다.

 

갈 때마다 회에다 멍게, 전복, 생선구이 등 갖가지 해산물이 코스요리처럼 나왔다,

해산물을 골고루 맛볼 수 있어, 오죽하면 거지 영양 보충하는 날로 여길까?

이 날은 모인 사람이 다섯 명이라 두 군데 나누어 술 상을 차려 놓았다.

 

김수길씨는 다음 주에 ‘마루아트’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김명성씨는 김상현씨의 두번째 ‘뮤아트’가 이틑 날 개업한다는 소식도 주었다.

그 날의 화제는 김명성씨 소장품전인 ‘백범 김구 쓰다’전과 관련된 독립운동에 얽힌 이야기였다.

사회적위치가 높은 사람들의 부친 친일이력인데, 문제는 독립운동가로 조작한단다.

고증자료를 근거로 철저하게 진위를 밝혀야 한다.

 

그 날은 소주 한 병 남짓 마셨는데, 숨이 차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김명성씨와 먼저 일어났는데, 조해인씨는 시동이 걸렸는지 일어 날 생각을 않았다.

난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더 이상 마시지 않지만, 조해인씨는 달랐다.

몸도 챙겨야 할 나이지만, 안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술로 끝장을 본다.

 

그런데, 또 다른 사진들이 나를 기다렸다.

얼마 전 만해도 매일 같이 소식 주워 날라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렸으나,

이젠 다른 일도 있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아 일을 줄이기로 했다.

가급적 전시장 출입을 자제하고, 포스팅도 중요한 일이 아니면 안 한다.

 

그전 같았으면 주변 분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이젠 꼭 필요한 사진만 찍고, 찍어도 올리지 않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은평에서 만난 분들 사진을 함께 엮어 소개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양산에 가 있는 공윤희씨가 전화를 했다.

역촌동 ‘양갈비에 꼬치다’에서 기다린다며 빨리 오라는 것이다.

고깃집 이름은 흥미롭지만, 그 곳은 잘 가지 않는 술집이다.

가보니, 공윤희씨 뿐 아니라 조해인씨와 김수길씨도 있었다.

 

그 날은 폭설을 예고한 날이라 온종일 서울역 주변에서 맴돌았다.

백설이 휘날리는 서울역 전경사진이 한 장 필요했는데,

날씨가 포근해 그런지 간간이 내린 눈도 금세 녹아버렸다.

술 마시러 오라는 공윤희씨 전화에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달려갔는데,

술을 마시다 보니 진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다시 황급히 서울역으로 달려갔으나, 도착할 무렵 눈이 그쳐버렸다.

운이 없는 건지 찍지 말라는 건지,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부득이 눈 내리는 서울역이 아니라 눈 내린 전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은 사진은 녹번동 정영신씨 집을 방문한 최석태씨와 서인형씨 사진이었다.

 때늦은 사진이지만, 그 날은 대취해 그런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또 언젠가는 연신내 청구병원 앞을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화가 박불똥씨 였는데, 장경호씨 집에 들렸다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세월이 지나면 이 사진 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은 사라져도 사진은 어딘가 남아 떠돌테니까...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