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동안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노숙인 현수막전 치르느라 곤죽이 되었다.

매일 반가운 분들 만나 졸라 퍼 마시고도 살아남은 것이 용 타 싶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신학철 선생 전시까지 이어졌는데, 이러다 알콜 중독자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동안 전시를 하면 힘들고 돈만 까먹는 일이라 피해 왔으나

사진집이 나오면 전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팔리지 않는 책을 어렵사리 만들어 주었는데,

전시라도 해서 책이라도 좀 팔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번 정영신씨는 책만 아니라 작품도 제법 팔렸다.

큰 작품이 세 점이나 팔렸고, 소품은 30여 점이나 팔았다.

십만 원 하는 소품은 제작비와 갤러리 마진 제하면 몇 푼 남지 않지만,

보리 흉년에 이게 어딘가?

 

그나저나 다시 사진을 만들어 포장하고 배달하는 일도 만만찮았다.

그동안 전시 때문에 보지 못한 류연복씨 전시 보러 가다가 차가 밀려 진을 빼기도 했고,

미루어 둔 일 하느라 낑낑거리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 11일은 미처 철수하지 못한 노숙인 현수막 거두러 인사동 나갔다.

판매 작품 중 ‘나무화랑’에 맡길 사진도 있지만, 현수막은 빨리 거둬야 했다.

그냥 두어도 오가는 사람들이 보면 홍보야 되겠지만,

자기 들어간 현수막 사진 받으려고 기다리는 노숙인들 때문이다.

그리고 햇볕을 오래 받으면 탈색할 염려도 되었다.

 

며칠 만에 나간 인사동 거리는 월요일인데도 나들이한 사람들이 많았다.

액자를 갖고 ‘나무화랑’에 올라갔더니, 생각하지도 못한 류연복씨가 반겼다.

어제 안성 전시장에서 만났는데, 또 만난 것이다.

안성은 월요일이 휴관일이라 모처럼 짬 내어 신학철선생 전시 보러 왔단다.

 

사진을 전해주고 다들 유목민 골목으로 옮겼는데,

골목 어귀에 문 닫은 포도나무집을 보니 지난날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강민 선생의 단골집으로 추억이 많은 주막이었다.

폐가처럼 창을 가린 대나무 잎이 강민 선생의 넋 인양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옆에는 거리 아티스트 이태호씨의 김수영시인 판화가 붙어있었다.

낡은 가스 배관 틈에 붙었는데, 그 밑에는 재떨이와 종이컵까지 놓여 있었다.

마치 김수영시인 100주년을 기념하는 제단 같았다.

큰길에서는 볼 수 없는 인사동 풍류 잔재다.

 

류연복씨 도움으로 현수막 철수는 간단히 끝냈으나, 그냥 헤어질 순 없잖아.

‘유목민’의 별미 감자전을 안주로 막걸리 한잔했다.

어제는 게장 집에서 밥은 얻어먹었지만, 차 때문에 술 한잔 못했다.

 

그런데, ‘유목민’ 전활철씨와는 같은 홍대 미대 출신이지만 서로 몰랐다.

전활철씨가 삼 년 선배라는데, 군 복무하느라 서로 마주치지 못한 것 같았다.

서로 안면도 터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시간 보냈다.

 

류연복씨도 갈 길이 바쁘지만, 나도 동대문시장 가야 했다.

현수막을 사진 별로 재단하여 올이 빠지지 않도록 박아야 했다.

막걸리 세 병으로 끝낸 아쉬운 술자리였지만,

우연히 만나는 이런 맛에 인사동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달은 고생했으니, 사모님께서 보너스라도 좀 주실지 모르겠다.

야무진 꿈이라도 꾸어 보는 희망도 없다면야 무슨 재미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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