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희의 '터널II'가 지난 19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시작되었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버려진 깡통을 두들기고 오려 붙여 만든 갖가지의 형상들이 화판을 가득 메웠는데,

뻔쩍거리는 화려함 속에 도사린 짙은 그림자가 헤어날 수 없는 터널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화려하고 편리한 삶에 의한 인간 황폐화를 비판하는 시각적 울림은 오래갔다.

3년 전 나무아트에서 열린 터널I’보다 대작들로 이루어져 그런지, 훨씬 강열했다.

 

정말 놀라웠다.

버려진 폐품에 불과한 깡통으로 물질 문명을 비판한 메시지에 앞서,

고지식하게 이루어낸 작가의 노동력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욕망의 배설물인 코카콜라나 커피 같은 깡통에 새겨진 상품의 색깔도 각양각색이지만,

조각 조각의 이미지를 퍼즐 맞추듯 형상화한 치밀함은 미술과 조각을 넘어 과학의 경지를 넘나들었다.

 

깡통의 색깔은 말할 것도 없고 조각 조각 오려 붙힌 방향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것 같았다.

조명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고 보는 위치마다 달라 보였다.

 

재활용품으로 만든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개의 빤짝거리는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답게 살자는 메시지였다.

 

인간의 욕망이 끌어들인 블랙홀은 빠져나올 수 없는 터널 같았다.

 

때로는 웅크리거나 곤두박질하는 인체에, 해골도 모자라 똥도 벽에 붙어 놓았다.

똥을 자본으로 빗댄 작가의 직설적인 표현처럼 깡통처럼 텅 빈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말 “Yes i can”, , 나는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예, 나는 깡통이로 소이다.

 

아래는 작가의 말이다.

대량 생산된 음료들의 용기인 알루미늄 캔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가볍게 욕망을 채우고 내던져 버리는 찌끼기이자 배설물이다. 우리가 묶여 사는 체제의 똥이다. 가위로 오려내진 캔 조각을 나무망치로 반짝임을 덜어내면, 그로부터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빌딩 숲이 이끌려 들어온다. 이전의 손도끼는 힘차게 골을 내며 달렸지만, 캔 조각들은 둔탁하고 위태로운 기호로 켜켜이 포개지며 화면에 거대한 어떤 형태로 구축된다

 

전시장에서 반가운 분을 많이 만났다.

전시작가인 나종희씨 내외분을 비롯하여 주재환, 김정업, 박진화, 박흥순, 두시영, 김영중, 변대섭, 김보중,

성기준, 김윤기, 김경복, 양상용,  임정희, 이필두씨 등 화단에 내노라 하는 분들을 두루 만났.

 

이날은 동자동에서 초상사진 찍느라 큰 카메라를 들고와 찍어야 할 때 못 찍었다.

전시장을 나오다 김재홍씨를 만났으나 꺼낼 겨를이 없었다.

카메라는 손에 있어야 카메라지, 가방에 있으면 카메라가 아니라고 했던 평소의 말이 생각났다.

 

후회하며 카메라를 꺼냈더니, 약속이나 한듯 고옥룡씨가 나타났다.

 

사진:/조문호

 

나종희의 ‘터널’은 오는 24일까지 열린다.

 

명당 바로보기

민정기_주재환_최종현展 

 

2022_0812 ▶ 2022_0918 / 월요일,추석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청

 

관람료 / 2,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추석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org

 

완만하게 펼쳐진 넓은 들판에 서서 따뜻하게 내리쬐는 볕과 함께 눈앞으로 길게 연결된 물길의 소리, 그리고 그 뒤로 울창하게 뻗어있는 산세를 보고 있는 상상을 하니 한껏 심신에 생기가 든다. ● 예로부터 흔히 모두가 선호하는 공간의 기준으로 평탄한 땅, 산수의 조화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도는 곳을 지리적으로 배산임수의 형태인 풍수지리에 해당한다 하였고 지금까지 이는 가장 기본적인 '명당'의 전통적 개념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공간은 인간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의 한 부분으로써 단순히 생존을 넘어 시각적인 정경과 심리적인 안정감, 그리고 더 나아가 길과 복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인간에게 공간이라는 영역이 가지는 의미는 그 장소 자체만이 아닌 주위를 둘러싼 전체적인 환경까지 포함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풍수는 명당을 의미하는 하나의 자연관으로, 그것이 미신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인류의 삶속에서 자연환경은 절대 배제될 수 없는 부분이고 그 기운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상적인 입지 즉 명당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좋은 에너지를 느끼고, 살기에 편안하고, 향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은 곳을 정해 집을 짓고, 묘를 써서 좀 더 좋은 기를 받고자 함일 것이다. ● 전시 『명당 바로보기』에서는 작가 주재환, 민정기, 최종현과 함께 어쩌면 명당이라는 그 의미가 조금은 달라져버린 현재와 명당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바르게 다시 이해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고자 한다. 세 작가의 작업은 모두 고지도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명당을 풀어내고 있으며 면면촌촌 무수한 답사와 조사를 통해 우리의 민족사와 인문학적 의미를 지리적 요소와 결합하여 그려지고 있다. ● 지금의 서울인 조선의 수도 한양은 한국의 대표적인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의 새 도읍지로 선정된 한양은 풍수지리상으로 완벽에 가까운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그 당시의 현실적인 여러 방면에 잘 부합하는 이점들이 많다. 주변으로는 큰 산들이 있어 도성을 보호하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었으며 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있어 교통에 유리했다. 현재 서울의 사대문안 지형을 보면 전형적인 명당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울의 도심이기도 하고, 현재의 주요 관청, 기업이나 대학들이 위치해있는 의미 또한 명당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재환 「목판음각 수선전도」, 민정기 「서울의 얼」, 최종현 「1481 한양」의 세 작업에서도 한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재환_목각음각 수선전도_MDF 음각, 락카 바탕 단청 마감_지름 500cm_1988

주재환의 「목판음각 수선전도」는 김정호의 「수선전도」를 기본으로 목판에 음각을 하여 옛 한양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바닥에 설치한 작품으로 일반적인 평면의 지도와 비교하여 직접 보는 이들에게 현재의 서울과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고 명당길을 걷고 있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어 당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민정기의 「서울의 얼」은 최종현과의 공동작품으로 대리석에 19세기 지도인 경강부임진도를 바탕으로 유교의 5개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을 상징화한 벽화작품이다. 조선은 성리학의 기본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 인의예지신을 각각 한양의 사대문인 홍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보신각에 새겨 넣었는데 민정기의 「서울의 얼」에서는 인의예지신을 각각 인정전과 영조의 청계천 준천 모습, 해치, 문표와 악공, 규장각과 서당, 보신각과 선비들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림의 양쪽 끝 각각에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열차분야지도와 천하도가 그려져 있다. 이는 조선을 대표하는 도상들과 의미를 배치한 형태로 서쪽으로는 강화, 동쪽으로는 충주로 이어지는 서울 전역의 모습을 디테일하고도 웅장하게 담아내고 있다. 최종현의 「1481 한양」은 한양의 모습을 목각에 형상화한 작품으로 한양도성과 성문, 궁궐, 종묘, 도로와 물길 등 한양의 상징들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작품에서 보여지는 지명들을 비교해서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고 있다.

 

민정기_서울의 얼_캔버스천에 디지털 프린트_120×600cm_2022

민정기는 지리적 특성이 있는 장소를 연구하며 그 곳의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이를 명당도의 형태로 연결시키고 있다. 「동아청년단결」은 서울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인왕산 암벽에 일제가 당시 조선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시키기 위해 새긴 구호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해방이후 글씨들이 삭제되어 현재는 그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림속의 뚜렷하게 새겨진 글씨들은 아직도 바래지지 않는 시린 역사의 실재이다. 「장릉에서 본 왕릉뷰 아파트」는 김포에 위치한 장릉 앞에 아파트단지가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새워지면서 논란 중에 있는 사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유네스코로 지정되어 있는 장릉은 계양산과 김포장릉, 파주장릉을 이어주는 풍수지리적 입지에 있지만 현재는 계양산 대신 고층의 아파트 단지가 그 시야를 가려버린 모습으로 쓸쓸하고도 애석한 기운이 감돈다. 이는 공간과 공간사이의 배려가 사라지고 자연과 인문환경의 조화가 무시된 예로 '왕릉뷰 아파트'라는 아이러니한 단어조합에서 조악함이 느껴진다.

 

최종현_도산서원 지도_종이에 실크스크린_38×110cm_2005

최종현은 일평생 도시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많은 공공프로젝트에도 참여해왔고 수많은 답사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고지도 형태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종현의 작업을 보면 건축물 자체만이 아닌 나무, 물 등 자연의 모습이 하나의 전체적인 풍경으로 그림 안에 표현되고 있고 이는 흐트러짐 없이 아주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그려지고 있다. 산속 산사를 그린 「두륜산 대흥사산도」, 「반용사 명당도」와 「도산서원 지도」에서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도산서원 지도」를 보면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로 그림 전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고 길게 뻗은 강의 전경과 초록빛의 산의 조화는 아름답고도 고즈넉한 절경이다. 「고려 숙종조 남경 산수지도」, 「조선 세종조 한성부 산수지도」, 「조선 성종조 한성부 산수지도」, 「조선 고종조 한성부 산수지도」에서는 서울의 고려 말부터 조선까지 궁궐이 변화하는 위치를 나타낸 그림으로 시간의 변화에 따라 궁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해볼 수 있으며 이는 작가가 얼마나 서울 도시모습의 위치와 변화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 왔는지 알 수 있다. ● 땅 위의 인간은 인간이 누리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가지며 살아가며 땅은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고 때론 인간을 위한 땅이 되기도 한다. 땅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며 인간은 자연을 배제하고는 살 수 없다. 지나온 역사와 현재의 우리가 지켜보는 것처럼 땅, 건축, 주변 환경이 갖는 가치와 의의에 대한 모두의 관심과 호기심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 땅을 두고 무엇이 무엇을 먼저 소유하려 하거나 서로를 구분 지으려 하지 않는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가 발을 내딛고 있는 그곳이 비로소 좋은 땅, 명당이지 않을까. ■ 유정민

 

Vol.20220812c | 명당 바로보기展




‘민족미술, 다시 날아오르다’전이 개막되는 지난 19일 아침,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주재환선생 작품이 도착하지 않아 정영신씨 따라 일산 작업실로 찾아간 것이다.
처음 가본 작업실이었는데, 자택과 떨어진 아파트1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계셨다.






미완성의 대작 두 점이 거실을 채운 가운데, 선생께서 패러디로 즐겨 사용하시는 잡동사니가

군데군데 늘려 있었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두룩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화가의 작업실과 별 다를 바 없으나, 사돈 남 말 하듯, 선생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다.
이제와 담배를 끊기도 쉽지 않지만, 살면 얼마나 살 것이라고 억누르고 살 필요야 있겠나 싶었다,






주재환 선생은 80년도 ‘현실과 발언’ 시절부터 민중미술과 함께 해온 원로작가지만,
원로를 거부하고 현역임을 강력하게 고집한다.
육십이 되도록 전시회 한 번 열지 않았는데, 뒤늦게 후배들에 등 떠밀려 회갑 무렵에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 유쾌한 씨를 보라’는 첫 전시 제목도 파격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타이틀매치 주재환 vs 김동규’, ‘주재환, 성능경 2인전 ’도르래미타불‘,
주재환, 김정헌 2인전 ‘유쾌한 뭉툭’등을 가진바있다.
유쾌한 전시를 잇 따라 여는 펄떡이는 동시대작가임이 틀림없다.






선생은 별칭도 많다. 주격조 선생이라 불리기도 하고 ‘유쾌한’ 주선생이라 불리기도 한다.
'광대형 작가'를 자임하는 선생께서는 누구나 '다 같이 차차차'를 부르고 싶은 즐거운 그림을 지향한다.
삶의 곳곳을 탐험하고 연구하듯 꼼꼼히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과, 날카롭고 재치가 넘쳐 ‘패러디의 거장’이라 불린다.





기금마련전 출품작 '미투'



주재환선생의 작품에는 장난기와 기발함이 충만하다.

이번 기금마련전에 출품한 '미투'는 액자에 여성팬티를 걸어, 그 위에 붉은 꽃을 꽂았다.

전시장을 찾은 여성 한 분이 항의하는 소동도 있었으나, 출품한 두 작품 모두 팔려나갔다.
진지함이나 엄숙함, ‘먹물의 허위의식’을 집어던져, ‘주격조 선생’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시 개막식에 나오신다고 했는데, 그 날 보이지 않아 은근히 걱정되었다.
마침 작품이라도 팔려나가 다행이다 싶다.
부디 건강 잘 챙기시어 선생의 팔팔한 청춘을 기대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유쾌한 작품을 만들어, 병든 속물들에게 속이 후련한 웃음을 선사하소서!



사진,정영신 / 글, 조문호




위 작품은 주선생의 젊은시절 사진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수씨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뒤늦게 정인숙씨가 출품하였는데, 오래전 본인이 직접 프린트한 빈티지로 소장 가치가 높습니다.

주재환선생 가족께서 구입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9일은 두 모임이 동시에 벌어져 졸라 바빴다.

김명성씨가 마련한 ‘인사동사람들’ 만찬과
신학철, 강고은씨가 마련한 만찬이 같은 시간에 있었다.

 

강고은 시인이 준비한 만찬모임은 신학철 선생이 사시는
장안평에서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신학철선생과 강고은 시인이 오래 전부터 연문을 모락모락 피웠으니,
중요한 자리라는 낌새는 알아차렸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경복궁’에서 열린 만찬에 이어 이차로 ‘유목민’ 가는 길에,
그때 사 신학철선생 모임이 인사동 ’낭만으로 변경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좀 일찍 연락해 주었더라면, 먼 길이 아니니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는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늦었지만, 발길을 ‘낭만’으로 돌렸는데, 파장이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모여 있었다.
신학철선생의 친구인 춘천 사시는 황효창화백 내외분도 와 계셨다.
분명 예사모임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원로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민정기, 황의선, 김정환, 박불똥, 장경호, 이태호, 이인철,
김명희, 송진헌, 김진하, 박흥순, 김환영, 김정대, 최석태, 박영애, 정영신씨등 많은 분들이 있었다.

 

손장섭선생과 박세라씨도 왔다고 했으나, 먼저 가고 없었다.
당시는 똥인지 된장인지 몰랐지만, 여쭈어볼 겨를도 없었다.
술이 깨어 생각해보니, 신학철선생과 강고은 시인의 가연을
주변 분들에게 알리는 자리 같았는데, 축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강고은 시인은 작고한지 오래된 김진석화백의 미망인인데, 그분은 살아 생전 신학철선생의 절친이 아니던가.
신학철선생의 사모님께서도 오랫동안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지가 3년이 지났다.
이제 긴 외로움을 떨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니 이보다 더 좋은 경사가 어디있겠나.

 

당시에는 술이 취한 상태라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왔으나,
뒤늦게 이인철씨에게 물어보았더니 후배들이 두 분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고 주재환 선생께서는 즉석 주례사도 했다고 한다.

 

준비한 선물을 전달한 분도 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분들은 십시일반 거두어
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뒤늦게 전달했다고도 한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두 분의 가약을 기념하는 사진이라도 제대로 찍어 드려야 하는데 말이다.

 

뒤늦게나마 두 분의 만혼을 축하드립니다.
부디 행복한 여생을 꾸리시길 바랍니다.


사진,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 정영신기자


▲ ‘쓴 맛이 사는 맛'으로 인사동 작가전을 연 채현국 선생 Ⓒ정영신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 60여명 참가,. 수익금은 생활 어려운 작가들에게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이름을 내 건 이색적인 전시가 지난 15일 오후5시 ‘인사아트프라자’ 3층에서 개막됐다.

'쓴맛에 생각도 하고, 쓴맛에 괴로웠고 아팠지만, 그 쓴맛에 사람이 깊어진다'는 '건달'할배' 채현국'선생의 말씀에 따라, 회화, 사진, 조각, 서예, 도예, 새김아트, 금속공예, 섬유공예 등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 60여명이 뭉친 것이다.


 

개막식에는 참여작가 외에도 이부영, 임재경, 이애주, 유홍준씨 등 2백여명의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모인 전시가 쉽지 않은데, 바로 이것이 채현국 선생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 전시 축하를 위해 참석해주신 이애주,이부영,임재경,채현국선생(왼쪽부터) Ⓒ정영신


건달할배 채현국 선생은 인사말에서 같이 어울리고 함께 살자는 의미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되었는데, 전시회 수익으로 생활이 어려운 문화예술인들을 돕는다고 했다. 욕심을 부린다면 참여 작가들과 함께 남북을 걸어서 가보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


  

▲ 방혜자선생의 '생명의 숨결' 15호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는 질타로 이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채현국 선생은 현재 경남 양산에 있는 효암학원 이사장이다. ‘쓴맛이 사는 맛’으로 세상에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선생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른이기도 하다.


  

▲ 주재환선생의 '이곳과 저곳' 캔버스에 유화 90.5x90.5cm,2008


시인 신경림 선생은 ‘쓴맛이 사는 맛’ 전시에 부쳐 “그는 거인이다. 키는 작지만 생각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고 큰 것을 향해 성큼성큼 발도 빠르다/ 그는 젊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전혀 늙지 않는다/ 그래서 늘 거침이 없고 늘 싱싱하다/ 게다가 그는 부자다. 돈은 없으면서도 늘 남을 도울 것을 생각하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느라 분주하다/ 이웃과 친구들이 다 잘 살길을 찾느라 늘 바쁘다/ 가장 크고 가장 젊고 가장 부자인 그는/ 그래서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쁜 늙은이다.”라고 썼다.

이 헌시(獻詩)에 채현국 선생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 김정헌작가의 '이승과 저승-시원소주' 캔버스에 아크릴과 종이꼴라쥬,91x91cm


채현국 선생의 부름에 놓았던 붓을 다시 들어 그림을 완성했다는 화가도 있었다. 박재동 화백은 개구쟁이 같은 채현국 선생의 초상화를 선보였고, 단색화의 대표작가인 이우환 선생의 작품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출품한 작품으로 전시장은 가득 메워졌다.



  
▲ 민정기작가의 '우리섬 독도 삼형제 굴바위' 105x107cm oil on canvas,2015

이번 전시에 참여한 많은 작가 중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을 대표해온 작가 신학철 선생은 캔버스 위에 포토몽타주, 포토리얼리즘 기법으로 시대정신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역사를 관념이 아닌 구체적 실체로서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 ‘모내기’ 그림은 1989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당국에 압수되었고, 3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판문점 풍경으로 분단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 신학철 선생의 '가야할 길' 116x81cm,2017


조절된 에너지와 침묵의 힘을 빛의 순간으로 보여주는 방혜자 선생은 ‘생명의 숨결’을 내놓았고, 시계가 멈춘 탄광촌의 삶을 그로테스크한 질감으로 그려내는 황재형 작가는 ‘Bus’를 출품했다.


  

▲ 황재형화가의 'Bus'53ㅌ72.7cm, 캔버스에 유채,1993


비닐과 골판지, 폐품과 종이 등을 재활용해 발랄하고 통통 튀는 작품으로 블랙유머를 시대정신으로 재현하는 주재환 선생의 ‘이곳과 저곳',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비판적 리얼리즘 작가이자 문화운동가인 김정헌 선생의 ‘이승과 저승-시원소주’, 인사동 그림판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의 ‘묵시’는 삶에 지친 인간의 초상으로 오늘의 시대정신을 말하고 있다.


  

▲ 장경화화가의 '묵시' 72.7x90.9cm Oil on canvas,2011


조각가 박상희씨는 예수를 안고 있는 부처를 통해 세상의 다툼과 분리에 저항하는 ‘삐에타’를 선보였다. 우주의 근원적 생명과 사랑을 표현하는 화가강찬모는 ‘빛의사랑’을, 키치화풍의 전형성을 재창출하여 미학적 엄숙주의에 빠져있는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민정기화백은 우리시대 삶의 풍경인 ‘우리섬 독도 삼형제 굴바위’작품을 내놓았다.


  

▲ 박상희조각가의 '삐에타' 67x53x94cm, mixed media,2012


이번에 작품을 내놓은 대부분의 작가들은 채현국선생과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채현국 선생은 인사동 허름한 술집을 찾아다니며 가난한 작가들의 술값을 말없이 내주고, 힘들어하는 작가에게는 슬그머니 지폐를 호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이 술집 저 술집을 떠돌며 주머니가 텅텅 빌 때 까지 사람 만나기를 계속해 온 구세주 같은 분이었다.


  

▲ 박재동 화백의 '채현국선생' 종이에먹,2017


작가들은 오랫동안 채현국 선생에게 빚진 술값을 갚기라도 하듯, 전시 소식에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작품을 내놓았다. 어려운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자선바자회지만, 잘 알고 지낸 작가들이 함께 어울리는 이러한 전시는 단발성으로 끝내는 것보다 해마다 했으면 하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았다.


  

▲ 강찬모화백의 '빛의사랑' 53x72cm, 한지에 한국전통채색기법및안료,2017


참여 작가인 조문호 사진가는 오래전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창예헌’ 사람들이 다시 뭉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2008년 창립되어 몇 년 전부터 흐지부지된 ‘창예헌’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 200여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기능을 상실한 오늘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다시 부활시키자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채현국 선생은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것도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기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어야 인생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고 말씀하셨다. 선생이야 말로 염치를 아는 이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아닌가 싶다.


  

▲ ‘쓴 맛이 사는 맛'전을 위해 모인 문화예술인들 Ⓒ정영신


건달 할배 채현국과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전 ‘쓴 맛이 사는 맛’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 3층에서 열리고, 다음달 12일부터 25일까지는 유카리화랑에서 이어진다. 전시작품을 판매한 수익금은 생활이 어려운 작가들을 위해 쓰인다.



지난 30일 오후5시, 광화문광장에서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전이 열렸다.
24일 문을 열었지만, 열림식은 뒤늦게 가졌는데 전시장은 미어 터졌다.
워낙 궁핍하다보니, 자리가 좁아 다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찾아오신 분들도 한 눈에 다 알아볼 수 있는 분이었다.
백발투사 백기완선생을 비롯하여 원로화가 손장섭, 주재환선생,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화백,

그리고 박불똥, 류연복, 장경호, 이인철, 정영철, 양혜경씨등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궁핍한 정치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만 많은 게 아니라 작품들도 빼곡했다. 회화, 판화, 사진, 시, 포스터, 신문 등이 골고루 벽면을 장식했다.
입구 정면에는 송경동시인 의 시 ‘폴리스라인'이 걸려있다.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 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 개의 천만 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판화가 이윤엽씨의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결의를 다지게 하는 주먹과 절규하는 모습, 다양한 풍자로 보는 이의 분발심을 일으켰다.

한쪽 벽면에는 시민예술가들이 벌여 온 다양한 광장의 기록을 담은 정태용씨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노순택씨의 대형 사진 한 장은 공권력의 가혹함을 해부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격구속’, ’박근혜 옥중편지 단독입수‘ 등 한 발 앞서 가는 광장신문 호외판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군데군데 최병수씨의 날카로운 철제 작품들도 세워져 있었다.

결의를 다지게 하는 백기완, 신학철선생의 말씀에 이어 송경동, 이윤엽, 노순택, 최병수씨 등

참여 작가들이 차례로 나와 인사말을 했는데, 사진가 노순택씨의 절규에 가까운 사연도 들었다.

‘타임’표지를 풍자한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을 담은 작품을 전시장 외벽에 붙였는데,

어느 날 새벽, 누군가의 예리한 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 만들지 않고 언 손을 녹여가며 한 땀 한 땀 꿰맸다고 한다.

그 따위 비겁한 탄압에 굴복할 전사로 아직까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관전인‘내가 왜’란 설명문의 마지막 글귀가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왜 서 계신가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왜 서 있을까요.”

사진,글 / 조문호















































봄바람 부는 지난 4일 오후5시 무렵, 경복궁 옆 ‘학고재’로 민중작가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 날은 그림판 낭만선생 주재환씨의 회고전 “어둠속의 변신”이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기괴한 형색으로 나온 사람들은 대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민중예술의 핵심이었다.

끼면 끼, 쌈이면 쌈, 술이면 술, 다방면에 달관한 동지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봄 사건 나부렀다.

 





아는 사람들을 즐겨 찍는 나로서는, 완전 물 만난 것이다.
전시를 연 주재환선생, 그리고 손장섭, 신학철, 강요배, 민정기, 임옥상, 김정헌, 성완경, 장경호,

박불똥, 류연복, 최석태, 박진화, 박 건, 이인철, 이태호, 이강군, 박흥순씨 등 '민미협' 작가들을 비롯하여,

백기완, 신경림, 강 민, 구중서, 채현국, 방동규, 무세중, 이수호, 김종규, 우찬규, 김승환, 박현수, 민충근,

김양동, 박영숙, 심정수, 박시교, 정희성, 정동석, 임진택, 무나미, 윤범모, 곽대원, 김준기, 박 철, 김영재,

두시영,  박대부, 지미정, 장유정, 이도윤, 신학림, 김종철, 성기준, 양원모, 김태서, 정정엽, 정필주, 노형석,

조경연, 채원희, 김영중, 마기철씨 등 문화예술 각계에서 한 가닥 하는 분들이 다 모여들어, 사진 찍느라 바빴다.


전시장에 모여든 분들은 삼삼오오 와인 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으나,

잘 모르는 관람객들도 한 둘 끼어 있었다.

초대된 분들이야 주재환선생의 작품들을 훤히 알고 있지만,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해 주위를 서성거렸는데,

녹슨 못을 액자에 달아 놓은 ‘악보’라는 작품을 보며 누가 한마디 했다.


“이건 나도 만들 수 있겠네! 근데 재밋다.”








달관자가 내 뿜는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을 알아본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비꼬는 선생의 작품에는 곳곳에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다른 민중작가들의 결연함이나 비장함 같은 것과는 다르다.

오브제로 활용하는 못 쓰는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일용품에서 영감을 얻는 풍자적 비판들은,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하면서도, 그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발랄함이 탁월하다.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난해한 현대미술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하다.

80년도부터 2015년까지 제작한 50여점의 전시작들은 자본주의 비판에서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실업 등

어두운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시니컬한 위트가 찰라의 성찰을 꾀하게도 했다.

서문을 쓴 유혜종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밤은 주재환의 유화에서 중요한 주제이자 배경, 그리고 세계다. (중략)
그 밤의 풍경은 다른 한편으로 주재환의 유년 시절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중략)
주재환은 일상의 사물들과 현상들을 자신의 미학적 공간인 밤의 세계에 옮겨와

그것들을 새로운 감각적 환경에서 재 구성한다.“





올해로 일흔 여섯인 주재환선생은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일 세대다.
홍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 끝내고 그만 두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먹고 살기위해 야경꾼에서부터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일찍 체득하지 않았나 싶다. 그게 바로 작품세계로 연결되어,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인 그의 유회적 비판정신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80년도 ‘현실과 발언’ 창립전 참여를 계기로, 90년도에는 ‘민미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래 본선에 초청 받는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가 했지만,

개인전은 환갑이 되어서야 시작해, 그 동안 몇 차례 초대전을 가졌다.

이번 기획전은 작가가 그동안 무엇을 보았으며, 왜 싸웠으며,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 만나러, ‘학고재’에 봄나들이 한번 가자.
이 전시는 내달 6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글 / 조문호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3일 만난 주재환 작가.

등 뒤로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했던 ‘몬드리안 호텔’(왼쪽)과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보인다. 서영희 기자



  
민중미술이 올해 미술계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두 대표 작가의 개인전이 대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얼굴 시리즈의 작가 권순철은 “캔버스 하나로 결정적인 감동을 주고 싶다”며 지금도 회화를 고수한다. 주재환은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이 유쾌하다. 1980년대 시대의 고민으로 뜨거웠던 30대 청년들은 이제 칠순을 넘겼지만 시선은 여전히 현실에 닿아있다.

‘유쾌한씨’로 불릴 만큼 위트 있고 풍자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서울토박이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76). 회고전 ‘어둠 속의 변신’전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은 민중미술의 진원지였지만 당시 그의 작품에선 악동의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몬드리안 호텔’만 해도 그렇다.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인 빨강, 파랑 사각형 안에 나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을 비꼬듯 그려 넣어 서양에 어퍼컷을 날렸다. 주먹 불끈 쥔 노동자, 대지 위에 몸을 구부린 농부 등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풍기는 결연함이나 비장감과는 차이가 있다.

1990년대 동네 주변에서 주운 폐품을 활용해 내놓은 ‘쇼핑맨’ ‘짜장면 송가’에서도 한결 같이 위트가 넘친다. 2000년대 들어서도 도난을 막기 위해 ‘훔친 수건’이라고 인쇄한 동네 목욕탕 타월을 갖다 쓰기도 했고, 지난해 오브제 작품은 ‘삼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 세대의 좌절을 라면과 커피믹스를 사용해 표현했다.

자본주의 비판,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 실업 등 세월이 흘러도 현실을 주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민중미술 작가다. 칠순 중반인 지금까지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풍자와 위트다.

그런데 유독 회화는 어두우면서도 몽환적이다. 심연의 바다 혹은 밤의 어둠 같은, 짙은 파랑색이 주조색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유화만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성장과정이 밝지 않아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1960년 홍익대 미대를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신혼의 그는 생업을 위해 통행금지를 알리는 야경꾼 일을 2년간 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을 패러디한 작품은 직업적 경험의 산물이다.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검은 고래가 신호등으로 바뀌는 ‘신호등’ 같은 회화 작품도 그 때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녹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민중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생계 전선에서 뛴 게 계기가 됐다. 미술사학자 임영방 주간의 ‘미술과 생활’ 잡지 기자로 취직해 기획위원 성완경, 편집위원 윤범모 등 훗날 민중미술 이론가가 된 평론가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돼 출발한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가담했다. 미대 중퇴 후 20년간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미술과는 상관없는 일을 전전하던 그는 그렇게 미술로 돌아왔다.

일부 평론가는 주재환을 개념미술 작가로 부르기도 한다. 회화든, 오브제든 글씨와 설명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게다. 그는 “나는 개념미술 작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외형이 비슷하다고 서양식 개념을 갖다 붙이는 건 서구 추종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의 원조를 그림 속에 화제(畵題)를 곁들였던 문인화 전통에서 찾았다. 그는 “옛 그림의 곁들인 글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날씨, 당시 상황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냐”며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다. 관객에게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친절한씨’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어야 할 것 같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선에 초청 받은 바 있다. 4월 6일까지.


[스크랩] 국민일보 /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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