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규탄하는 예술가들의 정치풍자 시국전은 멈추지 않는다.
‘병신하야제’에 이은 ‘조국 산하전’이 인사동 ‘아리수’갤러리에서 열렸다.


지난 19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려 성황을 이룬바 있는 ‘병신무란 하야제“를 재정비해,

새로운 작가들이 대거 동참한 ’조국 산하전‘으로 바꾸어 앵콜 전을 갖게 된 것이다.

12월14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조국산하전'은 22일부터 인천 순회전으로 이어진다.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예술가들의 시국전이 이어지는데도, 뻔뻔스러운 박근혜는 끝까지 버티고 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개가 들어도 웃을 괘변으로 계속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전국에 퍼져있는 박근혜 잔당까지 조직적으로 끌어들여 국민 저항에 맛 불 지르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병신무란 하야제’에 참가한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 김진하, 박불똥. 홍성담, 박 건, 윤 엽, 이 하, 장 백, 김이하,
정평한, 강기욱, 이종구, 정정엽, 김기호, 조문호, 정영신, 박영환, 권 홍, 류우종, 김종찬, 이영학, 김수연, 김 술,

이진우, 이재정, 성효숙, 박은태, 정동용, 김사빈, 박세라, 신미란, 류성환, 이동슈씨 외에도 새로이 참여한 작가도 대폭 늘어났다.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이인엽, 성낙중, 강성봉, 이원석, 전진현, 나종희, 손금식, 이재민, 신은영, 배미정, 김경지, 안만옥, 이종현,
류준화, 김은숙, 서수경, 이동주, 변대섭, 신희경, 최연택, 김영중, 최선희, 신주욱, 김두성, 김선동, 손종국, 진창윤, 황의선, 박대웅,
엄순미, 두시영, 이봉금, 송효섭, 천호석, 신현경, 오은주, 이승곤, 주완수, 임영선, 정지영, 이성민, 황혜영, 권순임, 김 구, 김미경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주었다.

인사동 ‘아리수갤러리’전시에 이어 12월22일부터 30일까지 ‘인천아트프렛폼 B동’에서 순회전이 열린다.
박근혜가 구속되어, 세상이 바뀔 때까지 예술가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닥아 오는 24일은 박사모 패거리들이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발악을 할 것이라고 한다. 
정신나간 노인들의 경거망동을 제압하려면, 모든 국민들이 몰려나와 정의로운 세상을 외쳐야 한다.
더 이상 구린내 나는 정치풍토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모두들 촛불과 햇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서자. 

“박근혜를 구속하고, 황교안은 사퇴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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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싸움터인 광하문광장 천막촌 옆에 거대한 희망 촛불탑이 들어섰다.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천막촌이 들어 선지는 꽤 되었다.
이 추운날씨에 천막에서 웅크려 지내는 예술가들의 처참한 절규는 아랑곳 않고,
편한 구중궁궐에서 노닥거리며, 국민들의 염장만 처지르는 박근혜의 비인간성에 다시 한 번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의로운 세상을 원하는 물결은 이미 돌이 킬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버렸다.
그 분노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밝혀주기 위해 ‘민미협’(회장: 이인철)에서 거대한 촛불 탑을 세운 것이다.

높이가 9m에 달하고, 세월호 희생자수를 밝히는 304개의 풍선에다 416희생자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했다.

탄핵가결일인 12월 19일에 맞추어 하늘나라로 풍선을 날리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거대한 희망의 촛불을 밝힌 것이다.

이 희망 촛불탑은 ‘민미협’ 강성봉회원의 스케치로 이원석회원이 주도하여 일주일에 걸쳐 완성했다.

그 외에도 이인철회장을 비롯하여 이철재, 김영중, 이재민, 성낙중, 류연복, 정덕수, 장순일, 엄순미,

김선동, 김은숙, 신유아, 노순택, 정택영, 박불똥, 장경호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도왔다.


작업하고 있다는 장경호씨의 연락은 받았으나, 너무 늦어버렸다.
가보니 작업은 이미 마무리되었고, 일을 도운 회원들이 광화문식당에 모여 있었다.
작업과정도 못 찍었는데, 옆에 꼽사리 끼어 술만 축내고 왔다.

이 날 뒤풀이에는 이인철씨 내외를 비롯하여 장경호, 강성봉, 성낙중, 정덕수, 이재민, 김명희씨등

여러 명이 어울렸다.

부디 광화문 희망 촛불 탑이 굳게 닫힌 청와대 문을 활짝 여는 열쇠가 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9일 오후 무렵, 인사동 ‘나무화랑‘의 박근혜를 끌어 내리려는 ‘병신무란 하야제“ 전에 들렸다.

요즘 하는 일 없이 바빠, 출품작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만, 개막식에 잠시 들린 것이다.

이미 전시장 바닥은 풍성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야제’ 전시를 기획한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화가 이인철, 박불똥, 박은태, 김사빈,

사진가 박영환, 시인 정동용, 강고운, 성효숙씨 등 여러명이 모여 박근혜를 술안주로 씹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우두머리급인 신학철선생 작품도 걸려 있었다,

몸이 편치 않은데도 빠지지 않고 출품해 주어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입구에 걸린 장경호씨 작품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허수아비 박근혜 얼굴에다 무술처럼 침을 꽂은 작품인데,

저주의 힘이 섬뜩했다. 찢어 진 종량제쓰레기 봉투 틈으로 박근혜가 보이는 김진하씨 작품도 흥미로웠다.

국민들이 얼마나 원하는지, 박근혜 하야를 발표한 호외 신문까지 등장했다.

이인철, 박불똥. 홍성담, 박 건, 윤 엽, 이 하, 장 백, 김이하, 정평한, 강기욱, 이종구, 정정엽, 김기호, 박영환,

권 홍, 류우종, 김종찬, 이영학, 김수연, 김 술, 이진우, 이재정, 성효숙, 박은태, 정동용, 김사빈, 박세라, 신미란,

정영신, 류성환, 이동슈씨 등 우리나라 민중미술작가들과 사진가, 시인 등 각 계의 예술가 40여명의 작가들이

여한 전시에는 다양한 풍자화가 선보였다.


그런데도 얼굴에 철판 깐 박근혜는 도무지 물러 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저항이 하늘을 찌르지만,

끝까지 버텨보려는 심보다. 아예 검찰조사도 받지 않겠다는 뻔뻔스러운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기야! 혼자서 꼼짝도 못하는 허수아비가 이 엄동설한에 교도소 갈 생각하니, 아찔할 것이다.

나라 망친 죄가 만 천하에 드러나 전 국민이 하야을 외치고 있으나, 반성은커녕, 빠져 나갈 구멍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광화문 텐트촌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추워 잠을 못 이루는데도, 그는 “잠이 보약이다”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런 개같은 또라이가 대통령이라는 게, 정말 미칠 것만 같다.

우리가 더 이상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후손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야 한다.

정치판 곳곳에 기회를 노리는 이와 비슷한 모리배들이 득실대고 있다.

다시는 이런 정치풍토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내일은 촛불보다 햇불 들고 거리로 나서자.

이 하야전은 박근혜가 하야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지만, '나무화랑'에서는 29일까지다.

인사동거리나 광화문광장으로 나갈 작정이라, 참여 작가들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유 무명을 가리지 않는 하야전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내용이면 되고, 참가비는 2만원이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데, 다 같이 동참하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 뒤늦게 출품작을 급조하여 전시장에 들렸더니,

장경호, 정복수, 박홍순, 김사빈씨 등 여러명이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11일, 북한을 눈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에 자리한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의 고 문영태화백의 자택을 찾았다.

짱짱한 나이에 세상을 떠나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그의 추모전을 위한 자료와 작품들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지난 달 미망인 장재순여사의 제안으로 평소 가까운 지인 아홉 명이 문영태화백 추모전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추진위원장을 맡은 민미협 회장 이인철씨로 부터 연락 받은 것이다.

약속대로 금능역에서 이인철씨를 만나 함께 떠났는데, 꼬불꼬불 낮 익은 길 따라가니,

미망인 장재순여사는 정원을 가꾸고 계셨고, 류충렬화백이 먼저 와 계셨다.
붉은 단풍잎들이 곳곳에 흩어 진 고인의 저택은 처연했다.

문형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곳에서 삶의 무상함을 본 것이다. 도대체 사는 게 무엇인지...

점심 식사 후, 시작한 촬영 작업은 이웃 사는 판화가 홍선웅씨도 도와주었다.

장재순여사가 꺼내주는 자료 상자를 이인철, 류충렬씨가 분류하여 나에게 넘겨주었는데,

얼마나 자료를 꼼꼼히 챙겨두었는지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까지 다 모아두었더라.

스케치 북에서부터 일기와 작업노트, 판화와 메모지 등 자료의 분량이 너무 많아 한나절이 후딱 가버렸다.

자료들에서 평소 문형의 치밀함을 엿 볼 수 있었는데, 몇 자 적어 놓은 낙서조각에도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작품들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만찬장으로 갔는데, 회에다 고급와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만나는 호화 만찬이던가?

술 한 잔의 가격을 안다면 도저히 목에 넘길 수가 없는 와인을 쭉쭉 들이키는 호사를 떨었는데, 기분 좋게 취했다.

고인의 영정사진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마치 문형과 마시는 듯, 옛 생각이 새록새록 했다. 

뒤늦게 나타난 화가 박건씨의 코믹한 제스처에 한 바탕 웃기도 했다.

술도 취했지만 자정이 넘어, 살아생전 문형이 사용하던 방에서 하룻 밤 지냈다.
평소 술이 깨야 자는 습관 때문에 잠을 못 이뤄, 이 생각 저 생각 빠져든 것이다. 

문형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일 서울에서 벌어질 촛불시위를 물어보았다,


“내일 쯤, 그 년이 하야 할까?”

“택도 없는 소리, 그 뻔뻔스러운 상판대기 한 번 보소! 쉽게 물러 날 년인가...”
“그렇다면 강제로 끌어내려야지, 촛불을 햇불로 바꿔 청와대까지 쳐 들어가야지”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0일은 김준권, 박불똥씨의 전시가 동시에 열려
옛 민주투사들이 인사동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전시가 파한 후 ‘부산식당’에서 ‘영빈가든’을 거쳐
밤늦게는 ‘소담’에서 ‘무다헌’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무다헌’에는 박불똥씨를 비롯하여 이인철, 장경호, 최석태, 김정대, 
이명지씨 등 10여명의 장정들이 마지막고지를 사수하고 있었고,
안쪽에는 신경림, 정희성, 신학철선생 등 고참들이 죽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학철사령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 안돼요”
참모총장격인 신경림선생께 삿대질로 힐책을 한 것이다.
유리한 고지만 쫓는 우유부단함에 분노가 폭발했던 것 같다.

그 수행관 격인 김태서장교가 신학철사령관을 나무라자
장경호장교가 김태서를 제지했다.
결국 참모총장께서 퇴청하여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자칫했으면 12,12사태가 아니라 12,10사태가 날 뻔했다.

사진,글/ 조문호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늘 분주하다.
지난 5일은 서양화가 정기호선생과 백영규씨의 ‘조선달’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전시 오프닝에 오가며, “마중”과 “유목민”에서 각 각 뒤풀이를 한다지만 “부산식당”부터 갔다.
식당 앞에 서서  담배피우는 장경호씨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부산식당을 들어서자 판화가 류연복씨가 먼저 반겼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찍은 내 모습을 보여 준다며 핸드폰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 김정대씨를 비롯한 그림패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여기도 전시 뒤풀인 모양인데, 모두들 인사동에서 가끔 부딪혀 안면은 있으나 성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옆 자리에 앉았던 중 늙은이가 갑자기 장경호씨 앞으로 옮겨 와 말을 꺼냈다.
“저, 모르겠습니까? 40년 전에 장선생한테 그림 배운 제자입니다”
의아한 눈으로 지켜보던 장경호씨는 그 이의 구구한 설명을 듣고서야 반색을 했다.
세상에, 어떻게 서울에서 같은 화가로 활동하며 40여년 만에 해후할 수 있는가?
세상은 넓고도 좁은 것이 아니라 좁고도 넓은 것이었다.

바깥 자리에는 이행자시인이 생일 술상을 받고 있었지만, 그만 일어나야 했다.
신학철씨 일행은 최민선생이 기다리는 ‘낭만’으로 가자지만 “유목민‘부터 들렸다.
“유목민“은 백자장인 백영규씨의 전시 뒤풀이로 부산했다.
전유성, 박인식, 무세중, 무나미, 노광래씨 등 많은 분들이 흩어져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무슨 술에 취했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인사동을 한바퀴 돌아 '로마네꽁띠'에 들려오니 ‘낭만’ 갔던 팀들은 최석태씨, 유근오씨를 데려왔고,
‘마중’ 갔던 조경석, 조준영, 정영신, 공윤희, 이명희, 신영수, 김정남씨 까지 ‘유목민’에 와 있었다.
‘유목민’이 마치 인사동의 종착역인 냥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 저기 술 취한 이들의 혀 꼬부라진 소리는, 천국의 언어처럼 헷갈리기 시작했다.

인사동의 깊어가는 가을밤은 쓸쓸했다.
술과 벗 그리고 아내까지 옆자리에 있었으나 왠지 외로움을 탔다.
내 처지가 김종길시인의 시 “황락”에 비유되어서 일까?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목이 터져라 “불나비”를 불렀으나 자꾸 눈물이 난다.

사진,글 / 조문호

 

 

 

 

 

 

 

 

 

 

 

 


 

 



‘용태형’ 추모식장에서 밤새도록 퍼 마신 술자리는 다음 날 백제 화장터 까지 이어졌다.

문화사가 유홍준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강요배, 류연복, 박흥순, 이인철, 이강군, 장경호씨 등 여러 명이 어울려 땅바닥에 술상을 차린 것 까지는 좋으나 제주에서 올라온 강요배씨는 술이 취해 땅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하였다. 안쓰럽게 지켜보던 장경호씨가 초코렛 한 조각을 전해주자 그걸 먹고 벌떡 일어나서는 힘자랑에 나선 것이다. 옆에 있던 가로등을 뽑겠다고 설치다 가로등이 꼼짝달싹 않으니 이젠 산비탈에 올라가 큰 소나무를 뽑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중국 심양에 사는 이강군씨가 걱정스러워 데려오긴 했으나,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천하의 강장사께서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까짓 가로등 쯤이야 간단히 뽑았겠지.
그러나 술 취한게 천만다행이야. 

만약 가로등이 뽑혔다면 공공시설 파괴로 경찰서에 끌려 갈 뻔 했잖아.


 

 

 





용태형’의 유언대로 유골은 신촌 봉원사에 안치되었다.

한 때 세들어 살았던 봉원사 사가에 대한 추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봉원사 주변 길들을 돌아다니며 오랜 기억 조각들도 찾아보았다.

저돌적인 성격에 상처받았던 생각도, 잔잔한 정에 코 끝이 찡하기도 했다.

 

 

추모회 때는 ‘용태형’의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되어, 실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동안 나보다 한 살 많은 것으로 행세하며 항상 동생처럼 대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도 한 살 적은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같은 입장이던 김정헌씨가 오죽하면 조사 제목을 “야 임마! 용태”를 추도함“

이라 적었겠는가?

 

 

“이젠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은 것이 더 서러운 처지가 되었으니,

그도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구나.

가끔 봉원사에 들려 술 한 잔 올릴테니 저승 소식이나 전해주고,

부디 극락왕생을 누리시게나

 

 


 



















                                              옛날 '용태형'이 살았던 봉원사 집이다










                                                아래사진 두 장은 사진가 정영신씨가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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