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5월 25일 (금) 18:23:54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작품 앞에 선 이인철 작가. ⓒ조문호


이인철의 ‘in the paradise’전이 23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 남은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기계화의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다양한 형상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지만 경직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이인철, 핫바 171,1X96,25cm, 2018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그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한다는 자체도 흥미롭다.


작가 이인철은 인간성을 상실한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인철, 스텔-스안주,140X96,25cm(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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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다.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몇 일전 문영태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을 바탕에 둔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하여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인철, 세월1, 86,5X100cm


더러는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인철, 우리들의 일그러진 꼴통, 46X36,5cm



그런데, 작가 이인철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싸워서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 사과-탄, 60X80cm


작품을 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 이인철씨의 작업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서울 ‘민미협’ 대표를 역임한바 있는 중견작가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는 오는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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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인철의 ‘in the paradise’가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서의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기도 경직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작가 이인철은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로,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하는 것도 흥미롭다.






몇 일전 문영태화백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에 의한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인철씨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씨 작품을 비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인철씨의 인간적 친화력은 개막 전시장을 북적이게 했다.
원로 손장섭선생을 비롯하여 김명희, 민정기, 황의선, 윤범모, 김진하, 정복수, 장경호, 김재홍, 곽대원,

최경태, 김 구, 이재민, 변대섭, 한상진, 박홍순, 김영중, 김보중, 이원석, 김경지, 송용민, 김영진, 마문호,

양상용, 황준연, 박승원, 조경숙, 현린씨 등 많은 미술인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가 되었는데,

뒤풀이 장소인 ‘낭만’에는 손기환, 박은태, 임정의, 성기준, 소리꾼 유주현씨 등이 합류하여

판소리가 흘러 나오는 질퍽한 친목의 자리를 만들었다.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리는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에 많은 관람 있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세월 참 빠르다.

문영태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째란다.

 

지난 19일 문영태화백의 3주기를 맞아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에 위치한 민예사랑에서 문영태 유작전이 열렸다.

두 권의 추모집, “심상석-문영태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출판기념회를 겸하여...


 

그의 작품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전시된 유작들을 둘러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문영태화백이 옆에서 싱긋이 웃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그 전시공간은 문화백이 많은 시간을 보낸 집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곳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품 보여 달라니까, 약 올리듯 전시나 한 번 해볼까라는 아리숭한 말을 했던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도 사진 촬영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전시를 준비한 미망인 장재순여사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소품의 배치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미를 보여주며 작품을 돋보이게 하였다.

이 전시를 위해 전시장 구조를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재개관했다는데,

작품 배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문영태 화백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이나 마찬가지인 상처 난 두개골을 보면, 바로 시대정신이 생각난다.

제일 먼저 문영태씨 그림을 본 것이 시대정신표지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리민족의 아픔에 앞서,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두개골의 상처를 광주항쟁에서 피 흘린 민중의 상처로 보았다.

판화가 오 윤씨의 그림이 동적이라면

그의 그림은 정적이면서도 더 충동질 하는 매력이 있다.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의 정서가 묻어나는 심상석'시리즈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내 세우기 싫어하는 선비적 성격으로,

그 작품들이 부각되지 못한 채, 덜 평가되었다는 견해들도 생각해 볼 문제다.


 

신학철선생 말처럼, 그는 지사(志士)의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화가이기 전에 문화운동가였다.

전시와 출판기획은 물론 문화운동가로서, 저술가로서, 더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1980년대 초반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등 중요한 전시와 출판을 주도했다,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며

민중미술을 확장시키며 현장을 지켜 온 장본인이다.


 

90년대, 지금의 김포 문수산방에 정착한 이후에는

민속학적 문화에 바탕을 둔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진보월간지 사회평론'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을 연재하였는데,

그의 깔끔한 문체와 독보적인 비평의 글들은 독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무렵에는 사진가 이지누씨를 비롯한 16명의 작가들로

'경의선모임'을 결성한 후 사진 작업도 했다.

다들, 그림이나 문학, 사진 등이 예술이기 전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작가적 문제의식은 사진집 분단풍경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 뒤 시인 김정환씨가 대본을 쓰고 자신이 사진을 찍어 두 사람을 출판하는 등

사진작업도 열심히 한 팔방미인이다.


 

이번 유작전은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부터 사진작업인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전시인데,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기를 연상시키는 돌의 형상으로 민중 신앙을 표현했던 심상석

광주항쟁을 겪으며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적 상흔을 상징하는

상처투성이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둘러보며 남다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벽에다 쓰 놓은 古風이란 붓글도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서재에서 문영태 화백을 증언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책이나 집기는 물론 그 어느 것 하나 그의 손 때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문영태화백의 작품과 활동 자료가 담긴 심상석-문영태

그가 집필한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도 출판되었는데,

뒤늦게 심상석을 펼쳐보며, 도록을 만들고 전시를 추진한

나무아트김진하씨의 안목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짚어 낸 그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찾아 낸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문영태화백의 전모를 제대로 살펴 볼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다


   

 

그 날 개막식은 문영태화백 미망인 장재순여사와 아들 문지함, 김윤지 내외,

그리고 딸 문지민 등의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 사회로 진행되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정갈한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가 그린 상처 난 뒤통수는 분단의 아픔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던 그 때 모습이 그립다고도 했다.


    

이재권동문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는 관점이나 칼라를 보는 관점도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었다고도 추억했다.


 

그 외에도 성기훈 마을이장과 김정환시인, 김진하, 이인철, 홍선웅씨 등

많은 분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의 인사말을 했고,

자리를 마련한 장재순여사의 감사 인사도 따랐다.

집안 곳곳에 그이의 손길이 남아 더 마음이 아프다

사무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 외 참석한 분으로는 류충렬, 김명희, 박불똥, 안창홍, 장경호,

이재민, 손기환, 김영중, 박정현, 양정애, 정재숙, 정동용, 김 구,

한상진, 김재홍, 최경태, 김종길, 양상용, 노광래, 편근희, 정영신,

나종희, 김영진, 송용민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 전에는 유흥준씨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했고,

밤늦게는 유연복씨와 김준권씨가 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은 오는 62일까지 김포 보구곶리에 위치한

겔러리 민예사랑’(010-5357-5256)에서 열린다.

여행하듯 훌쩍 떠나시어최북단 마을의 정취에 빠져 좋은 전시 한 번 관람하기 바란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사진들이 하나같이 한변의 촛점이 선명하지 않아 카메라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렌즈를 살펴보니, 막걸리 자욱이 선명하네.

난, 소주를 마셨는데, 그기 왜 막걸리가 들어갔을까?

아마 카메라는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던 모양이지.

나만 취하면 그만이지, 너까지 취해 버리면 난 어떻해!

사진 물어 내놔~













 

 

 


최북단마을 김포시 월곶면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려...

[서울문화투데이]2018년 05월 22일 (화) 13:34:56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문영태추모위원회’에서 기획한 문영태 유작전이 지난 19일 오후4시, 북한을 눈앞에 둔 최북단마을 김포 월곶면에 자리한 갤러리 ‘민예사랑’에서 개막되었다. 이 유작전은 인사동에서 ‘민예사랑’을 운영하는 미망인 장재순씨가 미술관을 새롭게 개관하며 마련하였다.

민중문화운동가이기도 했던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에는 80년대 작업한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에서 부터 사진작업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



▲ 심상석-상황, 종이에 연필, 53X53cmX4


3주기에 맞춰 마련한 문영태 유작전 개막식에는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의 사회로 진행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문영태의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분단의 문제로 보인다. 그의 ‘심상석’(心象石) 연작은 어떤 표현도 가능하기에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본다. 모더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은 그의 모습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자화상,종이에 연필, 31X49cm, 2002


이재권 동문은 ”대학 다닐 때의 문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 그의 그림 속에도 도를 보는 관점, 칼라를 보는 관점이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다고도 했다.


린다노클린은 "예술의 목표는 그 시대의 모습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것이며, 예술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는 그 시대의 세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상이나 상징보다는 사회적 제 조건과 보다 간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 장재순'민예사랑'대표 Ⓒ정영신


민중문화운동가였던 문영태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80년대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을 추진하였고,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면서 출판과 전시기획,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며 동시대의 삶을 성찰해왔다.


▲ 천지인 115X77X20cm 상석에 조각 1995


화가 박건씨는 1980년 문영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시대정신>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미술운동가들이 함께 만든 최초의 민중문화운동 담론지로서 나중에 ‘민미협’과 ‘민예총’으로 가는 다리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또한 문영태는 “공공성과 민중문화에 대한 존중감이 높은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 나무화랑 대표이자 평론가 김진하씨 Ⓒ정영신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문영태의 심상석 연작은 1977녀부터 1983년까지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품으로 ‘심상석’은 마음의 형상이 새겨진 돌, 혹은 돌에 새겨진 마음이다. 어떤 것이든 무형의 마음이 구체적사물인 돌로 치환하는 마음과 돌이 인과 혹은 등가의 의미를 띄는 단어이다.


▲ 심상석-결합, 종이판화, 44


타제 마제석기를 연상시키는 ‘심상석’작품은 대체적으로 무겁고 심각하다며, 마음이나 정서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한, 혹은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몸과 두개골 등에 상흔이 새겨진 사람들, 일상적인 삶의 무게와 민중적 생명력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단단한 돌에 풍화작용처럼 마음의 흔적이 심상(心象)으로 새겨진다는 것은 뭇 생명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생존에의 의지가 긴 세월 인고의 세월을 부침하며 견딘 결과라며, 문영태의 심상석에서 기층 민중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恨)의 정서가 동시에 묻어난다고 작가론에 적었다.



▲ 심상석 78-3, 종이에 연필, 168X122cm, 1978


특히 문영태는 1990년 경의선모임이란 공동작업체를 만들어 사진 작업도 했다. 문영태가 주축이 되어 사진가 이지누, 화가 박불똥, 유연복, 최민화, 김기호, 김태희, 남궁산, 백창흠, 박 건, 송진헌, 유은종, 이정희, 조경숙, 공예가 김원갑, 이송열, 미술평론가 라원식씨 등 열일곱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결과물로 ‘눈빛출판사’에서 ‘분단풍경’사진집을 펴냈다.

▲ 국도 7번 도로변- '분단풍경'사진집에서


‘분단풍경’ 사진작업 이후로는 김포 월곶리 자택에 칩거하며 평소 관심가진 전통적인 민중성과 민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기층 민중들의 생활사에 기반 한 민속민예문화를 연구하면서 상처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무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꾸었고, 그런 민초들의 생명력에서 서로를 보듬는 미술의 민중성을 지향해 왔다.


▲ 시대정신 창간호,1983-1987


새롭게 자리잡은 ‘민예사랑’개관과 문영태 3주기 유작전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민예총’이사장 박불똥씨, 화가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씨, 사진가 조문호, 판화가 홍선웅, 미술평론가 김진하, 동영상을 제작한 양정애씨등 ‘문영태추모위원회’를 비롯한 친지와 많은 지인들이 찾아 와 고인을 추모하며 유작전을 관람했다.



▲ 김포 월곶리 '민예사랑' 전시된 작품 Ⓒ정영신


이날 추모전시에서는 ‘나무아트’대표 김진하씨가 만든 자료집 <심상석·문영태>와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몰가부-자루 빠진 도끼)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책에는 1990년대 ‘분단풍경 : 열일곱 사람의 경의선 사진작업’ 그룹을 결성하고 분단된 국토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찍어둔 필름들, 시인 김정환과 공동으로 펴낸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두 사람>, 1996~98 월간 <사회평론 길>에 연재한 ‘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 2001년 사진가 이지누와 공동으로 발간한 계간 <디새집>에 연재한 ‘궁시렁 궁시렁 문영태의 집 이야기’ 등 문영태선생의 후반기 글쓰기 작업까지 한데 모아서 엮었다.



▲ 좌)'심상석-문영태'도록표지, 우)'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 책표지


문영태선생의 유작전은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문의 (010-5357-5256 민예사랑)




 


작고 1주일 전인 2015년 7월초 김포 자택 문수산방에서 자신의 대표작인 ‘심상석’과 함께 선 문영태 작가의 마지막 사진이다.

‘시대정신’ ‘경의선모임’ 동인 박건 작가가 찍었다.


 
민중미술운동가 문영태(사진) 작가의 3주기를 맞아 첫 유작전이 19~6월2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고인의 자택 문수산방에서 새로 문을 연 ‘갤러리 민예사랑’(대표 장재순)에서 열린다

문영태는 홍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70~90년대 화가·전시기획·출판기획·현장문화운동·저술가로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초반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 민족미술협회 창립, 그림마당 민 운영, 출판기획과 전시기획, 민주화운동까지 민중미술 현장을 지켰던 그는 90년대 김포 문수산방에 정착한 이후에도 민속학적 문화론에 바탕을 둔 저술 활동, 91년 ‘경의선' 모임을 통한 분단 현장과 비무장지대(DMZ) 탐사 사진을 통한 ‘다큐' 혹은 '르포르타주' 작업을 이어갔다.

문영태추모위원회(신학철·조문호·홍선웅·장경호·인철·박불똥·박건·김진하·양정애)에서 기획한 이번 유작전에서는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부터 사진작업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들을 소개한다. 1970년대 후반 타제·마제석기를 연상시키는 돌의 형태로 샤먼이나 토템적 민중신앙을 표현했던 심상석이 ‘80년 광주’를 겪으며 물리적인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적 상흔을 떠올리게 하는 몸과 두개골의 형상으로 변해가고, 이후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 맞선 현장 미술운동의 최전선에 서게 되면서 작업이 중단된 과정을 통해 작가의 예술정신의 흐름과 삶의 열정을 보여준다.



문영태 첫 추모전과 추모집 출간기념회 포스터
 


19일 오후 4시 개막식과 함께 화집 겸 활동 자료집 <심상석·문영태>와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몰가부-자루 빠진 도끼) 출간 기념회도 열린다. 자료집과 문집에는 1990년대 ‘분단풍경 : 열일곱 사람의 경의선 사진작업’ 그룹을 결성하고 분단된 국토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찍어둔 필름들, 시인 김정환과 공동으로 펴낸 글사진집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두 사람>, 1996~98 월간 <사회평론 길>에 연재한 ‘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 2001년 사진가 이지누와 공동으로 발간한 계간 <디새집>에 연재한 ‘궁시렁궁시렁 문영태의 집 이야기’ 등 문영태의 후반기 글쓰기 작업을 한데 모아 엮었다. (010)5357-5256.


[스크랩] 한겨레신문 /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고인이 된 문영태 화백의 장녀 지민이가 시집갔다.
지난 3일 오후6시, 장재순여사의 장녀 문지민양과
기노준, 이연화씨의 장남 기선호군의 결혼식이 충무로 ‘한국의 집’ 마당에서 열렸다.

좀 늦어 식전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전통혼례의 멋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기럭아비로부터 기러기를 전달 받은 신랑이 신부 방 앞에다 두고 큰절을 하니 장재순여사가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서야 팔을 올려 얼굴을 가린 신부가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는데, 수모가 부축은 하지만 행여 넘어질까 불안했다.

요즘이야 결혼 전에 만나는 것은 물론 잠자리까지 하는 커플들도 많겠지만,

백년해로할 상대를 두고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정갈한 혼례를 위해 신랑 신부가 손을 씻은 후, 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마주보고 앉았는데,

상 밑으로 마주보는 두 사람의 은근한 눈길이 사랑으로 가득했다. 건네주는 술잔에도 정념이 넘쳤다.

마치 속으로 “넌 오늘 죽었어”하는 것 같았다.

‘한국의 집’ 전통혼례는 옛 격식 그대로 진행되는데다, 고풍스러운 한옥 마당에서 치러 져

일반예식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이날도 많은 하객들이 참석했지만, 오랜만에 우리문화의 정수를 느끼는 좋은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아는 분으로는 장재순여사 가족을 비롯하여 화가 이인철 내외와 홍선웅, 정영신씨 등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혼은 예식장에서 치루는 것 보다, 우리의 멋을 제대로 느끼는 전통혼례가 바람직하다.

특히 외국인 신랑신부를 맞는 혼주들이 선호하는 현상이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 우리 전통혼례를 한 번 치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전통혼례를 치루지 않았으나, 세월이 지나고 나니 후회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겠지만, 우리선조들의 결혼관과 정신을 이어받았다면,

요즘처럼 이혼을 밥 먹듯 하지는 않을 것이란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웃이 가까워 신랑신부를 잘 알아 소개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요즘은 다들 바쁘게 사니 새로 맞이하는 신랑이나 신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혼례가 끝난 후 하객들에게 인사드리며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지민이 결혼으로 온 가족은 물론 친지들이 다 모인 자리에 문영태화백이 살았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코 끝이 찡했다.

그나저나 아들 지함에 이어 딸 지민이 까지 시집보내는 장재순 여사의 외로움은 또 어찌할고?

예전의 대가족제처럼 한 집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민아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라.
네 아버지가 저승에서 지켜보며, 싱글벙글 좋아하실 것이다.
부디 백년해로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는 ‘한국의 집’ 전통혼례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 하시길...

전통혼레 비용은 기본비용이 1.200,000원이고, 선택사항으로 미용과 사진촬영 등 부대비용을 백 만원 이상 잡아야 한다. 그리고 신랑신부 혼례복 대여비가 50만원, 수모 인건비가 20만원, 폐백비용도 50만 원정도 소요된다. 식전공연으로는 부채춤이 50만원, 사물놀이는 40만원, 판소리는 10만원으로 선택사항이다. 피로연 비용은 일인당 4만원부터 6만원까지 세 종류가 있다.




지난 22일부터 이박 삼일 동안 서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고 문영태화백 자택에서 놀았다. 

2018년에 열릴 그의 추모전을 대비한 유작을 촬영하기 위한 나들이였는데, 지난 늦가을에 이어 두 번째 걸음이었다.

지난번에는 문화백의 자료들만 찍었고, 이번에는 그의 모든 작품을 찍으러 갔다.

추모전 준비위원장을 맡은 이인철씨와 장경호씨가 동행한 자리에서 김진하, 홍선웅씨도 만났다.

장재순여사가 맡긴 카드로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간 크게도 옆에 있는 장어 집에 들어 간 것이다.

인근에는 식당이 그 뿐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몸 보신한다는 생각들도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돈 생각해서 그런지, 맛은 없더라. 반가운 분들과 소주 한 잔하는 맛이 더 죽였다.

오후부터 시작된 촬영 작업은 순조로웠으나, 이튿날은 달랐다.
대부분 유리 없는 액자들인데, 작품에 먼지투성이였다.
붓으로 먼지 털어 낸 장경호씨와 이인철씨는 가루 좀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종이에 핀 곰팡이 자국은 지울 수가 없었다.




유리 속에 든 작품들은 더 심했다.
상장이나 일기장까지 다 챙겨두는 꼼꼼한 그가
작품들은 왜 이렇게 허술하게 보관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자연 속에 풍화되어가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을까?

촬영 덕분에 이틀 밤을 술로 지냈다.
첫 날밤은 인천의 ‘광장, 환대의 문지방’전 개막식에 가서 시동을 걸었고,
둘째 밤은 강화읍내까지 원정 가 퍼 마셨다. 화가 최경태씨 까지 불러내어...
대리운전에 끌려 들어오다, 동네 어귀에서 기다리던 박 건씨와 함께 들어왔는데,
그 뒤는 술이 취해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지막 날인 토요일은 광화문광장에 가야하는 날이라 마음이 바빴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일의 진척이 안 나갔다. 찍긴 찍었으나 뒷맛이 개운치 않더라.
안 돼면, 다시 한 번 쳐들어가야지 뭐..


사진, 글 / 조문호

























































전국적으로 타오르는 촛불시위는 21세기 한국의 문화혁명이다.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과 전국 도심을 촛불로 메우고 있다.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예술인들의 시국전도 끊이지 않는다.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시작된 ‘병신무란 하야제’전이 인사동 ‘아리수’에서 열린 ‘조국의 산하’에 이어

인천아트플랫폼‘의 ‘광장, 환대의 문지방’전으로 점차 확대되어 열리고 있다.

지난 22일 ‘인천아트플랫폼 B동’에서 개막된 ‘광장, 환대의 문지방’전은 ‘인천민족미술인협회’에서 주최하고

황해미술제 운영위원회에서 주관한 전시였다.

올 해로 열일곱 번째 맞는 ‘황해미술제’는 두 파트로 구분 전시되고 있었다.

1층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예술적 시선으로 표현한 시국 작품들이고,

2층은 ‘황해미술제’가 보여주는 환대의 광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인사동 전시에 참가했던 권홍, 김구, 김기호, 김사빈, 김선동, 김수연, 김은숙, 나종희, 박건, 박불똥, 박세라, 박영환, 배인석, 서수경, 성효숙, 손금식, 손기환, 송효섭, 신은영, 신주욱, 신현경, 엄순미, 윤광진, 이동수, 이성완, 이승곤, 이영락, 이윤엽, 이인철, 이재민, 이하, 임영선, 장경호, 장백, 장순일, 정지영, 정영신, 조문호, 주완수, 천호석, 황의선, 홍성담씨를 비롯하여, ‘인천 민미협’의 강기욱, 김경희, 김 술, 김 신, 김영옥, 김종찬, 김재석 도지성, 류성환, 류우종, 박충의, 이종구, 이진우, 정정엽, 정평한, 최연택, 허용철, 문계봉씨가 추가로 참여했고, 고민수, 김재영, 김찬희, 두정희, 박준석, 박진영, 변혜은, 심혜진, 윤설희, 윤수련, 이여정, 이현숙씨 등 인천의 청년작가들도 대거 합류했다.

이날 열림식에는 ‘민미협’본부의 이인철회장과 ‘병신무란 하야제’를 처음으로 기획한 장경호씨도 참석했다,

그리고 인천 아트플랫폼 최병국관장을 비롯하여 이진우, 김종찬, 유성환, 현용안, 성효숙, 도지성, 최연택, 류우종, 허용철씨 등

많은 지역작가들이 참여했고, 뒤풀이는 인근의 ‘써니구락부’에서 있었다.


이 전시는 30일까지 열리지만, 박근혜가 구속되어, 세상이 바뀔 때까지 예술가들의 저항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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