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늘 분주하다.
지난 5일은 서양화가 정기호선생과 백영규씨의 ‘조선달’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전시 오프닝에 오가며, “마중”과 “유목민”에서 각 각 뒤풀이를 한다지만 “부산식당”부터 갔다.
식당 앞에 서서  담배피우는 장경호씨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부산식당을 들어서자 판화가 류연복씨가 먼저 반겼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찍은 내 모습을 보여 준다며 핸드폰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 김정대씨를 비롯한 그림패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여기도 전시 뒤풀인 모양인데, 모두들 인사동에서 가끔 부딪혀 안면은 있으나 성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옆 자리에 앉았던 중 늙은이가 갑자기 장경호씨 앞으로 옮겨 와 말을 꺼냈다.
“저, 모르겠습니까? 40년 전에 장선생한테 그림 배운 제자입니다”
의아한 눈으로 지켜보던 장경호씨는 그 이의 구구한 설명을 듣고서야 반색을 했다.
세상에, 어떻게 서울에서 같은 화가로 활동하며 40여년 만에 해후할 수 있는가?
세상은 넓고도 좁은 것이 아니라 좁고도 넓은 것이었다.

바깥 자리에는 이행자시인이 생일 술상을 받고 있었지만, 그만 일어나야 했다.
신학철씨 일행은 최민선생이 기다리는 ‘낭만’으로 가자지만 “유목민‘부터 들렸다.
“유목민“은 백자장인 백영규씨의 전시 뒤풀이로 부산했다.
전유성, 박인식, 무세중, 무나미, 노광래씨 등 많은 분들이 흩어져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무슨 술에 취했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인사동을 한바퀴 돌아 '로마네꽁띠'에 들려오니 ‘낭만’ 갔던 팀들은 최석태씨, 유근오씨를 데려왔고,
‘마중’ 갔던 조경석, 조준영, 정영신, 공윤희, 이명희, 신영수, 김정남씨 까지 ‘유목민’에 와 있었다.
‘유목민’이 마치 인사동의 종착역인 냥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 저기 술 취한 이들의 혀 꼬부라진 소리는, 천국의 언어처럼 헷갈리기 시작했다.

인사동의 깊어가는 가을밤은 쓸쓸했다.
술과 벗 그리고 아내까지 옆자리에 있었으나 왠지 외로움을 탔다.
내 처지가 김종길시인의 시 “황락”에 비유되어서 일까?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목이 터져라 “불나비”를 불렀으나 자꾸 눈물이 난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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