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상가 계단 아래 자리 잡은 다리밑집은 다리 밑의 음습함이 정겹다.
테이블이라고는 두 개 뿐인 코 구멍만한 대폿집인데, 닭 똥집이 별미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좁은데서 부딪히는 사람냄새가 더 좋다.






지난 7일저녁 무렵, 편완식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인사동 찍사가 인사동에 안 있고 어딧냐?’는 것이다.
산토끼가 어디를 못 가겠냐마는, 동자동 쪽방에 살림 차린 걸 모르진 않을텐데...
연휴라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어 목구멍이 근질 근질하던 차에 반가운 기별이었다.
라면 끓이려 물을 올려놓았으나, 꺼버리고 나갔다. 


 



다리밑집에 들어가니 편완식기자와 건축가 김동주, 화가 이목을씨가 있었는데, 옆자리에 미모의 여인도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인데, 일전에 인사를 나누었다기에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틀니라고 끼고 나올 걸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통인’ 관우선생은 춥다며 옷 가지러 간 사람이 강원도 포수란다.
김동주씨가 설계한 강화도의 ‘통인미술관’ 준공검사가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날의 화제는 단연 미투였다.






화가 이목을씨가 국회의사당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미투에 휘말려 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에게 수제 명함을 주기위해 성향을 물은 것이 화근이란다.
명함에 그림 그리려, ‘굵은 것을 좋아하냐? 가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단다.
펜그림 굵기를 물었으나, 그 여인은 요상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다들 한바탕 웃고 넘겼으나, 편완식기자가 말을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있던 최효준씨가 당한 황당한 이야기였다.

부하 직원인 큐레이터에게 보낸 동영상이 문제가 되었는데,
작업에 상상력을 주려 보낸 동영상이 미투의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찌, 웃기 위해 농담도 못하는 이런 살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집에서는 마누라 한테 엎어지고, 밖에선 입도 벙긋 못하는 남자 수난시대다.




 


농담 잘하기로 소문 난 나는 왜 시비 거는 여인이 없는건가?
사람 차별한다며 투덜거렸더니, 돈도 권력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란다.
그 날도 전시 기획하는 미모의 여인에게 진한 농담을 했으나,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주둥이만 살아있는 능력 없는 사내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구 서러버라! 사내 취급도 못 받을 바에야 차라리 잘라 버릴까보다.


'




역시, 술타령은 미투가 최고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이목을 자료사진 스크랩]



화가 이목을씨가 인사동서 웃자 판을 벌였다.
인사동을 두 시간이나 떠돌다, 행사장에 갔으나 그 때까지 준비 중이었다.

난, 그의 예전 그림들을 너무 좋아했다.
오래 전, ‘통인옥션’전에서 처음 보았는데, 사물에 마음을 입혀 손에 잡힐 듯 닥아 왔다.
사과는 사과대로, 대추는 대추대로, 스스로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는 한쪽 눈을 실명하는 등 절망의 세월이었지만,

결코 그림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도 하필이면 극사실주의를 택한 것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한쪽 눈으로 10분 그리다가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눈에 부담을 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일, 고등어, 꽃들을 나무판에 그려 낸, 불굴의 작가였다.


몇 년 전 그가 스마일 그림으로 바꾸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극 세밀화를 그리는 작가가 왠 스마일 그림이냐며 생뚱맞게 여겼으나,
그의 시력이 한계에 달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찾은 게 웃음이란다.

2009년부터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다른 눈마저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화가 이목을은 자기 운명을 반전시킬 첫 번째 카드로 스마일 그림을 택한 것이다.

너무 극과 극을 달리는 작가였다. 예술과 삶의 현실에서 스스로 찾아 낸 현답이었다.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비우는 작가로, 이 땅을 사는 고달픈 청춘들에게

‘꿈’과 ‘웃음’을 선물하기 위해 전도사를 자처한 것이다.

2005년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이목을씨가 아닌 이목일씨도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스마일그림이 아니라 호랑이그림으로 한 판 논 것이다
십 일 년만의 두 화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바로 세상과의 소통이었다.

한 참 후에 작가 이목을씨가 나타났다.
제자들은 화판에 바탕색을 칠하느라 분주했고, 작가는 물감과 화구들을 챙기고 있었다.
‘MBC 문화사색’ 방송에서도 따라 나와 그를 취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경영난으로 고전했던 ‘인사아트프라자’가 요즘 다양한 문화행사를 선보인다.

이목을씨의 스마일 퍼포먼스와 초대전도, 그 기획의 일환인 것 같았다.

그러나 눈치 없는 봄비는 그칠 줄 모른 채, 추적추적 내렸다.
관객동원을 위해 비가 멈추기를 기다려, 다른 사진만 잔득 찍어야 했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지? 그만 카메라 전지가 다 돼 버린 것이다.
간단히 끝 날 거로 생각하고, 보조전지를 챙기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몸은 지치고, 배는 고파, 아쉽지만 퍼포먼스를 못본 채, 돌아와야 했다.
뒤늦게나마, 이목을씨 페북에서 메인 퍼포먼스 사진 두 장을 스크랩해 낸 것이다.
이 못난 컨닝을 굽이 살펴주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이목을 자료사진 스크랩]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약칭: 인사모)의 1월 정기모임이 지난 26일 오후6시30분 인사동 '툇마루'에서 열렸다.

이 날 모임에는 민건식회장을 비롯하여 10명의 회원들이 참석하여 만찬을 즐겼다.

 

 

 

 

 

 

 

 

 


인사동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이 주축이 된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인사모)

11월 정기모임이 지난 24일 오후6시30분부터 인사동 '툇마루'에서 있었다.

이 날 참석한 분으로는 회장이신 민건식 원로 변호사를 비롯하여 박일환 전임 대법관, 한국화가 김양동,

서양화가 이목을씨, 영남대 도예교수 이흥복씨, 해병대 장군으로 퇴역해 국제봉사협회 고문으로 재임 중인

윤경원씨, 사업가 송재섭, 강윤구, 김완규씨, 그리고 새로이 나오신 외환은행 박상균지점장 등 11명이 참석하였다.

 

 

 

 

 

 

 

 

 

 

 

 

 



MBN이 주최하고 '페인티안'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TV갤러리와 함께하는 페인티안 초대전 개막식이 지난 15일 오후6시 인사동 '아라아트'2층에서 열렸다.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전시인 <매일경제TV Mmoney 아름다운 TV 갤러리 - 페인티안 초대전>에는 힐링을 주제로 총 17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작가들의 드로잉 작품과 기부작품 30여 점, 기업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아트광고 등이다.

15일 저녁 6시에 열린 오프닝 행사는 방송 사상 최초로 매일경제TV Mmoney를 통해 생방송으로 송출되었는데, 참여 작가들과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토크와 관람객들을 위한 참여 작가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이벤트로 구성되었다, 참여작가는 도성욱 낸시랭, 신철, 정기호, 이목을, 백진, 박성남, 조문호, 김남용, 전인경, 권두현, 김용문, 허미자, 정영신, 안윤모, 임채욱, 이청운, 강찬모, 김진석, 프레디, 두츠 등 90여명의 작품이 선보인다.

박혜영 페인티안 대표는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품을 통한 힐링을 느껴보시기 바란다”며 “페인티안이 작가와 기업, 개인 콜렉터가 함께 참여해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온라인 미술입찰 사이트를 지향하는 만큼, 작가와 기업, 대중이 함께 기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개막식에는 '페인티안' 박혜영 대표를 비롯하여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 mbn 정완진 국장, 미술평론가 김종근씨, '2014광장아트페스티벌' 변석 대표가 참석했고, 이청운씨 등 70여명의 출품작가 외에도 함상희. 조경석, 조준영, 임태종, 노광래, 편근희, 공윤희, 정순겸, 고상준, 전인미, 이명희, 김민경, 주승자, 전강호, 김상현, 조성호, 권영진씨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식순에 의해 진행자 김종근씨의 전시 취지에 대한 소개말과 김명성씨의 축사, 참여작가들의 인사말 등이 이어졌으며, 전시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사회공헌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참여 작가에게는 감사패도 수여되었다.

 

이 전시는 아라아트 2,3,4,5층 전시실에서 7월21일까지 이어진다.

 

 

 

 

 

 

 

 

 

 

 

 

 

 

 

 

 

 

 

 

 

 

 

 

 

 

 

 

 

 

 

 

 

 

 

 

 

 

 

 

 

 

 

 

 

 

 

 

 

 

 



장모님 생신날을 맞아 열차편으로 상경했다.
정선 행사 때문에 오래 체류할  수 없어 마음이 바빴다.
인사동에 모임도 있고, 전시장 들릴 곳도 많은데...

처갓집 식구들로 집안은 온 종일 잔칫집 분위기였으나 오후5시 무렵 인사동에 나갔다.
전시장에 들린 후, ‘인사모’의 6월 정기모임에도 갔다.
민건식회장님을 비롯하여 이상배, 김완규, 김양동, 이목을, 박원식, 강봉섭,
김근중씨 등 열 명이 참석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여자 한 분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에밀리영이라는 서양화가인데, 얼굴도 예쁘지만 그림들이 꽤 괜찮았다.
그런데 옆자리를 돌아보니 사진하는 친구 이수만씨와 이혜순씨가 앉아 있었다.
너무 반가워 좌석을 옮겨가며 급하게 마셨더니 금세 취해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유목민’에도 잠시 들렸다.
안쪽에는 김명성씨와 전인미, 임태종씨 등 몇몇 분이 있었다.
모두들 반갑기는 하지만, 몸이 괴로워 더 이상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때까지 처갓집 식구들의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더 마실 기력도 없었지만, 내일 새벽열차 놓칠까봐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다

 

 

 

 

 

 

 

 

 

 

 

 

 

 

 

 

 

 

 

 

 

 

 

 

 


 

                                                                                                   이목을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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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1박2일 일정의 여행을 경상북도 상주로 떠났다. 

이번 나들이는 상주시 은척면 출신인 이상배, 김동주씨 주선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난 16일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상주옹기, 명주박물관, 곤충박물관, '은자골탁배기'공장, '고려왕검연구소', '동학교당', '묵심도예', 상주5일장 등을 돌아본 후, 이틀날 오후5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함께하신 분으로는 고위공직자인 이상배씨를 위시하여 녹색성장위원장 김형국씨 내외, 서화가 김양동씨, 통인그룹 대표 김완규씨, 동원건설 대표 송재엽씨, 서양화가 이목을씨, 건축가 김동주씨, 필자 등 모두 아홉 명이 함께해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이 번 상주 나들이는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었다.

이상배씨 덕분에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았는데, 상주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보고 느낀 것들도 많았다.

명장들의 공방인 정대희씨의 '상주옹기', 칼을 만드는 이상선씨의 '고려왕검', 도자기 만드는 이학천씨의 '묵심도예' 등 이 지역 명장들의 작업현장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었고, 상주시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귀촌, 귀농에 대한 세미나도 들었다.

그리고 잠사곤충사업소에 들려 명주박물관과 곤충박물관은 물론 누에에서 명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둘러보았는데, 인근의 가로수마저 개량된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특히 3선 국회의원에 경북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장관, 정부공직자 윤리위원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이상배씨가 누에를 보며 던진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누에가 실을 다 풀어내고 생을 마감하듯, 자신도 누에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공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고향에 잘못된 점을 알고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틀 동안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성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상주시 은척면에 동학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제우선생의 동학이념을 계승한 김주희선생께서 상주동학교당을 창건하여 동학경전과 동학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화장을 꾀했다는데, 이곳에 동학의 유물들이 전부 모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교당본부 건물5채를 비롯하여 유물 177종 1,084점이 전시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김주희선생이 타던 가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숙소로 정한 상주시 은척면에 소재한 성주봉 휴양림의 풍광도 일품이었다. 울울창창한 산림과 계곡 요소요소에 팬션을 지어 환경친화적인 숙소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김동주씨 생가에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자택은 어떻게 지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궁금했었는데, 옛 가옥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해 놓았던 것이다. “툇마루나 문짝 하나하나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데, 어찌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역시 손 안대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건축이었다.

 

상주 은자골 터가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오래 전에 동학교당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이 깡촌에 이상배씨와 김동주씨 같은 훌륭하신 양반이 두 분이나 태어났으니 말이다.

잔치 집처럼 마당에 자리를 본 만찬장 또한 최고였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신 여러 가지 음식들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그 곳 만의 진미였다.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장만한 나물들을 보내 주신 이웃을 비롯해,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상배, 김동주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고기 굽느라 고생하신 이목을님, 먼 길을 도맡아 운전해 주신 송재엽님, 식욕을 주체 못한 김완규님 등 함께하고 반겨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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