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동자동에 있지 않아, 모처럼 동네 마실 나갔다.
꽃샘추위가 지난지도 한 참인데, 무슨 놈의 바람이 이리도 부는지,
다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부랑자 병학이가 거처하는 주차장 구석자리부터 찾았다.
얼마 전 어느 독지가에게 기증받은 텐트가 반가워, 
집들이 턱으로 술 한 잔 사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리 있던 텐트는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이불만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옆에서 술 마시던 유정희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아이! 어데 갔다 이제 옵니까?”라며 호들갑을 떨어 벌금 때우려 교도소에서 한 보름 섞다 나왔다고 했더니,
‘아! 몸 고루며 휴양하고 오셨구나. 그런 자리 날 좀 보내주지"라며 너스레를 떨어댄다.




그 것도 부재자 투표를 못하게 해 삼십 만원 손해 보고 왔다고 했더니,
“그까짓 투표 때문에 왜 돈을 날리냐”며 길길이 뛴다.
하기야! 그들에겐 선거 같은 건 관심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삼십 만원이면 한 달이나 살 돈인데...




그나저나, 병학이 텐트는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구청에서 철거해 갔다는 거다.
추워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라며, 자는 모습을 가리켰다.




아니,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주차장 구석의 텐트는 왜 가져간단 말인가?
텐트를 쳐 주어도 신통찮을 판에 어렵사리 구한 텐트마저 뺏는가?
물어물어 구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주민 신고가 들어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4월2일 찍었던 병학이 텐트-

참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놈이 없는 놈을 핍박하는 살벌한 세상이다.




서울역으로 건너갔다.
다들 양지바른 곳에 모여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사람, 막걸리로 시름 달래는 사람, 자는 사람,
아무런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마스크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걸 보니,
전염병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하기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벼랑 끝 인생, 두려울 게 뭐 있겠는가?




정치하는 놈들은 노숙인들 죽고 사는 문제는 관심 없고,
오로지 총선결과 계산기 두드리며 도둑질해먹을 궁리나 하고 있으니,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더러운 세상 확 뒤집어 버리고 싶었다.




당연한 권리주장도 못하는 부랑자들 선동이나 할까보다.
폭동 일으켜 교도소가면 이런 개고생은 안 할 것 아닌가?
 
사진, 글 / 조문호















부랑자의 꿈은 부귀영화 누리며 잘 사는게 아니다.

지친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쪽방 한 칸과

일할 수 있는 곳과 아프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러한 희망은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

아무도 부랑자에게 관심두지 않는다.

관심은 커녕, 죄인처럼 손가락질 한다.



그들이 기댈 곳은 가보지도 못한 저승 뿐이다.

이승의 생이 끝나면 짐승으로 환생할 꿈을 꾼다.

사람보다 애완동물이 더 사랑받는 세상이 아니던가? 




이제 모든 희망 버리고 떠날 준비되었다.

서울역 후미진 곳에서 천국가는 열차를 기다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티브이를 끼고 산다

세상을 내다보는 유일한 통로지만, 마약에 가까운 중독성이 있다.

요즘은 티브이가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 겁주는 방송 뿐이라

쪽방 사람들은 방에서 꼼짝도 않는다. 말 잘 듣는 착한 백성들이다.



난, 티브이 중독성에 등 돌린 지 오래되었지만, 페북은 더 심했다.

가진 자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티브이보다 더 상세히 보게되니 

사람 좋아하는 인간이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정도다.

오죽하면 사람 만나기가 싫어 핸드폰을 꺼 놓거나, 방에 갇혀 있을 때가 더 많겠는가?



지난 10일 녹번동에서 어울려 마신 후유증에 몸이 말이 아니다.

그 다음 날 소주 석 잔에 맛이 가 진땀까지 흘리며 빌빌거렸으나, 술과 원수지기는 싫다.

아껴 오래 먹어야겠다.

그 날처럼 온종일 어울려 코가 비틀어지게 마실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으니, 죽어도 고다.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천정만 쳐다보는 시간이 제일 편하다.

예전엔 하루 종일 쪽방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동화되어 가는 것 같다. 아니 동화가 아나라 편했다.

방에서 담배를 피우던 딸딸이를 치던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잖은가? 

그러니 독신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2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려 또 술 생각이 났다.

술병이 나서 골골거리는 형편인데도, 정말 대책 없는 인간이다.

그렇지만 혼 술은 절대 안 마신다. 라면을 끓여 속이나 풀었다.

 


밖에는 날씨가 포근해, 마치 봄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동네를 돌아다녔으나, 술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술은 핑게일 뿐, 사람들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동자동은 마치 민방위 훈련하듯 조용했다.

할매의 고함소리도 술꾼들의 술주정도 들을 수 없었다.



전 날도 누군가를 기다리던 이남기씨만 만났을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혼자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고독을 즐기는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동자동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9일은 동자동에 사람이 없어 서울역으로 갔다.

토요일도 아닌데, 무슨 집회를 하는지 소란스러웠다.



문정권을 저주하는 문구로 뒤덮인 봉고차에서 흘러 나오는 확성기소린데,

엄청난 소음으로 주민들을 괴롭히는 이런 짓은 제재할 수 없는 것인가?



마스크를 쓰고 술은 어떻게 마실 것인지, 막걸리 가진 천씨가 약 올렸다.

‘한 잔 줄까? 말까?’ 술잔도 없잖아~



그런데, 서울역에도 노숙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다시서기’에서 티브이나 보는 줄 알았는데,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는 텐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라는 설교가 한 창인데,

예수님 찾으면 전염병이 얼씬도 안하는 갑다.

다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설교를 들었다.

한 장뿐인 마스크는 걸레나 마찬가지라, 안 쓰는 게 낫다.



양지바른 곳에서 죽치는 몇몇 거사들이 있을 뿐, 서울역도 한산했다.



이제 곧 전염병이 물러나며 따뜻한 봄날이 찾아 올 것이다.

다들 방에서 나와 슬슬 몸이나 풀자.

동자동의 봄을 찾자.


사진, 글 / 조문호






\










온통 점염병에 주눅 들어 갇혀 살지만 감옥살이는 이제 싫다.
기다리는 사람도 반기는 이도 없지만 쪽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맘 편하다.
불편한 몸이지만 서울역 주변을 돌아다니다 구경거리 있으면 구경하고
힘에 부치면 어디서나 눈 감으면 된다.




이젠 면역이 되었는지 피부가 무뎌졌는지 춥지도 않다.
모든 게 마음 하나 놓으면 편안해진다.
차라리 잠들어 저승 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가 아니더냐?




통행에 방해 된다 나무라지도 말고, 불쌍하다고 휠체어를 밀지도 마라.
어차피 혼자 떠돌 수밖에 없는 나그네 길 아무도 간섭마라.
꿈에라도 할미를 만나고 싶고, 날 버린 자식 손이라도 잡고 싶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삼헌씨가 위령무를 추고 있다.


연고 없이 세상 떠난 이를 추모하는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동자동 조인형씨가 추모제단에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고 있어, 빈곤 활동가들이 집계한 올 해 사망자만 166명이란다.
실제론 서울에서만 300명 이상이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모제단


동자동 쪽방에 거주한 열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채, 이름만 남겼다.


추모객들

거리에서 죽은 노숙자는 시신이라도 제 때 수습되었지만,
방안에서 외롭게 죽어 간 사람은 시신 섞는 악취로 알게 되었다.


동자동 송병섭씨가 연영철씨에 대한 추모글을 읽고 있다.

동자동에선 가파른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은 두 사람 외에는 대부분 술 때문에 죽었다.

독약인줄 알지만 이승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동자동 조인형씨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서둘러 떠난 그들을 기억하러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갔다.
무대 앞 현수막엔 올해 죽은 홈리스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꼼꼼이 살펴보니, 아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구나 연영철씨는 옆방에 살던 후배가 아닌가.
4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는데,
돈이 없어 수술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고생만하다 올 여름 세상을 떠났다.


연영철씨가 입원한 중앙병원에 병문안 간 정선덕씨 2018. 4

병문안은 여러차례 갔지만, 서둘러 화장해 장례를 지켜보지 못했다.
살아 생전 더 따뜻하게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방문 앞에 앉은 연영철씨. 2017. 9

요리사 출신이라며, 언제가 맛있는 음식 한 번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말을 여려차례 했지만,

재료도 주방도 없는 쪽방에서 뭘 한단 말인가?


방에서 식사하는 연영철씨. 2018, 7

유달리 연예인들과 미녀들을 좋아해, 비좁은 방안에는 캘린더의 미녀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이제 부질없는 미련일랑 다 버리고 홀연히 먼길 떠나셨네요.


사진가 노은향씨가 보낸 내의를 전달받는 연영철씨. 2017.12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씨가 불러 준 ‘서울역 이씨’는 잘 들었는가요?
부디 모든 것 잊고 편히 잠드소서!


가수 정태춘씨가 홈리스추모제에서 '서울역 이씨'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는 지난 달 심장마비로 죽은 정용성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착하기 그지없는 녀석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어미는 어쩌라고 혼자 가버렸는가?



처음 만났을 땐, 사진만 찍으면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몇 번은 주었으나, 사진인들이 길들인 버릇 같았다.
그 이후부터 있어도 못 준다고 했더니, 더 이상 손 내밀지 않았다.


방안에 앉은 정용성씨. 2018, 9

항상 말은 없지만 잔정이 많아 만나기만 하면 배시시 웃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 안주도 먹으라며 사과조각을 쥐어주기도 했다.
어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어지간히 술에 쩔어 살았는데,
옥탑방으로 오르다 수 없이 넘어져 상처 아물 날이 없었다.


아래 층에 사는 정재헌씨가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다 설움에 북받쳐 울고 있다.

좌로부터 황춘화. 정용성, 정재헌씨 2018, 10


그런데 이 녀석은 나이가 아들 햇님이 또래인데, 날더러 늘상 행님이라 부른다.
하기야! 어미를 옆에 두고, 아버지라 부를 순 없지 않은가?


정용성씨 어머니 황춘화씨, 2019, 5


젊은 나이에 장가는 커녕 세상 맛도 모르고 갔으니, 더 슬픈 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장례를 치루고서야 알게 되었다.
빈소에서 아들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는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뒤늦게 만나서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냈다.


2017년 11월 동자동 추석잔치에서,,,

운다고 떠난 자식이 돌아 올 수 있겠냐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터지겠는가?
죽은 자식보다 황춘화씨가 더 걱정이었다.
이제 옥탑방에서 살지 말고 낮은 층의 작은 방으로 옮기라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죽은지도 몰랐던 전경희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 잊었는데, 올 2월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2년 전 대부도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한 적도 있었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술 광고 속의 미녀를 보며 “이쁜 여자 보니 춘정이 동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젊을 때 바람께나 피웠겠다“며 꼬리웃음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다.


대부도 기념관에서 김정심씨와 기념사진 찍는 전경희씨, 2017.11

그 외 신기식, 이삼석, 최상섭씨를 제외하고는 동자동 살았지만, 모두 낯설더라.
평소 바깥 출입은 않고 방안에서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좌우지간, 모르는 분을 포함하여 비명에 간 166분의 이름 앞에 고개 숙였다.


홈리스 야학 합창단이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있다.


부디 아무런 원망말고, 그냥 팔자가 사나워 먼저 떠난다고 여기세요.

이 더러운 세상, 더 살아 무슨 영광을 보겠습니까?

고생스런 이승을 마무리하였으니, 저승에선 잘 산다는 믿음 하나로 위안 삼으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문호합장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밤 깊은 서울역
홈리스들이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 잔다.



어디선가 여린 선율의 바이올린소리 들린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아베마리아’다.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들보다 가진 자들이 더 많지 않은가?




고통스런 삶이냐? 자유로운 삶이냐?
추운 날은 고통이고, 더운 날은 자유롭다.




처음 힘들 때는 고통스럽게 보였지만,
내가 익숙해지니 자유롭게 보이더라.




상대적이라 아무도 단정 못 한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사진, 글 / 조문호












토요일만 되면 난리 쳐들어 온 것처럼 온 동네가 소란스럽다.
서울역광장에서 벌이는 박근혜 잔당들이 벌이는 패악 질 때문이다.
확성기소리가 얼마나 큰지, 쪽방의 봉창이 울릴 정도다.
낮잠은 커녕, 토요일은 아예 녹번동서 보낼 때가 많다.





지난 토요일은 정영신씨가 잠수 타는 바람에 녹번동도 갈 처지가 못 됐다.
대관절 어떤 놈인지 꼬라지라도 볼 심산으로 서울역광장으로 갔다.






한심스러웠다.
대부분 나 또래의 늙은이들이었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더 이상 쪽팔리게 하지마라.

왜 애들에게 도매금으로 꼰대소리 듣게 하냐?.
좆도 모르면 방구석에 처 박혀 티브이나 보고 놀지...






토요일 집회 때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노숙자조차 어디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못 말리는 똥고집들도 도망 칠 정도니, 더 무슨 말을 하랴!.






각 지역마다 관광버스로 동원되었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필경 정치권에서 흘러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쪽바리 계집같은 나씨 패거리라도 와서 반겨야 하는 것 아니가?

초록은 동색이지만, 함께 하기는 챙피한 줄 아는 모양이구나.





가만히 살펴보니, 사이비 광신도 같은 사람도 많았다.
광신도가 아니면 열사에 가까운 우국지사거나...
“내 목숨을 가져가고 박대통령 석방하라“는 글을 등에 달고 다녔다.

죄인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런데, 성조기와 태극기는 왜 들고 다니나?

우리나라가 미국놈 속국이더냐? 그들에게 이용 당한 민족의 한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더 이상 태극기를 모독하지마라. 신성한 태극기에 혐오감 느끼게 만든다.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박근혜를 삭방해야 한다는 말은 이해되지만,

전두환을 사면시켜 생긴 부작용을 지금 두 눈으로 똑똑이 보고 있지 않은가?

악마는 죽여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당한 국민들도 잊게된다.


이제 명분도 실속도 없는 패악 질은 그만하자.


사진, 글 / 조문호





















길 잃은 자 몰려드는 곳이 서울역이다.
오 갈 데 없는 방랑자의 종착역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이 없고,
희망이 없으니 일하지 않는다.
더러는 빈자의 자부심을 위안 삼는다.





육신은 무너졌고, 정신은 황폐하다.
천국의 복음보다 컵라면 한 그릇을 믿으며,
막걸리로 시름 달랜다.






이젠, 지하도에 자리 깔면 끌려 나온다.
야생의 삶이 서서히 길들어 간다.






온 종일 ‘다시서기’에서 티브이보다,
밥 때 되면 줄 서서 밥 타먹고,
밤 되면 합숙소에서 잔다.


“바르게 살자” 새마을 구호처럼...






굴하지 않는 역전의 용사도 있다.
끝까지 바람찬 광장에서 버틴다.
파지박스를 벽 삼아 두더지처럼 잔다.






왜 추운데서 개고생 하는가?
“길들기 싫은 노숙자의 자존심이다.”


세상을 원망하며 죽음을 재촉한다.


사진,글 / 조문호




















'조문호사진판 > 동자동 쪽방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쉬기도 힘들고, 죽기도 힘들다.   (0) 2019.03.11
죽지 못해 산다.  (0) 2019.02.08
동자동 빵 나눔은 끝나지 않았다.  (0) 2019.01.20
노숙자의 기도  (0) 2019.01.19
사람이 그립다  (0) 2019.01.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