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은 부랑자들 삶의 터전이다.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불청객 신세지만, 유일하게 소통하는 공간이다.

 

지난 14일에 찾아 간 서울역광장에는 낯선 부랑자들이 몇몇 보일 뿐 허허로웠다.

서울역광장에서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김지은은 비닐 움막을 만들어 누워 있었다.

그 옆에 누구의 거처인지 알 수 없으나, 예쁘장한 박스집이 지어져 있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지만, 부서지기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부랑자의 집이다.

 

개처럼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와야 하는 집이지만,

그들에게는 부자동네 강남 아파트가 부럽지 않은 생활공간이다.

노숙자에게 비나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흔한 일은 아니다.

 

움막 주인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낯선 사내가 다가 와 시비를 건다.

자기 집은 아니지만, 왜 남의 사유물을 찍느냐는 것이다.

“재산권 침해야! 카메라 내놔”

지켜보던 김지은이가 “야~ 우리형님이야”라는 한마디에 바로 꼬리 내린다.

 

살벌한 부랑자 세계에서는 빽 중에 최고의 빽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을 여러번 찍혀 본 지은이는 자기를 찍으란다.

“사람도 없는 개집 찍지 말고, 잘 생긴 나를 찍어라”는 것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듯이 사물보다 사람이 더 사진적이라는 것을 안다.

 

김지은은 서울역 부랑자 중에 유일하게 멋을 부리는 사나이다.

2016년 겨울,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모델료 내라며 트집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동자동 사는 개털임을 알고부터 무장해제되었는데,

유일하게 서울역의 따끈따끈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또 한 사람 서울역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은 조인형씨다.

건너 편 쪽방에 사는 그는 알미늄 깡통을 줍기 위해 매일같이 나온다.

고물 중에서도 가볍고 돈 나가는 캔만 줍는데, 벌이가 수월찮다.

그의 비좁은 쪽방은 갖가지 고물이 방주인을 쫒아 낼 형국이다.

 

서울역에서 남영동 방향으로 300미터 쯤에 ‘자리한 밥집 부근에는

밥 주는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일찍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기다리는데 이골 난 사람들이다.

지금은 허기 메울 밥을 기다리지만, 종국엔 천국 행 열차를 기다린다.

 

서울역과는 대조적으로 동자동 거리는 한산했다.

다들 쪽방에 들어 앉아 알 까는지 꼼짝을 않는다.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지만, 죽기는 싫은 것이다.

그래! 악착같이 살아보자. 쥐 구멍에도 볕들 날 있겠지.

 

사진, 글 / 조문호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어 노숙하는 부랑자들은 몸 부칠 곳이 없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짐은커녕 그 흔한 우산하나 지니지 않는다.

신출내기들은 이것저것 챙겨 다니지만, 점차 하나하나 버리게 된다.

살다보면 아무 것도 없는 무소유의 편안함을 깨닫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그 많던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몸 피할 곳은 물론, 밥 얻어먹을 곳도 마땅찮다.

다들 음습한 곳으로 숨어들어 물에 빠진 새양쥐처럼 오들오들 떤다.

 

비가 그친 지난 3일에서야 서울역광장에 다들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비를 피하다 왔는지, 끼리끼리 만나 잡담을 나누었다.

몇 몇은 지하철 통풍구를 평상처럼 더러 누워 젖은 몸을 말렸다.

 

서울역광장 쪽에서 누가 불렀다. “조기자! 사진 한 판 찍어줘”

계단에 이기영씨와 홍홍임씨가 앉아 있었다.

웬일로 나왔냐니까,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왔단다.

하기야! 쪽방에 있어보았자 덥고 답답하기만 할 텐데,

서울역이라도 나오면 다양한 군상들을 만날 수 있어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요즘 안 보이는 노숙인이 많아 쓸 만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 사용동의서를 받아두는 것도 일이다.

다들 좋아서 찍어 시비 걸 사람은 없겠으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받아두라는 주변의 충고 때문이다.

 

이기영씨도 삼년 전 겨울에 찍은 사진이 생각나, 동의서를 내 밀었다.

사진집에 당신 사진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두 말 않고 사인해 주었다.

여지 것 10여명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한 사람도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거절은커녕, 다들 “어떤 사진이냐?”며 좋아했다.

 

여지 것 출판을 서둘지 않는 것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문화재단의 출판지원이 없다면 무리해서 만들 필요가 없다.

최소한 자기 사진이 실린 분들에게 책 한권은 증정해야 할 것 아닌가?

다행스럽게 정영신씨의 ‘장터문화답사기’는 지원책에 선정되어 곧 출판된다고 한다.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다들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사진집으로나마 추억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정선 땅을 팔아서라도 캠핑카부터 구할 작정이다.

필요한 짐을 차에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사진찍다 길에서 죽는 것이 꿈이다.

처음이고 마지막인 내 꿈은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사진, 글 / 조문호

 

무더운 쪽방에서 버텨야 하는 빈민들의 삶은 비참하다.

짐승도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바람을 돌리는 선풍기 소리가 숨통을 조여 온다.

컴퓨터 열기에 온 몸이 후끈거린다.

 

나야 나가 있거나 다른 데서 잘 때가 많지만

쪽방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차라리 쪽방조차 없는 노숙인은 그나마 낫다.

병 걸려 죽는 것조차 두렵지 않으니 외롭지도 않다.

 

요즘 밖에서 쪽방 사람들 만나기는 어렵지만,

노숙인들은 매일같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인다.

무료급식소 줄어든 게 탓이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다.

막걸리로 허기 메우며 자유롭고 즐겁게 지낸다.

 

가끔 여성 노숙자도 있는데, 그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 역시 말 걸기도 어렵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세상에 노출되기 싫은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서울역 노숙자 성비 통계에 의하면 3.3%에 불과하니,

가뭄에 콩 나듯 만나기도 어렵다.

요즘은 미투 폭풍으로, 여자 노숙인은 대하기조차 두렵다.

이 날도 우산 두 개로 몸을 숨긴 여성 노숙인을 보았다.

 

남편 폭력이나 정신병 등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겠지만,

남자에 비해 노숙생활이 힘든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원인은 돈이 원수다.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는 처지라

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코로나에 다들 벌어먹기 어렵지만, 영향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돈 많은 부자야 말할 것도 없으나, 건물 임대 업자들은 안전 빵이다.

장사가 안 되던, 살기가 어렵던, 임대료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지만

한 번 올라간 임대료는 내릴 줄 모른다.

 

빈민들로서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빈부 격차도 날이 갈수록 벌어져, 한 번 거지는 영원한 거지다.

상대적 박탈감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동자동에도 문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식당 문 닫은 자리에 자동차 정비소가 들어섰다.

그것도 외제 승용차를 주 고객으로 하는 정비소다.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은 대개 힘들지만,

부자를 고객으로 하는 장사는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밥은 집에서 먹는 것이 안전하지만,

이동수단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찾는 이유도 있겠다.

 

이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다들 거리로 나와 노숙해야 할 것 같다.

구차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 낫다.

 

사진, 글 / 조문호

 

부랑자는 하늘에서 날아 온 외계인인가?

 

육신 하나 달랑 남았지만, 기초생활 수급도 못 받는다,

부자도 다 받는 코로나 긴급재난기금도 못 받았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집에 갈 수 없어서다,

가족에게 버림받으면, 사회도 버려야 하는가?

 

약자 인권 유린이 알려지면 세상이 시끄럽지만,

노숙인은 길에서 죽어가도 아무렇지도 않다.

 

무슨 죄로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정부는 왜 노숙인 문제를 방치하는가?

 

지금이라도 전수조사에 들어가 노숙인 등록부터 실시하라.

돈이 가장 절실한 그들도 긴급재난기금을 지급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아무 미련이 없다.

죽지 못해 연명할 뿐이다.

 

주린 배는 채워야 하지만, 이내 체념한다.

 

구걸한 막걸리로 허기를 메운다.

그 술에 종일 땅바닥을 헤맨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광장에 눈부신 햇살이 비치면,

노숙자들 고단한 하루도 시작된다.

 

서울역 김씨는 부랑생활에 이골 났다.

 

오래전 사진 한 장에 거지가 사람으로 찍혔단다.

사진 놔둘 곳도 없지만, 옆 사람에게 자랑해댄다.

 

빵 한 조각 보다 사람대접을 받고 싶단다.

버림받고 살아 사람을 그리워한다.

 

세상은 거리 두라지만, 그들에겐 안 먹힌다.

마스크도 없이 하루 종일 어울린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전염병도 얼씬 못한다.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깊다.

 

따뜻한 말이 듣고싶다. 정에 굶주려...

 

사진, 글 / 조문호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부자나 거지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밥은 먹어야 산다.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노숙인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까?
옛날 각설이처럼 깡통 들고 밥 얻어먹으러 다닐 수는 없잖은가?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엔 무료급식이 늘렸으나, 요즘은 대개 문 닫았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노숙인들을 지켜봤다,
다들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알아 보고 싶었다.
술 마시는 부랑자나 고참들은 밥집을 찾지 않았으나,
시간이 되니 다들 밥집으로 몰려가 줄서기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남영동 방향으로 300미터 쯤에 ‘따스한 채움터’란 밥집이 있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오후 4시부터 밥을 주지만, 3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평소 보지 못한 노숙인들이 많았는데, 쪽방 사는 분은 보이지 않았다.

관리자의 이야기로는 한 끼에 3-4백명씩 찾는다고 했다.
밥집은 1-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대기실이 식당보다 더 넓었다.
다들 질서정연하게 밥을 타서 먹는데, 음식은 먹을 만했다.
비록 칸막이에 갇혀 개처럼 먹지만, 먹는 시간만은 행복했다.

쪽방에서 라면 끓여 먹는 것에 비한다면 진수성찬이었다.
줄서고 기다리는 게 싫어 대충 때우는 것 같았다.

귀찮아도 먹어야 산다. 그래야 술을 마셔도 버틸 수 있다.
밥은커녕, 안주도 없이 깡술을 마셔대니 어찌 버틸 수가 있겠는가?

밥 한 끼의 행복을 모른다면, 살 자격도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가진 것도 갈 곳도 없다.
아무런 생각도 없다.

삶의 욕망조차 잃었으니,
짐승보다 못하다.

욕망에 병든 세상
이 무슨 모순인가?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