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씨는 올해로 예순 아홉인데, 나보다 네 살 적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술을 좋아해도 점잖게 마신다는 것과 동자동에 들어온지가 20년이 넘은 고참 이란 것 정도다.




지난 2일 ‘새꿈어린이공원’에 나가보니, 공원은 한적했다. 날씨가 추워 다들 방콕하는 것 같았다.

잘 안 가는 다방에 들어갔는데, 그 곳은  ‘동자희망나눔센터’에 있는 찻집이다.

본래 목욕탕 자리를 서울시에서 매입해 쪽방주민 편의시실로 사용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과 회의실, 샤워시설을 비롯해 차도 파는데, 쪽방 주민이면 천원에 마실 수 있다.

주민들이 커피 뽑는 다방 마담 역활을 하지만, 싱겁 떨다간 바로 미투다.
난, 자판기 스타일이지만, 여기서도 옛날 다방커피 맛은 볼 수 없다.

괜히 신년이라 천원짜리 폼 한 번 잡아본 것이다.




“아지매~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 말아주이소” 했더니, 대뜸 ‘라떼’면 되겠어요?라고 물어왔다.

라뗀지 로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달라 했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그대 오기만 기다리니, 마침 이남기씨가 들어왔다.
이 친구는 커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화장실 사용하러 왔는데, 차 한 잔 하라며 불러 앉힌 것이다.




콧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감기에 좋은 따뜻한 레몬차나 마셨으면 좋으련만,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시켰다.
기자근성이 슬슬 발동해, 이남기씨의 살아 온 인생사를 캐묻기 시작했다.



이남기씨는 전라도 나주에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양친 밑에 태어나,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인생의 쓴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84년도에 무작정 상경했단다.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나 감겨주다, 어쩌다 이발 기술을 배워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는데, 
그 곳에서 나와 공사판 노가다로 전전하다 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하루 일당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그에게 갑자기 불운이 닥친 것이다.
어느 날 공사판에서 일하다 떨어져 팔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더 억울한 것은 사고로 보상받은 돈이 고작140만원이란다.
더 이상 일할 처지가 못되어, ‘희망여인숙’에 거주하다 동자동에 들어 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수급자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데, 초창기의 수급비란 쥐꼬리만 했다.

힘들게 사는 쪽방 살이의 유일한 낙은 술 뿐이었는데, 쪽방살이에 길들고, 술에 길들어 산지가 어언 20여년이 넘어버렸다.
빈민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총각딱지를 못 떼었다는 것이다.
사내로 태어나 여인네 품속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냐? 아니, 그건 인간으로 태어나 죄악에 가깝다.




조용조용 신세타령하던 이씨가 갑자기 정치이야기에서 돌변하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며 얼마나 욕을 해대는지, 찻집에서 쫓겨 나와야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찔렀는데, 테러도 마다할 듯 분노했다.
인간적인 노무현 대통령까지 욕하는 걸 보니,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 작용한 듯 싶었다.
보수정권에서야 기대하지도 않았겠지만,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나아질까 나름으로 혼신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맞았으나, 빈민들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은 인간”이라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오에 가깝도록 깊어진 것 같다.




쫓겨나와 공원으로 가니, 원종훈씨가 술판을 벌여놓았더라. 막걸리 한 잔에 분노를 다독이는 이남기씨가 안쓰러웠다.
분통 터트리게 된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다시 노발대발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하기야! 이남기씨 삶에 비하면, 나는 잘 살았던 것이다.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도 했고, 하고 싶은 것 하며 꼴리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정치나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아 씨팔 조팔하는데, 그야 오죽하겠나?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정부 예산에서 눈곱만큼만 떼어내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 다 보살필 수 있다.
정치도 돈도 모두 사람 생존에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해부터 바람막이조차 없어 비닐 덮어쓰고 벌벌 떠는 홈리스가 거리에 늘렸다.
제발, 서민들 민생에 신경 좀 써주었으면 고맙겠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