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는 쪽방 사는 빈민들이 힘들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노숙인이 버텨내기 힘들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보호시설을 비롯하여 서울역 인근에 응급 잠자리 65개를 준비하는 등

서울시의 대처로 예년에 비해 추위에 노출된 노숙인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해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인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에는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서울역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노숙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지하도는 단속이 심해 그런지 비둘기 한 마리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양지바른 다시서기건물 벽에 서너 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외국인 한 사람이 침낭을 몇 개 가져와 나누어 주었다.

 

다시 동자동으로 건너와 새꿈공원에 갔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공원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공원입구에 처음 보는 노숙인이 찬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좀 있으니, 지나가던 선교사가 이대로 자면 얼어 죽는다며 깨웠다.

춘천에서 왔다는데, 넘어졌는지 얼굴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술도 좀 마신 것 같았다.

덮고 있는 외투를 들치니 내복을 입지 않아 양팔이 그대로 노출된 체, 찬 바닥에 누워있었다.

선교사가 가까운 여인숙에 방 하나 얻어 주겠다며 끌었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방에 왜 갇히고 싶겠는가?

눈치 챘는지 나중에 다시 오겠다며 선교사는 가버렸다.

알콜 중독자의 구걸 속성을 아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가끔 베푸는 경우가 있다.

주면 안 된다지만, 당장 돈이 절실한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구걸할 수 없으니 그 짓을 하는 것이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피차 마음 편한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몇 푼 되지 않지만, 꼬깃 꼬깃 접어 손에 끼어주니 움켜잡았다.

부디 부디 찬 바닥에서 일으나 무탈하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세면도구를 챙겨 호젓한 남산 길을 걸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나누어 준 무료 목욕권 덕에 톡톡히 호사를 한다.

예전에는 명절에나 찾았던 목욕탕이 아니던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어 눈을 지긋이 감고 있으니, 찌푸둥한 몸이 풀렸다.

 

목욕탕에서 나와 문화역서울에서 열리는 공예특별전을 보러갔다.

남대문사우나에서 서울역으로 가려면 서울로7017’ 고가가 지름길이다.

서울로7017’은 많은 원형 화분들이 놓인 휴식공간이라 남산 길보다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늘 보던 서울역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와이티엔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서울역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다양한 식물이 있어 가끔 찾는다.

 

비록 사는 곳은 쪽방이지만, 이렇게 좋은 환경에 산다는 자랑질이다.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가 ‘문화역서울’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어떻게 왔느냐?“며 막았다.

”전시장에 전시 보러 왔지 뭐 하러 왔겠냐?”고 쏘아붙이며 들어갔다.

 

행색이 노숙인처럼 보인 모양인데, 노숙인은 전시 보면 안 되는가?

사람 차별하는 인간들 보면 간이 뒤집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공예기획전은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였.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간별로 달리 배치해 관람객이 편지의 주체이자 전시의 부분이 될 수 있도록 연출해 놓았더라.

 

7개의 주제 공간과 1개의 공예전으로 구성되었는데, 기성 작가 60명과 학생 29명이 참여한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찍은 사진이 많아 구체적인 리뷰는 천천히 올리기로 하고 이만 줄이겠다.

 

전시장을 나오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려 온 기분이었다.

길에 쓰러져 잠들거나, 구걸하지 않으면 술 마시는 노숙인이 곳곳에 널렸는데,

술로 사는 사람들이 편히 쉴 곳조차 없으니,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쪽방사는 빈민과 노숙인들의 가깝지만 먼 차이를 새삼 절감하며, 동자동 '완도식당'으로 갔다.

하루 한 끼만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무료식권 조차 노숙인은 받을 수 없으니, 뭔가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임백수씨와 젊은 친구 한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밥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술 안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씨가 나더러 하는 말이 아무리 얻어먹는 거지지만, 옷은 잘 입어야 한단다.

구질구질하게 다니면 반기는 곳이 없다는데, 마치 전시장에서 막는 걸 본 것 같았다.

그가 사는 방은 지저분해도 항상 옷은 말끔하게 차려입는 이유를 알겠더라.

 

임씨는 술 끊은 지 몇 개월이 되었으나, 도저히 사람구실을 할 수 없어 다시 마신다고 했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술친구와 어울릴 수 없어 외로워 못 살겠더라는 것이다.

당뇨가 심해 죽을 때 죽더라도 사람답게 살다 죽겠단다.

나는 살기 위해 밥을 먹고, 임씨는 죽기 위해 술을 마셨다.

 

허기진 배를 채워 쪽방으로 올라갔더니, 누군가 계단에 피를 토해 놓았다.

머지않아 또 한 사람 떠날 것 같다.

그래! 더러운 세상 오래 살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저승이 극락인데...

 

사진, 글 / 조문호

 

 

 

26일은 서울 전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밤잠을 설쳤다.

 

눈이 오면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순백의 세계도 장관이지만,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 밟는 소리가 정겨워서다.

 

눈 치울 일이나 길이 미끄러운 불편함이야 따르지만,

 눈이 오면 어린애처럼 마음 들 떠는 것은 늙어도 어쩔 수 없다.

 

어제 밤엔 늦잠이 들어 오전 열시 무렵에야 일어났다.

 

쪽방에 창문은 있지만 옆 건물과 붙어있어 햇볕은커녕 바깥 날씨조차 알 수 없다.

 오로지 담배연기 빠져 나가는 배출구 역할만 톡톡히 해 준다.

 

마음이 바빠 서둘러 나가보니, 솜털 같은 눈발이 휘날렸다.

 

골목엔 간간히 눈 치우는 주민이 보였으나,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눈이 내려 나처럼 신이 난 사람도 있었다,

 정재은씨를 골목에서 만났는데,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다들 추운 날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티브이 삼매경에 빠진다.

 

그러나 티브이는커녕,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노숙인이 걱정이다.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도를 내려가니, 계단 구석에 웅크려 울고있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 파지가 깔린 걸 보니 그 곳에서 밤을 지샌 것 같았다.

 

무슨 사연으로 가출했는지 모르지만, 추위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슬펐던 것 같다.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인들은 찬바람 피할 곳을 찾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선교단체에서 여러 동의 천막을 세워, 오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예배를 시작할 때는 몇 명 안 되던 인원이 40여명으로 불어났다.

 

한 아낙은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젊은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구원을 외쳐댔다.

 

예배를 마친 이들은 추위를 피해 '서울역희망지원센터'로 가거나, 지하 통로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역 지하도에 앉은 노숙인은 “평소에는 저녁 6시가 지나야 내려오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이 일찍 내려왔다”고 한다.

 

일부는 광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추위를 버티기도 했다.

따뜻한 커피와 떡을 나누어 준다니까, 어디서 나왔는지 금방 긴 줄이 형성되었다.

 

잠잠하던 텐트 안에서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텐트 지프를 열려고 손이 슬그머니 나왔는데,

반지를 낀 고운 손을 보니 여성 노숙인 같았다.

 

요즘 들어 여성 노숙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모든 생활이 남성에 비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성 노숙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노숙인의 삶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별도의 보호시설은 있지만, 그 곳에 가지 않는 이유는 술과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추운 고통을 감수해 가며 자유를 원하는 노숙인의 삶은 살얼음판처럼 위태롭다.

 

서울역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 거리가 아닌데다, 인사동의 눈 내린 풍경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인사동 거리는 눈 치우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술집들은 대부분 문이 잠겼고, 내린 눈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더러 한복을 입은 중국관광객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다들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남인사마당 입구에는 눈을 뒤집어 쓴 노점상 리어카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눈 덮인 설경을 찾아 가까운 탑골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 또한 서울역광장의 살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빵과 두유를 얻기 위해 선 줄이 탑골공원에서부터 담장을 끼고 길게 이어졌다.

 

그 곳은 노숙인보다 집에서 눈칫밥 먹는 노인들이 더 많다.

춥고 미끄러운 눈길을 헤쳐 나와 빵조각 하나 얻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노인들의 속울음이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곳곳에 오갈 곳 없는 가난한 자들의 서러움이 넘쳐 나는데,

아름다운 설경이나 찾아 나선 스스로의 작태가 부끄러웠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가난한 자의 눈물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가난의 서러움을 껴안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권에 눈이 어두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투사라기보다, 싸우다 죽겠다.

 

새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눈이 아니라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흰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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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 몇권을 배낭에 넣어 나갔다.

아직 못 챙겨 준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떤 전도사는 몸이 편치 않은 이에게 축도를 올렸고,

몇몇은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공원에 책 줄 사람은 남기씨 뿐이었다.

일부는 쪽방으로 찾아가 전해주었고, 서울역에선 지은이밖에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농담도 하지 않고 뭔가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책 날개에 적힌 약력 때문일까?

작업하러 쪽방에 들어 왔다고 생각했는지 친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염려해 여태껏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사실 빈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려면 책만 낼 것이 아니라

널리 알리기 위해 언론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편한 관계로 지내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쓸쓸한 가을 날씨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계절을 타는지 만사가 귀찮고 돌아다니기도 싫었다.

 

혼술은 청승맞아 정동지에게 전화 걸어 술 한잔 사 달라 했다.

둘이서 술 마시며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시름 달랬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새겼던 말도 곱씹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인식시켜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얼마나 계도에 보탬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힘들고 어렵다.

소주잔에 모든 시름과 가을까지 담아 마셔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에서 노숙자 코로나 감염이 확인되어 비상이 걸렸다.

지난 26일 서울역 노숙자 시설에서 종사자 2명과 노숙자 3명 등 5명의

코로나 감염이 확인된데 이어 용산역과 영등포역의 노숙자 감염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서울역광장의 노숙인 시설인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의 운영이 중단되었고

밀접접촉자인 종사자 24명이 입원 또는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문제는 다들 핸드폰이 없고 거처가 일정치 않아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이지요.

 

노숙자를 수용하는 다시서기 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많은 노숙인들이 거리로 내 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스한 채움터’를 비롯한 무료급식소의 밥 나눔도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다.

 

지난 27일 서울역광장에 갔더니, 다들 겁먹어 마스크는 잘 쓰고 있었다.

식권을 얻기 위해 길게 줄서 있었는데, 밥 얻어 먹기도 힘들어졌다.

노숙인 쉼터보다 거리노숙을 고집하는 최씨는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체념했다.

 

동자동 쪽방촌 풍경은 대조적으로 썰렁했다.

골목을 돌아 다녀도 유한수씨 등 몇 명 밖에 만나지 못했고,

공원에는 이대영씨를 비롯한 세 명이 시간 죽이고 있었다.

 

누군가 나누어 먹으라고 빵을 갖다 놓았으나 먹을 사람조차 없었다.

있는 사람이라도 챙겨 가면 좋을 텐데, 다들 욕심 부리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갖다놓아도 딴 사람을 배려해 한 두 개만 가져간다.

이젠 그놈의 코로나에 주눅 들어 다들 방안에서 티브이나 끼고 지내는 게 생활화 되었다.

 

쪽방촌 사람들은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지만, 오 갈 때 없는 노숙자가 문제다.

여지 것 노숙자들은 접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여겼는데,

방역에 구멍이 뚫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노숙자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빈부 격차가 큰, 잘 사는 나라일수록 더 많은 현실이다.

전 세계에 1억명이 넘는 노숙자가 있다는데,

이 수치가 정확하다면 인구 60명당 1명꼴이 노숙자인 셈이다.

 

빈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방세 낼 돈보다 먹을 것을 살 수밖에 없다.

노숙자들은 불규칙적인 식사에 의한 영양 결핍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

갖가지 요인에 의해 여러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건강과 안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재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이란 사치스런 말장난에 불과하다.

 

더구나 공공역사를 거점으로 신분증의 매매, 명의 도용, 위장결혼, 강제철거에 동원되는 등

노숙상태를 악용하는 자들도 많아 인권이 침해당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정해진 수급비를 받는 것은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

여기 저기 떠돌아 신청할 주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대개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다 노숙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부모에 의해 가난이 대물림 되었다는 말이다.

더러는 사업실패나 이혼으로 집나온 사람도 있으나,

절반 이상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내일은 날씨마저 영하20도라는데, 거리에서 어떻게 잘 수 있겠나?

신이 과연 계시다면 말씀 좀 해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광장 주변에 모여 있는 노숙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함께 어울려 놀아도 아무도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없다.

행인들이 노숙자들을 지렁이 보듯 피해 다니니, 코로나에 감염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밥 주는 사람이나 복지사들 뿐이다.

슬픈 일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전염병 유입을 막을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22일의 동자동 풍경은 몇몇 사람만 거리를 오갈 뿐 한산했다.

만물상 차량과 식료품 파는 차량이 골목골목 대기하고 있었지만, 찾는 손님은 없었다.

 

큰 길가에는 두 내외가 끌고 다니는 폐지 수집하는 삼륜차가 서 있었지만.

동자동 안쪽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쪽방촌에는 폐지 수거하는 분들이 많아 그들의 밥벌이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배려리라.

 

흔한 일이기는 하나, 누군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도 나 붙었다.

‘식도락’ 문에 고)옥남일씨 부고가 붙었는데, 한창 나이에 무슨 병으로 죽었을까?

장례 날자가 정해지지 않은 걸 보니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동자동 주변에는 대형 건물들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젊은 회사원들로 붐빈다.

주차장 옆 공터에는 항시 흡연족들로 넘쳐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어울려 담배를 피워도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담배연기를 싫어할까? 아니면 흡연족은 사람도 아닐까?

 

나 역시 담배를 피우지만, 흡연자의 공중도덕은 심각한 지경이다.

무심코 던진 담배공초가 바닥을 잔뜩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그 쓰레기를 쪽방 촌 노인들이 치운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요즘은 서울역광장에 중구 코로나 선별검사소가 생겨

그 곳에 모여 있던 노숙자들이 모두 쫓겨났다.

 

지하도나 서울역 인근 구석구석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다.

가난할수록 전염병에 의한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지만,

그중에서도 노숙자는 코로나의 최대 피해자다.

 

밥 주는 집이 문 닫는 곳이 많아 끼니 해결도 어렵지만,

적선하는 손길조차 그들은 피해 다닌다.

 

어저께는 페친인 강명자씨로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노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선이라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막상 나누어주려니 누구를 선정할 것이며, 주는 방법도 걱정이다.

그들에겐 돈이 제일 필요하지만,

알콜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온 몸이 쏙 들어가는 침낭이 제일 필요하지만,

새 침낭을 주면 남대문시장에 가져가 싼값에 팔아버리니 그게 문제다.

 

일단 만나 그들의 의중부터 살펴보아야겠는데.

사람 만나는 일이 잦은 내가 전염병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전지역에 있는 그들에게 전염병을 감염시켜 줄 초상 치루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서울역광장의 선별검사소에 가서 코로나 검진부터 받았다.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으나, 대부분 젊은이 뿐이었다.

 

노숙자나 쪽방 촌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노숙자들은 그렇다 치고, 대면을 기피하는 쪽방촌 주민보다

상대적으로 외부접촉이 잦은 젊은이들의 검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검사결과가 언제 통보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기다려보자.

 

사진, 글 / 조문호

 

돈이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돈 앞에는 혈육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세상이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 생각한다.

 

강남에 사는 부자가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쪽방 사는 빈민들이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돈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복권에 당첨되어 흥청망청 쓰다 쪽박 차는 경우도 보았고,

소박하게 살던 사람이 개발로 졸부가 되어 돈 장난으로 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돈이 권력으로 바뀌어 망가지는 명사도 숱하게 보아왔다.

 

인사동에서 건물을 몇 채나 가진 부자가 돈 밖에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관광객이 사라져 그만 두었지만, 싸구려 잡화상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이 많은 아내와 공부해야 할 자식까지 동원해 장사에 매달렸다.

살날도 많지 않은데, 그 돈이 아까워 어떻게 죽을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지만, 대개의 쪽방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배짱은 편하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이전에는 돈에 쫒겨 허둥댔지만,

세상에서 밀려나 욕심조차 놓아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며칠 전 동자동 새꿈공원으로 모처럼 동네 마실을 갔다.

가을 흔적만 뒹구는 공원에는 사람들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에서는 누군가 빵을 한 상자 가져와 여럿이 둘러 서 나누어 먹었다.

대개 없는 사람들이 정이 많아, 뭔가 생기면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한 쪽 구석에는 나와 같은 건물 사는 서씨 혼자 앉아 소주를 깠다.

소주 한 병 사들고 가서 술 친구가 되었다.

서씨는 평소에 말이 없어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아, 나도 딱 할 말은 없었다.

소주 석 잔 마시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만 흘렀다.

 

심심해 내가 먼저 영양가도 없는 말을 꺼냈다.

“서형! 한 가지 물어 봅시다”, “뭔데요?”

‘만약에, 서형이 복권에 걸려 일억이 생긴다면 뭐부터 하고 싶소?‘

 

한 참을 머뭇거리다 하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가 없네”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더니, 1억을 100명에게 주면 얼마지?“

내가 ‘백만원 아니요’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단다.

 

"밤중에 서울역 가서 노숙하는 사람들 자리에 백 만원씩 두고 싶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돈을 보면 얼마나 좋겠나?.

어떤 사람은 쪽방에 들어와 같이 살 수도 있고, 밥도 굶지 않고...”

 

정말 귀 똥 찬 생각이라, 서씨가 갑자기 달리 보였다.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생각이었다.

돈 맛을 알아 돈에 중독된 사람은 절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다.

서씨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복권 한 장 사보자!

그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하여...

 

사진, 글 / 조문호

 

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저질러 놓은 일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정선은 물론 동자동과 인사동마저 물리치고 싶지만

무슨 악연이 있는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기가면 저기 생각, 저기가면 여기생각, 숨겨둔 첩 처럼 뒤가 밟힌다.

 

해가 서울역 머리 위로 기울며,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요즘은 전시장이나 사람 모이는 곳을 잘 가지 않으니

정선과 녹번동, 그리고 동자동만 다람쥐 채 바퀴처럼 돈다.

하는 일도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러다 멍청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만사가 귀찮아지는 걸 보니 아마 갈 때가 된것 같다.

 

내일 새벽일찍 정선 떠나려면 녹번동으로 가야했다.

가기 전에 인사동서 소주나 한 잔할까?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약속 없는 혼 술이 싫어서다.

 

지하도에는 요구르트로 허기 메우던 노숙자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휴게소에는 밥집 문 열기만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지루함이 엿 보인다.

나도 밥 얻어먹기 위해 녹번동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래도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복은 많은 놈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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