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은 얼마나 추웠는지 방안에 한기가 돌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려 잤더니, 아침에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몇 년 전에도 그런 증상이 생겨 치료받은 적이 있는데, 또 도진 것 같았다.

방바닥에 오래 앉아 생긴 병이라 겁이 덜컥 났다.

그 당시 고맙게도 안애경씨가 쪽 침대를 책상 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준적도 있었다.

방이 코 구멍 만해 책상 앞에 앉으면 요지부동이지만, 그래도 한결 나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방문 앞에 없던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안 그래도 배가고파 라면 끓여 먹으려고 일어났는데,

고맙게도 누가 소리도 없이 이렇게 살짝 갖다 놓았을까?

아마 산타 할아버지가 코로나 격리에 걸려 늦게 오신 것 같았다.

밥에 온기가 남은 걸 보니, 가신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허리는 펴지 못하지만, 산타 덕분에 거룩한 아침식사를 했다.

그러나 허리 아프다고 누워 있을 수만 없었다.

움직여야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4층에서 완전 똥 싼 폼으로 내려왔는데,

공원에는 날씨가 추워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 공터에 노숙하던 병학이는 사라진지 오래고,

그 자리에 쓰레기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울역광장의 선별검사소에 코로나 검사 받으러 갔다.

며칠 전에 가보니, 확진자가 생겼는지 검사 받은 사람도

시일이 지나면 다시 받아야 다시서기 쉼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나 자신도 불안했다. 며칠 전 노숙자들과 인터뷰한다고

마스크 내린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씻고 벗고 하나 뿐인 손녀 오겠다는 전화도 받지 않겠는가?

 

서울역광장 선별검사소에는 날씨가 추워 그런지 검사받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지난번에는 줄 서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간단히 해결했다.

면봉으로 코구멍을 쑤셔대면 기분은 더럽지만, 어쩌겠나?

나도 살아야하지만, 민폐 끼쳐서야 되겠는가?

 

다시서기 쉼터에 들어 가보니 노숙자보다 도우미가 더 많았다.

한 쪽 구석에는 네 사람이 누워 자고, 의자에는 한 사람이 축 쳐져 자고 있었다.

그래도 먹고 살라고 컵라면 몇 개 담긴 봉지를 발로 감싸고 자더라.

간밤의 매서운 추위에 어찌 잠들 수 있었겠는가?

 

요즘은 티브이도 안 틀어주고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온기만 준다.

모이게 할 수 없으니, 오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서기 건물 벽에 누군가 웅크려 자고 있었다.

온몸을 똘똘 말아 사람인지 짐인지 헷갈렸는데, 햇살도 그를 비켜가고 있었다.

단잠의 포근함도 결코 오래 주지 않았다.

 

한쪽 벽에 웅크려 선 노숙자에게 말 걸었다.

담뱃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 줄테니, 당신 살아온 이바구 좀 해줄라요?”

얼씨구나 달라붙었다. 

이 동네서 인터뷰라는 말을 하면 손 내 젖는 사람이 많다.

말 못할 사연에 숨어 다니거나 아니면 내가 기레기나 사기꾼으로 보이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노숙하는 김씨는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랐단다.

꿈이나 희망은 물론 좆도 씹도 모르고, 짐승도 그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강원도 골짜기 고아원인지 수용소인지 헷갈리는 곳에서

아무것도 배우지도 못하고 매만 맞고 자랐단다.

 

열아홉 살에 도망쳐 나와 30여년을 떠돈 삶은 이빨 빠진 들개의 삶이었다.

배도 탄 덕에 주소지는 부산으로 되어 있어나

가는 곳이 그의 집이고 주소고 빌어먹는 자리였다.

세상에서 더럽다고 피하는 일들만 골라 한 것 같았다.

한 때는 목포 염전에서 죽도록 두들겨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난 적도 있단다.

 

요즘은 어려운 기 뭐요?’ 라고 물었더니, 자기 입은 옷을 가르켰다.

얼마 전 자선단체에서 노숙인들에게 두툼한 외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포장을 멋지게 해 놓아 거지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멀쩡한 놈에게 누가 적선하고 싶겠는가?

옷 속에 감추어 둔 암행어사 패말 같은 걸 보여주는데, 잘 아는 팻말이었다.

마스크에 가려 몰랐는데, 그 고아가 감투가 된 팻말에 알아보았다.

강명자표 인터뷰 사례비인 신사임당 한 장을 주었더니, 몸 깊이 감추기 바빴다.

 

그런데, 돌아오다 귀가 막힌 걸 보았다.

서울역 광장 돌아가는 코너에다 앉아 쉬라고 돌 턱을 만들어 놓았는데,

앉지 말라고 그 위에 강력본드 같은 것으로  돌맹이를 짖 이겨 놓았다.

그곳에 노숙인들이 앉아 있으면 그 옆 가게들이 장사 되겠는가?

저렇게 악착같이 돈 벌려고 못된 짓도 마다않는 세상에

그렇게 막 살고도 살아남은 게 용타싶다.

 

지하도를 내려가다 컵라면 하나만 사달라는 이씨를 만났다.

밥 사먹을 돈을 주겠다며 근황부터 물어 보았다.

바닥에 깔고 잘라니까 누가 박스를 가져가 막막하단다.

거리를 떠돈 지는 삼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셋방 살 때도 별 다를 바 없었단다.

불장난에 잘 못 꼬여 인생 망친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다.

그가 인생 막장을 걷게 된 천형의 죄는 바로 게으름이었다.

환갑이 가깝도록 여자 한번 품어보지 못했다는 말도

결국 게을러서 용쓰기 싫었던 것 같았다.

 

인생 막장의 김용환, 이정희 두 전사의 이름을 여기 새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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