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자도 똑 같은 사람이다.

그들도 눈 오면 나중에 잘 걱정은 둘째 문제고 다들 좋아한다.

 

지난 12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말하고 싶다’전 설치하는 날이었다.

출품작을 챙겨들고 서둘러 나갔는데, 인사동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출품 사진만 관장께 전해주고 강아지처럼 쪼르륵 내려갔다.

눈 치울 일이나 미끄러운 것은 나중 문제고,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날씨가 포근해 내리는 쪽쪽 녹아 내렸으나,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갑자기 노숙자들이 생각나 서울역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눈이 녹아 질퍽한 자리에 종이 깔고 술 마시는 패거리도 있고,

어슬렁거리는 등 평소의 풍경과 별 다를 바 없으나

다들 쌍판데기에 웃음이 만연했다.

 

당장 술 마실 자리조차 불편하고, 얼어붙어 잘 걱정이랑 나중 문제였다.

서울역에 온지 10년차라는 김계열은 온갖 똥 폼 다 잡고 광장을 활보하고 다녔다.

오늘 인터뷰 대상을 계열이로 낙점했다.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하자며 꼬셨는데,

눈 내리는 질퍽한 자리에 앉아 마시기가 거시기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물주 나타난 것을 눈치 챘는지 곽학봉이가 따라 붙었고,

지난 번 인터뷰 사례금 받았던 최완구도 왔지만,

눈 오는 날 술 한잔하려는 걸 말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치킨뱅이'라는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계열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에서 노숙자라며 들어가는 것을 제지한 것이다.

주인공이 빠져서도 안 되지만, 사람 차별하는 데 부아가 치밀었다.

주문 하라지만 다시는 안 온다며 나와 버렸다.

싸가지 없는 집에서 마시면 마음이 편하겠는가?

 

요즘 노숙자들이 구호물품으로 방한복을 얻어 걸친 데다

마스크까지 써 누가 노숙잔지 잘 모른다.

그런데, 계열이는 눈 오는 날 폼 잡는다고

가방 속에 숨겨 둔 허럼한 롱코트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곳에선 코트를 벗어 들고 갔으나, 계열이만 못 들어가게 막았다.

얻어먹으려면 옷이라도 잘 입어야 한다는 옛말이 딱 맞았다.

 

차라리 평소대로 가게에서 소주 사와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길거리 서서 소주 마시니, 다리가 아팠다.

우리 동네 아는 식당에서 한 잔 더 하려고 지하도를 건너 왔는데,

계열이와 완구는 어디로 새버리고 학봉이만 따라왔다.

 

중국집에 들어가 잡채하나 시켜놓고 소주 두병 깠는데,

생각치도 못한 학봉이가 인터뷰 상대로 바뀌어, 나는 그를 묻고

그는 나를 묻는 쌍방 인터뷰가 되어 이야기가 길어졌다.

 

환갑을 한해 남긴 학봉이는 마누라와 이혼하고 떠돈 지가 오 년째란다.

지금은 주거급여를 받아 동자동 여인숙에서 지낸다기에,

왜 쪽방에 안 살고 오만원이나 더 들어가는 여인숙에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쪽방은 아침에 화장실 가려고 줄서는 게 지겨워서란다.

 

한양대를 중퇴하여 미8군에서 통역을 하며 가정을 꾸려갔는데,

아내가 바람 피웠다며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판사가 이혼하려는 이유를 물었더니, 신뢰할 수 없어서란다.

아내는 이혼하고 외국으로 이민 가 버렸는데,

이젠 그 미움이 그리움으로 변한 것 같았다.

 

중국집 창 너머는 백설이 휘날렸다.

밖에 나가 학봉이 기념사진도 찍고, 미끄럽지만 동자동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다시 중국집으로 돌아오니 학봉이가 훌쩍이고 있었다.

눈 내리는 걸 보니 옛날 생각난다는 것이다.

 

전화 좀 빌려 달라더니, 어딘가 전화를 걸어 눈물이 바가지다.

 

하나 남은 친구인 것 같은데, 운다고 떠난 임이 올소냐?

요즘 유행어처럼 “있을 때 잘해”란 말을 사내들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이젠 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심문의 답은 동자동 쪽방에 들어 온지도 그와 같이 5년째다.

쪽방에 들어 온 후부터 돈 걱정 없이 내 하고 싶은 일 하며 산다고 했다.

 

사진 찍어 뭐 할 것이냐기에 우리 살아 온 책 만들 것이라 했다.

출판사에 원고 넘겨 몇 개월 후에 책 나올 것이라며 떠 벌렸다.

언제까지 동자동에 살 것이냐고 묻기에 다들 떠날 때 까지라 했다.

 

책 나오면 술 한 잔하기에, 서울역광장에서 잔치 벌일 작정도 했다.

광장에서 현수막 전시 했으면 아주 좋겠으나 허락해 줄리 없고,

‘서울역 역사관’에 기획안 넣어 당사자들이 볼 수 있는 전시를 열고 싶다.

 

이젠 술이 올라 쪽방에 올라가야 했다. 4층까지 올라가려면 힘들어서다.

학봉이는 한 잔 더 하고 가겠다기에 주머니 털어주고 먼저 일어섰다.

미끄러운 눈길이라 발에 신경을 많이 써 그런지, 발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부랑자는 타고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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