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노숙인을 돕고 싶다며 백만원을 보내 준 강명자씨의 뜻에 따라

인터뷰 사례비로 5만원씩 드릴려고, 어제 밤에 이어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다.

 

가랑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포근한 날씨 덕에 금세 녹아버렸다.

오 갈 곳 없는 부랑자로서는 아름다운 눈도 공포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역 선별검사소 주변에는 코로나 검사 받으러 온 사람들이 길게 줄지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터줏대감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 쉼터인 ‘다시서기’에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했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으로 통보받은 자에 한해 출입이 가능하단다,

지난 22일자로 통보받은 음성 확인 메시지를 보여주었더니,

검사 받은 지가 며칠 지나 다시 검사 받아야 한단다.

 

그 사이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그런 엄격한 통제라면 차라리 문 닫는 것이 편하다.

아니나 다를까 쉼터 안을 들여다보니 노숙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항이라면 노숙인 합숙소나 밥 나눔도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다.

일 년 넘게 끌어 온 코로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잔혹했다.

밥 먹을 곳도, 추위 피할 곳도 없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지하도로 내려가니, 노숙인 한 사람이 난간에 떨어질 듯 누워 있었다.

단잠을 깨워 인터뷰를 청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승호씨는 30세 무렵 집을 나와 이제 환갑이 지났으니, 살아 온 절반을 거리에서 보냈다고 했다.

아무 간섭 받기 싫어하는 자신의 업보지만, 몸은 성한 곳이 없단다.

 

이어 집 나온 지가 3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김상순씨를 비롯하여

정정화, 김도식, 인태권씨를 차례대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왔는지 노숙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마 돈 받은 노숙인으로 부터 정보가 새 나간 것 같았다.

인터뷰 인원수도 많지 않지만, 줄 세워 줄 일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5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하지 않았던가?

 

서둘러 끝내고 자리를 떴으나, 여러 명의 노숙인이 따라붙었다.

돈이 무섭긴 무서운 존재였다.

하기야! 돈 준다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꾸어 생각하니 내가 그들에게 갑 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갑 질도 아무나 할 짓은 아니더라.

 

서부역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 안효덕, 김기웅, 최완구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집에서 쫓겨 나온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분도 절반이 넘었는데,

신분확인이 안되니 관청에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돈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퍼져 서울역 부근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왔는데, 동자동 입구에 세 사람의 노숙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아는 노숙자 이용삼씨 따라 김용철, 박동렬씨가 찾아 온 것이다.

김용철씨는 온 종일 굶어 배가 고파 죽겠다며,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아는 노숙자는 제외하기로 했으나,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세 사람에게 간단하게 물어보고 사례비를 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나 했다.

 

다들 몰래 만나야 했으나, 한 낯이라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데,

받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속 상할까?

더 이상 소문 번지면 나다니기조차 힘들 것 같아,

이용삼씨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쪽방에 올라와 돈 준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열세 명에게 주어졌고,

돈 봉투는 일곱 개가 남아 있었다.

 

돈을 그냥 받지 말고 수고비로 당당히 받으라고 인터뷰를 시작했으나,

서두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사실상,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부랑자의 삶을 취재해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남은 일곱 분의 인터뷰 사례비 전달은 서둘지 않기로 했다.

더 어려운 노숙인을 찾아 한 분 한 분 진솔한 속내를 들어보려 한다.

당사자의 고통스러운 삶과 더불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이다.

 

새해에는 밑바닥 인생 일곱 분의 이야기를 만나는 대로 소개하련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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