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 : 150x180mm / 내지면수 : 192 

정가 : 18,000원

강310-망치반가사유 Dismiss the President 75 X 53cm Digital print 2020

 

 

예술가 박건의 40여 년 간에 걸친 작업과 작품을 수록한

한국현대미술선44 ‘박 건’이 지날 달 ‘헥사곤‘에서 출판되었다.

 

며칠 전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최경태 전시회에 갔다가

우연히 박건씨를 만나 새로 나온 그의 작품집을 선물 받은 것이다.

 

작품집에는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동안의 작업과 작품 160여점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중간 중간에 작가노트를 비롯하여 공선옥, 김진하, 김용익, 류병학, 성완경, 양정애,

원동석, 장석원, 전준엽, 정정엽, 조혜령, 하일지, 홍성담씨 등 많은 분들의 비평이 실려 있어

작품과 작가의 예술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조그만 책자지만, 무겁고 부담스러운 대형도록보다 훨씬 알차게 편집되었더라.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책 보관할 곳이 없어 침대 밑을 서고로 사용하는데,

일단 그 밑에 들어가면 폐품으로 끌려 나가기 십상이다.

대개 사진집이나 도록이 그에 해당되는데, 본인으로서야 소중할지 모르지만

책을 보고 난 입장에서는 무거운 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리즈로 출판되는 눈빛사진가선이나 ‘한국현대미술선 등

작은 판형의 책이 아니면, 집에 들이지도 않는다.

다들 얼마나 돈이 많고 가오가 중요한지 모르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난, 박건씨의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판화와,

2017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공산품 아트 밖에 아는 것이 없다.

작가도 한 때 전교조 활동으로 작업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나 역시 2000년대는 강원도 정선에서 두메산골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세상과 등 돌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건씨의 작품집을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감했다.

내가 몰랐던 작품이 더 많았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그림도 있었다.

'까마귀’, ‘부엉이’, ‘빈방’, ‘탁족도’, ‘또 다른 나’, 얼굴 없는 나‘ 등

푸른 색깔이 주조를 이룬 2010년대 그림에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빈방 An empty room 16x23cm Acrylic on canvas 1996

 

가랑이를 쩍 벌린 여인의 도발적인 자세나 푸른빛에 드리운 음산한 분위기에 푹 빠져 들었다.

그친 터치로 형상화한 여체가 마치 유령처럼 다가왔는데, 유령이 왜 친숙하게 느껴질까?

작가의 사유적 깊이나 미적 감성이 압권 이었다.

 

박건씨는 80년대부터 ‘꽝’, ‘코카콜라’, ‘강’ 등 미니어처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바 있으나

2017년부터 공산품 아트란 새로운 깃발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복귀했다.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자유로움과 왕성한 창작력이 바탕 되어 기발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흔하고 값싼 사물에 작가의 혼을 불어넣어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 Mount Baekdu Crow 120x360cm Acrylic on blackboard 2007

부엉이 Owl 10X 20X 2,5cm Acrylic on paint box 2010

 

 

한 예로 부러진 망치 위에 해골 미니어처를 앉혀 생각에 잠기게 한 ‘망치반가사유상’이 있다.

부러진 망치로 ‘부러진 권력’을 상징했는데,

이 하잘 것 없는 기물로 권력의 무상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무아트’ 김진하씨는 박건의 ‘비상업적 상업성’ 복제 멀티플 작품의 유(소)통 실험이라며,

1980년대 이래로 작업방식과 문법뿐만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제도적 틀로부터 탈주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장르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태도는

서민과는 거리가 먼 귀족적 예술에 똥침을 날렸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란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손바닥만 한 작품으로 요지경 세상을 펼쳐 보이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에 대한 기준과 가치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인 공산품아트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을

요리 조리 변형 시켜 동시대에 걸맞은 시각언어로 이끌어낸다.

버려지거나 값싼 재료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버림받거나 고장 난 물건들을 보면 연민이 든다.

나도 언젠가 그랬고 앞으로 그렇게 될 동질감을 느낀다.

쓸모 잃은 동시대 재료들을 서로 결합시키면서 일상과 시대의 정서를 끌어내거나 밀어 넣는 재미가 좋다.

요즘 공산품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값이 쌀 뿐 아니라 정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이런 편리한 소비가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일상과 사랑, 자본과 노동, 문명과 역사는 나의 예술에서 외면하기 힘든 주제다.

공산품들이 그런 말을 작심하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거 같다.”고 작업노트에 밝히기도 했다.

 

‘강’은 조각이라기보다 이야기나 만화에 더 가깝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의 부러진 목과 핏빛을 이룬 강의 폭력적인 내용이 달콤한 음악적 선율에 가려졌다.

 

 

화가 전준엽씨는 작가를 ‘금지된 장난의 연출가’라 말할 정도로

사회적 내용을 연극 무대 꾸미듯 만들어 간다.

하나의 모형도를 제시하는 장면 연출솜씨가 탁월하다고 말했다.

미니멀한 작업으로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끌어내거나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질탕한 놀이까지 담아내는 거침없고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박건씨는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81년에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학교도 그곳의 동아대학교 미술학과를 나와 성암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직하였다.

대학 재직시절에 두 차례의 발표전을 가졌을 만큼 작가활동은 일찍부터 해 왔다.

전시장에서 작가 자신의 몸으로 어떤 사건이나 개념을 직접 연출하여 보여 주는

이른바 ‘행위미술’이라고 부르는 계열의 작업이었다.

 

일상에서 예술 만들기가 생활화된 박 건씨는 못하는 게 없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동안 작가, 교사, 전시기획, 출판 미술기획, 시민기자, 아트프린트제작, 퍼포머 등

다양한 직업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예술도 회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판화와 조각, 사진, 문학, 행위예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명과 욕망, 일상과 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81년 이후 망가진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 마네킹의 머리, 플라스틱으로 된 미니어쳐 병정등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처리, 재결합하여 특이한 상황을 연출해 보여주는 ‘오브제’류의 작업을 해왔다.

81년의 ‘오브제, 12인의 현장‘전(부산)을 비롯하여 , 82년의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서울),

83년의 ’인간‘전, ’젊은 의식’전, ‘시대정신’전, ‘잡음, 혼선, 소란‘전, ’횡단‘전(이상 모두 서울) 등

여러 그룹전에서 발표된 것들이 이에 속한다.

 

불심검문과 압수수색이 수시로 벌어지던 암울한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소지품검사’도 눈길을 끈다.

 

 

기질의 일관성, 작업과정이나 행위의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특성, 결정적 사건의 연출, 주제의 현실성 등은

앞서 열거한 여러 그룹전의 작가들(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그룹전인 ‘시대정신’, ‘젊은 의식’,

‘횡단’의 작가들) 속에서도 특히 그의 작업은 눈길을 끄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1984년 성완경씨의 비평 중에 작가를 소개한 글이다.)

 

책머리에 쓴 박건씨의 헌사에서 힘들었던 성장 환경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책을 굴곡진 시대를 피난민으로, 독립된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가신

어머니(임민희 1933-1991), 이념 전쟁의 후유증으로 옥살이를 하고,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다 세상과 일찍 결별하신 아버지 (박영기 1928-1970)

영전에 바친다.”고 썼다.

 

글 / 조문호

 

행위-페트롤카 Patrol car 45x 45x 40cm Mixed media 1982

박건의 입체작품은 이야기구성을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 대한 감정이나 비판 정신이 강하다.

1985년 한강미술관의 3인의 시선에서 보여 준 박건의 ‘구토’

긁기80-2 Scratch80-2 53x45cm Oil on canvas 1980

79년 부마항쟁 때 남포동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어 당한 고문의 고통을 ‘긁기’ 연작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이 작업은 독제정권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단색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한다.

 

출판사로 책을 주문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forms.gle/8dj5YLLZ4oJzAXoZA

작가 없는 ‘최경태전’이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술독에 빠진 작가를 위해 주변 분들이 마련한 전시다.

 

전시가 열리는 지난 2일 정영신씨와 함께 전시장에 들렸다.

 김진하관장과 박 건화백을 만났는데,

술에 중독되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단다.

오로지 막걸리로 연명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최경태씨를 마지막 본 것은 문영태 화백 유작 촬영하러 간 강화에서다.

그 때 술집에서 본 후 만나지 못했으니, 4년은 족히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붓 대신 술과 놀았으니, 그림이나 그릴 수 있었겠나?

 

전시된 작품을 돌아보니, 초기의 민중계열 판화작품에서부터

여고생 시리즈와 인형 등 많지 않지만 골고루 걸렸다.

마치 십 구금을 뜻하듯 열아홉 점이 걸려 있었다.

 

최경태의 여고생 시리즈는 아이들이 처한 성문화를 현실 비판적 시각에서 그린 그림이다.

성기노출이 사람에 따라 불편할지 모르지만, 음란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왜 사람들이 성기 노츨에 색안경을 끼고 과민반응 하는지 모르겠다.

안 보이는 곳에서는 더 추잡한 짓을 하는 그 위선에 침을 뱉고 싶다.

 

아직까지 작품을 예술이냐? 음란물이냐?로 따지는 세태가 더 슬픈 것이다.

까발리는 최경태의 작품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여고생들이 담배를 꼬나 문 반항적인 포즈도 그렇지만,

스스럼없이 까발리고 앉은 자세가 기존의 도덕적 잣대를 분질러버린 것이다.

 

최경태는 한 때 민중미술가로서 권력을 비판한 위치에도 있었다.

그러나 여고생 연작에서 비윤리적인 변태로 취급 받았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발가벗겨 세상에 내 놓아 비난과 멸시를 받았지만,

성에 관한 집단적 위선과 기만을 들추어냈다.

고발에 따른 법정투쟁, 작품소각과 벌금, 반항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고행의 연속이었다.

 

최경태가 인형을 통해서 말하려는 것도 바로 욕망의 문제였다.

최경태 그림에 등장하는 인형이나 여고생은 자신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그런 문제작가가 알콜 중독자가 되어 나락에 떨어져 있으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술이 취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최경태 작품은 소장가치가 높다.

부디 재기를 바라며, 많은 분들의 관람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 전시는 12월 8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글은 박 건씨가 올린 글을 옮겼다.

 

송용민 작가가 강화에서 작품을 실어오고

김진하 관장이 1시간도 안되어 뚝딱 작품을 배치하고 조명을 비추자 준비는 끝났다

 

모두 19점을 걸었다

유화는 2000년 전후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

목판화 3점은 1990년 초 30년 전 작품으로 유리액자 속으로 곰팡이가 슬었다

고분고분한 작품들이 피난 나온 느낌

 

전날 송작가가 최경태 작업실에 갔다

보일러 설정 온도를 보니 어이상실 8도

혈액순환이 안 되어 다리가 퉁퉁부었단다

급히 연탄난로를 정비하고 불을 지폈다

그제서야 몸이 녹기 시작하더란다

 

돌아버릴 일은 또 있다

집 안 화장실이 지척인 데 물내리기 아까워

소파 근처 깡통에다 오줌을 잘잘잘 싸더란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붓더란다.

창 밖에는 버린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고..

 

예전에 기초생활수급신청으로 하려고

작가가 스스로 마을 민원실로 찾아가 접수를 시키려 했단다

어르신 한 가지가 걸려서 안돼요..

경차는 되는 데 300만원도 안 되는 코란도 중고차량 탓에 딱지를 맞았단다

여러 가지로 딱하다..

 

5년전 인사동 '인사아트;에서 열린 '7인의 사무라이전' 개막식에 참여한 최경태와 마문호씨

 

 

최경태

경태가 사라지고 있다

모두 떠나간다

배도 끊긴 섬이 되었다

청소도 안하고 먼지도 쌓였다

쌓이고 쌓이고 무덤처럼 찌들었다

씻지도 벗지도 빨지도 않는다 안한다 할수없다

술을 마셔야 잠들고 자야 술을 마실 수 있다

꿈 아니면 술이다

3년 반도 넘었다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되었다

자존감은 살아있다

부끄러워 홀로 마신다

잔소리가 싫고 짜증나고 신경질이다

폰 전원도 꺼버렸다

죽어 백골이 되고 있는 지 알 길이 없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면 부시시 문을 연다

다행인지 겁은 살아있다

소주는 안먹고 강화도생막걸리만 마신다

죽을 용기도 없고 죽는게 무섭고 두렵다

밖에 안나간다

사람 안만난다

모두 틀렸고 술만 옳다

 

보지를 그리기 때문일까

정치보지 경제보지 원조보지 예술문화보지

보지를 그리면 행복하다 기쁘다 가엾다 밉다

보지가 화엄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전쟁과 평화도 그 속에 있다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다

따스한 양수에 잠기고 싶다

보지를 그리고 싶은 데 보지로는 안된다

보지가 팔리다가 더 이상 안 팔린다

자지도 그려 보니 조금 팔렸다

일어서지 못하는 자지다

더는 못그렸다

이제 안그린다

못 그린다

다른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술만 마시고 잠들고 사라져간다

사라지는 경태가 최경태다

최경태는 최경태를 그린다

 

최경태의 '최경태'전

2020. 12. 2 - 12. 8 / 나무아트

기획, 후원 : 송용민, 나무아트

 

'말하고 싶다' 온라인 전시 동영상 버전입니다.

아래 유튜브 주소를 클릭하면 됩니다

 

youtu.be/d88MiuZ3hoY

 

 

말하고싶다 2020 온라인 전시회를 오픈합니다.

 

-전시 서문-

 

모든 그림은 말을 한다. 나 예쁘죠? 나 아름답죠? 나 새롭죠? 나 놀랍죠? 같이 생각해 보지 않을 래요?......

그러나 다른 말도 있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발견. 현실에 대한 아픔과 분노....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한 편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예술의 전당 개관전 때 일이다 당시 안기부가 이러 이러한 작품을 빼라고 검열을 한데 대항해

당시 윤범모 관장이 사표를 던진 적이 있다.

지금은 안기부가 하던 검열을 일부 언론이 하고 있고 야당이 거들고 있다.

 

사회의 적폐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정치적이라고 몰아가는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불합리한 검열로 포기할 수 없다.

비록 하루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재동-

 

참여작가

고경일, 박건, 박영균, 박재동, 성완경, 아트만두, 이윤엽,

이인철, 이하, 조문호, 주홍, 하일지, 홍성담, 레오다브

 

<말하고싶다> 온라인전을 하기까지

 

예술의전당 대관지원사업에 응모하면 어떨까?
성완경, 박재동, 박불똥이 이를 수락하고 함께할 작가를 찾았다. 대체로 들판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모였다. 사진, 만화, 판화, 벽화, 회화, 입체.. 분야도 다채롭다. 예술의전당과 같은 온실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각자 명분을 찾아 감과 촉각을 세웠다. 말은 안해도 추석선물 같은 만남으로, 빈 집 '스쾃'하자는 심보로, 성완경에 대한 오마주..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여건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열흘 전시기간에 설치, 철수일 빼고, 개천절, 휴관일 빼면 실제 전시할 수 있는 날은 고작 엿 새? 게다가 공간만 무료일 뿐 그 밖에 비용은 모두 작가 부담 아닌가.
특히, 이번 전시에 애정과 열정을 보인 성완경 비평가가 자신의 노트북 속 사진 수십만장을 정비하여 기습사진을 선 보인다. 가짜 미투로 전 인생을 부정 당하는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 손바닥아트를 부활시키는 박재동도 말하고 싶다. 교보빌딩 외벽 전면에 독립운동가 초상을 보여준 레오다브가 젊은 작가로 합류하고, 독보적이고 강력한 시사캐리커처를 보여주고 있는 아트만두, 저 마다 삶의 현장에서 거침없이 표출 해 온 작가들의 게릴라 전시인 셈이다.

장마 끝에 불은 저수지에서 '번개' 치고, 각자 무지개를 펼치고 싶었을거다. 8월25일 단톡방이 생기고 논의가 활발히 펼쳐졌다. 8월29일 인사동 '낭만'에서 첫모임을 갖고 전시 제목을 논의했다. 참석못한 작가는 카톡으로 참여했다. 여러 제안이 쏟아졌다.

박재동의 <말하고싶다>가 다수의견 전시명으로 뽑혔다.

그런데 난관은 그 전부터 부딪히고 우여곡절과 청룡열차를 탓다. 첫 난관은 신청서류 접수였다. 십 여명의 작가 정보와 포토폴리오를 모아 기획서를 작성하고 예술의전당에 접수하는 문제였다. 다행이 오미진 기획이 합류하면서 가까스로 마감전에 넣고, 다행이 8월25일 전시 지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전제조건이 따라 붙었다. 감염병방역조치로 미술관운영중단이 계속되는 상황이었고 무산될 수도 있었다.

변수도 터졌다. 전시가 확정되자 아트만두는 전시 홍보를 위해 자신의 연재 시사캐리커처를 활용한 웹포스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내 걸었다. 이어 조국 전 법무장관이 이 웹포스터를 자신의 페북에 연결하여 붙였다. 조국의 페북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조선일보는 웹포스터에 실린 만평이미지 해설기사를 내 보냈다. 짠 일처럼 이 날 국회 문예위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소속의원은 예술의전당을 대상으로 전시의 부당함을 소명하라는 질의를 한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승인된 전시를 ‘정치적 중립’을 근거로 전시를 못하게 압박하는 꼴이 되었다. 이어 경향신문(박재동 작가에 대한 가짜미투를 강진구 소속기자의 심층기사를 언론사와 다른 관점에서 보도 했다는 이유로 운영진에 의해 징계조치를 당한 바 있다)과 여성신문(박원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한 표현물-시사캐리커처에 대해서)도 <말하고싶다>전시를 ‘2차가해’로 몰아붙이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이유로 예술의전당측은 전시계약자인 박재동 작가에게 협의를 요청해 왔다.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 와중에 예술의전당에서 코로나로 인한 방역지침이 훅 들어왔다. 10월6,7,8일3일만 전시할 수 있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를 할 것인지 말 것인 지를 알려줄 것을 요청해 온 것이다. 이것은 하지말라는 말 아닌가. 우리는 이 지침이 국회 문예위의 압박으로 인한 예술의전당 측의 일방적 조치인 지, 정부 방역지침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인지 헷갈렸다.

전례가 떠 올랐다 ‘초창기 예술의 전당 전시에 관해 당시 안기부가 검열을 한데 대항해 관장이 사표를 던진 적이 있다. 지금은 안기부가 하던 검열을 일부 언론과 야당이 거들고 있다. 사회의 적폐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정치적이라고 몰아가는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태도다.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불합리한 검열로 포기할 수 없다’ 비록 하루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박재동 작가가 서문 초안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밝혔다.

<말하고싶다>10.7하루전을 하기로 했다. 이 결정이 무모하고 섣불렀는 지 이인철, 박불똥 작가가 하차했다. 감염병 예방조치로 전시 기간이 하루로 납작해졌다. 이 마저 같은 조치로 못쓰게 될지 모르고, 그 결정도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갑갑한 상황이 이어졌다. 여러 논의 끝에 성완경 작가의 입장이 나왔다.

“<말하고싶다>전의 타이틀과 그 사이 있었던 사태진행의 추이와 이에 대한 항의성, 반박성 테제에 너무 고착되어 우리가 너무 좁은 골목 속으로 우리 자신들을 몰고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많이 우려스럽습니다. 하루라는 악조건하입니다만 그것을 반대로 풀어내는 역발상 또한 긴급해 보입니다. 쉽게 풀어 얘기하면 기존의 자신의 통상적 본격작품을 풀어 내는 일이 긴요하게 요구된다고 봅니다. 물론 하루 전시라는 시공간적 제약과 비용(작품 제작비와 운송, 설치, 철거 등 비용)도 문제입니다. 예술엔 나이가 없다지만 여기 거론된 작가들이 존중받는 이름들이라면 그건 청장년과 노년, 각자의 인생과 예술, 시대의 경험을 자신의 예술 속에 녹여왔기 때문일 겁니다. 한마디로 그것이 예술이고 그래서 주목받고 재미도 있는거죠. 이것부터가 좀 더 진지하게 고려되고 또 우선되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하루 전시라도 그 각오가 없으면 전시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저 개인의 답은 이미 전시 참여하는 쪽으로 일찍부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같습니다“

또한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의 현실적인 애로도 있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공공 전시장은 모두 휴관 중입니다. 전시장이 재개관하려면 1단계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1일 확진자 수가 50명 이하로 1주일 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에서 입니다. 주변에 국공립미술관에 근무하는 친구나 전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추석 이후에도 전시장이 재개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명절이 있기 때문에 예술의전당에 9/29(화)까지 모든 자료를 드려야합니다.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내용업로드, ARS 전화안내문 작성, 주차권 신청, 현수막 제작, 리플릿 디자인 및 제작, 웹포스터 사이즈별 디자인, 그 외 각종 서류 제출 등 현수막(1개 필수)의 경우 명절 전 9/29(화)까지 인쇄해서 걸어야 하고, 명절이 있기 때문에 리플릿 디자인 후 차주 월요일에 인쇄가 들어가야 전시 전에 나올 수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예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명절 전에 이러한 비용을 다 지불하고 전시를 못하게 될까 우려가 되어 여기에 적어 봅니다”

그러나 이 마저 뒤엎는 방역지침이 9월25일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예측과는 달리 추석 전후 공공미술관의 전시가 가능하다는 지침이었다. 예술의전당도 3일 사용일정을 바꿔 당초 전시 승인 열흘을 모두 쓸 수 있다는 통보를 해 왔다. 전시 사용일인 9월29일로부터 4일 앞두고 나온 방역지침이었다. 언론 폭격, 국회문예위원의 압력, 예술의전당과 정부방역지침의 차이..들이 뒤섞여 누구를 탓하기 어려운 황당한 상황이 되고 만것이다. 이 전시는 안하거나 못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온라인 전으로 재빨리 갈아 타기로 했다.

처음에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한 노순택, 이윤엽 작가와 도중 하차한 작가도 온라인전에 함께 하게 되었다. 접근성은 다소 떨어질 지 모르지만 격리 시대의 소통, 작가주도로 지속가능한 업데이트,
연대, 계승, 다목적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발견이 되길 바란다.

'나무아트'에서 전시한 박건씨

‘카메라 시인 상’ 받아 본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영예로운 상을 운이 좋아 받게 된 것이다.

 

지난달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인사동에 관한 쓸쓸한 이야기로

‘인사동 그 정처 없는 발길’이란 글과 사진을 포스팅 했는데,

그 글을 본 작가 박건씨가 ‘카메라 시인상’이란 과분한 상을 준 것이다.

 

당시 박 건씨는 ‘나무아트’에서 ‘자가격리 F4’ 전시를 열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카메라 시인 상’ 작품을 만들어 찾아가라는 거다.

그러나 상을 받는 게 쪽팔려, 차일피일하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페북 댓글에 올라온 ‘나무아트’ 김진하관장의 찾아가라는 독촉을 받아서야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한 달이나 지나버렸다.

그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상 받으러 간 25일은 인사동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쌈지 앞 담장에는 양반 꽃이라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임금을 기다리다 죽은 궁녀의 슬픈 전설이 담긴 능소화 아래는

소녀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무화랑’에 올라 가 김진하관장으로부터 상을 전해 받았는데,

마치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받는 기분이었다.

내 평생 이런 영광스런 상은 처음 받아 보았다.

 

아파트 칸칸에다 상을 주게 된 행적을 적었는데,

마치 유적지에 세워 둔 공덕비 비문처럼 느껴졌다.

한 쪽에는 마스크를 쓴 신사임당 지폐에 재난기본소득이라며

작가의 서명까지 해 두었다.

 

그 돈도 작품의 일부지만, 뜻하는 바가 컸다.

돈이지만 사용할 수 없는 영원한 돈인 것이다.

이제 죽을 때까지 비상금은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 상 자체를 우습게 여겼는데,

이 상은 개인이 주는 순수한 상인데다, 상 자체가 작품이 아닌가.

볼 때마다 각오를 다지며 두고두고 기념해야겠다.

 

이런 게 제대로 된 상이다.

다른 상은 다 버려도, 이 상은 죽을 때 같이 화장할 거다.

다시 한 번 상을 준 박 건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박 건씨의 ‘자가격리 F4’를 보러갔다.
작가가 지킨 조용한 전시실에는 공산품을 활용해 재창조한 오브제 20점과

작품을 촬영하여 프린트한 사진 10점이 걸려 있었다.



노란 바나나 케이스에 빨간 수세미가 들어있는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낯설지 않은 형상으로, 여성의 성기를 닮아 있었다. 흥미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갇혀 살 수밖에 없었던 오늘의 현실을 보여 준 자가격리와 고공노동자의 절규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다.

부러진 망치를 깔고 앉은 모습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말했고, 해골더미에서는 월남전 참상을 고발했다.

그만의 해학으로 요지경 세상을 풍자했다.



박 건의 미니어처 작업은 공산품 소재의 발견에서 부터 시작된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진다.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비판적으로 독특한 형상성을 드러낸다.



일상과 환상이 공존하고, 생활과 예술이 어우러진 그만의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조그만 상업적 물건 속에 작가의 혼을 불어넣어 세상에 말 걸고 있었다.




작업형식이 마치 젊은 작가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누가 이 작품을 40여년의 화력을 가진 중견작가의 작품으로 볼 수 있겠는가?




즉발적인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작업들은 고착화된 현대미술의 만용에 딴지를 걸었다.

작품에 대한 개념과 방식까지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이미 만들어진 공산품을 예술 속으로 가볍게 끌어들일 수가 있었던 것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실험적 작업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가 정정엽씨는 “박건의 미니어처 작업들은 스스로 만든 것들은 거의 없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요리 붙이고, 조리 합하고, 살짝 변형시켜 동시대에 걸 맞는 시각언어로 활용한다.

대부분 10cm 안 되는 피큐어와 일상재료들을 날것으로 살려 쓰고 있다.

흉내 낼 수 없는 정교함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것을 만들어 낸 익명의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에 공산 예술품 보러 인사동가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박건의 ‘자가격리 F4'는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4F 자가격리
박건展 / PARKGEON / 朴健 / mixed media
2020_0506 ▶︎ 2020_0512


박건_검은눈물 black tears_plastics toy_30×20×5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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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박건의 공산품 예술 ● 40년 화력에 2017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 박건의 미니어처 작업은 공산품에 대한 탄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술과 생활, 일상과 환상, 소재의 넘나 듦, high와 low가 자유롭게 변주되는 세상, 노동력과 창의력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 등이 그를 끌어당겼다. 특히 자신의 노동력으로는 넘볼 수 없는 그 완결성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평소 장르,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예술적 태도는 이 공산품들을 작품 안으로 가볍게 끌어들였다. 현대미술에서 공산품이 소재나 주제가 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이 공산품들을 특별한 필요 외에도 축소, 확대, 과장하며 매일 소비한다. 박건은 이 흔한 값싼 물건들에 서사적 호흡을 불어넣었다. 작가적 손길로 쓰다듬고 대화하며 슬쩍 꼬집어 다른 세상으로 안내한다. 그가 평생 유지해 온 일상에서 예술 만들기, 생활과 노동에 대한 헌사가 유니크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박건의 미니어처 작업들은 스스로 제작한 한 것은 거의 없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요리 붙이고, 조리 합하고, 살짝 변형시켜 동시대에 걸 맞는 시각언어로 활용 한다. 버려지거나 값 싼 재료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예술이 된다. 대부분 10cm 안 되는 피큐어와 일상재료들을 날것으로 살려 쓰고 있다. 흉내 낼 수 없는 정교함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것을 만들어 낸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다. 그동안 작가, 교사, 전시기획, 출판미술기획, 시민기자, 아트프린트제작, 퍼포머 등 삶을 창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에게 미니어쳐 작업은 꼭 맞는 형식으로 재탄생했다. 물량폭탄으로 예술을 과소비하는 현대미술 한 측면에 딴지를 건다. 손바닥만 한 작품으로 요지경 세상을 펼쳐 보인다. 굳이 40년 화업을 밝히지 않고 작품만 보면 발칙한 상상력의 신진작가로 오인 받았을 것이다. 그보다 더 신선한 것은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신인 작가적 태도와 왕성한 창작력이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예술로 투쟁하고 놀며 예술가로서의 삶의 한 방식을 창작하고 있다. ■ 정정엽


박건_개죽음-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_세라믹에 피규어_2019


박건_코로나사유상-마스크 think of COVID-19_industrial goods objet_13×6×6cm_2020


박건_parasite_디지털 프린트_75×53cm_2020


박건_Tears_Doll Puff_17×13×10cm_2020


박건_화가의책_디지털 프린트_75×53cm_2020


박건_artist's book-from you_나무 피규어_18×8×8cm_2018

이번 개인전은 코로나19로 자가격리를 하면서 만들거나 관련 작품 20여점으로 구성합니다. 특히 작은 공산품 작품 10여점 골라 A2(75×53cm)로 프린트한 디지털 작업을 처음 선 보입니다. 크기의 변주와 복제를 통해 작은 공산품의 또 다른 모습과 역할을 실험해 보려 합니다. ■ 박건


박건_Dear Betty Dawson-Grow the Amazon in your room_선물상자 figure_16×11×4cm_2019


박건_세상의기운 the world's Energy_혼합재료_18×10×10cm_2017


박건_놀래라 What a surprise_혼합재료_10×10×8cm_2018

1980년대 이래로 작업방식과 문법뿐만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제도적 틀로부터 탈주를 지속하고 있는 박건의 개인전. 『4F』전, 박건의 '비상업적 상업성' 복제멀티플 작품의 유(소)통의 실험... ■ 김진하



Vol.20200506e | 박건展 / PARKGEON / 朴健 / mixed media


너는 내 운명

박건展 / PARKGEON / 朴健 / installation
2018_0720 ▶ 2018_0731 / 일,월요일 휴관



박건_너는 내 운명_선물상자, 피규어_8.5×11×3.5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1110g | 박건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720_금요일_06:00pm

책임기획 / 양정애

관람시간 / 12:00pm~08:00pm / 일,월요일 휴관



랩29@뚝도

Lab29@ttukdo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29

Tel. +82.(0)10.4112.8297

facebook.com/ttukdoartprojectinstagram.com/ttukdoartproject



가비얍게 날아올라 해골 ● 박건은 화단에서 27년 경력단절 작가이다. 2017년 『예술은 시대의 아픔, 시대의 초상이다』 출간기념 개인전 『소꿉』 이후, 1년 만에 손바닥만 한 작품들을 큰 007 가방 2개에 가득 담아 다시 찾아왔다. 길 위에서, 오래된 장터에서, 도시의 다이소를 지날 때도 예감을 그리듯 촉각을 세워 작은 기성품들을 캐스팅한다. ● 박건의 미니어처 작업들은 스스로 제작한 것은 없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요리 붙이고, 조리 합하고, 살짝 변형시켜 동시대적 언어를 획득한다. 버려지거나 값 싼 재료가 손바닥 안에서 예술이 된다. 대부분 10cm 채 안 되는 피규어와 일상재료들을 날 것으로 살려 쓰고 있다. 그 이유를 작가노트에 썼다 "마치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는 연출은 즐겁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쉽고 편하다. 어떤 공산품들은 예술이 무색할 정도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함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것은 만들어 낸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다"(박건 '작가노트' 중) ● 일상의 호기심, 야한 상상력, 따뜻한 시민의식이 예술의 촉을 얻었다. 소꿉 하듯 삶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니 인간사 바닥이 보인다. 특히 해골 관절인형은 그에게 딱 맞춤한 소재이다. 해골인형은 나이, 인종, 계층이 불분명하다. 삶과 죽음이 한 몸에 있다. 표정은 없지만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삶의 패러독스가 유머를 자극한다. 작품을 보자. ● 너는 내 운명 ● 11cm 검은 상자 안에 인간해골이 개의 유골을 안고 있다. 그 옆에는 뼈다귀 하나 담고 있는 2cm 도자기 개 밥그릇.


박건_신호탄_나무, 피규어, 칠_11×10×10cm_2018


신호탄 ● 10cm 둥근 나무판 위에 미사일, 핵 잔해, 꽃잎이 흩어져있고 해골의 두 인물이 손을 맞잡고 있다, 살짝 그려 넣은 머리털 모양으로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월 27일 제작했다고 한다.



박건_포옹_나무, 스켈레톤 피규어_11×10×10cm_2018

박건_평화가 터졌다-남남북녀_안전부품 위에 피규어_11×10×10cm_2018



평화가 터졌다-남남북녀 ● 아스팔트 졸음 방지 탭 위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 사이로 연기처럼 혹은 다른 상상으로 하얀 구름 형상이 용솟음친다. 이와 관련한 작가의 말이다. "정치와 성은 다른 듯 닮았다.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 좌경, 용공이니, 음란, 외설로 통제하려 든다. 분단과 통일 문제를 성적인 요소와 결합시키려는 까닭은 먼저 표현과 소통이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박건 '작가노트' 중)




박건_FIRE-BTS_스피커, 피규어, 채색깃털_20×20×20cm_2018


박건_베티도슨 여사에게_종이상자, 피규어_8.5×11×3.5cm_2018

박건_개밥그릇-달_종이상자, 피규어_10×10×3cm_2018


경력단절 기간 동안 작가, 미술교사, 전시기획, 출판미술기획, 시민기자, 아트프린트 제작자, 퍼포머 등 삶을 창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에게 미니어처 작업은 꼭 맞는 형식으로 재탄생한다. 일찍이 1983년 「강」이라는 작품으로 한국에 미니어처 작품의 첫 포문을 열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더 가벼워졌다. 어떤 권위, 형식, 전문성도 소꿉놀이 하듯 가비얍다.



박건_한계령-고양이_돌, 피규어_18×9×8cm_2018


박건_가든_못 찾겠다 꾀꼬리_피규어, 수지잔디_38×26×28cm


박건_너는 내운명-날개_수지인형_25×25×17cm_2018


물량폭탄 같은 현대미술에 손바닥만한 작품으로 장난을 친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사이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수동 뚝도시장에 자리 잡은 LAB29는 그의 작품세계와 아주 잘 어울리는 전시장소가 되었다. 시장통 요술 상자 같은 7평 공간에 20여점 요지경 인간사가 펼쳐진다. ■ 정정엽



Vol.20180720f | 박건展 / PARKGEON / 朴健 / installation


최북단마을 김포시 월곶면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려...

[서울문화투데이]2018년 05월 22일 (화) 13:34:56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문영태추모위원회’에서 기획한 문영태 유작전이 지난 19일 오후4시, 북한을 눈앞에 둔 최북단마을 김포 월곶면에 자리한 갤러리 ‘민예사랑’에서 개막되었다. 이 유작전은 인사동에서 ‘민예사랑’을 운영하는 미망인 장재순씨가 미술관을 새롭게 개관하며 마련하였다.

민중문화운동가이기도 했던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에는 80년대 작업한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에서 부터 사진작업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



▲ 심상석-상황, 종이에 연필, 53X53cmX4


3주기에 맞춰 마련한 문영태 유작전 개막식에는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의 사회로 진행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문영태의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분단의 문제로 보인다. 그의 ‘심상석’(心象石) 연작은 어떤 표현도 가능하기에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본다. 모더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은 그의 모습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자화상,종이에 연필, 31X49cm, 2002


이재권 동문은 ”대학 다닐 때의 문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 그의 그림 속에도 도를 보는 관점, 칼라를 보는 관점이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다고도 했다.


린다노클린은 "예술의 목표는 그 시대의 모습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것이며, 예술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는 그 시대의 세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상이나 상징보다는 사회적 제 조건과 보다 간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 장재순'민예사랑'대표 Ⓒ정영신


민중문화운동가였던 문영태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80년대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을 추진하였고,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면서 출판과 전시기획,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며 동시대의 삶을 성찰해왔다.


▲ 천지인 115X77X20cm 상석에 조각 1995


화가 박건씨는 1980년 문영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시대정신>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미술운동가들이 함께 만든 최초의 민중문화운동 담론지로서 나중에 ‘민미협’과 ‘민예총’으로 가는 다리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또한 문영태는 “공공성과 민중문화에 대한 존중감이 높은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 나무화랑 대표이자 평론가 김진하씨 Ⓒ정영신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문영태의 심상석 연작은 1977녀부터 1983년까지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품으로 ‘심상석’은 마음의 형상이 새겨진 돌, 혹은 돌에 새겨진 마음이다. 어떤 것이든 무형의 마음이 구체적사물인 돌로 치환하는 마음과 돌이 인과 혹은 등가의 의미를 띄는 단어이다.


▲ 심상석-결합, 종이판화, 44


타제 마제석기를 연상시키는 ‘심상석’작품은 대체적으로 무겁고 심각하다며, 마음이나 정서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한, 혹은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몸과 두개골 등에 상흔이 새겨진 사람들, 일상적인 삶의 무게와 민중적 생명력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단단한 돌에 풍화작용처럼 마음의 흔적이 심상(心象)으로 새겨진다는 것은 뭇 생명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생존에의 의지가 긴 세월 인고의 세월을 부침하며 견딘 결과라며, 문영태의 심상석에서 기층 민중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恨)의 정서가 동시에 묻어난다고 작가론에 적었다.



▲ 심상석 78-3, 종이에 연필, 168X122cm, 1978


특히 문영태는 1990년 경의선모임이란 공동작업체를 만들어 사진 작업도 했다. 문영태가 주축이 되어 사진가 이지누, 화가 박불똥, 유연복, 최민화, 김기호, 김태희, 남궁산, 백창흠, 박 건, 송진헌, 유은종, 이정희, 조경숙, 공예가 김원갑, 이송열, 미술평론가 라원식씨 등 열일곱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결과물로 ‘눈빛출판사’에서 ‘분단풍경’사진집을 펴냈다.

▲ 국도 7번 도로변- '분단풍경'사진집에서


‘분단풍경’ 사진작업 이후로는 김포 월곶리 자택에 칩거하며 평소 관심가진 전통적인 민중성과 민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기층 민중들의 생활사에 기반 한 민속민예문화를 연구하면서 상처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무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꾸었고, 그런 민초들의 생명력에서 서로를 보듬는 미술의 민중성을 지향해 왔다.


▲ 시대정신 창간호,1983-1987


새롭게 자리잡은 ‘민예사랑’개관과 문영태 3주기 유작전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민예총’이사장 박불똥씨, 화가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씨, 사진가 조문호, 판화가 홍선웅, 미술평론가 김진하, 동영상을 제작한 양정애씨등 ‘문영태추모위원회’를 비롯한 친지와 많은 지인들이 찾아 와 고인을 추모하며 유작전을 관람했다.



▲ 김포 월곶리 '민예사랑' 전시된 작품 Ⓒ정영신


이날 추모전시에서는 ‘나무아트’대표 김진하씨가 만든 자료집 <심상석·문영태>와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몰가부-자루 빠진 도끼)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책에는 1990년대 ‘분단풍경 : 열일곱 사람의 경의선 사진작업’ 그룹을 결성하고 분단된 국토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찍어둔 필름들, 시인 김정환과 공동으로 펴낸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두 사람>, 1996~98 월간 <사회평론 길>에 연재한 ‘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 2001년 사진가 이지누와 공동으로 발간한 계간 <디새집>에 연재한 ‘궁시렁 궁시렁 문영태의 집 이야기’ 등 문영태선생의 후반기 글쓰기 작업까지 한데 모아서 엮었다.



▲ 좌)'심상석-문영태'도록표지, 우)'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 책표지


문영태선생의 유작전은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문의 (010-5357-5256 민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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