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방동규선생을 뵐 기회가 생겼다.

강민시인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인사동 어르신들을 뵐 기회가 없어졌다.

진즉부터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었는데, 모처럼 연락을 주셨다.

안부 전화였으나, 내일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뵙자고 말씀드리고,

늘 뵙고 싶어 했던 정영신씨 한데도 전화했다.

 

약속한 날, 서둘러 인사동에 나갔다.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매번 늦게 나가 민망했는데, 너무 일찍 와 버렸다.

한참을 ‘나주곰탕’ 앞에서 서성였는데, 시간이 가까워오니 정영신씨와 나타났다.

길에서 만난 모양인데,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셨다.

 

날씨가 더워 뜨거운 곰탕그릇 대하기가 두려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선생께서도 시원한 막국수 먹으러 가자신다.

마침 ‘나주곰탕’ 초입에 방선생님 성을 빌린 ‘방태막국수’가 있었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 간신히 자리 잡았다.

 

방 선생님은 술을 끊었다지만, 내 걱정에 한 잔만 하시겠단다.

막걸리 한 병을 마셨는데, 선생님 생각한다는 게 피차 입만 버렸다.

 

‘방동규’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겠으나, 혹시 간첩이라도 있을까 싶어 소개부터 한다.

방동규(85세)선생은 이름보다 방배추라는 별명으로 더 잘 통한다.

젊은 시절 웬만한 사내는 한 주먹에 때려눕힐 정도로 싸움을 잘해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명성을 떨쳤다.

한 번에 깡패 17명과 맞싸운 일도 있고,

희대의 주먹 이정재도 방선생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안달했단다.

 

그는 백기완(현 통일문제연구소장), 황석영(소설가)씨와 더불어

‘조선의 3대 구라’로 불릴 만큼 입심도 최고라, 구비문학계의 전설로 남은 위인이다.

법을 잘 아는 법대출신이라 낭만주먹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사상범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받아 해외 유랑도 했었다

한 때 농촌운동에도 나선 파란과 굴곡의 인생이었다.

 

2005년 유홍준 문화재청장과의 인연으로 경복궁과 연을 맺은 적도 있다.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특채되었는데,

‘몸짱 할아버지’로 관람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77세에 왕궁 지킴이가 된 그는 아직까지 육체미 대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키우며 체력단련에 혼신을 다한다.

 

2006년에는 "배추가 돌아왔다"란 두 권의 자서전을 펴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는 부분의 으뜸은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지만,

한 번도 일손을 놓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단순노동이지만 일하러 다니시는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주장이시다.

 

그런데, 선생님 슬하에 딸이 둘 있는데, 부전여전이었다.

나이 쉰이 가깝도록 미혼인데, 방그래양은 중국 대련대학 조소과 교수로,

시래양은 중국에서 운동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두 딸이 아버지처럼 운동도 잘 하지만, 생각이 깨어 있었다.

 

그 날 막국수를 드시며 하시는 말씀이 그래양이 얼마 전 귀국했는데,

휠체어를 타고 왔더란다.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하다 근육이 파열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인데, 예능은 말할 것도 없다.

조각으로 국제대회에서 수상도 여러 차례 했다는데,

그 날 방선생께서 핸드폰으로 보여 준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국내 전시라도 한번 주선해 보고 싶어졌다.

 

그날 들은 이야기 중 그래양이 가장 돋보였던 점은 자본주의의 부정이었다.

조각가로서의 예술세계도 중요하지만, 정신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사람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고 했다는데, 아버지를 빼 닮았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아무래도 선생께서 술이 부족한 것 같았다.

선생님을 생각해서 권하지 않았는데,

정영신씨 이야기로는 자꾸 빈 술잔에 손이 가더라는 것이다.

아직 재난카드가 살아남아 ‘유목민’에 갔으나, 문이 걸려있었다.

인사동에 낮술 마실만한 곳이 없어, 아쉽지만 보내 드려야 했다.

 

내가 비실비실하니, 앞으로 인사동에서 선생님 뵐 일이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더구나 인사동을 사랑하는 김명성씨 조차 두문불출하니, 더 만나 뵐 수 없다.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 인사동에서 포장마차라도 한 번 할까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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