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Converting; Images 이미지; 변환; 상

이다은展 / LEEDAEUN / 李多恩 / video.photography
2018_0724 ▶ 2018_0805 / 월요일 휴관



이다은_Image Hunting_단채널 영상_00:25:14_2018_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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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7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누가 바라보는가. ● 미셸 푸코는 18세기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구조가 시선과 권력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높고 어두운 중앙 감시탑에서 한 명의 간수가 낮고 밝은 원형 수감시설에 있는 여러 명의 죄수를 내려다보도록 설계된 판옵티콘은 간수는 죄수들을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간수를 볼 수 없는 '시선의 불평등'에 구조의 핵심이 있다. 언제든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볼 수 없음에서 오는 공포가 죄수들 스스로 지배를 내재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시선의 불평등으로부터 권력이 강화되는 셈이다. 푸코는 감시를 내재화하여 스스로 규칙을 지키는 자율적 존재가 되도록 한 것이 근대적 주체에 다름 아니며, 근대 사회 전반의 국가적 통치는 바로 그러한 원리로 형성된 권력으로 인해 이루어졌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시선에는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봄을 당하는 대상이 존재하고 그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이다은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 내 시선의 불평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울어진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 고착된 관계에 파열음을 내고자 노력해왔다. 전작(前作)인 모텔을 배경으로 한 두 사진연작은 작업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모텔은 우리 사회에서 단순히 중립적 의미의 숙박업소라기보다 남성 중심의 은밀한 성적 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작가는 모텔이라는 남성의 시선이 지배적인 공간을 젊은 여성의 시선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재해석한다. 작가 자신이 피사체로 분(扮)해 서울의 여러 모텔을 옮겨 다니며 독서, 명상, 요리 등 여러 여가 행위를 수행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Enjoy : MOTEL」(2014)과 직업상 지방의 여러 모텔을 옮겨 다니며 기거하는 작가의 아버지 모습을 찍은 「M – Father and Motel」(2015)이 그것이다.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 서울과 지방, 여가와 숙박 등 여러 지점에서 다른 이 두 사진 연작은 무엇보다 시선의 주체와 대상의 (불)일치의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후자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 타인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한 사람의 중년 남성으로 객관화하여 바라보고자 하는 사진가적 시선이라면, 전자는 이 사회에서 흔히 소비되는 모텔 방 안의 전형적인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깨고 작가 스스로 시선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다은_Image Hunting_단채널 영상_00:25:14_2018_스틸컷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진에서 영상으로 매체를 확장하여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주체와 대상의 고착된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회 전반의 불평등한 구조에 개입하여 균열을 일으키고자 한다. 먼저 「Image Hunting」(2018)은 최근 사회 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여성 대상 몰래카메라 범죄를 소재로 한 영상작품이다. 작가는 본인이 지하철에서 겪은 몰래카메라 사건을 토대로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로 이미지 포획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을 연출해 촬영한 영상, 경찰에 신고 후 해당 사건이 불기소 처리되기까지의 추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여성의 선정적 이미지가 웹상에서 변형되어 확산되는 과정을 가정해 연출한 포토샵 편집 장면 영상, 그리고 최근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위한 혜화역 시위 장면 영상 등을 편집해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30여 분에 달하는 영상작품을 제작했다. 전체적으로 맥락과 형식이 다른 수많은 프레임의 이미지 조각들을 이음새를 그대로 드러내며 매끄럽지 않게 결합한 이 영상은 오늘날 이미지가 생산되어 소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왜곡과 변형을 거치게 되는지를 그 자체로 몸소 보여준다. ● 사실상 이미지의 왜곡과 변형은 회화를 이상으로 삼았던 사진의 탄생부터 시작되었지만, 당시 사진은 회화와 달리 기계에 의한 모방이라는 사실로 인해 현실성을 담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기술로 이어진 사진의 기계적 속성은 현실의 왜곡을 이미지의 기본값으로 만든다. 사진가가 무엇을 재현하고 어떤 위치에서 어디까지 프레임에 담을 것인가와 같은 최소한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미지에 개입하던 것에서 이제 이미지 생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 순간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서부터 비롯된 이미지와 대상의 일치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현실을 은폐한다. 특히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이미지의 경우 사회의 여러 모순과 불평등한 구조를 가린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이미지들은 익숙함을 넘어 표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여성 이미지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판적 시각을 갖기 전 이미 획일화된 미의 기준과 남성의 왜곡된 시선으로 고착된 선정성에 맞춰 소비되고 그러한 통념이 일상에까지 반영된다. 몰래카메라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인 현대의 판옵티콘 현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몰래카메라는 기본적으로 바라보는 주체가 겨누는 카메라 렌즈를 찍히는 대상이 볼 수 없다는 시선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화장실, 탈의실 등 공적 장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적 몰래카메라의 경우 생산된 이미지들이 일정 공정을 거쳐 무차별적으로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자본으로 치환된다. 그와 같이 생산된 여성 이미지들의 소비는 이미지와 대상을 일치시키려는 남성들의 고정관념에 의해 작동한다. 수없이 많은 변형과 편집의 단계를 거쳐 유포됨에도 불구하고 렌즈의 관음증적 시선으로 인해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별다른 비판 없이 기본상(像)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이 사회의 비틀린 남성중심 문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이다은_#골뱅이_피그먼트 프린트_45×30cm_2018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가의 다른 두 영상은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모순적 실상을 작가 개인의 서사를 통해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모텔 연작에서 우리 사회 내 젊은 여성에 대한 편향된 시선에 저항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초라한 중년 남성으로 대상화하였다면, 이번 전시의 두 작품 「Deserted House_제사음식」(2017)과 「 Deserted House_무덤과 비석의 위상학적 지도」(2018)에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적 근원이 되는 조부모의 집과 가문의 선산을 배경으로 가부장제의 모순을 보다 구체화시킨다. 가부장제는 남성만이 온전한 주체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출생과 동시에 수많은 배제와 차별을 배태함을 의미한다. 집안의 첫 아이로 태어난다 해도 장자가 될 수 없고 집안의 모든 행사에서 첫 줄에 설 수 없으며, 설령 결혼 전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해도 결혼과 동시에 본래 자신의 집안에서는 배제되고 새롭게 진입한 집안의 보조자 자리에 서게 된다. 작가는 경주 이씨(慶州 李氏) 평리공(評理公)파의 혈통을 물려받은 집안의 첫 아이지만 여성이기에 잠재적 이방인으로서 다른 성을 가진 실질적 이방인인 문중의 다른 모든 여성에 감정적으로 동조한다. 일종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작가는 경주 이씨 평리공파의 집성촌 중 하나인 전라북도 정읍으로 내려가 지금은 폐허가 된 조부모의 집에서 조모의 한복을 입고 스스로 실질적 이방인으로 분해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가부장제의 핵심을 비틀어 전형성을 깨뜨린다. 「제사 음식」에서는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차례로 공들여 만들지만, 상을 차린 후 본인이 음식을 모두 먹고 방바닥에 구토를 하는가 하면, 「무덤의 위상학적 지도」에서는 쓰개치마를 쓰고 선산의 공동묘지를 방문하지만 다른 성씨를 가진 문중의 여성들의 묘지만을 들러 헌화하고 묘비의 탁본을 떠 그녀들의 공적을 새겨 넣는 새로운 기념비를 만든다. 「Image Hunting」과 달리 「Deserted House」 연작은 모든 장면이 철저하게 기획된 영화적 형식을 따른다. 작가 자신이 피사체가 된 「Enjoy : MOTEL」처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영상에서 작가는 자신의 조모 혹은 유교사회의 익명의 여성으로 분해 다른 삶을 연기하고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작가 자신과 관련된 실제 이야기이며 배경이 되는 장소와 소품, 다른 등장인물까지도 모두 실제 그대로이다.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은 자막을 통해 제시된다. 북을 들고 집을 나가 오랜 세월 떠돌아다니다 돌아온 조부 대신 조모가 홀로 집안을 건사하였고 그런 조모가 죽자 조부는 새로운 여성을 집에 들여 함께 살다 죽었으며 그런 조부가 경주 이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집안의 큰 어른(여성)보다 더 좋은 명당자리에 묻힌 사실을 작가는 자막을 통해 무덤덤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작가의 조부모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지만 유교 문화를 토대로 형성된 남성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코 특별한 경우로 인식되지 않는다. 가부장제의 근간이 되었던 호주제가 폐지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자녀의 성은 기본적으로 부계를 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많은 가정에서 부계의 제사만을, 그것도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해 지내고 있다. 작가는 그렇게 살다간 수많은 여성들을 기억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위로한다. ● 모든 이미지는 바라보는 자의 시선을 담지한다. '누가 바라보는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표면적으로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일 경우에도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의도는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이다은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계속하여 우리 사회 젠더와 관련된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진에서 출발한 작가의 매체적 접근은 언제나 시선의 주체와 대상에 관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 작가 스스로 이미지의 대상이 됨을 자처함으로써 대상과 이미지의 일치를 당연시하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식이다. 인터넷상의 포르노 이미지를 자신의 신체에 합성한 이번 전시의 사진작품이 단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보이는 이미지 안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고자 하는 그녀의 작가적 개입은 소재와 시대를 넘나들며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그녀의 등장이 반갑고 그 열정이 쉽게 식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다. ■ 신혜영

 


이다은_Deserted House_제사 음식_2채널 영상_00:13:00_2017_스틸컷



과거의 사건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사실 나의 머릿속과 세상의 시공간에 이미 자리 잡은 이미지들을 마주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이 이미지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돌고 돌아 축적되며, 시간이 오래 흘러 그 존재가 희미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사실은 여전히 거대한 세계의 데이터베이스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나는 세계에 각인된 이 이미지들 -너무나 주류적이고 거대해서 폭력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을 묵도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과거의 이미지 위에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들을 덧씌울까를 고민한다. ● 나는 여러 매체들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내보내는데, 이러한 재현 행위 속에서 이미지들은 수많은 변환의 과정을 거친다. 이 일련의 과정- image taking – converting – making – outing- 에서 기존의 이미지들은 그 이미지들을 담고 있던 매체를 바꾸기도 하고, 여러 이미지 생산의 방법들을 차용하며 서로를 미러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이미지들은 기존의 맥락을 이탈한 새로운 이미지로서 재탄생하기도 하지만 이미 고정된 과거의 이미지를 확증편향 하는 방향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재현되는 때에도 엄밀히 말해 이를 과거의 이미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에게 있어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것은 기존의 이미지들-그것이 관념적인 것이든 실제 물질성을 획득한 것이든-을 원 소스로 가지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미지와 기억을 재창출해 내는 일인 것이다.



이다은_Deserted House_무덤과 비석의 위상학적 지도_2채널 영상_00:12:26_2018_스틸컷



나는 이번 전시에서 수많은 이미지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과 관련된 이미지들의 다시쓰기를 시도한다. 첫 번째 영상 작업 Image Hunting(2018)은 지하철에서 '몰카'를 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년간 사건을 추적한 모습을 담은 영상 기록과 이미지들이 재현되는 방식을 차용하여 연출한 장면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준다. 작업 과정에서 모으고 만들어진 영상 조각들은 그 자체로 기억이자, 영상의 타임라인 위에 새로이 배치되어 전혀 다른 맥락과 물질성을 획득한 변환-이미지라는 두 가지 지위를 가진다. 두 번째 영상작업인 Deserted House_제사음식(2017)에서는 과거 할머니의 집에서 제사를 지냈던 기억을 토대로 과거의 장면들을 재현하고, 그사이에 기존의 서사나 기억 속 장면들과 다른 장면들의 삽입을 시도했다. 세 번째 영상작업인Deserted House_무덤과 비석의 위상학적 지도(2018)에서는 아버지의 성을 가지지 않는 가문의 외부인인 여성들이 묻혀있는 묘지의 위치를 보여주며 그 안의 위계구조를 드러내고, 가문의 공적비를 그들의 이야기에 맞춰 다시 쓰는 새로운 기념비 제작 과정을 선보인다. 또한 이 세 가지 영상작업 과정에서 파생된 사진, 드로잉 작업도 함께 설치하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들이 서로 연계되게 구성함으로써 작업의 내용과 의도를 보다 다양하고 풍성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 세상에 내놓은 이미지들은 원작자나 창작자의 의도를 벗어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미지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이미지들이 미치는 영향이나 이미지 변환 과정의 결과는 예측하기가 힘들고 이 행위를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미지 생산 흐름의 속성을 긍정하며 계속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 이다은



이다은_새로운 기념비_1_닥종이에 탁본, 서체 드로잉_75×143cm_2018



Recalling past events amounts to being faced to and examining the images already located between the boundaries of one's mind and the time-space of the world. These inextinguishable images never ceases to circulate and accumulate, and will always remain somewhere in the small crevice of the massive world database, even when their existence seems to have worn out over time. While witnessing the images engraved in the world, which are so prevalent and massive that they even seem violent, I contemplate on the ways in which I could overwrite the existing image from the past with new images. ● I produce and release images through various media—the acts of representation through which the images undergo numerous types of conversion. In these processes of image taking, converting, making and releasing, sometimes the media that contain the pre-existing images become transformed, or sometimes these images are mirrored* by adopting various methods of image production. Through this, the images are not only reborn through decontextualization, but also represented based on the confirmatory bias against the fixed images in the past. Strictly speaking, distinction has to be made between the represented images and the pre-existing images from which they derive. In my work, the production of images amounts to re-creation of images and memories that are qualitatively different from their original source: the pre-existing, material or ideational, images. ● In this exhibition, I attempt to overwrite images related to the female subject. Image Hunting (2018), which is based on the personal experience of having been a spycam victim, combines the footages of the two years of investigation into this case and the staged scenes that narrate the various ways in which images are represented in our world. The accumulated footages acquire a dual status: as memories themselves, and as converted image, by virtue of being arranged in the timeline of the video, which ascribes them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and materiality. Deserted House_Ceremonial Foods (2017) reenacts the memories of jesa at my grandmother's house, and inserted between the scenes of reenactment are deviations from the actual memories or the conventional narrative surrounding jesa. Deserted House_The Topological Map of the Graves (2018) reveals the locations of the graves where the women, who do not share patrilineal surnames, and thus are outsiders to the clan, are buried. While this work exposes the clan hierarchy, at the same time it presents the construction of new memorial that rewrites the clan's accomplishments in the narrative of these women. Along with the three video works, photographs and drawings that were produced en route are installed at the exhibition space, constructing a cross-medial web that consolidates the links between all the work and augments both the content and the intent of the work. ● The released images will flow in an unpredictable direction, regardless of their author's—or creator's—intention. They exist in a realm of the uncontrollable. Since the influence or the result of image conversion process is unpredictable, anyone trying to assess this ethically would find herself in a predicament. Nevertheless, I plan to continue this practice as I affirm the nature of the flow of such image production. ■ LEEDAEUN



Vol.20180724e | 이다은展 / LEEDAEUN / 李多恩 / video.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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