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코로나19>라는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이웃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온 인류가 공포에 떨던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본 정부는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파괴 행위를 또 저지르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거드는 국가도 있고, 반대하지만 소극적인 국가도 있고, 일본산 해산물 수입을 전면 중지하는 국가도 있지만 이들 국가는 저마다 국제정세를 따져 자국의 이익 계산에 몰두할 뿐, 바다가 망가지는 것에 대하여 마땅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바다가 망가지는 것은 국가 이익을 넘어 지구 생명이 망가지는 것이다.
바다는 곧 하늘이다.
땅과 하늘을 잇는 생명의 고리는 곧 <물>이다. 물만이 지구 생명을 살게 한다. 석촌호수 담수량의 4분의 1이나 되는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바다에 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는 자연에게 인류가 저지른 폭력적인 행위 중에 단연 최악이다. 그들은 변명으로 과학을 들고나오지만 30년 동안 버린 뒤에도 지구 생명에게 안전한지와, 100년, 200년 뒤에도 안전한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커녕 데이터도 없다. 원자로 냉각수와 원자로 폭발로 인한 핵 오염수는 전혀 다르다.
바다에 버리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묻는다.
단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핵 오염수를 온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의 터전인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반인륜적이며 반생명적이다. 숱한 생명을 살상한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가로서 자숙하고 또 자숙해야 할 일본의 후안무치한 핵 오염수 폐기행위를 동시대 미술인으로서 강력히 규탄한다.
대한민국 정부에 묻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정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인류에게 숱한 가해를 저지른 일본은 여전히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이 해야 할 배상을 대신 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는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마저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국민 불안과 일본 편들기 중에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바다에 버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지 묻는다.
핵 오염수 투기를 하는 당사국이 발표하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
또한 이에 동조하는 국제기구 및 우리 정부의 데이터도 신뢰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해양투기를 당장 중단하고 이해 관계국을 제외한 제3국이 연대하고, 국제 시민사회가 연대한 기구를 세워서 뭇 생명에게도 공정이 담보된 조사와 감시를 해줄 것을 제안한다. 생명평화예술을 지향하는 전세계 예술인에게도 핵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국제적인 연대 활동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2023년 9월 23일
일본의 핵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작가 33인 일동
지난 9월23일 오후 2시에 열린 작가 발언대에는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고경일, 김봉준, 김용주, 류연복, 박 건, 박재동,
성효숙, 이달비, 이익태, 이현정, 천광호, 칡뫼김구씨 등의 참여작가들이 나와 각자의 소견과
문제점을 제기했고, 출품 작가 외에도 장경호, 김이하, 정덕수, 배경애, 김지소, 황준연씨 등 많은 분이 참여하여
핵 오염수 방류를 성토했다.
전시작품들 대부분이 핵 오염수 방류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말하고 있으나,
김재홍작가의 그림은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친일 권력자들을 풍자했다.
그리고 이익태 작가의 그림은 사람이 물처럼 흘러 내리는 형상이라 소름 끼쳤다.
김봉준 작가는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달비씨 그림은 바다에 편지가 든 병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병 속에는 후쿠시마에서 쫓겨난 소녀가 쓴, 바다에게 사죄하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악몽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올 현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현정의 ‘그어지다, 지우다’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이 색깔 묻은 붓으로 그리는 족족, 작가는 닦아 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자욱은 남았다.
나중엔 사람들이 붉은 뜨게 실에 낚시처럼 걸려들었다.
바다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연결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닦아내는 행위에서 위안부는 왜 떠오를까?
그 또한 일제가 저지른, 인간으로서 저지르지 못할 죄악이 아니었던가?
성효숙 작가가 상처받은 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에서 한 가닥 희망도 보였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아래는 문화비평가 정요섭씨 전시 서문에서 잘라낸 글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빌려 쓰는 세대입니다. 지구를 이 지경으로 파괴시킨 것도 모자라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유의하고, 유의하고 또 유의할 일입니다. 안전하다고 우길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국익을 말하지만, 국민의 생명, 지구의 안녕보다 우선한 국익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잔꾀로 상대를 속인다는 ‘조삼모사’를 떠올리는 까닭입니다.
작가는 시대 의제를 상정하는 사람이라 여깁니다. 이 해괴한 상황에 대해 작품으로써 발언해야 할 때입니다. ‘아르떼 숲’은 시대 의제를 비켜 가지 않고 작품으로 맞서 온 33인 작가의 작품으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의제로 삼아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지구 생명 모두의 부릅뜬 관심과 움켜쥔 참여를 바랍니다.
지난 달 알린 바와 같이 정선 작업실이 전소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화가 박 건씨가 알고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공개적인 구걸이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나, 그 따뜻한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그에 따른 조그만 보답이라도 될까 싶어 부족하나마 저의 사진 한 점씩 보내드리려고 견본 사진 5점을 제시하며 사진번호와 보낼 주소를 보내달라고 전화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아쉽게도 알린지가 한 달 가까이 되었으나 주소와 사진번호를 보내 주신 분은 네 분밖에 없네요.
혹시 그 안내를 보지 못했거나 뒷수습으로 경황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천천히 연락하려 보류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더러는 알리기가 편치 않거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 역시 사진 보내는 일에만 매달릴 수 없어 한꺼번에 작업하기 위해 기다리다 주소를 알려 주신 분까지 보내드리지 못해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네 분 사진만 먼저 프린트해 보내드렸습니다.
나머지는 오는 10일까지 기다렸다 일괄 프린트(규격 42cmx 29,7cm)하여 액자에 넣어 보내 드릴 작정이오니, 사진번호와 주소를 정영신씨 핸드폰(010-2955-8926)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견본사진 외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다면 가능하오니 알려주십시오.
만약 10일까지 연락 없는 분들은 그 뜻을 존중하여 개인전을 소개하거나 행사사진을 촬영 해 드리는 등 다른 방법으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 번 온정의 손길은 두고두고 보답하겠습니다.
정선에 예술창고를 만들어 함께 공유하려는 계획도 아직까지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다소 시일이 지체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험사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아 기대에 부응하는 공유공간을 만들게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신 분을 밝혀 일일이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나 행여 온정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도 계실 것 같아 성함 중 한자를 생략하였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후원해 주신 분 명단과 전해드릴 사진 견본이오니 참고하셔서 연락 주세요.
아산에서 ‘공유공간 마인’을 운영하는 김선우씨는 자신의 일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해 주었다. 정선 화재현장에 버려진 쓰레기를 트럭으로 실고 가 물증 찾는 일에 혼신을 쏟아왔고, 그와 함께서울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 와 자문해 주며 사회의 모순된 구조 개선에 대해 좋은 말씀을 들려 준 사회운동가 김창복씨, 오랜 시간동안 사건에 대한 전모를 들으며 무료로 자문해 주신 ‘법률사무소 휴먼’의 류하경 변호사님, 일면식도 없는 분에서부터 지인에 이르기까지 온정의 손길을 보내주신 60여명의 후원자를 비롯하여 걱정해 주신 많은 분들의 고마움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후의 따스한 햇살처럼 큰 위안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도움 준분들에게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하는 지자체에서는 나몰라라 했다. 도처에 토목공사 때 사용하는 컨테이너박스가 널렸는데, 갑자기 집을 잃은 군민이 거처할 임시숙소 하나 빌려주지 못하는가? 고작 대한적십자사에서 보내 온 담요와 비상식량 뿐이었다. 이런 놈의 동내를 위해 몇십 년 동안 마음을 쏟아 부은 것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 다시는 주민 복지라는 말만 꺼내면 똥바가지를 덮어 쒸울 것이다.
그리고 화재현장인 정선 집에 대한 앞으로의 대처 방안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처음 불이 붙었던 옆집도 분명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같이 살고 싶은 이웃이 아니란 것은 오래전 알았다.
그 집은 미국에서 온 노성수씨가 구입해 살았는데, 2015년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목숨을 잃은 것이다. 술이 취해 방문의 유리에 동맥이 끊기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갑작스런 변에 아내가 무서워 못살겠다며 급히 집을 내놓았는데, 그 집을 산사람이 이번에 불을 낸 윤씨다.
이사 온 뒤로 윤씨의 남편처럼 행세한 한 남자는 재 측량한다며 남의 집 마당에 빨간 막대를 꽂아두는 등 처음부터 불쾌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 마당을 자기 주차장처럼 사용하는데다, 자기 땅 두고 남의 땅에 고추를 심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서울서 살러 온 사람들이 지역주민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이기심 때문이다. 예전엔 떠돌다 힘들면 마음 편이 쉬려 정선에 갔으나, 이젠 만나기 싫은 사람 때문에 일할 때만 정선가는 꼴이 되어버렸다. 집이 붙어있어 수시로 들락거려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동내 소문도 일조했다. 이상한 소문이 동네에 퍼져 가까이 하지 말라는 동네 사람들의 충고도 뒤따랐다, 그녀가 이사 온지 2년쯤 후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와 홍천의 양서욱씨가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옆집의 그녀가 찾아와 술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급기야 전활철씨 와는 친구사이로, 양서욱씨와는 남매로 둔갑하는 친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친화력에 고개가 꺼덕여졌다. 사람 사는데 친화력보다 더 좋은 게 없으나, 시골 사람들에게는 사람을 잘 꼬드기는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야 가끔 가기에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그 집을 더나들던 사내들의 뒷소문도 무성했다. 언젠가부터 정선 북실리에 사는 년하의 남자와 동거하기 시작하며 더 이상의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한씨는 토목공사 하는 분이라 전기에서부터 레미콘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그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창수엄마 이야기에 의하면 한 때는 본처가 경찰을 데리고 현장에 찾아와 한씨가 도망쳐 올라와 숨겨 준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 남의 사생활에 불과한 이야기이지만, 문제는 주변을 너무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마당을 자기네 주차장으로 사용하며 여러 마리의 개를 풀어놓아 여기 저기 똥을 싸거나 농작물을 짓밟는 등 피해를 주었고, 그물망으로 방목하는 수많은 닭들의 소음도 또 하나의 공해였다. 그리고 친환경을 내세워 수시로 끌어들이는 손님들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우리 집 마당에 레미콘 한 차를 부려놓은 사진 한 장을 정영신씨 핸드폰으로 보내왔다. 지난 번 만났을 때, 도로 포장하는 사람 오면 움푹 파진 도로 입구 좀 때워 달라며 부탁한 적이 있다는데, 온 마당을 뒤덮어버린 것이다. 마당을 자기 내 주차장으로 사용하니 레미콘 비용의 반은 자기가 부담하겠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시멘트라 쓸어 담을 수도 없어 아무 소리 못하고 20만원을 주었는데, 아마 인부들이 공사장에서 빼돌려 싼 값으로 깔아준 것 같았다. 자연환경이 좋아 사는 나로서는 마당을 차지한 점령군처럼 눈에 거슬리는 흉물에 불과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한 때 이웃 최종대씨와 지하수 분쟁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지하수로 갑 질하는 최종대씨의 잘 못이라 공개적으로 최씨를 나무랄 수밖에 없었으나 긴 세월 이어 온 정이라 윤씨보다 최씨가 더 가까운 사이였다.
그 때부터 서울만 왔다 가면 전기 차단기가 내려져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다 상해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매번 그 일이 반복되어 아예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고, 최씨와의 왕래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부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누구의 짓인지는 뒤늦게 알아챘다.
그 날 불난 날도 서울에서 손님이 네 사람 찾아와 마당에서 불을 피워 밤늦도록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셨다는데, 주민들 말과는 달리 누전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뒤늦게 듣기로는 얼마 전 윤씨가 불 난 집 터 옆의 조씨네 밭을 사서 농막까지 옮겨 두었는데, 그 위에 있는 밭을 공동 투자하여 사들이기 위해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보험 든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며 죽는 소리를 해 화재현장의 물증확보에 신경도 쓰지 않고 돌아 왔는데, 뒤늦게 보험 든 게 있다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미 보름이나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는 모든 게 파헤쳐지고 치워버려 물증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놓아 치밀하게 대처하지 못한 나의 실책이었다.
또 하나 윤씨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처음에는 방안의 현금을 칠백만원이나 두어 모두 탔다고 말한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보상 받기 위해 잿더미를 뒤적거려 이백만 원 정도의 흔적을 찾았다고도 했으나, 두 번째 들렸을 때는 돈은 타지 않았다며 말을 뒤집었다.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도록 원인을 제공한 그녀를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나의 바램이다. 그녀만 보면 울화가 치미니 스스로의 명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그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머니 무덤도 무덤이지만, 동자동 일이 끝나면 이제 어디 가서 쉬겠는가? 그리고 그녀가 좋아 하도록 판 깔아 주기는 더 더욱 싫었다.
그래서 윤씨와 합의하기 위한 제안으로 지금의 집터를 양보하고 새로 구입해 둔 위 쪽으로 옮겨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거절했다.
지난 1일 정오 무렵 서초동에 있는 ‘법률사무소 휴먼’의 류하경 변호사를 찾아갔다. 아들 햇님이 안내로 정영신씨를 동반해 갔는데, 그곳에는 아산에서 이 일을 돕고 있는 김선우씨와 사회운동가 김창복씨도 참석하여 그동안의 일에 대한 도움말을 듣고 준비할 앞으로의 대책도 세웠다. 일단은 손해사정사의 보상 금액이 결정되는 것을 보며 소송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도움주신 분들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좋은 예술창고를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난 달 정선 옆집에서 난 불이 옮겨 붙어 집은 물론 모든 걸 태웠습니다. 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겠지만 40여 년 기록해 온 필름과 소중한 자료까지 모두 사라져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한 동안 방구석에 처 박혀 자다 깨다만 반복하며 의욕을 잃었지만, 세월이 약이라 듯 시간이 지나가니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정선 집이 불탄 것도 잊고 일할 것을 생각하다 뒤늦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빠지기도 했으나, 하늘의 뜻이라며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그런데, 페북에 올린 화재 내용을 화가 박 건씨가 보고는 페친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린 것입니다. 더 난처한 것은 지난 번 ‘나무아트’ 전시 때 알게 된 정영신씨 계좌번호까지 공개하여 여러 사람이 돈을 보내 왔습니다. 호의를 무시하고 돌려 드릴 수도 없고, 그냥 둘 수도 없어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공개적으로 구걸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주변 분들의 고마운 뜻을 받아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선 보내주신 후원금으로 임시 숙소 겸 일할 수 있는 농기구라도 보관할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 부터 한 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도와주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집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대로 환경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도움 주신분과 함께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협의하여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하겠습니다.
후원금을 보내 주신 분들을 밝혀 일일이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나 행여 온정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도 계실 것 같아 성함 중 한자를 생략하였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화가는 가운데 이름자를 생략했고, 사진가는 성을 생략했고, 마지막 이름 자를 생략한 분은 문인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입니다.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보 잘 것 없지만, 저의 사진 한 점(규격 42cmx 29,7cm)씩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기념의 뜻으로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 견본 사진 다섯 장 중 선택한 번호와 보내 드릴 주소를 아래 핸드폰에 찍어 주시길 부탁합니다. (010-7662-6144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