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열 받게 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정치판 돌아가는 것과 검찰에 이어 법관 놈들 하는 짓거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불난 정선집이다.

정치판이나 법관들이야 고개 돌리면 그만이지만, 정선 집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불낸 옆집에서 땅을 다시 측량해 우리 집 있던 자리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 문제도 자세히 알아봐야 겠지만, 어머니 산소 문제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정선까지 가기 힘들어 어머니를 서울근교의 납골당에 모시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몇 개월간 산소에 가보지 못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추석 전에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 정선읍사무소에 묘지 개장신고서 등의 서류를 준비하러

지난 금요일 새벽 무렵 정선으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양평쯤에서 주유소에 들려 기름을 넣다보니 핸드폰을 두고 온 것이다.

현금도 없는데다 핸드폰 속에 결제할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전화야 주유소에서 빌리면 되겠으나 아무 번호도 기억나지 않아 연락할 수가 없었다.

숫자 기억이 어두워 내 전화번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거의 치매수준이다.

아무리 정영신씨 전화를 기억하려 안달했으나 뒷자리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수첩을 뒤적여보니 마침 아들 햇님이 전화가 적혀있어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되 뇌이며 정선으로 떠났다.

 

먼저 읍내에 들려 읍사무소 서류부터 준비해 두고, 농기구가 불타 벌초할 낫부터 하나 샀다.

일을 마무리하고 만지산 집에 가보니 화가 나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 집 불탄 자리 반쯤에 걸쳐 옆집에서 집을 짓고 있었다.

그 문제는 옆집과 다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 때 측량한 지적공사와 싸워야 할 문제였다.

 

밭은 물론이고 산소는 잡초가 무성해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불난 와중에 심어두었던 옥수수는 잡초 속에 묻혀 성장을 멈추고 있었다.

돌보지도 않고 수확을 바란 내가 도둑놈 심보였다.

밭은 내 팽개치고 산소 벌초부터 하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미안합니더! 내가 제대로 못 모셔 다른 곳에 모시기로 했습니더.

“다 알고 있다. 죽은 내가 감 나라 콩 나라 할 수야 없지만, 사겨 놓은 이곳 친구들과의 이별이 섭섭하구나.” 

유달리 친구들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서 만지산 귀신들과 많이 사귄 것 같았다.

 

아뿔사! 낫질을 잘 못해 그만 한 칼 먹어버렸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야! 이놈아 술안주 담아 온 비닐로 손가락부터 감아라. 어디다 정신 팔고 낫질을 그따우로 하노”

“정신이 하나도 없소. 제발 잔소리 좀 하지마소”

 

처삼촌 벌초하듯 대충 끝내고 일어서려다 잔디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다.

급히 잡은 나무가 개 복숭아 가지였는데, 개 복숭아 한 알이 정신 차리라는 듯 머리에 뚝 떨어졌다.

 

“우메! 일에 정신 팔려 개 복숭아 열린 것도 못 보았네”

차에 있는 망태하나 챙겨 와 효소 담으려고 손에 닿는 것만 따 담았다.

어머니가 준 마지막 선물로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선을 떠나왔다.

 

차 안에서 걱정에 걱정을 머리에 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화재 보상문제로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껴안고 살아야하는가?

이웃과 마음 상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다독였으나 마음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세월이 약이겠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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