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에는 인사동 거리에서 제법 긴 시간을 맴돌았다.

봐야 할 전시도 두 곳인데다 길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도 두 사람인데,

서로 만나기로 한 시간조차 달랐다.

 

인사동 사진은 거리를 지나치며 찍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지만,

이번에는 한 시간 넘게 거리를 방황했더니 다리가 아팠다.

기다리는 동안 전시라도 둘러 보았으면 좋으련만

정영신씨와 같이 보기로 해 먼저 볼 수도 없었다.

 

거리는 구정을 앞둔 주말이라 평소에 비해 많은 사람이 오갔다.

더러 선물보따리를 들고 가는 모습에서 명절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반가운 풍경은 행인들이 거리에 내놓은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아무리 작가의 영혼이 빠진 그림이지만, 가격이 너무 쌌다.

이 삼만원 대가 주류고 비싼 게 오 만원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져 나왔는지 모르나 물감을 이겨 그린 그림도 있어,

인건비는 차지하고 재료비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멀리 ‘나무아트’에서 김진하관장이 나오고 있었다.

박건씨의 ‘나는 산다’전에 가자기에 사람 만나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정오 무렵 만나기로 약속한 사진가 최인기씨가 드디어 나타났다.

조그만 양반이 도르르 굴러오듯 바쁘게 걸어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빙그레 웃는 동안에 마음까지 포근해 졌다.

 

그를 만나기로 한 건, 며칠 전 경남 함안장에서 연락 받았다.

‘눈빛출판사’에서 노량진구수산시장 상인들의 투쟁을 기록한 사진집을 만드는데,

서문 좀 쓰 달라는 원고청탁이었다.

 

그는 사진가이기에 앞서 노동운동가다.

가끔 현장에서 만나 지켜본 바로는 성실하고 겸손한데다 투쟁력 또한 치열했다.

좋아하는 후배사진가 중 한 사람이라 바쁜 시간이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명절선물이라며 보리굴비까지 들고 왔는데,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받은 선물도 다른 분 줄 정도로 선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굴비는 정영신씨가 좋아하는 생선이라 점수 따기 딱 좋았다.

 

마침 정오 무렵이라 ‘툇마루’에 밥 먹으러 갔다.

술 마시러 간 것이 아닌데도, 쥔장의 도토리묵 서비스까지 받았다.

맛있게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고, ‘귀천’ 목영선씨의 모과차도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사진 자료 담긴 유에스비를 건네받고 헤어졌다.

 

그도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나 또한 정영신씨를 만날 시간이 되어서다.

지하철 역 방향으로 마중가니, 총총걸음으로 정동지가 나타났다,

바쁜 분 만나려니, 이 몸까지 바쁠 수밖에 없었다.

 

마루의 ‘아지트갤러리’로 갔더니, 눈에 익은 작품들이 줄줄이 걸렸더라.

전시 개막 직전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 최경태씨 그림에 마음이 아팠는데,

작가 박 건씨와 김진하씨가 나타났다.

 

박건씨의 공산품 아트를 비롯하여 김주호, 김환영, 류연복, 박불똥, 박영숙,

성병희, 안창홍, 이윤엽, 이현정, 이하, 정영신, 정보경, 정복수, 정정엽, 하일지 씨 등

내 노라 하는 분들의 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었다.

 

박건씨의 혜안으로 모운 작품이라 보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또 하나 기분 좋은 건 작가의 권위를 지키려는 거품은 모두 빼버렸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이치에 대한 도전장에 다름 아니었다.

 

다음에 들려야 할 전시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금보성씨의 ‘한글’전이었다.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연지 35년 만에 150호 대작 22점을 내 걸었는데,

웅장한 스케일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마치 자음을 윷놀이 하듯 화면에 던져놓았는데, 문자와 디자인이 결합한 독창적 언어였다.

작가로부터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인사동에서의 일정은 마무리했다.

 

다음 날은 동자동에서 일해야 하고, 그 다음 날은 경북 상주장에 가야했다.

무슨 놈의 일이 한꺼번에 몰려 똥오줌 못 가릴 지경이다.

 

서울역 홈리스 원고는 탈고한지 오래지만, 노숙인 코로나 확진자가 100여명이나

나온 데다 동자동 쪽방 촌 공공 개발 소식에 추가 할 원고가 생겨서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아산시를 시작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전시를 기획했다며,

필요한 사진 자료를 수집해 보냈는데, 정말 난감했다.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지만 기억이 아물아물한 사진도 있었는데,

필름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사용했던 사진도 수정 이미지를 못 찾아 재 수정하느라 곤욕을 치루었다.

얼마나 마우스를 잡고 낑낑거렸으면 아직까지 어깨가 결린다.

오죽하면 오래된 필름 정리해 스캔 받아 두라는 정동지의 성화를 뭉갠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고려장 할 나이에 이처럼 일이 많은 것도 복이라면 복이고, 욕이라면 욕이다.

 

그토록 바삐 쫓겨 다녔으니 최인기씨 원고 쓸 겨를이 있었겠는가?

2월 중순까지 요구한 글이라 추석연휴에 쓰려고 밀쳐두었으나,

원고료 부담에다 자료 담긴 유에스비 조차 열어보지 못해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믐 날 제사음식 준비 하는 중에 최인기씨로 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렵게 전화한 듯, 정중하게 원고 청탁을 거두겠다는 내용이었다.

앓던 이 빠진 것 시원해 받은 원고료를 즉각 돌려보냈는데,

거절한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더 좋은 필자를 구했거나, 다른 이유라면 모르겠으나,

20여일 전 '인사동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말하고 싶다'전 포스팅에

“언제까지 미투로 생사람 잡을거냐?“는 글을 본 모양이다.

아니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바로 미투였다.

 

고질적인 성희롱을 없애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미투 운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사적인 감정으로 상대방을 매장시키는 가짜 미투가

기승을 부려 진짜 미투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폐단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부산의 이광수교수가 여러 차례 페북에서 지적한 바 있는

진보정당이나 노동운동가들이 페미니즘에 집착하는 폐단이 떠올랐다.

그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걸 여태 보지 않았던가?

 

개안적 견해에 불과한 미투의 문제점 제기에 안면까지 몰수할 정도라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주의로 흐르는 세태가 안타까운 실정에, 페미니즘 문제까지 부채질 한다.

 

메주알고주알 까발리다 보니 말이 엄청 길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사동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작가 박 건의 “나는 산다”전이 인사동 마루, 아지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산다’라는 전시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작품을 산다는 말에 앞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면 감동으로 행복에 빠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충전의 기회도 된다. 사서 걸어 놓으면 내 작품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보여 주는 작품은 작가의 소장전이라기 보다 박건의 개인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작가의 손을 빌려 감동을 전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술품 유통이다.

좋은 그림은 혼자 갖지 말고 돌려보자는 의미도 있겠지만.

감동을 사고판다는 게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냐?

 

박 건씨는 작가이자 기획가며 사회운동가다.

잘못된 현실에 대한 저항성과 비판 정신이 강하고

하나의 모형도를 제시하는 장면 연출에 탁월하다.

 

작업방식 뿐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다.

그의 혜안으로 수집된 작품이라 보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미술에 깊은 지식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 보다 확실한 길잡이가 어디 있겠는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작품 가격이 의외로 싸다는 거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이치에 대한 도전장이다.

작가의 권위를 지키려는 거품 같은 건 모두 없애 버렸다.

 

전시된 작품들은 박건의 공산품아트를 비롯하여 김난영, 김주호, 김태헌, 김환영, 류준화, 류연복, 박상혁,

박불똥, 박영숙, 변성진, 빅터조, 성병희, 전현숙, 정보경, 정복수, 정정엽, 정영신, 조문호, 안창홍, 양대원,

윤남웅, 이윤엽, 이진경, 이 하, 이현정, 하일지, 최경태씨 등 모두 색깔이 분명한 작가들이다.

 

박 건씨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면 허튼 작품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디서 이런 알찬 전시를 볼 수 있겠는가?

 

“작품을 '산다는 행위엔, 작가의 제작으로부터 시작한 작품의 최종 소통(유통)지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는, 그런 프로세스 전체에 대한, 컬렉터이자 작가인 박건의 개념적/행동적 개입을 상정한다. 그가 선택해서 구입한 작품들에 대한 (작가주의적) 존중과 더불어, 소비자인 자신의 미감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미술개념에 대한 확장된 문제의식과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행하는 것이다. 작품을 산다는 것, 그것도 예술행위의 한 부분이고, 또 그 작품을 판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가로부터 컬렉터 그리고 또 다른 소비자에게 돌고 돌면서, 작품과 사람들은 상호 그 세계와 감성과 감각을 함께 나누고 누리는 것이다. 박건의 이 전시는 그런 작품의 유전과 일생에 대한 예술적 통찰의 퍼포먼스라 하겠다.”고 김진하씨가 적었다.

 

그런데,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화우 최경태 때문이라 했다.

최경태는 이 전시 개막하기 이틀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불운의 화가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전시장에는 최경태 작품도 여러 점 걸려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성에 대한 작가의 외로웠던 싸움에 설움이 북받쳤다.

 

아래는 박건씨의 “나는 산다” 작업노트다.

 

“작가들은 걸작 명작 범작 수작을 생산 한다

내가 넘 볼 수 없는 작업과 작품들이 많다

감당할 수 있는 노동과 돈이면 살 수 있다

내 작품이 팔릴 때 감동 한다

나도 삼으로써 그 작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이 감동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점에 주목 한다

공산품아트와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공산품을 사서 조합하여 혼을 불어 넣었다면

아예 혼이 담긴 작품을 사면 어떨까

컬렉터와 다른 차원이다

창작 방식과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물질로써 생산과 창작이 아니라

돈과 노동으로 바꾸어 내 것으로 만든다

창작 개념을 새로 더하는 일이다

내 작품을 팔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산다

내가 할 수 없는 작업을 산다

작품을 사는 행위나 개념도 창작이다“

 

그나저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꾸물대다 전시 끝나는 날이 임박해 버렸다.

다가오는 12일까지라니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설 연휴에도 문을 연다고 하니, 가족과 함께 인사동 나들이 한 번 하심이 어떤지요?

설날 선물로 진한 감동을 전해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6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 ‘말하고 싶다’전이 막 내리는 날이었다.

겨울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인사동 거리는 번개의 노래 소리만 처량하게 울려퍼졌다.

 

작품을 발송하러 전시장에 갔더니, 박 건씨 혼자 지키고 있었다.

코로나로 꽁꽁 얼어붙은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많이 팔린 이변은

박 건씨의 참신한 기획과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대개 전시가 끝나는 날은 다음 전시를 위해 일찍 철수하지만, 그 날은 늦게까지 진행되었다.

 

박건씨 도움을 받아 포장하고 있는데, 반갑게도 안성의 류연복 작가가 나타났다.

류연복씨는 3년 전 충무로에서 열린 ‘사람이다’전시에도 찾아와

이번에 네 점이나 팔린 '부랑자' 10번 중 1번을 소장해 준 분이 아니던가?

 

좀 있으니, 광주에서 귀한 손님들이 몰려 오셨다.

먼 걸음 해주신 것도 고마운데, 4층까지 무거운 막걸리를 한 상자나 들고 오셨더라.

전시 작가 주홍씨와 함께 오신 분은 5,18 역전의 용사라고 소개하셨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가두 방송을 맡았던 차명숙선생은 꽃다운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정열여사와 놀부지부장으로 통하는 김순흥교수도 함께 오셨다.

뒤 따라 전시 작가 고경일씨와 김진하 관장도 등장했다.

 

그런데, 김순흥교수께서 쓰고 있는 안경은 알이 하나 밖에 없었다.

요즘 젊은이야 멋으로 안경테만 쓰고 다니기도 하지만,

연세 지긋한 분이라 의외였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한 쪽 눈은 이상이 없으니, 안경알 하나라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날 광주에서 비행기로 공수해 왔다는 막걸리가 보통 막걸리가 아니었다.

막걸리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맛이 귀가 막혔다.

막걸리 뿐 아니라 곰삭은 홍어와 묵은지 김치까지 챙겨 오셨는데,

둘이 먹다 한 놈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었다.

 

하필이면 이날따라 차를 끌고 와, 술은 맛만 보아야 했다.

지지리도 술 복 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손님이 남아 계셨지만,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주차비 아끼려고 인사동 골목에다 차를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포장 마무리도 하지 못한 채 빠져 나와야 했다.

 

그날 광주전시도 거론된 것 같은데,

불 붙은 김에 한 판 더 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말하기 싫을 때 까지...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말하고 싶다’전이 이제 종반에 접어들고 있다.

요즘은 인사동 전시도 대폭 줄었지만, 갤러리를 찾는 관객조차 뜸한 코로나 정국이 아닌가?

그러나 이 전시는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많은 작품이 팔리는 이변을 보이고 있다.

물론 참여 작가 열일곱 명의 역량과 작품 내용에 따른 관심이겠으나

아무리 좋은 전시라도 홍보에 따라 관객 수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

 

 공산품아트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박 건씨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전시다.

혼자 전시장을 지켜가며 작품 판매에 올인 하고 있다.

물론 김진하관장도 틈틈이 도와주지만, 신들린 듯 전시에 몰두한다.

안 팔리기로 소문난 내 사진이 세 점이나 팔렸다니, 다른 작품이야 말할 것도 없다.

 

불황에 맞서 작품 가격을 파격적으로 책정한 것도 한 몫 했으나,

오로지 박 건씨 노력에 따른 결과다. 화가가 화상으로 전업할까 걱정된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매일 매일의 경과를 페북에 올리고 있는데,

어찌 배짱 편하게 방구석에서 뭉갤 수 있겠는가?

 

정 동지 옆구리를 찔러 인사동 나가 밥이라도 한 끼 사라고 했다.

출품 사진도 정동지가 프린트했지만, 사진 판 돈도 정동지가 챙기니

밥도 그가 사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지난 19일 정오 무렵, 인사동 ‘툇마루’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추가로 프린트한 사진 때문에 ‘나무아트’부터 들렸다.

전시장에는 박 건씨를 비롯하여 관객 두 명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작품 판매로 연결되진 않았으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여지 것 판매보다 보여 주는 전시에 그쳤으나 이 전시는 달랐다.

다들 작품 가격을 살펴보며 지갑 사정을 저울질한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서둘러 ‘툇마루‘에 갔더니, 정영신씨와 김진하관장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된장비빔밥에다 막걸리와 녹두전 등 음식도 푸짐하게 시켰더라.

 

그런데, 요즘 김진하 관장이 틈틈이 산에 오르더니 몸 짱이 되었단다.

몸도 몸이지만, 산사진에 더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이제 화가와 미술평론가에서 사진가란 이름도 더하게 되었다.

누구나 산에 오르면 사진이야 찍지만, 그가 보는 산은 달랐다.

별거 아닌 풍경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았다.

덕분에 요즘 김관장이 페북에 올려주는 산 사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안주는 남았으나 술이 모자랐는데, 낮술에 맛이 갈까 더 시켜주지 않았다.

'툇마루'는 갈 때마다 서비스 안주가 나와 하나만 시켜도 될 텐데,

음식이 남아돌아 이 것 저 것 싸오는 주접을 떨게 만들었다.

좌우지간 원님 덕에 나팔 한번 잘 불었다.

 

그 날은 날씨가 포근해 그런지 인사동에 사람이 제법 나왔더라.

이 처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사동은 길거리만 돌아 다녀도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일층 쇼 케이스마다 전시하는 대표작이 걸렸기 때문이다.

 

전시장으로 올라 와 ‘나무다방’ 미쓰터 김이 타주는 다방커피를 마시며

최백호의 노래처럼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허전함도 느꼈다.

 

한국조폐공사에서 인사동 지점을 냈는지, 박건씨는 전시장에서 지폐를 그렸다.

돈이 박 건 작가의 손을 거치게 되면 지폐 단위가 배로 올라간다.

작가의 말로는 아주 정교한 판화이며 공산품이라는 것이다.

천 원권 지폐에 새겨진 퇴계선생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거기다 서명을 하면,

돈에 앞서 한 해의 액운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정영신씨는 십 만원하는 신사임당 지폐는 엄두를 못 내고

만 원 내고 다섯 장을 사 갔는데, 어찌 작가의 품값에 미치겠는가?

그나저나 전시장을 매일 지키는 박 건씨가 안쓰러워 못 보겠다.

환갑이 지난 처지에 보름동안 전시장을 지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단체전이라 하루에 한사람씩 나누어 지키면 좋으련만, 괜찮단다.

 

하기야! 그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흥행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주말이면 관심 있는 분은 대충 다녀갈 것 같아

월요일은 내가 전시장을 지키기로 했다.

 

월요일에 인사동 나올 걸음 있는 분은 ‘나무아트’로 구경 오세요.

전시장 문 닫는 오후6시 무렵에 ‘유목민’에서 술 한 잔 합시다.

 

사진, 글 / 조문호

판형 : 150x180mm / 내지면수 : 192 

정가 : 18,000원

강310-망치반가사유 Dismiss the President 75 X 53cm Digital print 2020

 

 

예술가 박건의 40여 년 간에 걸친 작업과 작품을 수록한

한국현대미술선44 ‘박 건’이 지날 달 ‘헥사곤‘에서 출판되었다.

 

며칠 전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최경태 전시회에 갔다가

우연히 박건씨를 만나 새로 나온 그의 작품집을 선물 받은 것이다.

 

작품집에는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동안의 작업과 작품 160여점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중간 중간에 작가노트를 비롯하여 공선옥, 김진하, 김용익, 류병학, 성완경, 양정애,

원동석, 장석원, 전준엽, 정정엽, 조혜령, 하일지, 홍성담씨 등 많은 분들의 비평이 실려 있어

작품과 작가의 예술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조그만 책자지만, 무겁고 부담스러운 대형도록보다 훨씬 알차게 편집되었더라.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책 보관할 곳이 없어 침대 밑을 서고로 사용하는데,

일단 그 밑에 들어가면 폐품으로 끌려 나가기 십상이다.

대개 사진집이나 도록이 그에 해당되는데, 본인으로서야 소중할지 모르지만

책을 보고 난 입장에서는 무거운 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리즈로 출판되는 눈빛사진가선이나 ‘한국현대미술선 등

작은 판형의 책이 아니면, 집에 들이지도 않는다.

다들 얼마나 돈이 많고 가오가 중요한지 모르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난, 박건씨의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판화와,

2017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공산품 아트 밖에 아는 것이 없다.

작가도 한 때 전교조 활동으로 작업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나 역시 2000년대는 강원도 정선에서 두메산골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세상과 등 돌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건씨의 작품집을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감했다.

내가 몰랐던 작품이 더 많았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그림도 있었다.

'까마귀’, ‘부엉이’, ‘빈방’, ‘탁족도’, ‘또 다른 나’, 얼굴 없는 나‘ 등

푸른 색깔이 주조를 이룬 2010년대 그림에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빈방 An empty room 16x23cm Acrylic on canvas 1996

 

가랑이를 쩍 벌린 여인의 도발적인 자세나 푸른빛에 드리운 음산한 분위기에 푹 빠져 들었다.

그친 터치로 형상화한 여체가 마치 유령처럼 다가왔는데, 유령이 왜 친숙하게 느껴질까?

작가의 사유적 깊이나 미적 감성이 압권 이었다.

 

박건씨는 80년대부터 ‘꽝’, ‘코카콜라’, ‘강’ 등 미니어처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바 있으나

2017년부터 공산품 아트란 새로운 깃발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복귀했다.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자유로움과 왕성한 창작력이 바탕 되어 기발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흔하고 값싼 사물에 작가의 혼을 불어넣어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 Mount Baekdu Crow 120x360cm Acrylic on blackboard 2007

부엉이 Owl 10X 20X 2,5cm Acrylic on paint box 2010

 

 

한 예로 부러진 망치 위에 해골 미니어처를 앉혀 생각에 잠기게 한 ‘망치반가사유상’이 있다.

부러진 망치로 ‘부러진 권력’을 상징했는데,

이 하잘 것 없는 기물로 권력의 무상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무아트’ 김진하씨는 박건의 ‘비상업적 상업성’ 복제 멀티플 작품의 유(소)통 실험이라며,

1980년대 이래로 작업방식과 문법뿐만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제도적 틀로부터 탈주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장르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태도는

서민과는 거리가 먼 귀족적 예술에 똥침을 날렸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란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손바닥만 한 작품으로 요지경 세상을 펼쳐 보이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에 대한 기준과 가치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인 공산품아트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을

요리 조리 변형 시켜 동시대에 걸맞은 시각언어로 이끌어낸다.

버려지거나 값싼 재료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버림받거나 고장 난 물건들을 보면 연민이 든다.

나도 언젠가 그랬고 앞으로 그렇게 될 동질감을 느낀다.

쓸모 잃은 동시대 재료들을 서로 결합시키면서 일상과 시대의 정서를 끌어내거나 밀어 넣는 재미가 좋다.

요즘 공산품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값이 쌀 뿐 아니라 정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이런 편리한 소비가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일상과 사랑, 자본과 노동, 문명과 역사는 나의 예술에서 외면하기 힘든 주제다.

공산품들이 그런 말을 작심하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거 같다.”고 작업노트에 밝히기도 했다.

 

‘강’은 조각이라기보다 이야기나 만화에 더 가깝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의 부러진 목과 핏빛을 이룬 강의 폭력적인 내용이 달콤한 음악적 선율에 가려졌다.

 

 

화가 전준엽씨는 작가를 ‘금지된 장난의 연출가’라 말할 정도로

사회적 내용을 연극 무대 꾸미듯 만들어 간다.

하나의 모형도를 제시하는 장면 연출솜씨가 탁월하다고 말했다.

미니멀한 작업으로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끌어내거나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질탕한 놀이까지 담아내는 거침없고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박건씨는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81년에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학교도 그곳의 동아대학교 미술학과를 나와 성암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직하였다.

대학 재직시절에 두 차례의 발표전을 가졌을 만큼 작가활동은 일찍부터 해 왔다.

전시장에서 작가 자신의 몸으로 어떤 사건이나 개념을 직접 연출하여 보여 주는

이른바 ‘행위미술’이라고 부르는 계열의 작업이었다.

 

일상에서 예술 만들기가 생활화된 박 건씨는 못하는 게 없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동안 작가, 교사, 전시기획, 출판 미술기획, 시민기자, 아트프린트제작, 퍼포머 등

다양한 직업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예술도 회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판화와 조각, 사진, 문학, 행위예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명과 욕망, 일상과 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81년 이후 망가진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 마네킹의 머리, 플라스틱으로 된 미니어쳐 병정등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처리, 재결합하여 특이한 상황을 연출해 보여주는 ‘오브제’류의 작업을 해왔다.

81년의 ‘오브제, 12인의 현장‘전(부산)을 비롯하여 , 82년의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서울),

83년의 ’인간‘전, ’젊은 의식’전, ‘시대정신’전, ‘잡음, 혼선, 소란‘전, ’횡단‘전(이상 모두 서울) 등

여러 그룹전에서 발표된 것들이 이에 속한다.

 

불심검문과 압수수색이 수시로 벌어지던 암울한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소지품검사’도 눈길을 끈다.

 

 

기질의 일관성, 작업과정이나 행위의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특성, 결정적 사건의 연출, 주제의 현실성 등은

앞서 열거한 여러 그룹전의 작가들(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그룹전인 ‘시대정신’, ‘젊은 의식’,

‘횡단’의 작가들) 속에서도 특히 그의 작업은 눈길을 끄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1984년 성완경씨의 비평 중에 작가를 소개한 글이다.)

 

책머리에 쓴 박건씨의 헌사에서 힘들었던 성장 환경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책을 굴곡진 시대를 피난민으로, 독립된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가신

어머니(임민희 1933-1991), 이념 전쟁의 후유증으로 옥살이를 하고,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다 세상과 일찍 결별하신 아버지 (박영기 1928-1970)

영전에 바친다.”고 썼다.

 

글 / 조문호

 

행위-페트롤카 Patrol car 45x 45x 40cm Mixed media 1982

박건의 입체작품은 이야기구성을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 대한 감정이나 비판 정신이 강하다.

1985년 한강미술관의 3인의 시선에서 보여 준 박건의 ‘구토’

긁기80-2 Scratch80-2 53x45cm Oil on canvas 1980

79년 부마항쟁 때 남포동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어 당한 고문의 고통을 ‘긁기’ 연작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이 작업은 독제정권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단색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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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없는 ‘최경태전’이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술독에 빠진 작가를 위해 주변 분들이 마련한 전시다.

 

전시가 열리는 지난 2일 정영신씨와 함께 전시장에 들렸다.

 김진하관장과 박 건화백을 만났는데,

술에 중독되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단다.

오로지 막걸리로 연명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최경태씨를 마지막 본 것은 문영태 화백 유작 촬영하러 간 강화에서다.

그 때 술집에서 본 후 만나지 못했으니, 4년은 족히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붓 대신 술과 놀았으니, 그림이나 그릴 수 있었겠나?

 

전시된 작품을 돌아보니, 초기의 민중계열 판화작품에서부터

여고생 시리즈와 인형 등 많지 않지만 골고루 걸렸다.

마치 십 구금을 뜻하듯 열아홉 점이 걸려 있었다.

 

최경태의 여고생 시리즈는 아이들이 처한 성문화를 현실 비판적 시각에서 그린 그림이다.

성기노출이 사람에 따라 불편할지 모르지만, 음란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왜 사람들이 성기 노츨에 색안경을 끼고 과민반응 하는지 모르겠다.

안 보이는 곳에서는 더 추잡한 짓을 하는 그 위선에 침을 뱉고 싶다.

 

아직까지 작품을 예술이냐? 음란물이냐?로 따지는 세태가 더 슬픈 것이다.

까발리는 최경태의 작품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여고생들이 담배를 꼬나 문 반항적인 포즈도 그렇지만,

스스럼없이 까발리고 앉은 자세가 기존의 도덕적 잣대를 분질러버린 것이다.

 

최경태는 한 때 민중미술가로서 권력을 비판한 위치에도 있었다.

그러나 여고생 연작에서 비윤리적인 변태로 취급 받았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발가벗겨 세상에 내 놓아 비난과 멸시를 받았지만,

성에 관한 집단적 위선과 기만을 들추어냈다.

고발에 따른 법정투쟁, 작품소각과 벌금, 반항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고행의 연속이었다.

 

최경태가 인형을 통해서 말하려는 것도 바로 욕망의 문제였다.

최경태 그림에 등장하는 인형이나 여고생은 자신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그런 문제작가가 알콜 중독자가 되어 나락에 떨어져 있으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술이 취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최경태 작품은 소장가치가 높다.

부디 재기를 바라며, 많은 분들의 관람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 전시는 12월 8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글은 박 건씨가 올린 글을 옮겼다.

 

송용민 작가가 강화에서 작품을 실어오고

김진하 관장이 1시간도 안되어 뚝딱 작품을 배치하고 조명을 비추자 준비는 끝났다

 

모두 19점을 걸었다

유화는 2000년 전후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

목판화 3점은 1990년 초 30년 전 작품으로 유리액자 속으로 곰팡이가 슬었다

고분고분한 작품들이 피난 나온 느낌

 

전날 송작가가 최경태 작업실에 갔다

보일러 설정 온도를 보니 어이상실 8도

혈액순환이 안 되어 다리가 퉁퉁부었단다

급히 연탄난로를 정비하고 불을 지폈다

그제서야 몸이 녹기 시작하더란다

 

돌아버릴 일은 또 있다

집 안 화장실이 지척인 데 물내리기 아까워

소파 근처 깡통에다 오줌을 잘잘잘 싸더란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붓더란다.

창 밖에는 버린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고..

 

예전에 기초생활수급신청으로 하려고

작가가 스스로 마을 민원실로 찾아가 접수를 시키려 했단다

어르신 한 가지가 걸려서 안돼요..

경차는 되는 데 300만원도 안 되는 코란도 중고차량 탓에 딱지를 맞았단다

여러 가지로 딱하다..

 

5년전 인사동 '인사아트;에서 열린 '7인의 사무라이전' 개막식에 참여한 최경태와 마문호씨

 

 

최경태

경태가 사라지고 있다

모두 떠나간다

배도 끊긴 섬이 되었다

청소도 안하고 먼지도 쌓였다

쌓이고 쌓이고 무덤처럼 찌들었다

씻지도 벗지도 빨지도 않는다 안한다 할수없다

술을 마셔야 잠들고 자야 술을 마실 수 있다

꿈 아니면 술이다

3년 반도 넘었다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되었다

자존감은 살아있다

부끄러워 홀로 마신다

잔소리가 싫고 짜증나고 신경질이다

폰 전원도 꺼버렸다

죽어 백골이 되고 있는 지 알 길이 없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면 부시시 문을 연다

다행인지 겁은 살아있다

소주는 안먹고 강화도생막걸리만 마신다

죽을 용기도 없고 죽는게 무섭고 두렵다

밖에 안나간다

사람 안만난다

모두 틀렸고 술만 옳다

 

보지를 그리기 때문일까

정치보지 경제보지 원조보지 예술문화보지

보지를 그리면 행복하다 기쁘다 가엾다 밉다

보지가 화엄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전쟁과 평화도 그 속에 있다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다

따스한 양수에 잠기고 싶다

보지를 그리고 싶은 데 보지로는 안된다

보지가 팔리다가 더 이상 안 팔린다

자지도 그려 보니 조금 팔렸다

일어서지 못하는 자지다

더는 못그렸다

이제 안그린다

못 그린다

다른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술만 마시고 잠들고 사라져간다

사라지는 경태가 최경태다

최경태는 최경태를 그린다

 

최경태의 '최경태'전

2020. 12. 2 - 12. 8 / 나무아트

기획, 후원 : 송용민, 나무아트

 

'나무아트'에서 전시한 박건씨

‘카메라 시인 상’ 받아 본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영예로운 상을 운이 좋아 받게 된 것이다.

 

지난달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인사동에 관한 쓸쓸한 이야기로

‘인사동 그 정처 없는 발길’이란 글과 사진을 포스팅 했는데,

그 글을 본 작가 박건씨가 ‘카메라 시인상’이란 과분한 상을 준 것이다.

 

당시 박 건씨는 ‘나무아트’에서 ‘자가격리 F4’ 전시를 열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카메라 시인 상’ 작품을 만들어 찾아가라는 거다.

그러나 상을 받는 게 쪽팔려, 차일피일하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페북 댓글에 올라온 ‘나무아트’ 김진하관장의 찾아가라는 독촉을 받아서야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한 달이나 지나버렸다.

그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상 받으러 간 25일은 인사동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쌈지 앞 담장에는 양반 꽃이라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임금을 기다리다 죽은 궁녀의 슬픈 전설이 담긴 능소화 아래는

소녀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무화랑’에 올라 가 김진하관장으로부터 상을 전해 받았는데,

마치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받는 기분이었다.

내 평생 이런 영광스런 상은 처음 받아 보았다.

 

아파트 칸칸에다 상을 주게 된 행적을 적었는데,

마치 유적지에 세워 둔 공덕비 비문처럼 느껴졌다.

한 쪽에는 마스크를 쓴 신사임당 지폐에 재난기본소득이라며

작가의 서명까지 해 두었다.

 

그 돈도 작품의 일부지만, 뜻하는 바가 컸다.

돈이지만 사용할 수 없는 영원한 돈인 것이다.

이제 죽을 때까지 비상금은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 상 자체를 우습게 여겼는데,

이 상은 개인이 주는 순수한 상인데다, 상 자체가 작품이 아닌가.

볼 때마다 각오를 다지며 두고두고 기념해야겠다.

 

이런 게 제대로 된 상이다.

다른 상은 다 버려도, 이 상은 죽을 때 같이 화장할 거다.

다시 한 번 상을 준 박 건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루하고 답답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울한 일상을 보내는 즈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색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김주호의 ‘태평천하’전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회현상의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한 요지경 속 풍속도다.

태극기부대가 등장하는가 하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배설물들이 여기 저기 전시되어 있다.

아기자기하게 탁자에 놓였거나 벽에 걸린 작품들은 장식적 요소까지 더해 ‘나무화랑’ 전시장이 색달라 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사회 비판이며 진술이자 풍자다.

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슬프지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4월 6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번의 다양한 근작들엔 미술 이전에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미술 이후의 '사람'을 말하고자 하는 김주호의 작업태도가 잘 드러난다. 질구이, ·버려진 폐품 오브제,·드로잉,·낙서,·메모,·기타 즉발적인 언어로 미술개념,·이즘,·형식,·활동방식…등 기존 미술의 틀과 형식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과 이웃이 함께하는 작업의 원초적 의미를 반증하는 것이다. 최근 그는 과거보다도 더 미술판이나 미술을 둘러싼 제도로부터 확연하게 벗어난 듯 보인다. 스스로 '동네작가'로 만족하는 그의 미술 '이후'가 더 자유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미술평론가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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