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나에게
노승기展 / RHOSEUNGKEE / 盧承起 / painting
2020_0401 ▶︎ 2020_0406



노승기_북촌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30.3×162.1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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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36.6669/737.6669

www.galleryis.com



전시 서문 ● 일상의 풍경은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공유하고 있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보는 방식일 뿐이다. 진정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우리들의 풍경과는 달리 흔들린다. 솟아오르는 나의 기억과 상상이 끊임없이 풍경으로 가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풍경이 나에게 올 수 있어야 한다.

노승기_이화원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30.3×162.1cm_2019


전시 평론 ● 내 앞의 사물을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나와 똑같이 볼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이러한 보는 방식은 '보는 나와 보여지는 대상'의 명확한 구분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방식에 기하적 원근법이 더해진 틀로 우리는 일상의 풍경을 본다. 그러나 이렇듯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토대 위에서 보게 되는 풍경은 사물들의 표피 만을 재현해주는 죽은 풍경이다.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조금만 집중해서 보면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실은 내 머리 속에서 내가 만드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들이 거기에 덧입혀진다. 보는 것에 몰입할수록 더 깊이 묻혀 있는 기억들이 소환되어 풍경과 엉킨다. 풍경과 엉키는 그것이 기억인지,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불안이나 소외감이 만들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풍경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내가 살아 있다면, 나의 감각이 깨어 있다면 죽어있는 풍경을 볼 리가 없다.


노승기_두오모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30.3×162.1cm_2018

노승기_밀라노 두오모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30.3×162.1cm_2018

노승기_두오모 성당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90.9×116.7cm_2018

노승기_DDP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연필과 유채_112.1×162.1cm_2019


사람은 태어나서 무엇을 보기 전에 누구로부터 자신이 보여지는 경험을 먼저 한다. 성장한 이후에도 사람의 시각장에서는 연관된 상황이 지속된다. 언제나 사람은 한 곳을 보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사물들은 사방에서 그를 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응시 되는 경험은 일상 속에서는 할 수 없다. 우발적으로 매우 섬찟한 느낌을 수반하며 가끔씩 경험할 뿐이다. 사람의 충동은 시각적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출현한다. 그러나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면 훨씬 자주 응시를 경험할 수 있다.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의 본 모습을 보고자 감각을 열고 풍경에 몰입하는 시도를 거듭하면, 어느 순간 보다 더 수월하게 응시를 경험할 수 있다. 그때마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승기_동대문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62.1×130.3cm_2019

노승기_동해안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20

노승기_산토리니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62.1×260.6cm_2020

노승기_외설악 풍경, 나에게_캔버스에 유채_130.3×162.1cm_2018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보통 무엇에 대해 안다는 것과 연결된다. 그 점이 대표적 시각 예술인 회화에 있어서, 형식미를 벗어나는 표현이 있을 때, 감상자가 작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 시각예술의 창작과 감상은 공히 시 지각의 수용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예술경험이다. 따라서 '본다'라는 것에 대한 규명은 작가에게 있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화두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이를 전시의 주제로 설정하다는 것은 다소 진부한 시도로 보여진다. 작가는 2017년 개인전 『권력과 저항 』에서는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무방비적으로 순응하게 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나타내 보려 했는데, 그 전시도 유행이 지난 주제를 다루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적어도 작가에게는 그의 내적 필연성에 의한 실존적 행위로 봐야 한다. 현실 체제 너머의 놀이를 통해 살아갈 힘을 강화하는 것이 예술의 본령이라는 것이 작가의 일관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 노승기



Vol.20200403c | 노승기展 / RHOSEUNGKEE / 盧承起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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