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짱돌의 역사』 출간 기념전


이태호展 / LEETAEHO / 李泰豪 / mixed media
2020_0420 ▶︎ 2020_0504



글_강성원, 김진하, 최태만 || 면수_240쪽 || 판형_국배판(22.5×30cm) 소프트양장초판발행
2020년 1월15일 || ISBN 979-11-88845-03-3 || 가격_40.000원 || 출판사_나무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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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현실을 관통하는'짱돌'의 미학1. 작업은 작가의 개성만큼이나 각자 동기나 입장, 내용과 형식이 다르다. 서정적 내면, 사회적 내용, 미술에 대한 개념, 기술적 숙련도, 대중성이나 시장성, 조형적 형식, 소통방식 등 작가들이 중요시하는 게 많다. 각 요소들의 불규칙한 교집합으로 구성된 작가들마다의 미술에 대한 접근방식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 그러나 그런 다양함도 단순화시켜 보면 크게 둘로 나뉜다. 기존 미술제도의 틀 내부에서 자기형식의 완결도와 스타일을 추구하며 보편적 미학으로 관객이나 시장에 연착륙하려는 입장과, 고착된 미술개념으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하며 제도적 틀을 돌파하려는 저돌적 자세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현대미술작가는 모순되어 보이는 이 둘을 절충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스탠스를 취한다.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인'과 자기 발언을 시도하는 '작가'의 영역 사이에서 천칭 손잡이처럼 양쪽을 아우르는 균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상당 부분이 미술관/상업화랑, 대안공간/아트페어를 동시에 수용하고 욕망해온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생활인이기도 한 작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이해가 되면서도 뭔가 애매하고 또 아쉽다. ●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지금까지 이태호는 기성 상업공간이나 주류미술계의 제도나 관행에서 벗어나서 작업해왔다. 작가들끼리 암묵적으로 형성한 '화단'이란 협소한 구조에서 궤도 이탈한 채로. 자신의 작업행위가 어떻게 시민들과의 공통된 삶의 분모로부터 도출된 인식의 시각적 기호가 될 것인가에 대해, 또 미술이 동시대 현실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서 기능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직접 혹은 여타의 매체를 통해 대면한 당대 및 역사적 사건과 현상에 대한 문제적 시각 - 거기에 반응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사유 - 그런 사건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 분석 - 그리고 그 사건의 사회적·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바탕에서 발화發話했다. 현실에 반응하는 자신의 시각과 인식을 소재에 맞는 형식으로 형상화하고, 주제에 어울리는 소통방식을 시도했다. 내용에 따라서 재료나 형식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고 그때그때마다 작업스타일은 달라졌다. 특정한 방식으로의 게릴라식 개입과 탈주는, 당연히 자기복제적 매너리즘의 반복을 배제하면서 장르문법의 정형화된 틀로부터도 벗어났다.


이태호_근대 짱돌의 역사-전봉준의 돌_혼합재료_2010


2. 이태호는 조각을 전공했다. 그러나 초기작업 약간에서만 조각적 흔적이 있을 뿐, 주로 일상에서 채집한 온갖 레디메이드 혼합재료와 시각이미지로 문자·사진·데꼴라쥬·몽타쥬·이야기조각·설치·혼합기법·타이포그라피·영상·스텐실·실크스크린·목판화·T셔츠·거리미술·설치·퍼포먼스…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형식들을 파노라마처럼 변주했다. 작품이 소통되는 장소도 전시장으로부터 길거리에 이르기까지 구분이 없다. 그만큼 다채롭다. 또 자유롭다. 언뜻 보면, 40년을 진행한 작업이 어떤 게 '이태호的'이고 또 '이태호式'인지 종잡기 어려워도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그의 다양한 스타일을 관통하는, 가공하지 않은 현실미학이 드러난다. 현실을 향해, 역사를 향해, 미술을 향해, 우리들의 의식을 향해 던지는 '짱돌'의 미학 말이다. ● 짱돌은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돌멩이다. 잘 다듬어진 조약돌과는 달리 깨어지고 모가 나서 못생겼다. 무엇을 두드리는 도구이거나, 그 스스로 특별난 것 없는 흔한 존재이거나, 강자에게 항거하는 약자들의 돌팔매를 위한 원시적 무기 이미지다. 이런 짱돌을 작업의 소재이자 작업내용을 견인하는 의미론적 단서로 상정하는 건, 작가 자신의 계급성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특정한 대상에 저항과 공격성을 담보하고 있어서다. 물론 그 짱돌의 공격 대상은 불의한 권력, 폭력적 역사, 사람들 내면의 부조리한 모순, 허위로 포장된 미술도 된다. 그러니까 여러 작업 경향을 가로지르는 이태호의 현실미학은 자신의 작업을 짱돌로 대체하려는 작가적 의도가 그 바탕임을 노정하고 있다. ● 위에서 언급한 여러 작업 스타일의 등가물처럼, 이태호는 지난 40여 년간 여러 직업도 전전했다. 학부시절 소설가 등단·조각가·잡지사 기자·미국 유학 시절 노동자·미술평론가·미대교수·국제미술전 기획자·공공미술기획자·번역가·작가 등 고정되지 않은 이력들이다. 작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작업을 유지하자면 시공간적·경제적 조건에 맞는 작업 방식이 필요해서 이태호 특유의 작업스타일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잡지사 기자시절엔 잡지사진과 글씨를 재배치하면서 당시 한국사회의 모순을 직시한 꼴라쥬나 편집을 응용한 작업을, 가난한 유학생시절엔 학교작업실에서 버려진 조각재료들을 활용한 입체를, 그리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는 가볼러지(garbology)적 도시생태학의 관점에서 버려진 폐품을 재활용하며 역으로 동시대적 한국사회와 일상적 문화를 연역해내는 「상패」와 「책읽기」연작 등의 작업을, 대학에서 근무하던 시기인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때엔 학생들과 공동작업한 스텐실 기법의 그래피티와 영상작업을, 세월호 정국에선 그래피티와 T셔츠 등을, 이후 광화문 탄핵시위 때는 다큐멘터리 현장사진을, 그리고 최근에는 목판화벽보 붙이기 거리미술작업을 하고 있다. 직업을 통한 사회적 경험이 작업소재로 상당 부분 활용된 모양새다. ● 다종다양한 직업편력만큼이나, 그리고 고착된 미술제도에 대한 일탈의 의지만큼이나, 그의 작업은 특정한 양식이나 스타일로 구획 지을 수 없게 전개되어왔다. 래디컬하고 즉발적인 형식을 창출하고 구사해온 이태호의 이런 게릴라식 작업은 당연히 특정한 스타일이나 고정된 양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다.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진술도 중언부언하는 관념이나 겉멋으로 포장된 미사여구의 수사를 배제한 채 간단하고 단호하다. 미술행위를 하는 이유와 태도에 의해서 자신의 미학적 입장이 선명하게 결정 났기 때문이다. 거기엔 선험적으로 양식화된 관념적 스타일이 개입할 자리는 당연히 없다. 현실과 사유와 작업이 자연스럽게 통일된 주지적인 실천의 과정이 개념으로 전치되었을 뿐이니까. 살아있는 과정의 기록이자 증빙, 그 결과로서의 사회적 지향성이 이태호에게 있어서는 작업인 셈이다. ● 전반적으로 푸어아트(Poor Art)나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와 같은 날것에 가까운 질료성과 거기에 반응하는 순발력이 두드러지는 것은, 미디어보다는 메시지를 중시해서 당대적 사건과 현상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비정규군 같은 발언 본능 때문일 게다. 물신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기능과 의미를 상실한 채로 용도가 폐기된 상품은 교환가치라는 '아우라'를 상실한 것들이다. 그런 레디메이드 주검들을 문화적 부장품이나 기표들로 재배치하는 것은, 그 '쓸쓸한' 아우라의 사체가 현실을 역으로 반영 할 수 있는 오브제라서 그렇다. 거세된 물신성에서 바로 조금 전까지의 삶을 냉정하고 리얼하게 반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재료는 이태호가 구사할 수 있는 적절한 음소이자 어휘로 손색이 없다. 일상에서 채집한 질료로부터 곧바로 작업으로의 이행은 제작과정과 기타 시공간적 전시조건을 부담 없이 만든다. 작업의 핵심 개념인 소통으로 직진할 수 있는 속도를 확보한다는 것이고. 정형화된 소비적·타성적·습관적 작업 관습이나 제도에 매몰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 이렇듯 작업을 관통하는 토대에는 이태호가 일상에서 대면하거나 체험한 개별적 사건과 더불어, 한국근현대사를 가늠하는 대하적 서사의 맥락화와 재구성화라는 미학적 통찰이 분모로 깔려있다. 그것은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그의 성찰로부터 기인한다. 착종된 근대성(Modernity), 근대성의 허위가 구축한 탐욕스런 자본주의, 천박한 자본과 결탁한 마초 권력, 그 결과 비뚤어지고 왜곡된 시민의식 등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기도 하다. 그것을 어떻게 작업으로 드러내고 관객과 교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미적 돌팔매가 바로 그의 '짱돌미학'인 셈이다. ● 바로 그 지점에서 이태호가 궁극적으로 주목한 목표점은, 작가만의 관념적 세계에서 주물러진 채로 고립이 '신성神性'으로 고체화된 한국현대미술의 '소도蘇塗'로부터 속세로의 탈주다. 이는 미술에서 누락되었던 사회·역사적 지점에서의 타자와의 교감과 대화의 추구다. 기실 그랬다. 한국현대미술은 작가만의 관념과 미적 양식만 남기고, 광장의 살아있는 화용론적 언어들을 거세시켜 왔다. 그 결과 그곳에는 타자와 단절된 작가의 독백과 사물의 방백만이 자리했다. 우물 안 고립의 성채는 사회적 소통을 차단한다. 공감을 위한 공동의 장에서라야 관객과 수평적 만남이 가능하고, 그런 공감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열림을 지향하는 미술행위의 단서다. 대중들과 유리되지 않은 일상적 재료와 내용과 언어로 짱돌을 던지는 이태호의 어법과 행위는, 그래서 생생하고 자연스럽다. ● 위의 기술로 보자면 이태호는 천성적으로 리얼리스트다. 그러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만 서술하거나 재현하는 자연주의나 기계적 리얼리즘으로부터 일탈한 다양한 양식적 지점에선 모던한 실험적 형식주의자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그는 김수영과 닮았다. 김수영은 자기반성과 문학적 성찰에 입각한 모더니스트인데, 그의 통찰의 범주에 동시대 사회에 대한 참여와 비판이 있었기에 그는 독자들의 공감에 의해 진화한 리얼리스트로 '해석'되고 '수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이태호에게 있어서도 이런 리얼리스트/모더니스트란 단선적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기가 감지하고 인식한 바대로 정직하게 말하고, 관객 또한 주체적으로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는 것이니까. 이태호의 작업을 특정한 진영이나 범주에 가두고 규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는 스스로의 본능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작가일 뿐이다.



이태호_대통령상_필름_00:05:04_2006


3. 1980년대. 한국에서의 수컷들 삶은 새벽 사우나에서 자신의 육체를 훈증으로 쪄야만 할 정도로 자해(self-injury)적이었다. 어제의 피로와 간밤의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스트레스의 원인인 생존투쟁, 그 이면의 정치사회적 구조와, 개도국 시민성과, 오로지 경제적 욕망만을 향하는 행태에의 반성이나 성찰은 간과하면서, 그저 지친 몸뚱이에서 수분을 강제로 배출하는 행위만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 개별인들의 일상적 행위이자 사회문화적 현상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과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삶을 못살게 구는 이율배반적인 실존의 현실에서 살았다는 반증이었다. 밤새 술집을 거쳐 새벽 사우나에 다다른 지친 영혼과 육체는, 그래야만 한국 중산층의 도회적 계급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 이런 사회·직장생활을 하는 가장들의 소돔이자 유토피아를, 소위 중산층이라는 모순된 삶의 한 단편을, 이태호는 전자렌지 속 시뻘건 조명아래에서 드러눕거나 앉은 고깃덩이 인체인 「사우나」(주1)란 작품으로 제시했다. 당시 한국미술계에서는 다소간 낯선,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활용한 풍유였는데, 형식과 주제의 일치가 선명한 작품이었다. 웰메이드(well made)의 조각적 장인성을 거부하고 대충 깎은 미니어쳐 목각 인체, 기성품인 전자렌지의 사우나로의 전치, 그러면서도 기존 조각형식에서 일탈한 개념적 형상성이 구축한 명징한 서사적 주제 때문에 그 비판성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나의 작가 이태호에 대한 기억은 이 작품의 동시대적 전형성으로부터였다. 강렬했고 또 반복적인 장인성에 매몰되어있던 당시 한국 미술계의 보수적 행태에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 그러나 이후 이태호의 작품은 볼 수가 없었다. 1984년 「사우나」를 제작할 당시 그는 그룹『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자, 미술잡지『계간미술』의 기자였다. 그런 그가 1986년 서른 중반의 늦깎이로 미국유학을 감행했기 때문이었다. 90년대 말 미국에서 돌아온 그가 미술평론가이자 대학교수로 지낸다는 소식만 어디선가 들었다. ● 그를 다시 만난 건 재작년 그가 목판화를 하면서다. 선배 손기환 형이 그의 목판화 작업을 도와주면서 함께 자주 만나고, 또 2018년 그의 동덕갤러리 개인전 『근대 짱돌의 역사』전을 통해 미처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작업궤적의 전모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유실된 「사우나」 원작 대신, 나중에 재제작한 「사우나」를 다시 대면하면서. ● 『근대 짱돌의 역사』전의 인상은 이랬다. 70년대 이래 뭔가 허공에 떠도는 것 같았던 한국의 개념주의(적)미술(주2)에, 명료한 현실적 메시지가 착색되어지는 느낌. 작품과 관객인 나 '사이' 행간의 소통프로세스에서 정치적 맥락을 발생시키는 그런 소통궤적의 확인. 장르구분을 무화시키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 자신이 대면한 현실에서의 동시대적 문제들에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날 선 언어들의 향연 같다는 느낌. 잘 다듬어지거나 화장되지 않은 결과물에서 배어나는 작업에 대한 원초적 사유가 돋보였고, 거기에 비례하는 날것의 질료와 형식을 통해서 물질을 넘어서는 동시대 삶의 체험적·현장적 메시지가 선명하게 개념화되었다. 전시가 왜 필요하고, 전시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시장 미술의 좋은 예였다.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발언하면서도, 제도화된 조형문법으로부터는 탈피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신선했다. ● 이 전시 이후 최근 이태호는 목판화를 찍거나 인쇄해서 거리에 벽보처럼 붙이는 현장작업을 한다. 목판화란 장르의 강력한 표현력을 스트리트 아트의 전달방식과 결합한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과 더불어 이미 그 장르적 효용도가 다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던 목판화의 매체적 장점을 거리로 장소이동을 함으로써, 개별적이고 소극적이었던 목판화의 '표현의 장르' 개념을 적극적인 '소통의 미디어' 로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행위다. 이태호 본인이 판각한 시인 김수영의 초상 목판화와 그의 주요한 시와 산문의 한 구절인 "시여, 침을 뱉어라",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등의 타이포그라피를 스텐실 기법으로 첨가해서 거리 곳곳에 부착했다. 안국동·인사동·신촌·홍대입구·압구정동…. 여기에 대한 그의 작가노트 한 구절을 보자.


이태호_사우나_혼합재료_36×52×35cm_1984


『어떤 후배가 물었다. "왜 김수영을 거리에 붙이고 다닙니까?" 내가 대답했다. "내가 살고 있는 거리에 물건을 사라는 광고밖에 없어서.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라, 라는 메시지만 있어서. 그 소리밖에 없는 거리에서 그것에서 자유롭게 내 목소리를 내보고 싶어서. 내가 생각하며 살고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나만의 표정을 지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 목소리로 증명하고 싶어서. Commodity(상품)로 뒤덮인 거리에서,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 Humanity(인간)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서. 공기와 물마저도 사고 파는, 구매(상품)와, 소비(물건)와, 소모(시간)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구매와 지불이라는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벗어나 햇빛과 나무와 그림자라는, 그저, 혹은 거저 주고받는 자연과 인간의 질서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오늘날에도 세상에 예술과 문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그저, 혹은 거저 주고받는 상태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런 상태를 동경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이 거리의 작업은 대중들에게 무엇을 "하자!"는 수직적 접근이 아니다. 김수영의 얼굴과 그의 산문과 시의 짧은 문구만 인용해 놓았을 뿐이다. 김수영이 현실을 사유하는 태도를 지금 우리들의 일상에 다시금 던져본 것이다. 진부하게 반복되는 우리 삶의 양태와 매너리즘을 "툭"하니 건드려서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이태호 자신부터 현실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되새김질을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 이전의, 삶에 대한 그 나름의 호흡 방식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작가인 한 어쩔 수 없이 미술로 연계된다. 미술이 그의 삶의 기록이자 그것을 담는 미디어니까. 작가인 그는 그 삶의 증언자이자 결국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 이렇듯 벽보와 같은 일상적 경험의 질료가 작업으로 연결되는 통로에는, 여전히 궁극적인 주제를 향한 그의 미적 태도와 현실이 통찰로 버무려져 있다. 김수영식으로 말하자면 작업을 위한 '온몸'이 체질과 반성에 의해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앞선 개인전에서의 다양한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소재와 내용의 변주를 취한 것이다. 현실과, 자기 자신에게조차, 게으른 머무름을 용납하지 않아서다. 진부함에의 거역, 그것은 삶과 작업에 대한 일종의 폭포 같은 에너지다. 이 부분에서 작가 이태호는 김수영과 닮았다.



이태호_상패-전두환씨에게_혼합재료_28×34cm_2002


"김수영 글의 근본 에너지가 속도라면, 이 속도는 어떤 일정한 곳 혹은 목표를 겨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 어떤 곳으로부터 다른 어떤 곳으로 나아가는 데 그 의미를 둔다. 이 나아감-움직임의 역학을 김화영은 '벗어 버리다' 혹은 '날아간다'는 단어에서 찾는다. 움직임의 동적 관계는 '삐뚤리게 맺어짐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표출하는 마찰력'을 전제한다. 상호 흡수되거나 순화되는 것이 아니라 충돌됨으로써 그것은 어떤 의미의 생성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 나아감-전진과 상승의 에너지는, 그가 정확하게 적은대로, 시인에게 있어 '초월의 세계가 아닌 땅의 세계, 생활과 현실에서' 추구된다." _시의 희생자 김수영, 문광훈, 생각의 나무, p54



이태호_푸른 김수영-벽보_목판화_현장설치_2019


"그 어떤 곳으로부터 다른 어떤 곳으로 나아가는" 작업의 변주와 탈주의 방향과 에너지를 통해서 이태호도 '초월의 세계'가 아닌 '땅의 세계, 생활과 현실'을 지향하며 자신의 미적 실천을 강화시킨다. 그 과정은 이성적이다. 현실에서의 소재를 포착하는 것은 그의 갈등과 분노의 감정에 의해서겠지만, 작업과정에서의 언어와 형식은 절제되고, 마침내 관객에게 노출되는 결과물은 자연스레 '거리 두기(소격효과)'의 인지적 방식을 작동한다. 작품에 몰입하지 말고, 관객 스스로의 인식으로 제시된 작품을 경험(해석)하라는 의도다. 작가가 현실/미술과의 관계에서 그랬듯, 관객도 작품과의 비판적인 마찰로 자기식의 주제를 간파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 이럴 때 소통은 작가로부터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계몽적 메커니즘에 기대지 않는다. 관객의 관념과 충돌하고 또 수용되는 의미화 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관객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관객 고유의 권리에 의한 개념화 과정이다. 소통의 혁명이랄까, 이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모호한 서정적 '분위기'나, 교감 과정에 제멋대로 군림하는 '아우라'의 권위를 해체한 것이기도 하다. 작품은 전달 매개체일 뿐 그자체로 메시지가 될 수 없다는 이태호의 자기미술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다. 그런 점에서 작업의 초월적·신화적 창조성에 대한 이태호의 회의는 관객과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자동 전환한다. ● 일테면 『근대 짱돌의 역사』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간단한 문구와 돌멩이일 뿐이다. 작가의 어떤 손맛도 개입되지 않았고, 전시된 오브제와 프린트된 설명문은 감정 없이 드라이하다. 별도로 연출한 분위기도 없다. 관객은 그 가공하지 않은 물질인 돌(faktura)과 그 돌에 대한 비물질적 정보(factography)를 바탕으로, 작가와 동등한 선상에서 짱돌을 해석한다. 그리고는 자의적으로 기의를 찾아내게 된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각자의 영역에 있고, 아우라가 제거된 비물질성의 매개체(작품)는 관객의 인식 과정에 복무하는 것이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송수신의 의도가 합치되든 아니든 간에 작품은 사람 사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다. ● 수평적 소통의 '관계성'에 대해 또 다른 예의 작업으로 「대통령상」이라는 풍자적 비디오 작품이 있다. 미술계의 고착된 관습에 대한 거역을 시도한 것이다. 작가로 출세하는 뻔한 길과 뻔한 권위와 뻔한 관전(국전, 미술대전)제도의 허위를 B급 대중문화적 코스츔으로 풍자함으로써, 주류 제도미술의 허위와 속물성을 반어적으로 풍자했다. 동어반복적인 테크닉과 자기표절을'스타일'이라는 레토릭으로 세련되게 포장하고, 작품보다는 작품외적인 출세와 명예에 집착하며, 허울뿐인 스펙을 예술성과 동일시하는 한국미술계의 풍토를 비판한 것이었다. 목판화 벽보 및 스텐실 벽화작업은 이런 작가적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중들의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거리미술(Street Art)이다. 자본주의 주류미술방식과의 마찰이자, 그 마찰력을 기존 제도권미술구조에서 이탈하는 동력으로 전환하는 내용과 형식이다. 또 소통의 문화정치학적인 기표이자 기의이기도 하다.


이태호_현실과 발언의 꿈_혼합재료_42×33×30cm_2017


절대적으로 고정된 미술과 미학은 있을 수 없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서 미술에 대한 문화적 개념은 바뀌고 또 새롭게 도출된다. 삶의 양식과 문화적 조건에 따라 시視방식 뿐만 아니라 미술 자체의 존재론적 가치도 변한다. 미술과 당대 현실과의 의미론적 조우, 그게 미술의 진화다. 평범한 이 말이, 관념이 신앙처럼 견고하게 이데아화가 된 한국주류미술계엔 '쇠귀에 경 읽기'일진 모르겠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이태호는 그렇게 작업해 왔다. ● 곧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태호는 1980년 이후 40여 년을 그렇게 줄탁동시啐啄同時와 줄탁동기啐啄同機로 한국미술과 현실의 모순과 허위, 그 단단한 껍질에 미학적 '짱돌'을 던져왔다. 자신도 미술도 거듭나기 위한 그의 깨우침이 사회문화와 역사에 대한 두드림으로 확장된 실천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과 현실에 대해서 할 말과 할 일이 아직도 많은 그는, 청년이다. 한국사회의 허위에 거침없이 짱돌을 던지는, 작가다. ■ 김진하


각주주1) 1984년 제작되어 『현실과 발언-행복의 모습전』에 출품된 작품. 이 작품은 이태호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분실되었고, 2005년 재제작한 작품이 현재 남아있다.주2) 물론 1980년대 이후 일련의 현실주의적 작업들에서 이런 경향은 있었다. 이태호가 속해있던 동인인 『현실과 발언』을 필두로해서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지금의 젊은 작가들도 있다. 다만 이태호를 지목해서 말하는 이유는, 지난 40년을 시종일관 같은 태도로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어서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런 비판적 개념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작가는 드물다. 주재환·김정헌·이태호·손기환·박불똥과 같은 직접적 이미지 형과, 이불의 초기작업 '화엄'과 같은 비유형, 박이소와 같은 해석학적 코드에 의한 작업 등 소수로만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Vol.20200209b | 이태호展 / LEETAEHO / 李泰豪 / mixe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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