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인사동 이야기' 사냥 길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인사동 민중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해 온 김진하관장 만나러 가는 길에발렌티노를 만났는데,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축하 대잔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휴관 중에도 불구하고 김진하관장과 화가 박 건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모처럼 반가운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중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 온 것이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일 정오무렵, 종각 타종 행사를 시작으로 100일 동안 축하대잔치를 연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는데,

기타리스트 김광석씨가 곡으로 옮겨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도 뒤늦게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며칠 사이 새로운 점포가 여럿 들어섰다.

'나무화랑' 건물 일층에 있던 ‘보물창고’가 사라지고 무엇을 파는지는 알수 없으나

‘블랙다이아’라는 간판을 단 새로운 매장이 마무리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보갤러리'가 있던 건물이 재건축되어 건물 전체가 ‘더스타갤러리’란 간판을 달고

개관전으로 서달원씨의 ‘面’이 열리고 있었다.

 

버스킹에 나선 젊은이들의 연주 솜씨들도 날이 갈수록 세련되어 거리가 한층 젊어졌다.

 

두 분 시간 뺏은게 너무 미안해 모처럼 술 한 잔 대접하기 위해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된장비빔밥에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김진하씨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옛날 인사동 다방에서 이루어졌던 나까마들의 그림 거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귀가 번쩍 뜨이는 인사동 사료라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불화가 장춘씨가 나타났다.

네명 인원 초과로 떨어져 앉아 자리 파하기만 기다리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세 사람이 막걸리 두 주전자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달짝한 툇마루 막걸리는 술술 넘어가는 대신, 뒤늦게 취기가 오르는 위용을 알아 더 마실 수도 없었다.

 

정영신사진

반가운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마신 술자리라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 두 화가 사이에 늙은 개 한 마리 끼인 꼴이었다.

 

술이 취해 준비해야 할 골목전시 현장 확인 하느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술만 취하면 개로 돌변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재홍씨의 ‘거인의 잠’이 개막되는 날이라 서둘러 인사동 '나무화랑'으로 갔다.

 

여지 것 전시 개막식을 비롯한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 온 금기를 깰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공이 만만찮은 재홍씨의 작품도 보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역전의 화가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싶었다.

 

안국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올라가니 화가 김 구씨와 류연복씨는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렸다 일산 손장섭선생 상가에 간다”고 했다.

나 역시 문상도 가야지만 전시장부터 들렸다. 매번 꾸물대다 늦게 오는데, 전시장 문 닫을까 서둘러 올라갔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직 많은 분들이 계셨다.

전시작가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김정헌, 박불똥 조경연 부부, 이태호, 이재민, 박세라씨 등 여러 명이 작품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시리뷰를 보아 대략의 내용은 알았지만, 작품 앞에서니 마치 스스로를 바라보는 듯한 먹먹한 느낌이 일었다.

상처투성이의 노쇠한 몸이 품은 의미야 해석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희멀건 잿빛 형상들이 피폐한 자본주의에 병든 인간들의 내일을 예언한

죽음의 묵시록처럼 다가왔다. 거인의 잠이 거인의 죽음으로 비친 것이다.

 

작가는 선문답처럼 ‘거인의 잠’이란 제목만 붙여놓고 일체의 말이 없었지만, 인체의 부분으로 상처 난 땅을 형상화한 상징적 이미지였다.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폭력과 굴곡의 세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묵언의 땅인 것이다.

 

김재홍씨가 3년 전에 보여 주었던 인간 탐욕의 폭력성을 고발한 “살”전 과는 또 다른 울림이었다.

그는 인간을 향한 폭 넓은 주제를 택하지만, 핵심을 상징화해내는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가졌다.

그래서 또 다음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 전시는 오는 15일까지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람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20년도 더 지났지만, 처음 대면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자라섬에서 열린 자연설치미술전에서 김언경씨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첫 인상이 착한 시골선생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화단에서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작가였다.

 

각설하고, 전시장에서 내려 와 뒤풀이 장소로 정해진 ‘유목민’으로 갔다.

 

술집 골목 초입부터 화가들이 자리 잡아 앉을 틈이 없었다. 코로나 시국의 손님 없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신학철, 이요상선생을 비롯하여 김건희, 김언경, 차기율, 이필두, 최운영, 나종희, 류충렬, 최석태, 우문명, 유근오, 성기준, 김영진,

조신호, 장경호, 김경서, 최완수, 그리고 배우 이재용씨 등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역전의 화가들이 모여 있었다.

 

뒤늦게는 불화가 이인섭선생과 장 춘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조명환씨도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술 마시느라 혼자 바빴다.

홀짝 홀짝 마신 술에 가랑비에 옷 젖듯 취해 버렸다.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소리도 나지 않는 목소리로 돼지 목 따듯 노래까지 불렀으니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이 얼마만의 사건인가? 대취 했지만 기분 좋게 마시어 그런지 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다들 떠난 뒤에도 ‘유목민’ 주인장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박혜영, 장춘씨와 어울려 마셨는데,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지났더라.

 

원님 덕에 나팔 분 최고의 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거인의 잠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2021_0602 ▶ 2021_0615

 

김재홍_거인의 잠-202103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218a | 김재홍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김재홍의 최근작에 관한 인상 ● 블랙홀과 은하수가 어둠과 가녀린 빛으로 불규칙하게 휘감고 돈다. 인력과 척력이 미끄러지며 서로 밀고 당기는 불규칙한 중력의 뒤틀림인 듯, 공간이 휘거나 꼬이는 우주의 모양새다. 또는 풍화를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게 경화된 태토의 질감과 굴곡이 무한하게 긴 시간을 은유하는 땅 거죽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 목젖 아래 쇄골 한 부분 풍경이다. ● 특정한 대상이 이 정도 광대무변한 시공간으로 유동하고 확장하며 중층적인 이미지를 배태해낸다는 거, 신기한 일이다. 서술이나 서사를 배제한 일류젼일 뿐인데 말이다. 동적인 기운이"모였다가 흩어지고(聚散), 굽혔다가 펴지고(屈伸), 왔다 갔다(往復), 맑고 흐리게(淸濁), 곱다가는 거칠게(粹駁)"형상을 발현하는 듯하다. 이런 시각성의 변주는 기호가 아닌 상징이라서 가능하다. 여타 시각정보를 담는 목적의 그래픽과 다른 이 모호한(?) 장르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겠다. 김재홍의 최신작, 대략 300호가 넘는 「거인의 잠- 202103」이란 작품 얘기다. ● 거기엔 대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한 구상성의 속박이 없다. 액티브한 동작이나 물질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에 대한 서술성을 최대한 절제한 바탕에서 드러낸 묵언의 형상성과, 능숙한 손맛과 붓질이 중첩된 질감의 세련된 감각이 회화적 쾌감을 발현한다. 이후 그림에 담긴 단서가 하나둘씩 자연스레 포착 된다. 미적 쾌감 이후 작가의 문제의식을 찾아보는 습관은 그래서다.

 

김재홍_거인의 잠-길13_천에 아크릴채색_162×340cm_2020
김재홍_거인의 잠-길2021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2×122cm_2021

화면엔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신체 한 부분이 어떤 단서도 없이 등장한다. 늙고 마른 노쇠한 몸. 여린 호흡. 앞선 다른 그림에서의, 그 몸에 드리웠던 철조망과 경계로(路)의 흔적으로 인해, 화면 속 인물의 인생사와 그가 온몸으로 관통해왔을 현대사가 고스란히 연동된다. 분단 이후 70년의 시간성도 함께 묻어 나온다. 생의 끝 지점, 소멸 단계에 이른 신체 주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경건한 헌사이자, 아직은 분리되지 않은 그의 혼(魂)과 백(魄)을 온전히 하나로 기억하려는 작가의 의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그림에선 둔중한 울림의 회화적 표지(標識)와 기의가 경건하게 다가온다, 내겐. ● 몸에 새겨진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몸의 상흔이 희미해지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기억 본능이 망각 의지를 배반하고,세월이 약이지만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개인의 자전적 아픔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 땅 공동체에 가해진 폭력의 기억, 집단적 통증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근대 이후 한반도 민중에게 가해진 폭력 서사를 보라. 식민지. 동족상잔. 4.3. 분단. 군사독재. 산업화. 도시화. 5.18. 신자유주의. 이전투구의 생존경쟁. 도저한 아픔의 연속이다. 혹독하다. 그 불가항력적 조건의 연장선에서 지금도 우리는 그 레이어를 겹쳐 쓴 채 고통의 연대기를 쓰고 있다. ●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사람들은 위대하다. 망각 의지보다 더 선명한 기억 본능으로 인해 고통스레 살아내며 버틴 질긴 생명력이니까. 그들의 견딤이 역사고, 역사의 주인인 그들이 거인이다. 그런 앞 세대가 저물어가는 지점을 김재홍은 상징적인 기억투쟁 행위이자 오마쥬로 이 회화적 기록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이고 서사적 진술이 아닌 이 방식은 회화라는 매체의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노출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마다의 독해의 기호와 방식 아니겠는가. 반성과 성찰을 담보하는 기억에의 의지 말이다.

 

김재홍_거인의 잠-장막-유리구슬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김재홍_거인의 잠-202105-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21

한편 작가의 설명을 생략한 채 쓰는 나의 이런 인상기가, 김재홍의 작업의도와 표현 때문인지 혹은 그렇게 보려는 나의 아포페니아나 파레이돌리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그림에서 김재홍은 이전과 달리 대사가 아닌 방백과 지문(地文)으로만 주제를 이끄는 묵언의 장(Field)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회화적 상징이기에 가능한 거고, 그건 관자의 접근에 따라 그 결이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 ● 소재에 대한 특정한 사건·단서·기호·상황·설명·해석·연출을 소거한 채 주제를 침묵해버리는 역설적인 어법의 구사. 이제껏 직접적 형상으로 작업내용을 발설하던 김재홍의 작화법에 비하면 일탈이자 변화다. 작업을 끌고 가는 회화적 사유와 내공이 어느 정도 그의 몸과 일치가 되고 있어서일까. 새로운 회화공간으로 치환되고 확장하는 작가의 이런 변주는 관객의 주체적 상상력과 해석을 더 요구한다. 이런 시도는 그의 작업에 대한 공력이 깊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나는 대본과 무대를 제공했으니, 연기는 관객 당신이 주체가 되어서 하시오"라는 연출자의 열린 소통에의 실험처럼. ● 이번 전시가 끝난 이후 다음 작품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한 작품 얘기로 서문을 대신한 이유다. 그의 그림이 변하고 있다. ■ 김진하

 

 

Vol.20210602f |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지난 일요일은 아산의 문화 공유공간 ‘마인’으로 전시 보러 가는 날이었다.

 정영신씨와 오래 전 약속한 일인데, 가는 길에 미술평론가 최석태씨를 태웠다.

 

그런데, 구로에서 그를 만나고 부터 차 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앉자마자 시작된 구라는 도착할 때까지 잠간도 쉬지 않았다.

아는 게 많고, 하는 일이 강의라 달변가인 줄이야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재벌 집안의 더러운 내막에서부터 모르는 게 없었다.

이야기에 빠져 고속도로에서 뒷걸음질 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조선 최고의 구라로 꼽을 만 했다.

여지 것 백기완, 방동규, 황석영선생을 조선의 3대 구라로 꼽았는데,

얼마 전 백기완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지 않았는가?

그 빈자리에 추천해도 전혀 손색없는 조선 최고의 구라였다.

 

듣다보니, 금세 아산에 도착했는데,

김선우씨를 비롯하여 김온 군과 양햇살 양이 반겨주었다.

전시장은 오밀 조밀 정겹게 꾸며 놓았더라.

 

쉬거나 일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책장에는 ‘눈빛’의 예술산책 서고를 옮겨 놓은 듯 반가운 책이 많았다.

 

오히려 벽에 걸린 모듬전 스타일의 내 사진이 챙피했다.

물론 내가 정한 사진이 아니라 정해 준 사진을 만들어 보냈지만,

다양한 사진이라 잡화상 같았는데,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에게 조언하던 최석태씨 지적도 따랐다.

이런 사진보다 정영신의 아산장 같은 사진이

지역민에게 더 친숙하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었다.

그 외에도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단다.

숨겨 둔 캐잌과 오래된 함지와 재봉틀을 가져왔다.

 

축하받아야 할 자리는 아니지만, 졸지에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정영신씨에게는 함지와 재봉틀을 주는 등, 송구스럽기만 했다.

 

아산 온천동 상가 1층에 있는 ‘마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인데,

여지 것 여러 차례 공간을 빌려 주었는데, 반응이 좋았단다.

시일과 시간만 예약해 둔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같이 일하거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사진집이나 좋은 책들을 골라 볼 수 있고 커피도 내려 마실 수 있었다.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도 있어 모든 걸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구입할 책은 무인시스템으로 결제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업무 협력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 끼리 생일잔치 하기도 좋았다.

 

개방전 마지막 날이라 전시 보러 온 김종우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오찬으로 육회비빔밥도 얻어먹었는데, 돈만 있다면 내가 사고 싶었다.

 돈도 없고 쓸 곳도 없지만, 돈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어찌 지역문화를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에게 밥 한 끼 사주지 못할망정, 주머니를 털게 한단 말인가?

 

그 곳에서 기획, 추진하는 일이 또 있다고 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동네잡지도 만든단다.

공중파나 주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

인문적 사유와 삶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로 꾸민다고 한다.

머지않아 ‘마인’에서 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이 점쳐졌다.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최석태씨도 할 일이 있지만,

아산으로 이사 간 신학철 선생 댁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산으로 이사 간지 일 년이 넘었으나

그동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걱정이었다.

더구나 낯선 동내에 지은 큰 작업실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최석태씨의 안내로 꼬불꼬불 시골 길로 들어갔는데,

동네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이 공장 같다지만, 내가 볼 땐 박물관 같았다.

신학철 선생은 지난 번 백기완선생 장례식장에서 뵌 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옆에서 수족처럼 도와주는 분이라고 소개했는데,

‘동학혁명실천시민행동’ 대표로 계신 이요상씨였다. 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십 여년 아내 간병으로 혼자 끓여 먹는 것이 생활화되긴 했지만,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드실 수 있었겠는가? 이제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작업실에는 신학철선생 작품 DB작업 하러‘나무아트’ 김진하관장도 있었다.

그런데, 작업 중인 작품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전체적인 메시지가 강열했다.

 

그동안 팔려 나간 작품을 찍어둔 조그만 사진도 펼쳐 놓았고,

옛날 교편 잡던 시절의 제자 작품도 보여주었다.

작업 진척이 늦어 전시를 일 년 연기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서고와 작업실 곳곳을 보여 주었는데, 이전 아파트와는 비교도 못 할 작업장이었다.

이젠 천장이 높아 대작 그리는데 전혀 지장이 없겠더라.

 

밖으로 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사방이 전원 이었다.

위쪽에는 낮은 산능선이 병풍처럼 둘러 싸 있었는데,

집 가까이 밭은 신학철 선생께서 일구는 텃밭이라 했다.

이웃사람들이 거들어 할 일이 없다지만, 그래도 농사는 농사다.

 

이요상선생게서 서울 갈 약속이 있다기에 먼저 일어났지만,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끝나는 날, 제대로 된 집들이 한 번 해야지...

부디 훌륭한 대작이 태어날 산실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박재동 작

미얀마 민주화 투쟁에 함께하려는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가 더 높다.

 

박건 작

‘미얀마 민주시민과 연대하는 화가들의 미술행동전’도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김진하 작

광주 메이홀 전시에 이어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서울전은 13일 까지다.

4월 15일 부터 29일 까지 안성맞춤 아트홀에서 열린 후

 5월 6일 부터 6월 27일 까지는 신안 압해도 ‘저녁노을미술관’에서 열린다.

그 외 아산에서 전시를 타진해 오는 등 릴레이식 전시는 전국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김진하 작

‘생명평화 미술행동’이 추진한 미술행동전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지지하는 주홍의 1인 시위와 함께

홍성담, 박재동, 박건, 주홍, 김진하 등 42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진하 작

지난 7일부터 시작된 서울 ‘나무아트’ 전시에서는 미얀마 국적의 관객이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등 시민들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김진하 작

더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무참한 학살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미얀마의 민주화를 기필코 이루어 내야 한다.

 

인터넷 차단망을 뚫고 전해지는바에 의하면 이미 목숨을 잃은 시민이 500여명이 넘고

실종, 구금, 부상 등을 합치면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데,

심지어 어린이 까지 학살하는 등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조준사격과 집단 발포, 특수부대 투입, 민주인사와 시위 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고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곤봉과 총칼에 의한 무자비한 폭행이 자행되고 있다.

 

진실을 가리고 은폐하기 위한 철저한 언론 통제, 시신을 감추거나 사망자 수를 축소,

외부 불순 세력 개입설 주장 등.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41년 전 광주 참상을 너무 닮았다.

 

미얀마 군부가 짐승만도 못한 전두환의 수법을 교과서 삼아 답습하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닮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미얀마의 경우는 광주와 달리 수도 양곤과 제2도시 만달레이에 이어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는 외신을 통해 참상이 알려지면서 유엔에서도 거론되고 있으나,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 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분노와 저항도 거세지고 내전으로 확전 될 기미도 보인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양민들이 목숨을 잃는 아픔의 과정을 거치겠지만

결국 민주화 운동은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광주의 교훈이다.

학살자들이 법정에 서는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미얀마 학살에 적극 개입을 주저하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희생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외면은 시민을 향한 군부의 총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코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술행동전을 비롯한 여러 미얀마 연대 활동이 국제사회의 연대를

활성화 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전시를 준비한 ‘생명평화 미술행동’은

지난 3월 15일 ‘2021년 미얀마는 1980년 광주다’라는 요지를 담아,

미얀마 민주 시민을 향한 지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아래는 참여작가 명단과 '생명평화 미술행동'의 성명서 전문이다.

 

참여작가 

 곽영화, 고근호, 권성연, 김자영, 김수빈,

김준현, 김진하, 김화순, 김환영, 나윤상,

남궁윤, 다 솔, 레오다브, 박 건, 박경효,

박미화, 박성우, 박태규, 박재동, 서수경,

서진선, 서림하, 성효숙, 이선일, 이소담,

이현정, 이효복, 이홍원, 임의진, 조덕희,

주라영, 주완수, 주 홍, 전정호, 전혜옥,

정정엽, 천현노, 헥스터, 홍성민, 홍성담,

홍세현, Pyaesone aung,

 

[성명서]

 

미얀마2021은 광주1980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군부독재세력에 의해 피로 물들고 있다.

이것은 곧 아시아 민주주의의 위기다.

대검살상과 집단발포, 그리고 저격병을 이용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들의 머리와 가슴을 정조준 살해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군부독재가 갖는 악마성을 잘 알고 있다.

타락과 부패는 물론, 인권을 짓밟는 악마의 세력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40여년 전 1980년 5월광주에서 저지른 한국의 군부독재 학살행위를

2021년 미얀마의 군사정권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학살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2021년 미얀마는 1980년 광주다' 오월광주가 승리했듯이

오늘 미얀마의 민중들도 기어코 승리할 것이다.

우리 미술행동은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승리할 때 까지 함께 할 것이다.

 

'미얀마의 살인마 군부독재 물러나라!'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미얀마의 군사정권을 박멸하자!'

 

2021.3.15

생명평화 미술행동

 

한국 민주시민은 미얀마 민주시민에게 연대의 뜻을 전합니다.

기필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바랍니다.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서울전시는 13일까지다.

많은 분들의 응원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진하씨는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다.

 

인사동에서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전시기획자로,

미술평론가이고 출판편집자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작업은 목판화로 아는데,

사진을 한지가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지난 달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린 ‘말하고 싶다’전시장을 지킨 일이 있었는데,

담배 피우러 옥상에 올라가다 계단에 쌓인 인쇄물 더미에서 김진하씨의 전시 자료를 본 것이다.

 

“숨”이란 제목의 사진전이었는데, 더 놀란 것은 십년이나 지난 팸플릿이었다.

사진인들이 김진하씨 사진 작업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하기야! 사진과 그림의 경계가 허물어진지가 오래라

그에게는 붓 대신 카메라를 이용한 그림 작업의 연장이기도 했다.

난, 기록사진이 아닌 파인아트에 몰두하는 많은 사진가들을

사진가로 보지 않고 작가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팸플릿 속의 ‘숨’은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 움직임을 형상화했다.

사진을 저속셔터로 찍으려면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세한 움직임에 드러나는 이미지의 흔들림이나 피사체의 중첩이

본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또 다른 울림을 전해주었다.

 

호흡의 흐름에 따라 생성된 이미지는 작가 스스로의 존재 확인이기도 했다.

하늘이나 산을 찍었지만, 결국은 작가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다.

 

단색조의 무거운 분위기가 주는 미묘한 느낌은

찍을 당시의 작가 심리상태일 수도 있었다.

 

실제풍경에서 작가의 심리풍경으로 바뀌어가며,

작가의 미적 감성이 본색을 드러냈다.

 

김진하관장의 새로운 카메라아이 발견이 어찌 뉴스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어두운 창고에 잠자던 이미지를 찾아내어 다시 불을 지피는 이유다.

 

인쇄물을 스캔 받아 본래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미지 농도는 물론 인쇄된 종이의 입자까지 극명하게 드러났으나,

거칠어진 나의 숨으로 여겨 두루 넘어가시길 바란다.

아무튼, 앵콜 전에서 오리지널 프린트를 볼 수 있길 희망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지금 찍는 사진은 어떻게 변했을까?

요즘 페이스북에서 선보이는 산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사진에 드러난 작가의 아우라가 그냥 나온 게 아님을 이제 사 알겠다.

 

내년 초에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진하씨의 두 번째 사진전이 열린다고 한다.

어떤 사진을 보여 줄지 벌써 기다려진다.

 

3월 18일부터 4월 27일까지 담양 ‘담빛예술창고’에서 열리는

‘말하고 싶다'전에 김진하씨 사진도 선보인다.

 

현재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김진하 소장전에서도

작가의 사진을 예고편으로 보여준다니 많은 관람 바란다.

 

그 사진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미를 담아낸 작품이다.

수집해 놓은 소장품에서도 작가의 감성을 읽을 수 있으리라 여긴다.

전시는 월요일은 휴관이고, 정오부터 오후6시까지 열린단다.

 

그리고 김진하씨 말 나온 김에 그가 저지른 일들을 좀 까발려야겠다.

그는 긴 세월 인사동 ‘나무아트’를 어렵사리 운영해 가며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인사동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인사동에 전시장이야 늘려 있지만,

‘나무아트’에서 기획 초대한 전시에 따를 곳은 아무데도 없다.

그 곳에서 펼쳐보인 민중의 힘이 인사동의 뿌리인지도 모른다.

인사동 문화를 살찌운 그의 공적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 박건 작가의 ‘내 맘대로 주는 상’ 열 번째 수상자로

‘갤러리스트상’을 수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나 역시 박건씨로부터 ‘카메라 시인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관청이나 언론사에서 준 그 어느 상보다 값지게 여겨, 트로피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그 뿐이던가?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조직된 ‘광화문미술행동’의 기획자로

매주 ‘바람찬 전시장’을 장식하며 광장에 휘오리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이젠 김진하씨 사진이 사진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6일에는 인사동 거리에서 제법 긴 시간을 맴돌았다.

봐야 할 전시도 두 곳인데다 길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도 두 사람인데,

서로 만나기로 한 시간조차 달랐다.

 

인사동 사진은 거리를 지나치며 찍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지만,

이번에는 한 시간 넘게 거리를 방황했더니 다리가 아팠다.

기다리는 동안 전시라도 둘러 보았으면 좋으련만

정영신씨와 같이 보기로 해 먼저 볼 수도 없었다.

 

거리는 구정을 앞둔 주말이라 평소에 비해 많은 사람이 오갔다.

더러 선물보따리를 들고 가는 모습에서 명절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반가운 풍경은 행인들이 거리에 내놓은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아무리 작가의 영혼이 빠진 그림이지만, 가격이 너무 쌌다.

이 삼만원 대가 주류고 비싼 게 오 만원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져 나왔는지 모르나 물감을 이겨 그린 그림도 있어,

인건비는 차지하고 재료비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멀리 ‘나무아트’에서 김진하관장이 나오고 있었다.

박건씨의 ‘나는 산다’전에 가자기에 사람 만나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정오 무렵 만나기로 약속한 사진가 최인기씨가 드디어 나타났다.

조그만 양반이 도르르 굴러오듯 바쁘게 걸어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빙그레 웃는 동안에 마음까지 포근해 졌다.

 

그를 만나기로 한 건, 며칠 전 경남 함안장에서 연락 받았다.

‘눈빛출판사’에서 노량진구수산시장 상인들의 투쟁을 기록한 사진집을 만드는데,

서문 좀 쓰 달라는 원고청탁이었다.

 

그는 사진가이기에 앞서 노동운동가다.

가끔 현장에서 만나 지켜본 바로는 성실하고 겸손한데다 투쟁력 또한 치열했다.

좋아하는 후배사진가 중 한 사람이라 바쁜 시간이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명절선물이라며 보리굴비까지 들고 왔는데,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받은 선물도 다른 분 줄 정도로 선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굴비는 정영신씨가 좋아하는 생선이라 점수 따기 딱 좋았다.

 

마침 정오 무렵이라 ‘툇마루’에 밥 먹으러 갔다.

술 마시러 간 것이 아닌데도, 쥔장의 도토리묵 서비스까지 받았다.

맛있게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고, ‘귀천’ 목영선씨의 모과차도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사진 자료 담긴 유에스비를 건네받고 헤어졌다.

 

그도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나 또한 정영신씨를 만날 시간이 되어서다.

지하철 역 방향으로 마중가니, 총총걸음으로 정동지가 나타났다,

바쁜 분 만나려니, 이 몸까지 바쁠 수밖에 없었다.

 

마루의 ‘아지트갤러리’로 갔더니, 눈에 익은 작품들이 줄줄이 걸렸더라.

전시 개막 직전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 최경태씨 그림에 마음이 아팠는데,

작가 박 건씨와 김진하씨가 나타났다.

 

박건씨의 공산품 아트를 비롯하여 김주호, 김환영, 류연복, 박불똥, 박영숙,

성병희, 안창홍, 이윤엽, 이현정, 이하, 정영신, 정보경, 정복수, 정정엽, 하일지 씨 등

내 노라 하는 분들의 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었다.

 

박건씨의 혜안으로 모운 작품이라 보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또 하나 기분 좋은 건 작가의 권위를 지키려는 거품은 모두 빼버렸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이치에 대한 도전장에 다름 아니었다.

 

다음에 들려야 할 전시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금보성씨의 ‘한글’전이었다.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연지 35년 만에 150호 대작 22점을 내 걸었는데,

웅장한 스케일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마치 자음을 윷놀이 하듯 화면에 던져놓았는데, 문자와 디자인이 결합한 독창적 언어였다.

작가로부터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인사동에서의 일정은 마무리했다.

 

다음 날은 동자동에서 일해야 하고, 그 다음 날은 경북 상주장에 가야했다.

무슨 놈의 일이 한꺼번에 몰려 똥오줌 못 가릴 지경이다.

 

서울역 홈리스 원고는 탈고한지 오래지만, 노숙인 코로나 확진자가 100여명이나

나온 데다 동자동 쪽방 촌 공공 개발 소식에 추가 할 원고가 생겨서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아산시를 시작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전시를 기획했다며,

필요한 사진 자료를 수집해 보냈는데, 정말 난감했다.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지만 기억이 아물아물한 사진도 있었는데,

필름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사용했던 사진도 수정 이미지를 못 찾아 재 수정하느라 곤욕을 치루었다.

얼마나 마우스를 잡고 낑낑거렸으면 아직까지 어깨가 결린다.

오죽하면 오래된 필름 정리해 스캔 받아 두라는 정동지의 성화를 뭉갠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고려장 할 나이에 이처럼 일이 많은 것도 복이라면 복이고, 욕이라면 욕이다.

 

그토록 바삐 쫓겨 다녔으니 최인기씨 원고 쓸 겨를이 있었겠는가?

2월 중순까지 요구한 글이라 추석연휴에 쓰려고 밀쳐두었으나,

원고료 부담에다 자료 담긴 유에스비 조차 열어보지 못해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믐 날 제사음식 준비 하는 중에 최인기씨로 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렵게 전화한 듯, 정중하게 원고 청탁을 거두겠다는 내용이었다.

앓던 이 빠진 것 시원해 받은 원고료를 즉각 돌려보냈는데,

거절한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더 좋은 필자를 구했거나, 다른 이유라면 모르겠으나,

20여일 전 '인사동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말하고 싶다'전 포스팅에

“언제까지 미투로 생사람 잡을거냐?“는 글을 본 모양이다.

아니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바로 미투였다.

 

고질적인 성희롱을 없애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미투 운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사적인 감정으로 상대방을 매장시키는 가짜 미투가

기승을 부려 진짜 미투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폐단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부산의 이광수교수가 여러 차례 페북에서 지적한 바 있는

진보정당이나 노동운동가들이 페미니즘에 집착하는 폐단이 떠올랐다.

그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걸 여태 보지 않았던가?

 

개안적 견해에 불과한 미투의 문제점 제기에 안면까지 몰수할 정도라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주의로 흐르는 세태가 안타까운 실정에, 페미니즘 문제까지 부채질 한다.

 

메주알고주알 까발리다 보니 말이 엄청 길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사동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작가 박 건의 “나는 산다”전이 인사동 마루, 아지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산다’라는 전시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작품을 산다는 말에 앞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면 감동으로 행복에 빠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충전의 기회도 된다. 사서 걸어 놓으면 내 작품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보여 주는 작품은 작가의 소장전이라기 보다 박건의 개인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작가의 손을 빌려 감동을 전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술품 유통이다.

좋은 그림은 혼자 갖지 말고 돌려보자는 의미도 있겠지만.

감동을 사고판다는 게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냐?

 

박 건씨는 작가이자 기획가며 사회운동가다.

잘못된 현실에 대한 저항성과 비판 정신이 강하고

하나의 모형도를 제시하는 장면 연출에 탁월하다.

 

작업방식 뿐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다.

그의 혜안으로 수집된 작품이라 보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미술에 깊은 지식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 보다 확실한 길잡이가 어디 있겠는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작품 가격이 의외로 싸다는 거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이치에 대한 도전장이다.

작가의 권위를 지키려는 거품 같은 건 모두 없애 버렸다.

 

전시된 작품들은 박건의 공산품아트를 비롯하여 김난영, 김주호, 김태헌, 김환영, 류준화, 류연복, 박상혁,

박불똥, 박영숙, 변성진, 빅터조, 성병희, 전현숙, 정보경, 정복수, 정정엽, 정영신, 조문호, 안창홍, 양대원,

윤남웅, 이윤엽, 이진경, 이 하, 이현정, 하일지, 최경태씨 등 모두 색깔이 분명한 작가들이다.

 

박 건씨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면 허튼 작품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디서 이런 알찬 전시를 볼 수 있겠는가?

 

“작품을 '산다는 행위엔, 작가의 제작으로부터 시작한 작품의 최종 소통(유통)지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는, 그런 프로세스 전체에 대한, 컬렉터이자 작가인 박건의 개념적/행동적 개입을 상정한다. 그가 선택해서 구입한 작품들에 대한 (작가주의적) 존중과 더불어, 소비자인 자신의 미감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미술개념에 대한 확장된 문제의식과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행하는 것이다. 작품을 산다는 것, 그것도 예술행위의 한 부분이고, 또 그 작품을 판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가로부터 컬렉터 그리고 또 다른 소비자에게 돌고 돌면서, 작품과 사람들은 상호 그 세계와 감성과 감각을 함께 나누고 누리는 것이다. 박건의 이 전시는 그런 작품의 유전과 일생에 대한 예술적 통찰의 퍼포먼스라 하겠다.”고 김진하씨가 적었다.

 

그런데,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화우 최경태 때문이라 했다.

최경태는 이 전시 개막하기 이틀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불운의 화가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전시장에는 최경태 작품도 여러 점 걸려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성에 대한 작가의 외로웠던 싸움에 설움이 북받쳤다.

 

아래는 박건씨의 “나는 산다” 작업노트다.

 

“작가들은 걸작 명작 범작 수작을 생산 한다

내가 넘 볼 수 없는 작업과 작품들이 많다

감당할 수 있는 노동과 돈이면 살 수 있다

내 작품이 팔릴 때 감동 한다

나도 삼으로써 그 작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이 감동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점에 주목 한다

공산품아트와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공산품을 사서 조합하여 혼을 불어 넣었다면

아예 혼이 담긴 작품을 사면 어떨까

컬렉터와 다른 차원이다

창작 방식과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물질로써 생산과 창작이 아니라

돈과 노동으로 바꾸어 내 것으로 만든다

창작 개념을 새로 더하는 일이다

내 작품을 팔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산다

내가 할 수 없는 작업을 산다

작품을 사는 행위나 개념도 창작이다“

 

그나저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꾸물대다 전시 끝나는 날이 임박해 버렸다.

다가오는 12일까지라니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설 연휴에도 문을 연다고 하니, 가족과 함께 인사동 나들이 한 번 하심이 어떤지요?

설날 선물로 진한 감동을 전해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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