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복씨의 아티스트북이 ‘나무화랑’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지난21일 오후6시 무렵, 정영신씨와 들렸더니 김진하관장이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2년 전 전시한 아티스트북을 연상했으나, 추측을 뒤집은 독특한 발상의 전시였다.

목판화를 자르고 잘라 파편화시킨 조각품들을 하나하나 실로 묶거나 꿰매어,

조그만 나무 상자에 넣어 또 다른 아티스트북으로 탄생시키고 있었다.






미련한 곰처럼 억측 서럽게 해냈는데, 속이 뒤집혀 어떻게 그리 꼼꼼하게 해 냈는지 모르겠다.

절집에 들어가 만들었다니, 그건 작업이라기보다 하나의 수행이었다.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수많은 손질의 반복은 바로 무념무상의 수행이었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말처럼 강행복의 작업 자체가 아름다움이자, 긴 밤 지새며 맞는 화엄이었다.

조그만 작품들의 배열 또한 얼마나 조형적으로 꾸몄는지, 그보다 더 멋진 장식은 없을 것 같았다.

작품 설치를 한 김진하관장의 센스가 돋보였다.






마치 밀폐된 공간을 훔쳐보듯,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아기자기했다.

나무상자에 펼쳐 넣어지거나 세워지고 눕혀지는 등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조그만 상자에 갇힌 판화 조각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있었는데,

40여년을 작업해온 노련한 작가의 실험 정신이 돋보였다.






작품을 벽에만 거는 기존의 방식에서 벋어나라는 암시도 주었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책상 머리 맡에 올려놓으면, 볼 때마다 불가의 화엄경 같은

작가의 아티스트북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전시는 4월2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리니, 놓치지 마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어제는 새해의 셋째 수요일이라, 술 한 잔 하러 인사동 나갔다.

매번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오픈하는 전람회도 돌아보고
반가운 사람 만나 술 한 잔하는 날로 정한지가 오래되었지만,
반가운 사람 만나기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지난 16일은 점심때부터 강민선생님을 만나 뵙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에 들려 김진하관장을 만났다.





이 전시는 전만규씨가 주민들을 설득해 투쟁으로 일궈낸 매향리 폭격장 10년의 기록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으면, 격려의 글을 보낸 편지까지 모아두었더라.
투쟁에 사용되었던 깃발에서부터 시사만평에 나왔던 그림과 탄피에 이르기까지, 그 지난한 세월을 살펴보았다.
매향리에 가해진 폭력과 그 아픈 상처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2월1일까지 전시되는 매향리 기록전을 놓치지 마시길...




 


전시를 돌아보고 있으니 ‘강민’선생님께서 오셨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마다않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선생께선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하셨으니, 그 기록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김진하관장 설명을 들으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셨다.






선생님의 단골집 ‘나주곰탕’에 들려 소주 한 병에 곰탕 세 그릇 시켰다.
짐 때문에 차를 끌고 와 소주는 한 잔으로 끝내야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몸이 불편한지 따뜻한 물에 소주를 회석시켜 두세 잔 드셨다.
얼굴이 붉어져 낮술을 삼가한다는 김진하씨가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고맙게도 밥값까지 내 주셨네.






점심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 하려니,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하셨다.
단골로 가던 ‘인사동 사람들’은 주인도 이름도 바뀐 식당이 되어버렸단다.
하는 수 없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포도나무‘골목의 끝 집으로 향하다
길에서 안숙선 명창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를 만났다.






강민선생께선 ‘창비’에서 낼 시집 원고를 다 넘겼다고 하셨다.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벌써부터 시집이 기다려진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힘없이 앉아계신 선생님 모습이 오늘의 인사동 같았다.


떠나오며, 방향이 달라 신호등 따라 급히 달려간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민예총’ 사무실에 들려 짐 실어 둔 차를 끌고 녹번동으로 떠났다.
차를 놓고 와 술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꾸물대다 시간이 지체되어버렸다.
‘나무화랑’부터 달려 갔으나,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매향리 전만규씨를 만나 보고 싶었으나, 날 샌 것이다.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이 열리는 ‘동덕아트갤러리’로 갔더니,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를 비롯한 일행들은 벌써 나오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작가 백범영씨와 미술평론가 황정수씨를 만났고,
김달진씨와 편근희씨도 만났다.






백범영씨는 '소나무 작가'라 불릴 정도로 소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이번엔 ‘백두대간’이었다.
산 능선을 비롯하여 나무들과 풀꽃 등 자연을 이루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백두대간의 맥을 잡아 그린 산수에서는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이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을 나와 ‘유목민’에서 이인섭선생을 만났다.
전활철씨와 셋이서 소주 한 잔 했는데,
앞으로는 박혜영씨에게 ‘유목민’을 맡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인섭선생께서 비약처럼 넣어 다니는 술 한 잔을 따라주었는데, 58도의 중국술로 이름 하여 ‘오빠’란다.
부드러운 향의 독주 한 잔에 춘삼월이 오가더라.






인사동에서 나주곰탕 한 그릇 드시고 가는 강민선생이나
‘유목민’에서 파적 한 장에 소주 한 병 드시는 이인섭선생이나
이 두 분이 인사동을 지키는 마지막 유목민이 아닌가 싶다.

인사동 풍류도 그렇게 가나보다.

사진,글 / 조문호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










네오록에 소개된 '매향리기록전'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8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





네오록에 소개된 백범영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3














지난 수요일은 강민선생을 비롯한 인사동 터줏대감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자는 기별을 장봉숙선생께서 보내왔다.
페북에서야 강 민선생을 간간히 뵙지만, 뵌 지가 한 달이 넘었다.





인사동 나주곰탕으로 갔더니,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과 소설가 김승환선생,

사진가 정영신씨가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강 민선생을 기다렸으나, 선생께서는 이미 와 계셨다.

제일 멀리 계시는 분이 언제나 먼저 오신다.



 


자리 잡고 앉으니, 장봉숙선생께서도 오셨다.

매번 내가 꼴지로 나왔지만, 모처럼 꼴지 신세를 면한 것이다.



  정영신사진


강민선생은 귀가 어두운데다, 내가 하는 말까지 어눌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방동규선생께서 보이지 않아 근황을 여쭈었는데, 구중서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연락하니, 일이 있어 못 나온다"고 했다며,배추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장봉숙선생께서 선물 하나를 내놓으셨다.

얼마 전 중국여행 때 사왔다는 이과두주였는데, 병을 보니 보통 술은 아닌 것 같았다.

강 민선생 드리려 사온 술이겠지만, 맛이라도 좀 봐야 하지 않겠나?

눈치 봐 가며 슬슬 포장을 풀었더니, 식당주인이 말했다.

오늘만 강민선생님 때문에 봐주지만, 다음엔 절대 안 됩니다.”



 


52도나 되는 독주를 낮술에 쥐약인 내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우나, 어찌 귀한 술을 마다하겠는가?

맛만 본다며 조금 받아 마셨으나, 술 맛이 슬슬 당기기 시작했다.

홀짝홀짝 마시다, 나중엔 장선생과 정영신씨가 남긴 술까지 다 마셔버렸다.



 


방동규선생이 안 계시니, 구중서선생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김두환씨가 시라소니 앞에 무릎 꿇었던 옛 이야기를 꺼내시며,

사실은 전해지는 무용담들이 좀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추가 맨주먹으로 열일곱 명이나 때려 눞혔다지만,

선생께 고백하기를 자기도 당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두 분이 각별히 친한 사이지만, 오래 전에는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백기완과 구중서가 책 보라고 부추긴 죄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꼴로 살게 됐다"며,

술값은 늘 구중서선생께서 내게 하셨단다.





어느 날 인사동 실내악에서 구선생의 핀잔에 방선생께서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일어난 것이다.

가다보니 술 값을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술값을 돌려 달라고 하셨다는데,

실내악 주인 김희주가 누구인가? 절대 못 돌려준다며 타박만 주었다는 것이다.





방선생께서 다방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곳에 계신 신동문시인께  "구중서와 의절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단.

그 소리를 들은 신동문선생께서 갑자기 꿇어 앉어라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천하의 주먹이 손가락만 슬쩍 밀어도 쓰러질 비쩍 마른 시인의 말에 그냥 무릎 꿇고 앉았다는 것이다.

한참 있다 이제 일어나도 되냐고 물었더니, 좀 더 있어라 했단다.

얼마나 순진무구한 모습이냐?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술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구중서선생께서 자주 가신다는 관훈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지러웠다.

술 깨려고 인사동 주변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다시 도졌다.

길에서 까딱이를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술 취해 빌빌거리는게 불쌍한지 손도 벌리지 않았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목판대학 전시 때문에 그냥 갈 수도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고, 강민선생 따라 기어 오르듯 전시장에 올라갔다.

김진하 관장과 정복수씨가 있었고 뒤 늦게는 김준권씨도 왔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초빙작가인 김진열, 정복수, 김진하, 문승영씨 작품은 물론, 학생들 작품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이현숙씨 판화에 눈이 꽂혔다.



   

    

 

전시가 124일까지라 다음에 볼 작정으로 내려와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지러워, 강민선생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가까운 유목민 들어가 전활철씨께 택시 하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렵사리 집에 왔으면, 그냥 자빠져 자지 또 컴퓨터는 왜 켰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보고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음주운전보다 더 무서운 음주 포스팅을 기어이 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꼴을 보았다. 갑자기 집채가 쓰러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불안해 기둥 사이로 돌을 집어넣기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까지 지붕에 올라가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소가 기와장을 튕기며 지붕 위를 뛰어 다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더니 날 뛰던 소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즉사한 것이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별 이상한 꿈을 다 꾸었다며 일어났더니,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마우스를 당겨 보니, 음주 포스팅한 글에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급히 내리기는 했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았다.

속은 쓰린데다 망신살까지 뻗쳤으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 왜 이리 낮술에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다.

낮술은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술 들어간 뱃속이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이 뜻 하는 건 뭘까?

집안에 우환이 생길 징조는 아닌지, 해몽가라도 한번 찾아 볼일이다.


다시는 낮술과 음주 포스팅을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그 버릇 개줄까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흐르는 세월에 인사동 혼이 다 달아난다.

두 달 전에는 인사동 터줏대감이신 심우성선생께서 이승을 떠나셨다.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신봉승선생 등 먼저 가신 인사동 터줏대감 뒤 따라 가신 것이다.



 


인사동엔 여러 층의 예술가들이 드나들었지만, 무엇보다 문인들의 텃밭이었다.

70년대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건너와 인사동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민 영, 신경림, 황명걸 시인을 비롯한 몇 몇 분들이 살아계시지만,

기력이 쇠진하여 인사동에 잘 나오시지도 않는다.



 


누구보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강 민시인의 외로움만 깊어져 간다.

틈만 나면 노구를 끌고 인사동을 기웃거리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지팡이에 의지한 모습을 보니, 이년 전의 심우성선생 모습이 연상된다,



 


더 걱정인 것은 한 가닥 인사동 정서나마, 이어받을 후배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그렇게 인사동 영혼은 빠져나가고, 인사동의 낭만도 사라지는 것이다.

흐르는 세월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지난 24일에는 모처럼 강민선생님과 점심 약속을 했다.

페북에서 간간히 인사는 드리지만, 뵌 지가 오래되어,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꾸물대는 습관으로 또 늦어버렸는데, 그 자리에는 강민선생을 비롯하여 소설가 김승환선생,

'답게출판사' 장소임 대표, 사진가 정영신씨가 먼저 와 식사하고 있었다.



 


강민 선생께선 눈도 침침, 귀도 가물가물하다는데,

곰탕에 든 고기를 끄집어내, 술 안주하라며 접시에 담아주었다.

김승환선생께선 벌주로 술병을 든 채, 잔 비우기만을 기다리시니, 안 마실 수가 없었다.

, 단숨에 마시는 원 샷은 한 잔에 맛이 가버려, 잘 마시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밥상머리 화제는 강민선생과 장소임씨의 인연으로 옮겨졌다.

30년 전 강민선생께서 금성출판사상무로 재직할 무렵,

장소임씨가 강민선생의 자문을 구하러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 출판사 차릴 의향을 말씀드렸는데, 강민선생께서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그 덕에 출판사 차려 오늘에 이르렀음을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신 때마다 오찬을 베풀어 드리는 등, 강 민선생을 각별히 챙겨왔다.



 


장소임씨는 올 해로 답게 출판사창립이 3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도 가질 것이라 했다.

출판사 이름도 사람답게로 바꿀 생각이라며,

답게 라는 여러 종류의 상호를 등록하여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등 출판사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는 볼일이 있어 먼저 일어난다며,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강 민선생께 드린 것이다.



 


물론, 가난한 시인의 용돈을 챙겨주는 일이 고마운 일이긴 하나, 이 건 도리가 아니다.

드리려면 봉투에 넣어 정중히 드리거나, 다른 사람이 모르게 드리는 게 선생에 대한 예의다.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걸 모를 분이 아니잖은가?

그걸 보니, ‘답게 출판사와의 오랜 악연이 되살아났다.



 


약 십 오년 쯤 된 일이다.

'답게 출판사'에서 천상병선생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판하였는데,

내 사진을 사용하였지만, 원고료는 커녕 작가의 승인이나 사진 출처도 밝히지 않고 무단 전재한 것이다.





내가 찍은 천상병선생 사진은 8X10규격으로 뽑아 서명까지 하여 목여사께 드렸는데,

그 사진을 출판사 임의로 사용한 것이다.

물론 목여사는 저작권에 관한 관례를 몰라 주었겠지만, 출판사는 당연히 챙겨야 할 문제다.

더구나 사진에 서명까지 되어있는데도 무단 전재한 것은 상식을 넘어 양심 불량인 것이다.

그 당시는 '답게 출판사'나 장소임 대표를 전혀 모를 때였으나,

전해 준 천상병선생 사모님 얼굴보고 참았던 것이다.





바보같이 넘겼더니, 한참 후 또 문제를 만들었다.

일간신문에 책 광고를 내면서 내 사진을 그대로 게재한 것이다.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어 출판사대표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당사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목여사를 시켜 원고료 10만원으로 깔아 뭉갰다.

신문광고용 사진원고료가 얼마인지 모를리가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목여사가 아니라그 누가 부탁해도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는 매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았으니, 어쩔 수 없었.



 


몇 년 뒤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가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천상병을 말한다는 책을 만든다며 글 쓰 달라는 원고 청탁을 해 왔다.

천상병선생 이야기라 흔쾌히 쓰 주었는데, 나중에 책을 받아보니 그것도 답게출판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광래씨가 글 쓴 원고료라며 십 만원을 전해 주었으나, 그 책에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사진이 두장이나 실려 있었다.

사진 원고료는 물론 한 마디 양해도 없었지만, 인사동 궂은 심부름 하는 노광래씨 안면으로 또 그냥 넘긴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출판사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스스로 저작권 침해를 방조한 셈이고, 잘못을 그냥 넘겨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건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진가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요즘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시비를 가리는 것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세상을 요 모양 요꼴로 만들었다는 뒤늦은 자책에서다.



 


그 이후 천상병기념사업회이사회에서 답게 출판사대표와의 첫 상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는 커녕,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말이 저작권침해지 한마디로 도둑질인 것을 모를 리 없겠으나, 모른 채 하는 것이다.

가난한 다큐 사진가들의 유일한 수입원이지만, 돈이나 밝힌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다행히 인사동 터줏대감 강 민선생을 잘 모신다는, 고마움에 입 다물었던 것이다. 





나주곰탕에서 식사하며 천상병선생의 책은 8쇄에 이른 책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니, 저작권을 침해한 잘 못도 잊은 것 같았다.

뒤늦게 나온 책에는 사진의 출처나 밝혔는지 모르겠다.

괜히 답게 출판사’ 일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나주곰탕에서 일어나 김진열씨 목판화전이 열리는 나무화랑으로 옮겼다.

군중들에 휩싸여 걷는 두 선생의 어깨가 유달리 무거워 보였다. 4층까지 오르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 따라 갔더니, 김진하관장의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계셨고. 한 쪽엔 '문화연대' 임정희씨도 있었다.

오르느라 힘은 들어도 좋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 좋은 전시를 공짜로 보여 주는데도 안 오는 사람은 왜 그럴까?



 


그 다음엔 커피 한 잔하는 일만 남았는데, 선생님의 단골집이 그만 문을 닫아버렸다.

벽치기 골목의 유담커피숍으로 갔으나, 그 놈의 개는 왜 그리 짖어댈까?

내가 개처럼 생겨서일까? 아니면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낮 술에 주저리주저리 떠벌였는데, 선생님들께 실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인사동 터줏대감들이시여! 제발 세월에 휩쓸려 가지는 마십시요.

부디 건강을 지켜 오래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김진열씨의 목판화전 ‘이웃’과 ‘모심’이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가 열린 지난 17일 오후6시 무렵, 전시장에는 전시작가인 김진열씨를 비롯하여 '나무화랑' 김진하 관장,

미술평론가 이태호, 최석태씨, 화가 김 구, 손기환, 이인철, 이흥덕, 나종희씨 등 여러 명이 작품을 돌아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움을 뒤로하고 작품부터 돌아보니, 몇 년 전 그 장소에서 보았던 작품의 대상과 소재만 달랐지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는 일맥상통했다.

철판을 주워 모아 시뻘겋게 녹 슨 금속의 질감으로 담아내었던 그 때 작품이나,

한 스린 민초들의 삶을 통해 우리민족의 아픔을 나타내는 시대정신은 한결같았다. 그런데, 작품이 너무 좋았다.

거친 노동의 투박한 질감이 주는 동질감이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전시된 김진열씨의 목판화에서 한 평생 인간에 초점을 맞추다 세상을 떠난 휴머니스트 사진가 최민식선생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로 그의 작품이 소외된 서민을 통해 인간애를 담아내고 동시대의 아픔을 그려내려 했던 최민식선생의 작업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자신의 미학을 구현하며, 묵묵히 견뎌내는 서민들의 초상으로 우리 시대의 아픔과 존재의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작년에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하였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꼭 받아야 할 작가라고 여겼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과 정신세계에 가장 적합한 작가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앉아서 그림만 그려내는 화가가 아니다. 그 생각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작가다.

오랫동안 원주에서 환경 운동을 하며 후학들을 지도해 왔는데, 지금은 대학 총장 직책까지 맡아 그 임무를 다 하고 있다.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접하며, 진짜 그 학교는 복 받은 학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썩어 빠진 교육 권력이 난무하는 현실에 한 가닥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민중미술 경향의 칙칙하고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강한 소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사람중심의 작품에서 생명존중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품의 대상을 머리나 책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공간인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찾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스쳐 가는 사람 모습을 스케치하며 사실적인 현장감을 작품 속에 불어넣어 온 것이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서성이거나 기다리는 모습에서,

서민적인 인간애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말하며, 그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과 착취의 이데올로기를 인식케 하는 것이다.






전시 제목에 붙은 이웃과 모심(母心)은 그 모심을 통해 생명존중과 평화공존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보여 준 목판화도 처음 보았지만, 드로잉과 사진들을 나란히 배치한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왼쪽에 배치한 흑백사진의 버려진 황량함과, 오가다 만난 사람을 드로잉한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자세와 표정이 다양했다.

많은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준 그 작품으로 작가가 이야기하려 한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소외감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간성 상실을 질책하는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본다.






아무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자신만의 특유한 기법으로 구현하는 김진열씨의 작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쓰레기 같은 작가가 넘쳐나는 세상에 이런 훌륭한 작가도 있다는 것이 살아야 할 한 줄기 빛이고 유일한 위안이다.


미술평론가들은 "김진열은 삶의 체험적 질료를 중시하는 작가"라고 규정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우리 시대의 인간적 꿈, 우리 자신이 간과하고 상실해온 꿈이 끈적끈적하게 깃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들의 벌거벗겨진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작가 김진열씨를 비롯한 일행들이 모두 전시장에서 내려와 뒤풀이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동 ‘평화만들기’ 옆에 있는 ‘자미향’은 숨은 가게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민예총 관련 인사들이 자주 찾는 술집이다.

술 안주가 깔끔하고, 조용해서 좋다. 열 명 남짓 이층에 자리 잡았는데, 독방이라 술 마시며 놀기 안성마춤이었다.

뒤늦게 화가 정복수씨와 한겨레 임종업 기자가 들어오니 자리가 꽉 찼다.

 




그런데, 간장게장에 밥 비벼 맛있게 소주 한 잔 하는데,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개도 개 나름인지라, 보기 싫어 고개도 들지 않고 뒷자리로 옮겼으나, 영 맘이 편치 않았다.

사람 될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김진열씨가 곧 잘 하는 판소리 한 자락 못 듣고 와 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좌로부터 박불똥,김재홍, 김영진작가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씨가 참여하는 Oh! Real?展이 지난 20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개막되었다.



박불똥작



1982년 미대 회화과 복학생이었던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 세 사람은 개인적 사정과

시대현실에 대한 반항과 비판 등으로 스스로를 미술교육이란 제도 바깥으로 물러났다.

자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자 ‘낙동강 오리알’ 같은 외진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36년의 긴 세월이 흐른 오늘, 청년기의 각오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을 한데 모아 삼인 전을 마련하였다.
전시는 오는 7월2일까지 열린다.



김재홍작



개막식에는 참여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관장, 장경호, 최석태, 유근오, 최명철, 신상철, 나종희, 정영신,

손기환, 홍성미, 김보중, 김경지, 조신호, 박세라, 이재민, 정재안, 김이하. 곽대원, 김태서, 김정대씨 등

많은 지인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김영진작


사진, 글 / 조문호






















오는 6월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5월 25일 (금) 18:23:54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작품 앞에 선 이인철 작가. ⓒ조문호


이인철의 ‘in the paradise’전이 23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 남은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기계화의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다양한 형상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지만 경직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이인철, 핫바 171,1X96,25cm, 2018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그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한다는 자체도 흥미롭다.


작가 이인철은 인간성을 상실한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인철, 스텔-스안주,140X96,25cm(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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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다.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몇 일전 문영태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을 바탕에 둔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하여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인철, 세월1, 86,5X100cm


더러는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인철, 우리들의 일그러진 꼴통, 46X36,5cm



그런데, 작가 이인철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싸워서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 사과-탄, 60X80cm


작품을 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 이인철씨의 작업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서울 ‘민미협’ 대표를 역임한바 있는 중견작가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는 오는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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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인철의 ‘in the paradise’가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서의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기도 경직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작가 이인철은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로,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하는 것도 흥미롭다.






몇 일전 문영태화백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에 의한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인철씨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씨 작품을 비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인철씨의 인간적 친화력은 개막 전시장을 북적이게 했다.
원로 손장섭선생을 비롯하여 김명희, 민정기, 황의선, 윤범모, 김진하, 정복수, 장경호, 김재홍, 곽대원,

최경태, 김 구, 이재민, 변대섭, 한상진, 박홍순, 김영중, 김보중, 이원석, 김경지, 송용민, 김영진, 마문호,

양상용, 황준연, 박승원, 조경숙, 현린씨 등 많은 미술인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가 되었는데,

뒤풀이 장소인 ‘낭만’에는 손기환, 박은태, 임정의, 성기준, 소리꾼 유주현씨 등이 합류하여

판소리가 흘러 나오는 질퍽한 친목의 자리를 만들었다.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리는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에 많은 관람 있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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