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잠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2021_0602 ▶ 2021_0615

 

김재홍_거인의 잠-202103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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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김재홍의 최근작에 관한 인상 ● 블랙홀과 은하수가 어둠과 가녀린 빛으로 불규칙하게 휘감고 돈다. 인력과 척력이 미끄러지며 서로 밀고 당기는 불규칙한 중력의 뒤틀림인 듯, 공간이 휘거나 꼬이는 우주의 모양새다. 또는 풍화를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게 경화된 태토의 질감과 굴곡이 무한하게 긴 시간을 은유하는 땅 거죽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 목젖 아래 쇄골 한 부분 풍경이다. ● 특정한 대상이 이 정도 광대무변한 시공간으로 유동하고 확장하며 중층적인 이미지를 배태해낸다는 거, 신기한 일이다. 서술이나 서사를 배제한 일류젼일 뿐인데 말이다. 동적인 기운이"모였다가 흩어지고(聚散), 굽혔다가 펴지고(屈伸), 왔다 갔다(往復), 맑고 흐리게(淸濁), 곱다가는 거칠게(粹駁)"형상을 발현하는 듯하다. 이런 시각성의 변주는 기호가 아닌 상징이라서 가능하다. 여타 시각정보를 담는 목적의 그래픽과 다른 이 모호한(?) 장르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겠다. 김재홍의 최신작, 대략 300호가 넘는 「거인의 잠- 202103」이란 작품 얘기다. ● 거기엔 대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한 구상성의 속박이 없다. 액티브한 동작이나 물질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에 대한 서술성을 최대한 절제한 바탕에서 드러낸 묵언의 형상성과, 능숙한 손맛과 붓질이 중첩된 질감의 세련된 감각이 회화적 쾌감을 발현한다. 이후 그림에 담긴 단서가 하나둘씩 자연스레 포착 된다. 미적 쾌감 이후 작가의 문제의식을 찾아보는 습관은 그래서다.

 

김재홍_거인의 잠-길13_천에 아크릴채색_162×340cm_2020
김재홍_거인의 잠-길2021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2×122cm_2021

화면엔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신체 한 부분이 어떤 단서도 없이 등장한다. 늙고 마른 노쇠한 몸. 여린 호흡. 앞선 다른 그림에서의, 그 몸에 드리웠던 철조망과 경계로(路)의 흔적으로 인해, 화면 속 인물의 인생사와 그가 온몸으로 관통해왔을 현대사가 고스란히 연동된다. 분단 이후 70년의 시간성도 함께 묻어 나온다. 생의 끝 지점, 소멸 단계에 이른 신체 주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경건한 헌사이자, 아직은 분리되지 않은 그의 혼(魂)과 백(魄)을 온전히 하나로 기억하려는 작가의 의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그림에선 둔중한 울림의 회화적 표지(標識)와 기의가 경건하게 다가온다, 내겐. ● 몸에 새겨진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몸의 상흔이 희미해지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기억 본능이 망각 의지를 배반하고,세월이 약이지만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개인의 자전적 아픔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 땅 공동체에 가해진 폭력의 기억, 집단적 통증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근대 이후 한반도 민중에게 가해진 폭력 서사를 보라. 식민지. 동족상잔. 4.3. 분단. 군사독재. 산업화. 도시화. 5.18. 신자유주의. 이전투구의 생존경쟁. 도저한 아픔의 연속이다. 혹독하다. 그 불가항력적 조건의 연장선에서 지금도 우리는 그 레이어를 겹쳐 쓴 채 고통의 연대기를 쓰고 있다. ●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사람들은 위대하다. 망각 의지보다 더 선명한 기억 본능으로 인해 고통스레 살아내며 버틴 질긴 생명력이니까. 그들의 견딤이 역사고, 역사의 주인인 그들이 거인이다. 그런 앞 세대가 저물어가는 지점을 김재홍은 상징적인 기억투쟁 행위이자 오마쥬로 이 회화적 기록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이고 서사적 진술이 아닌 이 방식은 회화라는 매체의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노출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마다의 독해의 기호와 방식 아니겠는가. 반성과 성찰을 담보하는 기억에의 의지 말이다.

 

김재홍_거인의 잠-장막-유리구슬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김재홍_거인의 잠-202105-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21

한편 작가의 설명을 생략한 채 쓰는 나의 이런 인상기가, 김재홍의 작업의도와 표현 때문인지 혹은 그렇게 보려는 나의 아포페니아나 파레이돌리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그림에서 김재홍은 이전과 달리 대사가 아닌 방백과 지문(地文)으로만 주제를 이끄는 묵언의 장(Field)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회화적 상징이기에 가능한 거고, 그건 관자의 접근에 따라 그 결이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 ● 소재에 대한 특정한 사건·단서·기호·상황·설명·해석·연출을 소거한 채 주제를 침묵해버리는 역설적인 어법의 구사. 이제껏 직접적 형상으로 작업내용을 발설하던 김재홍의 작화법에 비하면 일탈이자 변화다. 작업을 끌고 가는 회화적 사유와 내공이 어느 정도 그의 몸과 일치가 되고 있어서일까. 새로운 회화공간으로 치환되고 확장하는 작가의 이런 변주는 관객의 주체적 상상력과 해석을 더 요구한다. 이런 시도는 그의 작업에 대한 공력이 깊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나는 대본과 무대를 제공했으니, 연기는 관객 당신이 주체가 되어서 하시오"라는 연출자의 열린 소통에의 실험처럼. ● 이번 전시가 끝난 이후 다음 작품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한 작품 얘기로 서문을 대신한 이유다. 그의 그림이 변하고 있다. ■ 김진하

 

 

Vol.20210602f |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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