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돌이다

이재민展 / LEEJAEMIN / 李在民 / painting.mixed media 

2022_1026 ▶ 2022_1108

이재민_복제와 전이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82×122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재민의 "이것은 돌이다" ● 하나의 현상을 두고 상호 다른 세계를 감지하거나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장자 제물론의 호접몽(胡蝶夢)은 꿈과 실재, 주체와 타자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도가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 호접몽을 각색한 듯한 영화 매트릭스(Matrix)는 디지털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교란한다. "네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럴 경우 꿈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겠나?" 라는 모피어스의 대사는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웜홀(Wormhole)을 통해서 우주와 지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다. 또 양자역학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질량과 위치가 궁극적으로 불확정적인 관계는 또 어떤가. 이런 철학적 관념, 과학적 가설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중국의 산해경, 우리 단군신화 모두 신계/인간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런 예는 기존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 시간, 물질, 사물과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재민_불안한 중력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82×40cm_2022
이재민_아직도 어두운 밤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61×82cm_2022
이재민_어떤 풍경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38×68cm_2021

이재민의 작업도 화면에 불러들인 실체인 '돌'과, 그 돌'그림'과의 관계항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한다. 이미지 공간인 화면 안으로 실제 오브제인 돌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실제의 돌과 그 돌을 정교하게 그린 돌의 이미지를 병치하는 구성이다. 그러면 이 그림 내부 이미지 공간에 위치한 실재의 돌은 과연 사물인가 이미지인가, 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물론 실재 사물인 돌과 그 돌을 재현한 일류전인 '돌'은 같을 수 없다. 하나는 물질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돌의 모사인 환영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이재민은 이 둘을 나란히 제시하면서 "이것은 돌이다"라고 전시 제목으로 선언한다. 주어와 서술어 각 한 단어로 구성된 간단하고도 명징한 문장. 그야말로 「이것=돌」이라는 확정적 명제다. 비유나 서술도 없는 액면 그대로, 돌과 돌 이미지가 자신의 그림에서는 이미 통일된 하나의 실재란 뜻인 것처럼.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것은 돌이다"라고 선언한 이재민의 미술행위는 결국 그 반대로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 마그리뜨의 명제와 같은 구조가 된다. "크레타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처럼, 참/거짓의 논리적 경계를 교란하는 유기적 혼돈구조 말이다. 그러니까 이재민에게 있어서는 실재계(돌)/상징계(모방)가 상호 모순을 드러내되, 결국 "이것은 돌이다"와 "이것은 돌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오히려 같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재민의 작업노트 한 구절을 보자.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은, (과거 내가) 빠르게 움직이며 살았던 삶의 반증이다." 이 문장은 경험을 기술한 것으로는 논리적이되, 그 기준을 제시할 수 없으므로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논리적이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나", "빠르게 움직이며" 살았던, 이재민의 경험에서 그저 상대적으로 느끼는 이 속도감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인가. "어둠 속에서만 있으면 밝음을 알지 못 한다"는 작가노트도 마찬가지 진술이다. 여기서의 밝음과 어둠 역시 광량과 조도의 문제가 아니라, 굴곡진 인생사의 비유임에랴. 그러니까 이재민의 "이것은 돌이다"라는 선명한 전시명칭은, 이런 그의 의식세계에 대입해보면 결국 "이것은 돌이 아니다"와 같은 맥락으로도 기능한다. 이것과 저것의 분리와 구분이 굳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재민_핵2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61×46cm_2022
이재민_핵3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46×61cm_2022

실재 작품들을 보자.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화면에 특정한 형태의 돌을 꼼꼼하게 재현하고, 그 옆에 재현의 대상이었던 실제 돌을 붙여 놓았다. 오브제와 일류전이 하나의 화면에서 결합한다. 텅 빈 바다와 하늘 풍경에 돌이 떠있는 이런 기법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한 전치(轉置, 떼뻬이즈망) 기법인데, 거기에 돌 이미지의 실제 원형 오브제인 돌을 병치시키면서, 다시 전치 효과를 사살하는 묘한 이중구조가 형성된다. 본디 콜라주·아쌍블라주·오브제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일류전을 통한 전치는, 사물을 익숙하지 않은 때와 낯선 시공간에 위치시킴으로 본래 성질과 기능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바꾸는 기법이다. 그런데 이재민의 화면에서는 일류전인 돌과 오브제인 돌이 병치됨으로 인해 오브제와 일류전이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즉 돌이 여타의 이미지로 변하는 전치는 되었으나, 한편 오브제인 돌의 등장으로 돌의 이미지가 다른 맥락과 기능의 돌로 전치되지 않고 여전히 돌로 남는다는 뜻이다. 전치효과가 일어나다가 실제 사물과의 연동으로 전치가 교란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마그리뜨가 파이프를 정교하게 재현한 이미지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쓰면서 재현의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 제기에 덧붙여, 이재민은 그 환영에 실물인 돌을 추가로 첨부함으로서, 이 작품의 돌이 일류젼인지 오브제인지를 다시 되묻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재민의 이번 전시 명칭인 "이것은 돌이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마그리뜨의 문제제기에, 자신의 회화는 "일류전=리얼리티"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셈이다. 사실 모든 미술은 시각을 넘어서는 조건에서도 이미지다. 현대미술의 숱한 전위들도 결국은 이미지로 그 주제를 드러낸다. 개념미술의 언어에 의한 연상과 논리와 해석도 언어의 이미지로 귀착되고, 이미지를 거부하며 사물 자체의 리얼리티로 제시된 미니멀도 관객의 기억에는 결국 형태와 질감으로 저장된다. 작가로서 이재민은 채집한 돌(오브제)과 그린 돌(일루전)을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연상으로 이미지화하고, 또 보는 관객들도 그러길 바라는 듯하다. "이것은 돌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결국 이미지/오브제의 구분 너머 그의 주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기법은 주제를 강화하는 보완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이재민_휴식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122×82cm_2022

그러면 이재민이 오브제와 일류전의 구분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내용이 중요한데, 그게 무엇일까? 먼저 자연인 바다·하늘·섬·산·대지 등과 같은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을 통해서 이재민의 말하려는 내용의 무대다. 거기에 등장하는 돌은 배경과 함께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거기에 자연에서 가장 견고한 돌을 그리고, 또 실재 돌을 화면에 부착함으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개념적 습성의 무용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각자 "스스로 그렇게" 생긴 대로의 돌로부터 이재민은 유사형상을 발견하고 이미지화 한다. 일종의 아포페니아(Apophenia)이자 빠레이돌리아(Pareidolia)다. 돌이 독도도 되고, 구름도 되고, 산도 되고, 맨드라미도 되고, 섬도 되고, 독수리도 되고, 심장도 되고, 낮과 밤의 이미지도 되고, 공룡의 뼈도 되고, 사람의 얼굴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돌이 풍경으로 전치되고 이미지화 되는 사이로, 가끔 핵무기가 발사되는 '반-자연'의 장면을 삽입해서 서사적 내용도 덧붙인다. 이 지점에서 보자면 이재민에게 있어서 '그린다'는 것과 오브제를 '제시'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형상으로 접근해가는 의지로 귀결된다. 그것은 사물성과 환영이 어떻게 상상의 볼륨을 증폭할 것인가라는 그의 원초적 충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돌이다"라는 명제는, 자연과 자신의 이미저리(imagery)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이재민의 감수성과 작업을 표상하는 수사이자, 그에게 있어서의 리얼리티라 하겠다. ■ 김진하

 

 

Vol.20221026e | 이재민展 / LEEJAEMIN / 李在民 / painting.mixed media

두려움 없이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22_1005 ▶ 2022_1024

 

최경선_두려움 없이_캔버스에 유채_162×130.4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크지 않고 나지막한 발성으로 최경선 자신의 회화적 호흡을 확인하는 프로세스인 듯하다. 이 전시타이틀은 최경선이 바라본(혹은 기대하는), 그래서 그림으로 형상화한 아이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간절한 기원의 서술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자기식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작가적 내면의 비유로도 보인다. 중국 북경에서 거칠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귀국한 지 십 년. 한국에서의 그동안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가정주부로서 여러 역할(사업가의 아내, 대입 입시생의 엄마, 시부모의 며느리, 친정엄마 딸, 기타 등등)의 수행과 함께 시간적·경제적·공간적 제약들로 작업에의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신작 개인전도(2015, 2017), 북경에서의 작업으로 구작 개인전(2019, 2020)도 가졌지만, 그가 원한 만큼의 수준이나 성취도에는 이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최경선_꽃 피는 첫번째 들판_종이에 수채_40.8×30.8cm_2022

이번 전시작들은 그런 부담으로부터 훌쩍 벗어난 집중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림마다 조형적 의도와 일치하는 그리기 형식이 자신만만하게 결합되어 있고, 집중된 상태에서의 일획의 붓질은 두 번의 덧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형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한 묘사로부터 일탈해서, 마치 문인화의 담백하고도 긴장된 일획의 필력처럼 직관적으로 자신이 의도한 분위기로 화면을 주조해냈다. 게다가 모든 그림을 다 보아도 같은 유형의 붓질이나 터치가 없다. 각각의 그림과 부분마다 그 맥락과 조형에 꼭 필요한 만큼의 긴밀한 회화적 날것의 표현들이 몸의 직접적 궤적을 생생하게 현전해내면서 말이다. 경쾌하고도 날렵하게. ● 비유하자면, 지속적 주제였던 소외되고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존재(자연)임을 확인한 순간의 기쁨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오히려 작가에게 삶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는, 능동적이고도 긍정적인 자기 깨달음을 회화로 증명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뻔하게 반복적으로 그리는 클리셰 없이 작품마다 다르게 전개되는 이런 즉발적 표현성은 긴밀하고도 예민한 회화적 내공이 그 바탕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경선_날마다_캔버스에 유채_53×41.2cm_2022

그러나 이런 점은 작가의 지극히 감성적 영역에서의 작업과정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최경선의 이번 전시작들이 또 다른 큰 변주 직전 자기 확인의 지점 같다는 언급은, 바로 이런 주관적·감성적 표현으로부터 좀 더 넓게 사회화할 수 있는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언급이다. 제도적·구조적으로 "배제된" 아이들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감수성과 더불어 인식적인 면에서도 좀 더 주제를 사회화할 수 있는 내용적 기제의 창발 또한 작가의 몫이라서 그렇다. 최경선의 회화적 능력을 확인하는 이번 전시에 이어, 더"두려움 없이"자기갱신으로 도전하는 다음 작업들이 그런 내용의 '태풍'같은 소통을 불러일으키기 기대해본다. 작가에게 관객의 기대는 곧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부담은 또한 작가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한 것이니... ■ 김진하

 

최경선_볕 든 산성_캔버스에 유채_90×100cm_2022

『두려움 없이』란 제목은 한 보도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뉴스 중에 나온 한 장면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얀마의 젊은 남성이 아이를 업은 채 장총을 들고 대치 중에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와 위험한 상황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버지로서의 결연함.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 장면은 작품 「두려움 없이」의 모티브가 되었다.(그림에서는 총이 아닌 확성기로 그려졌다. 확성기는 언어의 힘에 대한 은유이다.)

 

최경선_일어서는 풀_캔버스에 유채_100×80.2cm_2022

지난 몇 년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일상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나는 드러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보다 왜곡되는 언어들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양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범람하듯 몰려오는 위기 증후는 근본적으로 부조리를 상쇄시켜왔던 인류의 정화 능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신뢰를 이루는 언어는 오염되었고, 양육과 책임의 마음을 잃은 인류의 생존방식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인다. 두렵다. 그러나 견고한 것은 없다고 알려준 위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폭력적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것을 찾아 자연을 자세히 보도록 하였다. 낮아질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약함보다 두려움이 삶의 장애가 됨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우리는 회복으로 활성화된 생명의 움직임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주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만이 생명적 보탬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긍정성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들로 인해 위기가 극복되어 왔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최경선_묵묵한 활보_캔버스에 유채_53.3×45.5cm_2021

나는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언어의 순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생명적 가능성을 신뢰할 때 기꺼이 살림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잃었던 돌봄의 마음들이 돌아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메마른 땅에 물과 빛이 닿아 생명이 움트듯 말이다.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통해 존재의 회복력을 형상화했다. 소재는 주변에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것, 연약한 것, 하찮은 것들이다. 번뜩이는 순간 노출되는 숭고함, 아름다움, 활력과 같은 내력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했다. 보호자가 있는 어린 아이의 안도감, 죽은 듯 누운 풀의 되살아남, 쉼이 없는 땅의 활력이 담기길 바랬다. 개인의 슬픔이 사회적 슬픔으로 연결될 때 회복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는 「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책임 있는 존재의 중요성을 피력하고자 한 「두려움 없이」의 일련의 작품들, 풀의 생명력을 통해 연약함에 내재된 놀라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 「일어서는 풀」, 축적된 보살핌과 성실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날마다」 등이 있다.

 

최경선_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21

그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좀 더 붓질이 강조된 명료한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안료의 물질감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붓의 방향성은 다양해졌다. 형상은 단순화하며 표현성에 집중하였는데, 묘사가 생략된 대상은 마치 콜라주처럼 보이면서도 화면의 다양한 층의 형성하도록 평면화시켰다. 거기에 리듬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드러나도록 시도 했다. 이전보다 빛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결과 더 신중하게 선별한 색은 밝아지고 다양해졌다. ● 나에게 그림은 점차 '미지의 개척지'에서 '주변부와의 화해'의 기능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모두가 함께 겪는 이상 징후 앞에서 공동체 속으로 좀더 들어가야 함을 느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나의 슬픔으로 공감할 때, 인류의 저울 위에 생명의 추 하나가 올라간다고 생각해 본다. 불안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평범한 초인이 오늘도 내 안에서 출현하기를 기다린다. (2022) ■ 최경선

 

Vol.20221005a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춘자삼춘' 앞에 선 이명복작가

 

 

이 세상에 어머니란 말보다 더 편하고 정겨운 말은 없을 것이다.

어깨를 토닥이며 불러주던 자장가로 꿈꾸던 행복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이명복_겨울 배추밭_75×60cm_2021

말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지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이명복의 어멍전이 어버이날에 맞춘 지난 54일부터 17일까지 열렸다.  몇 달 전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전이 열렸던 나무화랑’에서 다시 그 감회에 빠져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부터 생각난다.

 

이명복_휴식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내 나이 세 살 때였으나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다. 포화가 잠잠할 즈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유엔군이 진을 친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칠 무렵, 피 흘리며 쓰러진 군인이 , , 이라 외치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선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기는 했으나 뒤에서 총을 쏠까 염려되어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끌어안고 뛰셨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흘렀다. 그때 느꼈던 어머니의 거친 숨결 속의 전율감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것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오랜 기억이다.

 

이명복_밭일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이명복은 역사와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의 시대상을 그려내는 민중화가다. 제주로 간지 12년이 넘었는데,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참혹한 과거가 묻힌 곳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질곡의 현장을 답사하며, 민중의 한맺힌 응어리를 형상화해 왔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은 붓으로 새긴 역사화에 다름아니다. 비록 한 사람의 인물을 그렸지만, 그 인물 속에 한 생애가 고스란히 들어있을뿐더러,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는 것이다.

 

이명복_감자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27.3cm_2021

이명복 작품 중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작품은 2년 전 ''전에 내놓은 해녀 옥순삼춘이었다. 마치 흑백사진 같은 리얼한 표정의 슬픈 모습인데, 웃음을 머금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애잔한 표정이었다. 마치 민족의 한이 한 여인의 얼굴에 응축된 것 같았다. 그리고 5월9일까지 '인사아트센터' 열리는 4.3기획전 바라·'에 출품된광란의 기억도 대단한 역작이었다.

이명복의 작품은 풍경마저 보는이를 슬프게 만든다. 상처받은 역사에 암울한 현실이 더해져 또 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명복_해녀-춘자삼촌_92×62cm_2021

이번에 보여준 어멍전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삶터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압축되었다. 역사의식에 바탕 둔 현실 수용으로, 어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과 눈빛에서 지난한 세월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 근면함과 강인한 생활력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며, 숭고한 생명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명복_봄바다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27.3cm_2021

회화는 그 형식적 물리적 속성으로 인해 한 작품에 작가가 원하는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바로 이 한계를, 이명복은 풍경화-인물화-역사화라는 분절된 장르를 리드미컬하게 상호 연관시킴으로 종국에는 그가 원하는 내용과 주제를 형상성으로 드러내고 극복하게 된다. 이번 나무아트의 '어멍(어머니)'전은 거대한 역사화로 이르는 이명복 회화의 출발점이자 통로라 하겠다고 김진하 미술평론가는 적었다. 

이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이명복_귀로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길 건너기

 

원치용展 / WONCHIYONG / 元致鎔 / painting 

2022_0406 ▶ 2022_0419

 

원치용_철길_종이에 과슈, 색연필, 아크릴채색, 잉크_89.5×130.5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원치용의 '길 건너기' ● 35년 쯤 전 그를 처음 보았던 듯싶다. 서교동 한강미술관의 어떤 단체전 오프닝이었을 것이다. 자주 어울리는 화가들끼리 모이다 보니 낯선 이는 쉽게 노출되었는데, 그때 낯선 그와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다. 오랜 기간 파리에서 살았다는 것과, 대학 전공은 미술이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서 기억에 남았다. 1989년 한강미술관이 폐관을 하고 그를 보지 못하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2005년 어떻게 연락이 되어 과거 지인 몇몇과 함께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토포하우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외국계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 전업 작가의 길을 걷지 못했으되, 틈틈이 그린 그림들로 미술에의 갈증을 푸는 정도를 하고 있다면서.

 

원치용_북극곰 어미와 새끼들_종이에 과슈, 색연필, 아크릴채색, 잉크_80.51×117cm×3_2022_부분

길지 않은 서문에서 개인사적인 이런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이 작가뿐만 아니라 작업을 하는 여러 입장들이 떠올라서다. 누구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작업을 하고, 누구는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는 예술가적 제스처로 낭만적 딜레땅뜨나 스노비스트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누군가는 가진 재주가 이것밖엔 없어서, 누군가는 취미생활로 일상의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작업 아닌 것으로는 온전히 말을 할 수 없어서… 등 그 입장은 수없이 많다. 돈과 명예를 가득 채운 작가라 해서 더 가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의 취미생활이라 해서 몰가치 한 것도 아니다. 작업을 하는 것이 그만큼 자신의 절실함·해방감·의무감·즐김 등에 바탕 하는 한, 미술 행위는 그 누구에게든지 필요하고 또 가치 있는 것이니까. 100m 전력 질주해서 인간의 한계기록에 도전하는 엘리트 스포츠가 중요하듯, 시민 각자의 건강을 위한 생활체육도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처럼. 뛰어난 미적 이념과 감수성으로 탁월한 작가의 미술뿐만 아니라, 그를 감상하거나 창작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작업을 "누리는" 시민의 미술행위가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전문가의 작품과 일반시민이 주체가 되는 생활미술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분리될 성질이 아니다. 미술은 작가와 관객이 소통하는 감성의 사회적 분배이자 삶의 질을 고양하는 문화적 생성에 의한 생산의 가치니까. 기존 미술 제도나 시스템 안에 있지 않더라도, 자기 삶을 반영하는 언어를 담지한 모든 작업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어야 함은 그래서 당연하다고 하겠다.

 

원치용_사자 어미와 새끼_종이에 과슈, 색연필, 잉크_80.5×117cm×3_2021~2_부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수십 년 직장 생활과 더불어 진행해온 원치용의 그림은 위에 거론한 유형 중 어디에 속할까. 아마도 마지막 거론했던 "자신의 삶을 작업 아닌 것으로는 온전히 말을 할 수 없어서"에 해당 되는 듯 여겨진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어서 습작기 훈련의 결여. 생활인이라 작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집중도의 결여, 작가로 활동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결여 등 많은 과정을 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묵묵하고도 끈질기게 작업을 지속해온 (한국미술계로 보자면)이방인인 이 60대 중반 작가(지망생)의 태도를 보면 말이다. 걸어왔던 인생길 한쪽을 마감하고 이제 비로소 미술을 온전히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나는 다름 아닌, 내가 걸어온 세계다"라는 어느 외국 시인의 말처럼 묵직해 보인다. 소 고삐를 잡고 삶을 가로지르는 그의 「길 건너기」의 현대판 '심우도尋牛圖'로도 여겨지고...

 

원치용_코뿔소 가족_종이에 과슈, 색연필, 유채, 아크릴채색, 잉크_80.5×117cm×3_2022_부분

고대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다. 이후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게 하자"는 근대 합리론자 데카르트와, 자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연을 더 손쉽게 지배할 수 있다"는 경험론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구 근대주의는 인간 이성을 중심축으로 오늘의 문명과 문화를 구축해왔다. 법·경제·산업·과학·기술·인문·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그 근대성을 바탕으로, 인간 이외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할 타자로 배제하면서 오늘의 지구를 만들어 왔다. 거기에 자본주의는 끝없는 욕망의 근골과 근육을 강화한 적자 주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고. ● 그러나 '만물의 척도'이자 '자연의 주인'인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합리적 이성주의가 극한으로 진화(?)한 신자유주의와 4차 산업혁명의 장력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답은 다르겠지만, 미증유의 팬데믹을 거치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호흡도 통제를 받고, 사람 사이 거리조차도 '만물의 척도'답지 않게 제도와 정책에 의해서 조절-지배되는 이 피동적 현실에서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근대성의 가장 주요한 가치인 개별적 '주체성'이,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기제인 '이성'에 의해 억압받는 모순된 현실에서는 더더욱 긍정적인 답은 나오기 어렵다. 더불어 근대적 이성이 생산한 이 엄청난 과학기술과 속도에 의해, 전쟁과 살육, 환경재앙과 기후재해의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과연 행복한 인간다움이 원론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를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원치용_명동 밤 골목길_종이에 과슈, 색연필, 아크릴채색, 잉크_100×75cm_2019

원치용의 이번 전시 작품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근대성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현현되고 있는지, 그의 일상적 경험 서사(풍경)와 인식적 판단(풍경에 반하는 소재의 배치)의 몽타주로 엮어낸다. 자신의 일상적 현실을 접하는 감각적 현상으로부터, 반성적 사유와 상상, 그로 인한 결과적 형상에 이르기까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반생명적 공간체험이 그 바탕을 이룬다. 서울역·명동골목길·쇼핑센터·철거 예정지 등의 도심으로부터 철길과 고속도로와 송전탑을 거쳐 주변부로의 공간 이동과 확장을 통해서, 분당에서 살던 직장인이었던 본인이 퇴직 이후 파주에 정착하면서 체험한 서정과 공간 서사를 서술하면서, 또 거기에 상상으로 소환한 각종 동물(오리·코뿔소·북극곰·호랑이·송아지)과 충돌하는 현대문명의 부조리한 현실풍경을 대비하면서 말이다. ● 도시가 넓어지고 교통이 발달할수록 본래 그 공간의 주인이던 생명들은 삶의 터를 빼앗기고 멸종이라는 극점으로 밀려난 게 20세기 역사였다. 그 바탕에서 여전히 개발되고 있는 공간(장소)에서의 실제 풍경과, 문명에 대한 원치용의 반성적 성찰이 자연스레 교직된 형상으로 도출되어 나온 것이 이번 전시 작품의 내용적 축이다. 편안한(?) 퇴직 이후 전원생활을 꿈꾸던 그는 결국 다시 서울과 거주지를 오가는 공간에서 불편한 실체적 모순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고, 기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원치용_길 건너기_종이에 과슈, 색연필, 잉크_65.5×100cm_1995

회화에서 이런 방식으로 주제를 연동시키는 화면 구성 형식과 수사법은 물론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원치용이 포착해낸 현장에 대한 리얼한 분위기, 즉 현장성은 철저하게 본인의 공간에 대한 실존적 체험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점에서, 풍경 자체가 비판적 분위기로 응축되며 주제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재인 풍경과 이질적인 동물과의 몽타주라는 연상적 내용 전개 방식을 제거하더라도, 풍경 자체가 이미 건조하고도 메마른 '불안'과 '소외'의 작가 심리를 표출하는 표현성을 띠고 있어서 그렇다. 예컨대 2019년 작품인 「명동 골목길」은 철거 예정지의 을씨년스런 서정성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감정과 심리를 돌올 시키고, 「고속도로 옆 송전탑」이나 부처를 등장시키며 복선적 상징코드를 배치한 「길 건너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비와 서술에 의한 내용 전개의 설명적 방식보다는, 표현법과 그리기 자체에 의한 주관적 발성과 음색이 오히려 내용을 회화적으로 더 풍성하게 전달시켜준다는 뜻이다. 사실 다른 그림들도 동물을 넣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상징성을 충분히 띤다. 체질에 의한 그리기의 형상성이 소재의 소환과 배치에 의한 몽타주 방식의 기호성이나 서술성보다 더 민감하게 독자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이런 드로잉 방식의 표현법은, 그 자체가 서정적 주제를 견인해내는 형식으로 적절해 보인다.

 

원치용_고속도로옆 송전탑 1_종이에 과슈, 색연필, 잉크_38.5×53cm_2014

시간은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다. 주인이 없다. 누구나 안다. 시간과 더불어 공간도 주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내 땅"이나 "내 집"이란 사물에 소유격을 부과함으로 마치 자기가 그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한다. 이 지구상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객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 객이 주인행세를 하면서 뭇 생명을 배제한 들판(신도시)은 쓸쓸하다. 아파트가 건설되고 아스팔트가 넓어지고 사람들의 공간이 커질수록, 소멸된 동물의 운명처럼 우리의 미래도 어둡고 좁아질 수밖에 없다. 원치용의 그림은 바로 지금 그가 속도감 있게 지나치며 마주하는 (이미 죽어 버린) 풍경의 현장에서 뚜렷하게 감지한 그런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비판이다. "자연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만물의 척도"가 벌이는 반생명적 개발행위들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형상으로 질문하면서. ● 형상성은 비판성을 담보로 한다. 지난 30여 년간 자신만의 감수성과 인식으로 진행해온 원치용의 작업도 이런 그의 내적 필연성에서 기인한 형상이다. 망칠의 연배에 굳이 작가로 '성공'한다거나 작품을 판매해서 돈을 '번다'는 것보다-그는 이런 쪽으론 아예 생각 조차 않고 있다-미술이란 매체로 세계에 대해서 말을 한다는 겸허한 행위가 그에겐 뜻깊은 일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렇듯 삶의 경험과 통찰에 바탕한 자기 형식의 발언으로 보자면 이미 그는 '길'을 건너온 작가라 하겠다. 늦은 나이, 퇴직 이후 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 그의 결연함에 성원을 보낸다. 치열하게 작업하시라. 그리고 더 많은 시도를 하시라. ■ 김진하

 

 

Vol.20220406c | 원치용展 / WONCHIYONG / 元致鎔 / painting

 

‘인사아트센터’ 지하전시장에서 김수영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거대한 뿌리’전이 지난 22일 개막되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성탄절에서야 짬을 낼 수 있었으나 전시장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전시장에서 꼼꼼하게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태호, 김정헌, 김진하, 강경구, 임옥상, 박재동, 신학철, 노원희,

박 건, 민정기, 박영균, 손기환, 이명복, 이인철, 이흥덕, 정정엽 작가 등

기라성 같은 민중미술가들과 가수 정태춘 등 30여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출품 작가마다 서사와 주제에 따른 표현이 다양했고,

김수영을 그린 초상화의 표정도 다채로웠다.

 

전시작을 돌아보며 김수영 시인의 시가 떠오르거나

생전의 모습이 생각나는 등 오로지 김수영시인만을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전시는 27일 까지라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인사동이야기사진전을 준비하는 날이다.

 

승용차에 가득 싣고 간 사진액자를 4층까지 올리기가 만만찮았다.

5분이 초과하면 주차위반으로 카메라에 찍힌다기에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들어 올렸다.

 

너무 많이 준비한 액자 때문에 걸 일이 걱정되었으나

차를 주차장에 옮겨놓고 돌아오니 김진하관장이 적절히 자리를 잡아놓았다.

 

일사불란하게 설치하는 김관장의 디피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걸어주어 우려를 덜었다.

조명 조정까지 잘 마무리했다.

 

김진하, 장경호, 전활철씨와 어울려 유목민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술 한 잔했다.

전시는 30일까지니, 시간 나시면 관람하시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2주 전 인사동 마당발로 통하는 노광래씨가 인사동 이야기사진집 제판을 찍자는 제안을 해 왔다.

이 책은 11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책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어 저자도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노광래씨가 인사동 풍류 40이란 책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았으나 책이 없어 다시 찍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없는 책을 다시 찍겠다는 걸 말릴 일도 아니지만 그의 인사동을 사랑하는 애착이 고마워 돕기로 했다.

그러나 출판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여 선구매를 요구해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락된 사람을 추가로 추천하므로 개정판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미 많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은 출판사로 송금한 분도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다.

당장 노숙인책 출판과 전시 준비로 내 코가 석 자인데다 전시만 끝나면 진인진출판사와 계약한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어야 할 처지라 난처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칼을 뽑았는데...

 

시간이 없어 추가로 찍을 분은 촬영일을 잡아 서너 명씩 세 차례로 나누어 찍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자꾸 늘어났다. 추가 인원을 열 분 정도를 생각했으나 20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 인사동과 관련된 분이기도 하지만, 몇몇 분은 예전에 찍으려고 추진하다 빠트린 분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 촬영까지 했으나 지면이 부족해 게재하지 못한 분도 십여 명이 남아있었다.

 

막상 촬영을 마무리하여 원고를 보내려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다시 찍은 만큼 빼야 하는데 누구를 뺀단 말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열 분이나 되지만 그분들은 더더욱 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인사동 풍류의 주체이며 인사동 역사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이 늦은 것도 고민에 고민을 하다 묘안이 없어 하소연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유목민으로 바꾸어 글을 없애고 초상사진으로만 만들던지,

아니면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오래된 인사동이 아닌 지금의 인사동으로 바꾸려면 촬영 방법이나 편집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7일 오후 3시에 마지막 촬영 일정이 잡혔다.

이날은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선생과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찍기로 했다.

그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석태, 화가 황경애씨 등 네 분을 찍기 위해 나갔는데,

전날 정선에서 묘지 이장하느라 곤죽이 되어 잘 마무리할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리더니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나게 만들고, 사진 찍기는 좋았다.

누군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겠다며 걱정했으나 그건 사진을 모르는 소리다.

햇빛이 쨍쨍한 날은 밝은 부분의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가급적 삼가한다. 더구나 사람 찍는 초상사진은...

인물사진은 확산광이 퍼진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오는 날이 더 운치가 있다.

 

약속 장소인 나무화랑으로 올라 가니 김진하 관장이 있었고,

마침 미얀마 민주주의 후원을 위한 더불어 붓글씨전인 미얀마 민중과 함께 여는 새날이 29일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김창남, 이지상, 김성창, 백인석, 구자춘, 이상필, 최 훈, 서연순, 성화숙, 최성길씨 등

서예가 열 분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전시기간이 남았으나 작품이 다 팔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신학철, 이효상선생 내외분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진하, 최석태, 장경호씨와 더불어 술자리부터 잡아두고, 신학철선생 촬영을 마치고 오니 박재동화백도 등장했다.

인사동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박재동화백의 구수한 유행가 자락에 어찌 술맛 나지 않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모처럼 만난데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누적된 피로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신학철 선생께서 핸드폰을 열어 최근에 그린 작품 두 점을 보여 주었는데, 눈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연작이라는데, 그처럼 아름다운 춘화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달구지 위에서의 사랑놀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꼴페미로 남녀 관계가 소원해진 현실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작품이 틀림없었다.

 

신학철선생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임경일, 우문명, 김윤기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두 자리에 나누어 앉아 여기저기 옮겨가며 술 마시기도 바쁜데, 약속한 화가 황경애씨는 계속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유목민에서 인사아트프라자를 두 번이나 찿아가서야 찍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찍겠다는데, 추억하고 싶은 인사동 거리를 보여 주는 입상사진의 촬영 취지와 달랐다.

덕분에 거리를 오가며 사진 찍느라 술은 덜 마셨지만...

 

그런데 통큰 갤러리일층에 포토이즘 박스란 새로운 업소가 들어와 있었다.

리모컨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공간인 것 같은데, 별의별 업소가 다 생긴다.

 

유목민으로 돌아가니 전시작품 출력하러 갔던 정영신씨까지 찿아와 이제 술 마실 일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금지곡까지 한 곡 뽑았는데, 제 버릇 개 주지 못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누군가 돌아가신 사진가 최민식선생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분이 준 인간사진집 때문에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말했더니,

박재동화백은 그 말과 더불어 지껄이는 쌍다구까지 그려 보여 주었다.

세상에! 속기사도 그리 빠른 속기사는 처음 보았다.

 

술만 취하면 배배 꼬며 염장 지르는 장경호의 술버릇도 여전했다.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이효상선생의 채근에 다들 일어섰는데, 술값을 박재동 화백이 계산해 버렸네.

내가 만든 자리라 꼬불쳐 둔 신사임당 두 장이 굳어 좋긴 하다만 거지 체면은 말이 아니다.

 하기야! 그 돈으로 마신 술값이나 되겠는가?

 

원님 덕에 나팔 분 즐거운 하루였지만, 꼬인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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