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배:협주곡 The Ship of Fools:CONCERTO

라종민展 / RAJONGMIN / 羅鐘民 / painting 

2022_1026 ▶ 2022_1107

라종민_바보배 the Ship of Fool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9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라종민 개인전 『바보배: 협주곡』 : 새와 바보들의 소리로 연주된 음악 ● "어리석음과 지혜는 쌍둥이처럼 붙어 있고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환경 재앙의 암흑에 둘러싸인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진화의 오수관을 피해 갈 만큼 충분히 지혜로운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야기의 결말이 나쁘게 끝나면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라 해도 회피해버릴 우리가 아니던가." (장프랑수아 마르미옹, 『바보의 세계』 中)

 

라종민_Rhapsody of Fool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273cm_2022

당신은 스스로 바보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에는 어리석음과 지혜, 비이성과 이성이 혼재되어 있다. 그 누구도 완전한 바보는 없으며, 그 누구도 완벽한 현자賢者 가 될 수 없다. 때로는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인간의 결정과 행동이 사실은 바보짓이었음을 우리는 역사 안에서 종종 마주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인간 중심의 사고로의 전환을 맞이하여 '이성적 사고'를 시작한 사람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였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광인'으로 명명되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17세기에 들어서는 급기야 이들을 감금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을 구분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 것일까? 과연 그 구분의 기준은 합당한 것일까? 미술대학에 다니던 시절부터 이러한 모순점과 이성과 비이성의 충돌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 라종민은 작품 속 다양한 상징물symbol을 통해 '오늘,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라종민_레테(망각) Leth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2×34.8cm_2022
라종민_새를 입은 바보 a Fool in a Bir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2
라종민_새를 입은 바보 a Fool in a Bir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9cm_2022

꽤 오랫 동안 다른 분야에서의 경제 활동에 무게를 두고 지내온 라종민은 2020년에 열린 개인전 『바보배 The Ship of Fools』를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이야기를 회화로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와 작업의지를 재확인했고, 이전 작업에서 '샴쌍둥이Siamese twins'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냈던 개인적 서사와 관심을 '바보배'라는 주제로 옮겨와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며 작가로서 새로운 시작의 기지개를 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열리는 라종민의 개인전 『바보배: 협주곡 The Ship of Fools: CONCERTO』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실험이자, 도전이다.  ● 작가가 '바보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내용적, 표현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것은 1494년 출간되어 르네상스 시대 큰 인기를 끌었던 제바스티안 브란트(1457-1521)의 운문집 『바보배』인데, 이 작품은 고전부터 성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런스와 당시 사회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바탕으로 100가지가 넘는 유형의 바보들을 등장시켜 어리석음을 비꼬았다. 2020년에 라종민이 선보였던 작품 「바보들의 배」와 일련의 작품은 여기 수록된 알브레히트 뒤러의 삽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2020년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 시작은 '구멍'이다. 바보들의 천국 '나라고니아'로 가는 승선권을 쥐고 앞다투며 배에 올라탄 바보들. 그러나 망망대해로 나아간 그 배에는 은밀하게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 서서히 물이 차 올랐고, 바보들은 침몰 직전이 되어서야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라종민_바보꽃 Fool Flow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4.8×24.2cm_2022
라종민_Bird7_단채널 비디오, Color Sound_00:01:30_2022 (Composed by 송미선)
라종민_신을 믿지 못하는 바보a fool who doesn't believe in God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5.1cm_2020

작가는 이 '침몰의 구멍' 안, 배 갑판 아래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상상해 제작한 신작 「Rhapsody of Fools」(2022)을 이번 개인전의 메인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미지의 근간이 되는 것은 작가가 리서치 중 발견한 1989년 독일 풍자 잡지 『Kladderadatsch』에 게재된 캐리커처(그림1)인데, 작가는 이를 차용해 라종민의 이미지로 재탄생시켰다. 먼저 「Rhapsody of Fools」에 담긴 이미지들을 살펴보자. 약 200호 상당의 대형 화면 중앙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광인의 뒷모습과 함께 전면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새가 등장한다. (이 새의 이름은 불꽃바우어새Flame Bowerbird라고 한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피아노의 다리가 새(왜가리)의 다리와 발로 표현되었다. 각 피아노 건반의 끝에는 화려한 색의 깃털이 하나씩 달려있고, 피아노의 몸통에는 갑판 위에 있었던 아이들(바보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갇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구성하며 정신병환자들(바보들)을 치료하기 위해 쓰였다는 '고양이 피아노cat piano'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왔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고 르네상스 시대 문학 작품에 묘사된 것으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이 흥미로운 피아노는 피아노줄 대신 고양이의 꼬리를 각 건반에 연결해서, 건반을 누를 때마다 나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소리를 완성한다는 꽤나 기괴한 컨셉이다. 라종민의 그림에서는 고양이 대신 바보들의 울음소리가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그러나 라종민의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앞서 이미지를 살펴보며 언급했듯 '새'라는 새로운 알레고리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새'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더 희귀하고 화려한 깃털을 갖는데 집착하는 이른바 '깃털 역병' 때문에 수억 마리의 새들이 인간에게 살해 되었던 역사적 사건을 보며, '인간의 탐욕'에 대한 상징적 존재로서 새를 등장시켰다. 그리하여 멸종 위기인 '불꽃바우어새'와 눈이 가려진 '왜가리,' '망각의 바보'를 상징하는 까마귀 등 인간의 바보스러움을 상징하는 새들로 피아노를 구성했다. 새의 알레고리는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은 신작들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라종민_바보배 Ibuprofen boa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72.7cm_2020
라종민_바보 Fool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0

다시 메인 작업을 돌아가보자. 화면에서 좌측 하단을 보면 하나의 악보가 등장한다. 이것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곡가 송미선과 협업하여 만든 테마곡 「Bird 7」의 악보이다. 작품의 제목에도 광시곡을 뜻하는 '랩소디Rhapsody'가 들어갔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있어 작가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청각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작가는 이 악보를 영상화하였고, 연주된 음악과 함께 전시장 한 켠에 설치하여 관람객들을 초청한다. 「Bird 7」의 멜로디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전체에 걸쳐 곡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미.솔.레' 3개의 음인데, 이는 「Rhapsody of Fools」와 「The Fool's Piano」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테(Lethe:망각)'을 청각적으로 해석해 표현한 것이다. 곡이 시작하면서 처음 들리는 피콜로piccolo의 트릴(떤꾸밈음, 악보에 표기된 음과 그 위의 음을 빠르게 반복하는 연주기법)은 새소리를 연상시키며, '자만심'을 나타낸다. 피아노 반주부의 온쉼표는 '게으름', '매우 약하게'를 뜻하는 피아니시모(pp)는 '나약', 3/4박으로 급변하는 부분은 '경솔', 피콜로를 따라가는 피아노의 반주부분은 '아첨', 작은 음표로 그려져 있는 꾸밈음은 '관능'을 의미한다. 이 바보들의 소리로 연주된 협주곡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청각을 자극하며 작품 속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할 것이다. ● 라종민이 그리고 있는 이 바보스러움의 표상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이자 이 사회의 자화상이다. 브란트는 『바보배』의 머리말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은 책에 실린 판화에서 자신의 바보 형상을 보겠네. 또 판화에 실린 바보가 어떤 인간인지, 누굴 닮았는지, 어디가 모자라는지 알게 되겠지. 나는 판화를 '바보거울'이라고 부르려고 하네." ● 라종민이 그려낸 바보들의 이야기 역시 그렇게 그림을 보는 이들을 비출 것이며, 그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존재할 것이다. 그 '바보거울'을 통해 모두가 자신의 '바보 형상'을 발견해 보기를. ■ 서지은

 

라종민_그릴 Gryl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9cm_2020
라종민_그릴 Gryl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9cm_2020
라종민_그릴 Gryl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53cm_2020

인도 사막에서의 사고로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관심이 시작 된 이후 나는 많은 사회 현상들을 이성-비이성으로 나눠 보는 시각이 생겼다. 비이성(혹은 광기)은 여러 문헌과 자료들에서 '어리석음'이라고도 표현 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the ship of fools는 '광인의 배'라고도, '바보배'라고도 불린다.) '바보짓connerie'이라는 단어는 중세 이후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중세 이전에는 바보스러움이나 어리석음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중세 이후 이성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강조되며 광인 즉 비이성이 강한 자는 배척되고 분리의 대상으로 여겨져 배에 띄워 흘려 보냈고 그들을 태운 배를 '바보배the ship of fools'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이 '바보배'에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으며 당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많은 글과 그림, 음악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나도 그 '바보배'에 흥미를 느껴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각적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 '바보짓'의 규정 이후 인류사는 이성적인 것, 효율적인 것을 중심으로 흘러갔지만 클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폴 벤Paul Veyne(b.1930)명예교수가 "어리석음은 역사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라고 이야기 한 것처럼 이성과 현명함이라 여겼던 역사의 대세적 움직임은 어리석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경우가 많았다. ● 공동체를 유지 하기 위해 만든 계급과 전쟁, 생태계의 파괴와 그로 인한 감염병의 대유행, 우리가 맞닥뜨린 최악의 기후위기까지… ●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완벽하다고 판단된 이성적인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에게 부여된 본연의 성질인 비이성과 사회화로 학습된 이성의 양면성은 둘 다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이 작업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 이번 전시에서는 바보배에 '새Bird'들을 태웠다. 예전의 새는 부와 권력을 상징했다. 귀한 새의 깃털은 권력과 부의 전유물이었고,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시하는 최고의 수단도 죽은 새였다.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에도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배에서 가장 값나가고 보험료가 높았던 물건도 깃털 상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가 마지막 30년동안 여성들의 패션때문에 살해된 새만 수 억 마리, 새의 개체수의 멸종과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인류멸종까지 언급되는 기후 위기 오늘날의 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 하는 소재로 쓰인다.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깃털도둑』 중에서 내용 차용) ● 이번 전시는 인간의 비이성 중 '탐욕'의 상징인 '새'를 태운 '바보배'를 중심 소재로 하고 바보와 새의 '협주곡'(콘체르토Concerto)'을 부제로 하여 스토리를 만들고 관객들과 소통해 보고자 한다. ■ 라종민

 

Vol.20221027a | 라종민展 / RAJONGMIN / 羅鐘民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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