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22_1005 ▶ 2022_1024

 

최경선_두려움 없이_캔버스에 유채_162×130.4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크지 않고 나지막한 발성으로 최경선 자신의 회화적 호흡을 확인하는 프로세스인 듯하다. 이 전시타이틀은 최경선이 바라본(혹은 기대하는), 그래서 그림으로 형상화한 아이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간절한 기원의 서술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자기식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작가적 내면의 비유로도 보인다. 중국 북경에서 거칠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귀국한 지 십 년. 한국에서의 그동안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가정주부로서 여러 역할(사업가의 아내, 대입 입시생의 엄마, 시부모의 며느리, 친정엄마 딸, 기타 등등)의 수행과 함께 시간적·경제적·공간적 제약들로 작업에의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신작 개인전도(2015, 2017), 북경에서의 작업으로 구작 개인전(2019, 2020)도 가졌지만, 그가 원한 만큼의 수준이나 성취도에는 이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최경선_꽃 피는 첫번째 들판_종이에 수채_40.8×30.8cm_2022

이번 전시작들은 그런 부담으로부터 훌쩍 벗어난 집중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림마다 조형적 의도와 일치하는 그리기 형식이 자신만만하게 결합되어 있고, 집중된 상태에서의 일획의 붓질은 두 번의 덧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형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한 묘사로부터 일탈해서, 마치 문인화의 담백하고도 긴장된 일획의 필력처럼 직관적으로 자신이 의도한 분위기로 화면을 주조해냈다. 게다가 모든 그림을 다 보아도 같은 유형의 붓질이나 터치가 없다. 각각의 그림과 부분마다 그 맥락과 조형에 꼭 필요한 만큼의 긴밀한 회화적 날것의 표현들이 몸의 직접적 궤적을 생생하게 현전해내면서 말이다. 경쾌하고도 날렵하게. ● 비유하자면, 지속적 주제였던 소외되고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존재(자연)임을 확인한 순간의 기쁨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오히려 작가에게 삶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는, 능동적이고도 긍정적인 자기 깨달음을 회화로 증명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뻔하게 반복적으로 그리는 클리셰 없이 작품마다 다르게 전개되는 이런 즉발적 표현성은 긴밀하고도 예민한 회화적 내공이 그 바탕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경선_날마다_캔버스에 유채_53×41.2cm_2022

그러나 이런 점은 작가의 지극히 감성적 영역에서의 작업과정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최경선의 이번 전시작들이 또 다른 큰 변주 직전 자기 확인의 지점 같다는 언급은, 바로 이런 주관적·감성적 표현으로부터 좀 더 넓게 사회화할 수 있는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언급이다. 제도적·구조적으로 "배제된" 아이들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감수성과 더불어 인식적인 면에서도 좀 더 주제를 사회화할 수 있는 내용적 기제의 창발 또한 작가의 몫이라서 그렇다. 최경선의 회화적 능력을 확인하는 이번 전시에 이어, 더"두려움 없이"자기갱신으로 도전하는 다음 작업들이 그런 내용의 '태풍'같은 소통을 불러일으키기 기대해본다. 작가에게 관객의 기대는 곧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부담은 또한 작가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한 것이니... ■ 김진하

 

최경선_볕 든 산성_캔버스에 유채_90×100cm_2022

『두려움 없이』란 제목은 한 보도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뉴스 중에 나온 한 장면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얀마의 젊은 남성이 아이를 업은 채 장총을 들고 대치 중에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와 위험한 상황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버지로서의 결연함.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 장면은 작품 「두려움 없이」의 모티브가 되었다.(그림에서는 총이 아닌 확성기로 그려졌다. 확성기는 언어의 힘에 대한 은유이다.)

 

최경선_일어서는 풀_캔버스에 유채_100×80.2cm_2022

지난 몇 년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일상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나는 드러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보다 왜곡되는 언어들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양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범람하듯 몰려오는 위기 증후는 근본적으로 부조리를 상쇄시켜왔던 인류의 정화 능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신뢰를 이루는 언어는 오염되었고, 양육과 책임의 마음을 잃은 인류의 생존방식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인다. 두렵다. 그러나 견고한 것은 없다고 알려준 위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폭력적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것을 찾아 자연을 자세히 보도록 하였다. 낮아질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약함보다 두려움이 삶의 장애가 됨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우리는 회복으로 활성화된 생명의 움직임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주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만이 생명적 보탬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긍정성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들로 인해 위기가 극복되어 왔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최경선_묵묵한 활보_캔버스에 유채_53.3×45.5cm_2021

나는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언어의 순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생명적 가능성을 신뢰할 때 기꺼이 살림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잃었던 돌봄의 마음들이 돌아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메마른 땅에 물과 빛이 닿아 생명이 움트듯 말이다.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통해 존재의 회복력을 형상화했다. 소재는 주변에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것, 연약한 것, 하찮은 것들이다. 번뜩이는 순간 노출되는 숭고함, 아름다움, 활력과 같은 내력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했다. 보호자가 있는 어린 아이의 안도감, 죽은 듯 누운 풀의 되살아남, 쉼이 없는 땅의 활력이 담기길 바랬다. 개인의 슬픔이 사회적 슬픔으로 연결될 때 회복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는 「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책임 있는 존재의 중요성을 피력하고자 한 「두려움 없이」의 일련의 작품들, 풀의 생명력을 통해 연약함에 내재된 놀라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 「일어서는 풀」, 축적된 보살핌과 성실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날마다」 등이 있다.

 

최경선_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21

그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좀 더 붓질이 강조된 명료한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안료의 물질감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붓의 방향성은 다양해졌다. 형상은 단순화하며 표현성에 집중하였는데, 묘사가 생략된 대상은 마치 콜라주처럼 보이면서도 화면의 다양한 층의 형성하도록 평면화시켰다. 거기에 리듬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드러나도록 시도 했다. 이전보다 빛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결과 더 신중하게 선별한 색은 밝아지고 다양해졌다. ● 나에게 그림은 점차 '미지의 개척지'에서 '주변부와의 화해'의 기능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모두가 함께 겪는 이상 징후 앞에서 공동체 속으로 좀더 들어가야 함을 느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나의 슬픔으로 공감할 때, 인류의 저울 위에 생명의 추 하나가 올라간다고 생각해 본다. 불안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평범한 초인이 오늘도 내 안에서 출현하기를 기다린다. (2022) ■ 최경선

 

Vol.20221005a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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