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임춘희展 / IMCHUNHEE / 林春熙 / painting

2022_1005 ▶ 2022_1029 / 일,월요일 휴관

 

임춘희_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1 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1~2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에이라운지 갤러리

A-LOUNGE

서울 종로구 백석동1가길 45 2층

Tel. +82.(0)2.395.8135

www.a-lounge.kr

@a_lounge_gallery

당신의 믿음 ●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예찬』은 걷기의 즐거움을 총동원해 두었다. 그는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임춘희_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2  _캔버스에 유채_80.3×80.3cm_2016~2
임춘희_밤산책1_캔버스에 유채_27.3×22cm_2021~2
임춘희_걷는 사람6_파브리아노지에 유채_42×56cm_2022

임춘희는 걷는다. 작가는 2011년 남양주의 한적한 동네에 둥지를 틀고부터는 되도록 매일 매일 걷고 있다. 어느 날은 콧구멍으로 시큰한 겨울바람을 내뿜으며 걷고, 다른 날은 봄꽃을 타고 오는 싱싱한 기운을 들이마시며 걷는다. 임춘희의 일상에서 걷기의 비중은 대단히 크다. 건강을 위해 걷고, 영감을 위해서도 걷는다. 산책은 작가의 일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임춘희는 왜 걷는가? 그는 꼬박 몇 해간 앓았던 자기 자신을 돌보려고, 함께 의지하는 남편의 얼굴을 더 오래 어루만지려고, 그리고 어딘가 있는 누군가의 평안을 기도하려고 걷는다. 그렇게 임춘희의 산책은 육체 활동이지만 정신 활동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도심을 소요하는 근대적 산책자도, 목적 없이 떠돌며 세상을 만유하는 낭만적 방랑객도 아니다. 그는 걷기에서 의미를 구하는 수행자에 가깝다. 임춘희 그림은 하나의 수행록이다.

 

임춘희_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4  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21~2
임춘희_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3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21~2
임춘희_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5_캔버스에 유채_65×53cm_2021~2
임춘희_4월_캔버스에 유채, 과슈_64.8×53cm_2021~2 ​

그의 작품이 산책 '기록'이라면 어떻게, 무엇을 쓰고 있는지 봐야 할 터. 먼저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 양식을 살펴 보자. 임춘희는 1993년부터 8년간 독일에서 지냈다. 당시 그림에는 백인 사회의 이방인이었던 자신을, 허연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감자'처럼 묘사했다.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벌겋게 물든 꾀죄죄한 얼굴들. 당시 임춘희는 이방인으로서의 동경과 고독을 화면에 쏟는 법을 익혔다. 작가는 안에서 느낀 무언갈 밖으로(ex) 요동치듯 찍어내는(press) 표현주의를 수혈받았지만, '순혈'은 거부했다.

 

임춘희_걷는 사람2_캔버스에 유채, 과슈_72.5×60.6cm_2021~2
임춘희_산책5 _종이에 과슈_14.8×10.6cm_2021
임춘희_산책4 _종이에 과슈_14.8×10.6cm_2021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3 종이에 과슈_14.8×10.6cm_2022

사회 저항의식과 이상향의 갈망을 처절하게 토해낸 독일 표현주의와 다르게, 임춘희는 마이크로 내러티브, 즉 '자신의 일상과 마음'에 귀 기울였다. 이에 작가는 차차 진득한 물감을 덜어내고, 색채의 투명도를 올려 맑고 개운한 화면을 구축한다. 그리고는 마치 프로 배우가 아마추어 연극단원을 연기하듯, 외려 '의도적 소박파'와 같은 표현법을 구현한다. 이 소박파에서 '소박'이란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는 뜻. 가식이 없는, 젠체 하지 않는, 순박한 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 날것 그대로 보는 어수룩함이 매력인 그림이 소박파다. 임춘희 그림은 내면의 표출이지만, 그곳엔 인간을 향한 불신이 아니라 세상의 안위를 담은 기도문이 쓰여있다. 다정한 소박파. 그의 그림은 오랜 세월 마음을 갈고 닦은 구도자의 수필을 닮았다.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5 종이에 과슈_12.2×19.1cm_2021
임춘희_산책6_종이에 과슈_19.1×12.1cm_2021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2_캔버스에 유채, 과슈_22×27.3cm_2018, 2021
임춘희_노래하다 _리넨에 유채_210×210cm_2018, 2022

그렇다면 이 수필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임춘희 작품에는 걷는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발뒤꿈치로 땅을 내려찍어 발가락 끝으로 힘차게 구르는 모습. 이들은 마치 질긴 고기를 야무진 어금니로 수십 번이고 씹어 끝내 삼키고야 마는 것처럼, 지독히도 꼼꼼하게 걷는다. 그리고 뚜벅뚜벅 발걸음으로 자연을 흔들어 깨운다. 나부끼는 새파란 이파리, 한아름 만개한 분홍 꽃, 어두컴컴한 수풀 사이로 '얼굴들'이 떠오른다. 때로는 깊숙이 박힌 나무뿌리에서도, 숲이 일렁이는 연못의 수면에서도 그들이 퐁퐁 솟아난다. 제법 장난기 어린 그들의 표정. 임춘희는 힘찬 걸음을 통해 산천초목에 깃들어 살며,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하며 숲과 강을 지키는 정령을 일깨운다. 어깨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며, 노래 부르는 일로 자연을 예찬하는 이들을 불러낸다. 바로 이것이 수행자의 임무라는 듯이.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1 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1~2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9 _종이에 과슈_26×36cm_2022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6 _종이에 과슈_23.4×18.3cm_2021~2
임춘희_용서해 주세요 _캔버스에 유채_27.3×22cm_2022 ​

이제 임춘희는 어떠한 예술(가)의 본질에 육박해 있다. 그 본질은 예술의 가치와 힘이 인간의 마음을 살게 한다는 거대한 믿음이 아닐는지. 자연 만물에 깃든 만복의 정령을 소환해, 예술과 삶을 무사히 헤치고 나갈 자기 믿음을 얻는 일. 그는 이 믿음의 자락을 결코 내려놓지 않으리라. 그렇게 임춘희의 산책에는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모든 삶에의 강인한 의지가 담겼다. ■ 김해리

Vol.20221005e | 임춘희展 / IMCHUNHEE / 林春熙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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