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통인가게’에서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한마당이 열렸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절절한 마음에 다 함께 아파했고,
심청가에서는 심봉사 재회의 기쁨에 다들 눈물 흘렸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가객이 펼치는 감동의 무대였다.





쩌렁쩌렁한 배일동 명창의 소리는 바위를 두드리며 쏟아지는 폭포수 같았고,

하늘을 가르는 우렛소리 같았다.





여지 것 여러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지만, 이 같은 고음의 절창은 들어보지 못했다.

온몸으로 토해내는 절절한 소리에 다들 넋을 놓은 채. 소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일 년에 두 차례씩 열리는 통인 판소리 감상회는 지난 5일 오후5시부터 한 시간 동안 통인가게’ 5층에서 열렸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인 판소리 감상회'는 30여 년 간 이어져 온 인사동 전통문화의 마지막 지존이다.

비록 공연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열리지만, 열릴 때마다 빈자리가 없다.

육성으로 듣기 아주 적절한 공간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함이 늘 아쉬울 뿐이다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와 심청가를 부른 배일동명창의 판소리에 조상민 고수가 북채를 잡았다.

그리고 찬조 출연한 이진용씨 대금과 서영민씨 아쟁도 한 몫 했다.

흘러내리는 듯 떠는 소리와 꺾는 소리로 이어진 그 애절한 시나위가 마음이 후볐다.



 


배일동명창이 7년 동안 지리산 계곡에 초막 지어놓고 폭포수 아래서 수련 할 무렵,

막대 장단에 바위가 깨지며 득음한 소리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소리의 경지였다.

때로는 소름이 돋는 전율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소리 뿐 아니라 연기력도 출중하다.

극중 사연에 빠져들어 슬픔과 기쁨을 토해내며 몸짓하니, 관객 또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심 봉사가 눈 뜨는 마지막 대목은 감격 자체다. 그런 기쁨의 눈물을 흘려 본지가 언제던가?



 


심봉사의 애끓는 통한의 절규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이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이 얼마나 감격적이며 해학적인가.



 


판소리는 사설과 창, 무대행위로 이루어진 종합예술의 성격을 띤다.

서사적 구조의 사설은 문학 영역에 속하고, 창은 장단과 가락을 가지고 있어 음악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소리꾼의 몸짓이나 고수의 추임새 등은 연극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 세 가지가 어울려 감흥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소리를 잘 하는 대개의 명창들이 관객을 이해시키는 이론에 약하지만, 배일동 명창은 달랐다.

외국음악에 길들어 진 현대인들에게 우리음악의 우수성을 쉽게 이해시키는 탁월한 교수법을 지니고 있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그의 강의를 들었는데,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자신의 소리로 이해시켰다.



 


여태껏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의 부재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절실한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통인가게주인 관우선생으로 부터 이 산 저 산재청이 있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관우선생이 이 단가를 유별나게 찾는 것은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한 모양이다.

 

그리고 통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해학의 풍경전에 참여한 작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상구, 김희진, 민경아, 박재갑, 이언정, 정승원, 홍승혜씨 등 소개한 중견작가 가운데 이력이 독특한 분이 계셨는데,

국립암센터 명예교수로 재임 중인 박재갑씨였다. 의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판화의 수준도 뛰어났다.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중 파계승마당을 선보인 이 전시는 721일까지 이어진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가게관우선생의 집무실이 있는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인사모회원으로는 통인가게 주인 김완규씨, 박일환 변호사, 화가 김근중씨가 자리했고,

이계선 통인 관장을 비롯하여 배일동 명창, 조상민 고수, 박재갑, 김규진, 황태인, 민호기, 박영수, 최유정씨 등

이름도 잘 모르는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차는 다리 ’에서 빨았는데, 사진이 많아 내일 소개하겠다.

 

사진, / 조문호




















































































 




김기춘 '우포의 아침'



지난 1일 터키에 초빙교수로 가 있는 김용문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인사동 나왔으니, 대포 한 잔 하자는 전화였다.






이틀 전, 인사동 출입을 자제하며 사람을 가려 만나겠다는 결의문에 가까운 글을 올렸건만, 안 나갈 수 없었다.
그는 30여 년 동안 인사동에서 어울려 온 ‘인사동 사람들’ 원조가 아니던가.
‘사나이 명세 개 명세, 자고 나면 새 명세’란 말이 딱 맞았다.

몇 일을 참지 못한 채, 결심 자체가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담배 못 끊는 것이나 사람 못 끊는 것이나 똑 같은 이치다.
의사가 담배를 끊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에 가까운 말에도 피우듯이,
인연을 끊는다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초저녁부터 인사동으로 들어서다, 초입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를 만났다.

정영신씨 상가에서 만난 후 처음이라 같이 술 한 잔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마루’에서 열리는 김기춘씨 전시회 부터 들렸는데,

전시 작가인 김기춘씨를 비롯하여 배병수씨도 와 있었다.






김기춘씨는 내 고향 옆 동내인 ‘우포늪’으로 간지가 7년이 되었다는데,
전시된 사진도 ‘우포늪’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추측은 했지만, 우포늪의 생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곽봉수, 김갑진, 김경화, 김권하, 이상근, 추향자씨 등 화가들과 어울려 여는

단체전이라 그런지, 사진보다 그림에 가까웠다.
‘마루’의 ‘빛그늘 초대전’은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김용문씨가 기다릴 것 같아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목민’은 밖이 보이도록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놓았더라.
천상병선생께서 막걸리 드시며 윙크하는 오래된 내 사진을

투명판에 프린트해 붙이겠다는데, 공정이 까다롭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 때까지 주인공이 오지 않아, 최건모씨와 먼저 자리 잡았으나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김용문씨가 나타나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반가운 분들이 모여 들었다.
최종선, 공윤희, 김명성, 이인섭, 유진오씨가 나타났고, ‘풍류사랑’에서 넘어 온 ‘민미협’ 팀들도 속속 등장했다.
최석태, 최병수, 이인철, 김명희, 김정환, 심정수씨 등 십여 명이 모여드니, 술집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귀국한 김용문씨는 인사동 여관방에 짐을 풀고 묵는 중이라 했다.
오는 13일부터  '통인갤러리’에서 막사발전이 ‘열린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 듯, 그도 삭아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져 그런지, 말아 올린 상투가 애들 고추처럼 작아 졌더라.






그날의 이야기 거리는 ‘세계막사발미술관’이었다.
완주 삼례에서 ‘막사발미술관’을 폐관한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으나,
그 때가지 이전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터키에서 ‘막사발미술관’을 옮겨가겠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김명성씨의 야심찬 프로젝트도 들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어야겠다.
김명성, 김용문, 최근모씨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취기가 올라 합 바지 방귀 새듯 사라졌다.






늘 인사동에서 술 취해 나오면 갈등을 느낀다.
동자동으로 갈 것인가? 녹번동으로 갈 것인가?
유행가 가사처럼, 차라리 미아리로 가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배일동 명창, 판소리 강의도 고수


2018년 12월 03일 (월) 17:17:47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fay.co.kr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비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 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배일동 명창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배일동 명창이 절절한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사또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태껏 판소리를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이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고수 김동원씨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배일동명창과 고수 김동원씨.


여태껏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리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배일동씨가 판소리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손님이었지만,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 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가게 김완규선생이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 김완규 선생이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강의도 고수-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통인가게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지 것 판소리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직접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듣기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여지 것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라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사실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선생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사진, / 조문호


























































지난 6일 인사동 ‘툇마루’에서 ‘인사모’ 모임이 있었다.

‘인사모’는 ‘통인가게’ 김완규씨를 주축으로 하여,
원로 변호사 민건식씨가 회장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모인지가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은 모임이 좀 뜸하다.
예전엔 매월 만났지만, 작년 망년회 후로 처음이다.






그 날 모임에는 민건식 회장을 비롯하여 김완규, 박일환, 조균석, 박원식, 강윤구,
전국찬, 윤경원, 김길선씨 등 열 명이 자리했는데, 안 나온 분이 많았다.
다들 건강한 모습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는데,
첫인사가 이번 여름 탈 없이 잘 보냈냐는 말이었다.






이 모임의 특징은 법조인과 사업가, 예술가가 어울린 모임인데,
요즘은 예술가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사는 게 바쁠까? 아니면 모임에 큰 의미가 없어서일까?
아마 끈적한 연대감이 없어서 일게다.






사람 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인데,
바빠서 라기 보다 사는 게 가족중심으로 치우치다보니,
주변에 관심이 멀어진 것일 게다.
그러니 만나도 정겨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고 그런 인사치례의 말들만 나누다 노래방으로 옮겨간다.
그 날도 여섯시에 만나 식사가 끝난 시간까지 정확하게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어나기 직전에 윤경원씨가 나타나 20여분 더 지체했지만...






인사동 ‘선화랑’ 맞은편에 노래방이 생겼다는 관우선생의 정보에 따라갔다.
노래방으로 옮겨 노래백과를 들추기 시작하는데, 다들 한 참을 헤 멘다.
법관 출신들이라 육법전서는 잡았다 하면 바로 나오는데 말이다.






박원식씨의 노래 ‘삼각관계’가 테이프를 끊었다.
친구냐 애인이냐의 다소 신파적인 노래였다.
민건식회장의 ‘나그네 슬음’을 비롯하여 십팔 번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다들 가수 빰 칠 정도로 잘 불렀다. 연이어 100점이 터졌다.






나더러 ‘봄날은 간다’를 부르라고 충동질했으나 손을 내저었다.
왜냐면 오늘 틀니를 끼고 나왔기 때문이다.
음식 맛도 제대로 모르는데다, 발음까지 이상해 좀처럼 끼지 않으나,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점잖은 모임이라 점잖게 끼고 나왔는데, 영 죽을 맛이었다.






노래도 부르지 않으면서 노래방은 왜 따라 갔냐하면,
혹시 더 이상 못 만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늘 일기를 살찌우기 위해서다.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를 한곡씩만 감상한 후,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진 것이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노래는 박일환씨가 부른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음정은 따라가지 못했지만, 가사에 묻어나는 감정이 진득했다.
마지막 대목에선 마치 '인사모'의 이야기처럼 애절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6일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는 셋째 수요일이다.
우중충한 날씨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바쁘게 하지만,
곳곳에서 반가운 분의 환한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갤러리 이즈'에서 나오는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를 만났고,
영화감독 이정황씨와 산악인 반민규씨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낙원동 ‘유진식당’에서 ‘통인가게‘ 김완규씨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기업은행 김재수 지점장, 사진가 정영신씨를 만나 냉면에 소주 말아 마셨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나 갈 곳은 많아 퍼질 수는 없었다.






'갤러리H'에서 열리는 유혜정씨의 ‘색은 속삭이다’를 보러가야 했다.
제목이 야시시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마음 설레며 그림을 둘러보고, 유혜정씨의 미소도 찍었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낮에 조햇님 선거사무소에 같이 갔던
사진가 이정환씨와 성유나씨도 있었고,
길에서 만났던 이정황감독과 김이하, 이산하시인을 만났다.






그런데 안쪽에는 오래된 사우 배병우가 아니라 배병수씨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만나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살아 있으니 만나는 것이다.
오래 전 부여에서 벌인 정액페인팅을 그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인사동 귀신인 불화가 이인섭씨와 전활철, 유진오씨 등

올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더 이상 술잔을 나눌 수가 없었다.
술 땡기는 이 꿉꿉한 날, 구경만 해야지만 어쩌겠는가?

반가운 사람 만나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그 사람들 떠나고 나면, 인사동이 인사동일까?
인사동보다 사람이 더 좋은 이유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7일 오후5시 '통인가게'에서 배일동 명창의 '심청전' 판소리가 있었다.
'통인'에서 마련하는 '나이트 오페라콘서트'에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가 초대되었다는
이야기는 진즉에 들었지만, 하필이면 그 날 다른 약속이 둘이나 겹쳤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사는 동자동 일이라 피할 수가 없었지만,
인사동 ‘유목민’에서는 민영시인의 시집출판기념회도 있다고 했다.
동자동에서 안산시화호로 떠나는 ‘아름다운 동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공연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버렸다.






판소리 감상은 못하더라도, 사진이나 찍을 심산으로 공연장에 올라갔다.
5층에 다 달아 에리베이트 문이 열리니, 하늘을 찌르는 소리가 압도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손님들도 넋 나간 듯 소리에 빠져 있었다.

사진을 찍어야 했으나, 비집고 들어 갈 틈조차 없었다.
판 깨는 무례지만, 공연장을 가로 질러 무대구석에 쭈그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만 찍고 나오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소리에 빨려 든 것이다.






‘심청가’를 불렀는데, 심봉사의 애끓는 통한의 절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쩌렁쩌렁한 그의 소리는 바위를 두드리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 같았고,
하늘을 가르는 우렛소리 같았다.
온몸으로 토해내는 절절한 소리에, 마치 내가 심봉사가 된 듯 가슴이 미어졌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명창이었다.
고수 김동원씨;의 기운 넘치는 북과 추임새 또한 신명을 북돋았다.

 





배일동 명창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다들 알 것으로 여긴다.
순천 선암사와 지리산 계곡에 초막 짓고 무려 7년간 폭포수에서 수련 했고,
막대 장단에 바위가 깨지며 득음 했다는 사실 말이다.
잘나가는 일터 팽개치고, 온 몸을 소리에 내 던져 이룬 판소리계의 야인이다.






좌우지간, 민영선생 출판기념회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잠깐의 맛베기 치고는 너무 강하게 와 닿은 소리라,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모처럼 인사동을 절절한 소리로 물들인 밤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5일 오후3시경, ''평창동계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선발된 6개국의 미녀들이 인사동에 나타났다.

평창올림픽을 알리는 역할에 앞서,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려 ‘통인가게’를 찾은 것 같았다.

인사동 ‘통인가게’야 말로 대를 이은 오래된 가게인데다, 도자기, 고가구 등 다양한 전통 민예품들이 널렸으니,

한 군데서 골고루 볼 수 있는 마땅한 가게라 생각되었다.

더구나 지하 ‘통인화랑’에서는 도자전이, 5층 ‘통인옥션’에서는 ‘조선의 백자’전이 열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 뽑힌 외국 미녀들이 하나같이 키가 너무 컸다.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했으니, 아무래도 천장 낮은 쪽방은 머리 닿을 것 같았다.
솔직히, 사람보다 마네킹 같았다. 옛날에는 복스럽게 생긴 여인이 미인이었을 텐데...

먼저, 그들을 맞이한 ‘통인가게’ 김완규대표가 미녀들에 둘러싸여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옛날 프레이보이 잡지에서나 본 듯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프레이보이 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둘러 선 미녀 사진 말이다.






1층 현대공예품 매장에서부터 2층 전통공예품, 3층 되살림가구, 4층 고미술품 매장까지

차례대로 돌아보았는데, 외국 미녀들이 우리나라 고가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5층에서 열리는 ‘달항아리’전을 본 후, 옥상에 마련된 연회장에 들렸다.

미녀들은 이계선관장이 정성 것 준비한 차와 떡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고,
남자들은 와인을 마셨는데, 너무 급하게 마셨는지 술이 얼큰하게 올랐다.






지하에서 전시하는 임현준씨 도예전을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김완규 대표 따라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동갑내기인 김완규씨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며, 요즘은 열심히 산에 다닌다고 했다.


난, 정선의 만지산외는 가지 않는데다, 운동도 전혀 하지 않으니 어쩌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미녀가 미녀로 보이지 않고, 마네킹으로 보일 정도니, 아마 인생 끝난 것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완규 '통인가게' 대표방에 있는 서양화가 안창홍씨의 스케치가 재미있다.










'통인화랑'에서 전시되는 임현준씨의 도자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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