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장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1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장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눈 맞추며 칭찬하면 첫사랑 이야기도 듣게 돼요”

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한겨례 21 제1051호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정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은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은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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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의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정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청량리588' 사진전을 준비하며, 25년 만에  다시 홍등가를 찾았다.

사 반세기가 지났으나 588의 골목과 집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

곳 철거 된다기에 서 너 집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단지 입구만 일률적인 샤시 문으로 교체되었고, 대기실에 앉은 여인들의 패션이 파격적일 뿐이었다.

잊었던 긴 세월을 후회하며, 남아있는 골목 풍경들을 하나 하나 기록했다.

 

전농동 588번지 일대 업소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업소 문은 걸려 있었고,
간혹 임대한다는 글귀가 유리창에 붙어 있기도 했다.  

 

‘아라아트’ 휴관일을 맞은 지난 2일,  ‘주간동아’의 현장 인터뷰 요청으로 다시 들렸다. 

가슴을 겨우 가린 브래지어와 엉덩이 골이 훤히 보이는 짧은 팬츠를 입고 앉은 여인들이

지나치는 이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온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일을 치룬 후, 아가씨의 배웅을 받기도 했고

선그라스를 놓고 나간 20대의 청년을 아가씨가 불러 세우는 등, 홍등가 풍경은 여전했다. 
 
“65층 주상복합 건물이 이 자리에 들어서면 어디로 갈 것이냐?”고
손님을 기다리던 성노동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아저씨! 이곳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우리가 끝까지 지킬 거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힘의 논리에서 버텨낼지 모르지만, 마지막 그 날까지 기록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권 때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성적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성적 소외자들의 해소 공간을 막아버리면, 성범죄만 더 늘어나게 된다.

'풍선효과'만 낳은 성매매 특별법 이후 성매매 수법과 장소도 더욱 교묘해졌다.

 오피스텔 걸, 안마방, 키스방 같은 변종 업소들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

 당시 성 노동자를 강력하게 단속하던 김강자 종암경찰서장도 마지막엔 공창제를 부르짖지 않았던가.

최근 '성매매 특별법'이 헌법재판소의 도마 위에 올랐는데,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8일 오후 6시 30분, 사동집에서 조문호사진집 ‘청량리588’ 출판기념회가 조촐하게 열렸다.

최혁배변호사, 경기도미술관장 최효준씨, 만화가 박기정, 박재동선생, 가수 최백호, 시인 김신용,

조준영, 김명성씨, 서양화가 신학철, 장경호, 서길헌씨, 행위예술가 임경숙씨,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부부,

사진가 김보섭, 곽명우, 고 헌, 정철균씨, 홍성식, 임경일, 강선화, 공윤희씨 등 50여명이 모였다.

연이은 전시라 메시지 외에는 별도의 통지를 하지 않아 50여명 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일찍부터 술이 취해 모임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출판기념회에 책도 꺼내놓지 않아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술판기념회가 되어버렸다.

 

 



‘청량리588’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인사동 ‘아라아트’는 연일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9세 이하는 입장이 안 돼 어린이의 손을 잡은 가족들은 볼 수 없으나,
‘588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진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모여 삼삼오오  들린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사진가들이 많이 다녀가시는데,
지난 28일에는 사진가 육명심, 한정식선생께서 일찍부터 들리셨다.
박진영씨와 어울려 오찬을 함께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후에 오신 사진가로는 전민조, 김보섭, 정철균, 이혜순, 김남기,
김종신, 정강기, 국수용, 류종민, 고 헌, 곽명우, 신동필, 은효진, 김종현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박영택씨,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안미숙 편집장 내외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서 1980년대 서울의 유명한 사창가였던 청량리 588번지의 매춘부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68) 씨가 83년부터 88년까지 5년간 청량리 588을 드나들며 찍은 사진작품들이다.

사진 속에는 당시 청량리 588의 풍경은 물론 매춘부들의 생활 모습, 심지어 섹스하는 사진 등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조 씨는 “다른 사진작가들이 쉽게 찍지 못하는 매춘부들의 생활과 애환을 담고 싶었다”고 사진을 찍은 이유를 설명했다.


1980년대 서울 '청량리 588'. 매춘부들이 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남성에게 호객행위를 하고있다./사진=조문호(68.다큐멘터리 사진가)

 

매춘부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몰래 사진을 찍다가 깡패들에게 걸려 수차례 구타를 당했고,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깡패들에게 맞았던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 조 씨는 “하루는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을 하러 갔는데, 그곳에 자신을 때린 폭력배가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술을 권하며 내가 매춘부들의 사진을 찍는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니 오히려 그가 나를 때린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게 도와주더라”고 했다. 또, 직접 사창가 안 여인숙에 들어가 5개월간 생활하며 매춘부들과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술잔도 함께 기울이며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매춘부들은 가난이 싫어 돈을 벌거나 부모의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창가에 들어온 여자 등 돈에 얽힌 사연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조 씨는 “비록 몸 파는 창녀일지라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봐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청량리 588' 사진전을 연 조문호(68.다큐멘터리 사진가) 씨./차재문 기자

 

사실 이번 사진전은 1990년 2월에도 열렸다. 당시 사진 속 주인공들이 조 씨의 사진작품을 보러 올 것을 약속했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사진 속 주인공들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청량리 588’ 사진전은 오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2층에서 전시된다. 선정적인 사진이 많기 때문에 19세 미만은 관람불가다.

 

 

 


 '청량리 588' 조문호사진집

 

 

저자 조문호|눈빛 |2015.02.21
페이지 136|ISBN ISBN 안내 레이어 보기 9788974095611|판형 A5, 148*210mm

가격 : 12,000원

 

책소개

 

눈빛사진가선 시리즈 11권. 중견사진가 조문호가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 집창촌의 대명사로 불리는 ‘청량리 588’에서 작업한 사진들로 엮었다. 컬러 작업의 일부가 1985년 동아미술제에 소개되기는 하였으나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진들은 최초로 사진집으로 엮여 공개되는 것이다. 1984년부터 청량리에서 진행된 조문호의 작업은 제5공화국이라는 우울한 시대적 상황의 사회현장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준다.

조문호의 청량리 588작업은 집창촌에 대한 선정성이나 호기심보다도 사회적 소수에 대한 애틋한 연민과 인간적 이해로 읽힌다. 직업인으로 보아달라는, 아니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애절한 호소가 사진 전편을 지배한다. 폭로와 저항만이 다큐멘터리 양식이 아니라 편견의 해소와 공감의 기록도 훌륭한 사진양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낮에서 밤으로의 시간 흐름과 더불어 활기를 찾아가는 집창촌, 호객을 위해 길에 나와 앉아 있는 여인들, 그리고 언뜻언뜻 비치는 군인과 청년 고객들,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어놓은 연탄난로와 빈 의자 등의 오브제를 통해 조문호는 집창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인생과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사회구조에 대해 말해 주는 듯하다.

[알라딘 제공]

 

출판사 서평

한국사진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2014년 가을, 1차분 10종을 출간한 ‘눈빛사진가선’은 한국 사진가들의 일관된 시리즈의 사진을 각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소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사진의 역사는 발굴의 역사이며, 아직 체계를 세우지 못한 한국사진사를 사진가와 작품 위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 눈빛사진가선 기획의도 중의 하나이듯이 2015년부터는 매달 1-2종씩 역량 있는 사진가의 작업을 발굴해 소개할 것이다.


눈빛사진가선 제11권으로 출간한 이 책은 중견사진가 조문호가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 집창촌의 대명사로 불리는 ‘청량리 588’에서 작업한 사진들로 엮었다. 컬러 작업의 일부가 1985년 동아미술제에 소개되기는 하였었으나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진들은 최초로 사진집으로 엮여 공개되는 것이다.


‘청량리 588’은 서울 집창촌의 대명사로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에 있는 사창가를 이르는 속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농동 588번지 일대에 밀집되어 있으나 청량리역 주변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통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2년 12월, 서울시는 집창촌이 밀집돼 있는 청량리 588의 재정비 촉진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라면 2017년경에는 60층 높이의 랜드마크 타워와 주상복합 건물 4개 동이 들어서게 된다.


1980년대 중반, 한국사진은 아직 현대미술과 접맥되기 전이어서 사실성과 기록성이라는 사진의 본질에 충실한 사진들이 많이 선보였다. 몽타주와 암실기법을 이용한 사진들도 종종 선보였지만 대개의 사진은 현장성을 중요시하였다. 주명덕, 강운구, 김수남의 사진이 사라져가는 전통을 기록하는 우회적인 작업에 치우친 반면, 1984년부터 청량리에서 진행된 조문호의 작업은 제5공화국이라는 우울한 시대적 상황의 사회현장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준다.


조문호의 청량리 588작업은 집창촌에 대한 선정성이나 호기심보다도 사회적 소수에 대한 애틋한 연민과 인간적 이해로 읽힌다. 직업인으로 보아달라는, 아니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애절한 호소가 사진 전편을 지배한다. 폭로와 저항만이 다큐멘터리 양식이 아니라 편견의 해소와 공감의 기록도 훌륭한 사진양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낮에서 밤으로의 시간 흐름과 더불어 활기를 찾아가는 집창촌, 호객을 위해 길에 나와 앉아 있는 여인들, 그리고 언뜻언뜻 비치는 군인과 청년 고객들,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어놓은 연탄난로와 빈 의자 등의 오브제를 통해 조문호는 집창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인생과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사회구조에 대해 말해 주는 듯하다.

2015년 2월
눈빛출판사


‘청량리 588’ 사진전이 시작된 이틀 만에 작품 하나가 팔렸다.
그것도 가난하기 그지없는 서양화가 장경호씨가 샀기에 더 뉴스거리다.

588사진들은 일 이 십만 원 정도의 싼 작품이 아니다. 한 컷에 두 장만 뽑는 오리지널
프린트라 11X14인치 소품 한 점에 300만원이고, 최고는 1,000만원씩이나 한다.

돈이 없어 허덕이며 연이어 전시를 하는 우리 내외가 안 서러워 도와주려는 마음이
앞섰겠으나, 사진을 소장하고 싶은 가치도 알았던 것 같다.

지난 26일 정오 무렵, ‘백련’에서 막걸리 반주에 추어탕을 같이 먹고 올라와서는

두둑한 돈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작품을 사겠다는 것이다.
그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라  놀랐으나, 그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건 감동 자체다.
너무 고마워 정우일씨와 화신포차에서 한 잔 한 후, ‘무다헌’에서 한 잔 사고 싶었으나 술값을 먼저 내 미안하게 만들었다.
밤 늦은 시간, 술이 취해 마지막 전철을 타고 오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진집출판으로 우연찮게 연이은 전시를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정신없이 뛰다보니 그의 탈진상태다.

주변 사람들 걱정처럼 스스로의 대책 없음도 자책했지만, 지난 작업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

세월의 무게에 실린 588사진들이 된장이나 와인처럼 숙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좀 더 부지런히 남기지 못했음도 한스러웠다.

전시 둘째 날에는 한국일보, 조선일보 기자들한테 잡혀 취조를 당하기도 했고,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연극연출가 기국서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시인 정우일, 홍행숙씨, 무도인 김형진씨, 이종률,  공윤희씨 그리고 이계익선생을 모시고 나온 노광래, 편근희씨를 만났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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