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588’.

조문호 지음|이광수 해설|눈빛|136쪽|1만2000원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그곳에 있던 사창가의 별칭이었다. 청량리역 주변이어서 그렇게들 불렀다.

사진작가인 저자는1984~1988년 이곳에 살면서 그곳 ‘삶’을 앵글에 담았다.

처음에는 사진기를 들이대다가 따귀도 맞았고, ‘어깨’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 아가씨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사진가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미소까지 지었다.

그렇게 한컷한컷 찍힌 사진들은 ‘사창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선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거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이렇게 해설을 붙였다.

“사진가 조문호는 사람을 일로 보지 않았고 시공간 속에 살던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 공주로 지내던 시절, 누구는 구로공단에서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공순이로 살고, 누구는 588에서 창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현실 속 사람을 보았다. 멀리 시골에서 돈 한 푼 없이 올라온 후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 먹여 살리기 위해 별의별 일 다 해 보다가 결국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 삶을 꾸역꾸역 이어 가는 사람들이다. 어깨 위에 놓여진 가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그 청량리역과 닮은 삶이다.”

 

▶1980년대, 아직까지 이곳은 금붕어 어항 같은 유리방이 아니었다. ‘신흥 여인숙’이란 간판 아래 나란히 앉은 여인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침침한 뒷골목, 전등 아래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의 모습에서 삶의 비릿함이 느껴진다.

 

▶해가 나면 이곳도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다. 가게 일을 보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는 사람, 종종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처마 밑 고드름이 밤새 추위를 말해준다.

 

▶날이 채 풀리지 않았던가 보다. 햇살은 환하지만 두 발은 연탄화덕에 바짝 다가가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세탁소 간판이 정겹다.

 

▶까만 밤 환한 불빛 아래 원피스를 차려 입은 여성이 문 밖 행인을 향해 추파를 던진다. 이번엔 통할까.

행인이 이미 지나쳐 온 앞 가게 여성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늦은 밤 문을 연 야식 리어카 앞에서 호객이 한창이다.

저자는 “가난이 지겨워 무작정 상경해 돈을 벌려고 곳곳을 떠돌았지만, 결국 사창가까지 떠밀려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정숙이의 고운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세월에 파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증언이며 역사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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