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588"

 

전시일시 : 2015, 2, 25-3,10

전시장소 : 아라아트센터 2층전시실(인사동)

 

 

-작업노트-

 

이 땅의 환부요 시대의 치부로 일컬어지는 청량리588에도

사람이 살았고 따뜻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었다.

전농동을 기록한 오래된 필름 파일을 뒤적이다 그 소녀를 다시 보았다.

그 녀를 잊은 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되었나보다.

그토록 꿈 많은 소녀가 거기까지 가게 된 건, 가난한 부모 만난 죄 뿐이다.
그 때는 나라까지 가난했으니, 시대적 사회적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

당시 한참 고운 이십대였으니 이제 오십대의 아낙이 되었을 게다.
가난 때문에 무작정 상경하여 곳곳을 떠돌다 결국

사창가까지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그녀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몸은 망가져도 끼니 걱정하지 않고 집에 돈까지 보내 줄 수 있어나,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멸시를 견딜 수 가 없었다고 했다.

 

그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가엽다고 동정하지도, 몸 판다고 천대하지도 마라.

동등한 사람으로 함께 사는 깨어난 세상을 바라며 이 사진들을 내 놓는다.

 

그리고 세월에 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역사다.


2015. 2
조문호

 

 

 

'그리움의 연서' 해설 중에서

 

조문호의 사진이 따뜻한 것은 그가 그 대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아서만은 아니다. 대상이 되는 그들이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아서이기도 하다.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그 명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란 순간적 찰라를 포착하는것이 아닌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 사람사는 세상을 기록하는 것,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작은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조문호의 ‘청량리588’은 바로 사라져 가는 작은이들의 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정작 조문호의 ‘청량리588’이 다른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다른 것은 사진가가 그들의 소외된 삶을 도구로 삼아 소외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는 사실에 있다. 감히 사회를 위해, 역사를 위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웅변이 아니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눌변, 그것이 조문호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이다.

-이광수 : 사진비평가-

 

 

-전시장 스케치-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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