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린 지난 주말의 인사동은 나들이객들로 넘쳤다.

그렇게 사람은 많지만, 왠지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서로 정을 나눌 마음의 여유도 없지만, 나그네들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거리에 사람이 많아도 전시장들은 텅텅 비어있다. 
대개 길거리 잡화상만 기웃거릴 뿐, 예술엔 관심조차 없다.

인사동을 오랜 세월 기록해 왔지만,
왜? 찍을 가치가 사라졌는데, 계속 찍느냐고 반문해 본다.

기록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수 없지 않은가?
세월이 지나면 나쁜 것도 역사라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

언제까지 인사동을 짝사랑 할 건지 나도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인터뷰] 1980년대 홍등가 풍경 찍은 사진작가 조문호

 

 

송화선기자 spring@donga.com

 

 

1983년, 사내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사진 작업에 빠져 부산살림을 정리하고 서울에 온 지 1년쯤 된 참이었다. ‘월간사진’ 편집장을 맡으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가족의 이해는 얻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과 남편의 무심함에 지친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부산으로 떠나버렸다.

 

“생각해보면 삶의 나락이었죠. 그때 여기서 위로와 안식을 얻었어요.”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사내와 바로 그곳,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답십리로 11길) 근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당시 서울 제일의 홍등가로 손꼽히던 곳,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젊은 여인들이 색색의 등불아래 서서 오가는 사내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이른바 '588'이다.

 

조문호 작가(사진)는 젊은 날 그 거리에서 자신의 소매를 붙드는 여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신세타령 듣고 속내를 나누다 몸과 마음까지 주고 받았다. 그렇게 1년여간 부대낀 기록을 동아미술제에 출품해 1985년 사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조 작가를 만난 건 당시 기록들을 모아 지금 서울 인사동에서 사진전 '청량리 588'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눈빛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펴냈다.

 

588의 직업인 

 

30년 전 그가 남겨둔 기록의 더께를 열었다. 그 안에 담긴 건 누구나 볼 수 있는 뻔한 뒷골목 풍경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그늘 중에서도 가장 음습한 곳., '집창촌'이라 불리는 그 거리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만져질 듯 생생히 담겨 있다.  조 작가는 " 그 해 동아미술제 사진 주제가 '직업인'이었다. 나는 588 여인들'이야말로 이 주제에 적합한 피사체라고 여겼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찍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카메라 앞에 선 여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대가로 받은 돈으로 생계를 꾸리며, 남는 것은 알뜰히 모아 고향 어머니에게 부치던 이들이었다. 한 여인은 그의 작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직업인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든다"며 여기서 일하는 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나를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도움 덕에 조 작가는 여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화장을 고치고 '직업적 노동'을 수행하는 순간의 모습가지 렌즈에 담았고, 그중 6점을 동아미술제에 출품했다. 1985년 3월 19일자 '동아일보'는 조 작가의 동아미술제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홍등가'는 감히 어느사진가가 손대기 어려운 상황 하의  직업인을 심층적으로 깊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진이었다'고 평했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촬영하지 못한 뒷골목 사람들의 삶을 낱낱이 기록한 건 분명히 작업의 장점이었을 것이다. 그중 몇몇 작품은 센세이셔널하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오히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차분히 앉은 채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마치 렌즈 너머 작가를 응시하는 듯 보이는 한 여인의 표정이었다. 조 작가는 그 사진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 아이가 바로 정숙이"라고 했다.  처음 그의 작업에 공감을 표했고, 친구들을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 조 작가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한 여인의 이름이다. 조 작가는 최근 펴낸 사진집 서문에 '정숙아! 혜련아! 당신들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집을 혹시 보게 되면 내게 연락 한 번 주렴, 내 비록 거지 처지일지라도 소주 한 잔 살게'라는 편지를 남겼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청량리 거리를 걸으면서도 '혹시 정숙이가 여기서 뭐라도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몰라요"하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곤 했다.

 

한국 현대사의 뒷골목

 

"우리는 그 시절, 이 작업을 통해 588에서 일하는 여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앨 수 있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았죠. 1990년 프랑스문화원에서 '전농동 588번지 기록전'이라는 사진전을 열면서 이 여인들을 초대한다고 하자 언론의 관심이 온통 여인들에게만 집중됐어요. 결국 아무도 전시회에 오지 못했고, 제 시도가 실패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조 작가는 588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정숙이'도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의도가 세상 안에서 왜곡돼 그들에게 상처로 남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때문에 그동안 촬영한 사진과 필름도 꺼내 보지 않았다. 최근 588을 다시 떠올리게 된건, 곧 그 공간이 영영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조문호사진작가의 사진 속에는 1980년대 '588'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민낯이 생생히 담겨 있다.

 

 

2012년 12월, 서울시는 전농동 588번지일대 재정비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라면 2017년에는 그 자리에 60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주상복합 마천루들이 주위를 두르게 된다. 마침 출판사로 부터 사진집 출간 제의를 받은 조 작가는 이번엔 거절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순간을 담은 기록으로 이 작업을 세상에 꺼내 보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만큼이나 노인이 됐을 그 시절 여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고 했다.

 

10년 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정영신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그는 요즘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인생의 굴곡을 함께 건넜던 이들도 부디 행복했으면 하는 게 조 작가의 바람이다. 그리고 사진작가로서, 588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다시 한 번 뒷골목 풍경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이제는 30여 년 전 그 시절처럼 그들 안에 들어가 부대끼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기록자로서의 구실은 다하고 싶다고 한다.


[아트&아트인] 80년대 사창가 공개한 사진작가 조문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기자]

서울 청량리 일대 집창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1984-1989년까지 전농동588번지 일대 홍등가를 담은 이번 전시는 ‘청량리588’이란 제목으로 관객을 만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멸시 받았던 윤락녀는 그들 역시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다.

 


사진작가 조문호의 ‘청량리 588’사진전이 오는 3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 동대문구 일대 집창촌의 모습을 담은 67점의 사진은 전시와 함께 ‘청량리 588’(눈빛출판사) 사진집으로도 출판되었다.

“그들도 똑 같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 온 조 작가는 당시 홍등가를 찍기 위해 현장에 기거했다. 건달들의 폭력과 성병 등 숱한 고난이 동반됐지만 조 작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매춘을 우리 사회의 필요악으로 보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성매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생활고에 찌들려 몸을 팔았던 윤락녀는 시대적 희생양으로 부각됐다. 조 작가는 “가난한 것이 죄일 뿐 누가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처음엔 냉대했던 그곳의 여성들은 서서히 조 작가에게 마음을 열었다. 조 작가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 이들은 이미 서로를 누이동생으로 불렀다. 때문에 조 작가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활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친근한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조 작가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며,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멸시 섞인 시선, 얼굴조차 마주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천대가 윤락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몸 파는 창녀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인으로 봐달라며 5년을 공들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힘들게 찍은 사진을 모아 1990년 2월 전시회를 가졌으나 언론은 매춘이란 호기심에 무게를 두고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조 작가와 생각을 같이하며 “사람대접 받게 해 달라”고 했던 사진의 주인공들은 전시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난 조 작가는 필름을 창고에 처박았다. 사진집 출판 제의도 거절했다. 자신의 작품이 춘화와 같은 이야깃거리로 변질될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행여 잘 살고 있는 누이동생들의 삶이 망가질까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조 작가는 먼지 쌓인 필름을 다시 꺼냈다. 그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조 작가는 “사진에 찍힌 그때 그 사람도 보고 싶고,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며 “전시장에 찾아와 자신이 찍힌 사진을 찾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청량리 588’ 사진전 전시
집창촌 직접 머물며 촬영
성매매 여성들 애환 담아

훌륭한 사회사적 기록물인 조 작가의 작품은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기쁨과 뿌듯함에 조 작가는 사진의 모델이 되어준 여성들을 상대로 남김없이 상금을 썼다고 한다. 전시 서문을 쓴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그들이 받은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 작가의 사진은 기술적으로 뛰어 난 사진이 아니다. 어찌 보면 촌스럽기까지 한 구성과 스타일은 오히려 그의 작업을 돋보이게 한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애틋함이 녹아 있는 사진들을 보다 보면 1980년대의 정취가 눈시울을 자극한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대, 국가의 최우선 정화 대상이었던 이들은 한곳에 모여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우리와 똑같이 살고 싶은 욕구에 충실한 생명이었던 것이다.

 



조 자가는 자신의 작가노트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 정숙아! 혜련아! 나의 연인이기도 동생이기도 했던 너희가 보고 싶다. 연락 한 번 주렴. 내가 소주 한 잔 살게. 그리고 부디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사회사 기록

그간 아시안게임, ‘민주항쟁, 두메산골 사람들, 5일장, 강원도 동강, 인사동 등을 소재로 작업해 온 조 작가는 이번 전시로 한국 사진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향수에 젖고 싶은 성인이라면 전시가 열리는 ‘아라아트’를 찾아보면 어떨까. 단 19세 미만은 관람불가다.

angeli@ilyosisa.co.kr

 

[조문호 작가는?]

 

조문호 작가는 194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30여 년간 사회 환경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홍등가’로 대상을 수상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기록사진 공모전’ 대상과 2007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선정된 바 있다. 주요 전시로는 민주항쟁 기록전(1987), 전농동588번지 기록전(1990), 동강백성들 사진전(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 사진전(2002),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2007) 등이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포토에세이집 <동강 백성들>, <두메산골 사람들>, <인사동 이야기>, 천상병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등이 있고, <월간 사진> 편집장과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석>

 

‘장에 가자’ 전시에 이어 ‘청량리588’까지 45일 동안 계속된 전시로 곤욕을 치루었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술 마시는 게 즐겁기는 했으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터진 입술은 아물지 않고, 매사에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지난 10일 전시작품은 철수했으나, 쉴 형편은 아니었다.
이틑 날 오후2시부터 ‘시사저널’ 김진령기자 와의 인터뷰 약속이 있었으나,
우편물 보내느라 늦어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넘겼다.
매번 반복된 질문에 답하는 것도 지겨워 개인적인 신세타령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지면에 나와서는 안 될 이야기까지 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속은 후련했다.

아라아트 사무실에 올라갔더니, 채현국선생과 구중관, 공윤희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채현국선생은 유명세 타느라 엄청 바쁘시단다.

양산 학교 일 챙기기도 바쁜데, 인터뷰에다 틈틈이 초청강연까지 있어 인사동에서 뵙기가 쉽지않다.
그 날도 짐 보따리를 뒤적여 복사한 잡지 인터뷰기사를 보여주었다.

오후 4시 무렵, 인사동거리에서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을 만났다.
‘이문설렁탕’에서 김회장을 비롯하여 대신증권의 김송규전무, 이흥탁부장, 송재엽씨 등

몇 명이 모여 수육에다 막걸리를 마셨는데, 모두들 너무 급하게 마셨다.
한 번에 다섯 병씩 시킨 막걸리가 순식간에 열 다섯병이나 되었는데, 따르기가 무섭게 마셔 재켰다.

급하게 마시면 금새 취하는 체질이라, 눈치 껏 마시기는 했으나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취해 버렸다.

헤어지는 길에 김명성, 박인식, 김종숙씨도 만났으나, 갈 길이 멀어 헤어졌다.

그 날 밤 청량리588을 촬영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술이 취해 모범택시를 잡아 타고 588가자며 잠이 들어버렸는데, 깨어 보니 588 홍등가에 내려 놓았다.
정신없이 내렸더니, 사방에서 잡아 당겼다. 나를 일본 사람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588을 기록한 사진쟁이랬더니, “아! 오빠가 그 사람이구나!‘라며 놓아 주었다.

정신차려 외각을 돌며 588의 야경을 찍고 있는데, 왠 사내가 나타나 카메라를 내 놓으란다.
'왜? 카메라를 달라냐'고 물었더니, 금지구역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럼, 마음대로 지우라고 했더니, 열심히 지우고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집에 돌아 와, 지운 CF카드를 다시 복원시켰다.

사는 재미는 반전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청량리588‘전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전시 종료를 이틀 앞둔 지난 주말에는 시인 강 민, 김가배 선생께서
김수영시인의 미망인이신 김현경선생을 모시고 오셨다.

김현경선생께서는 구십을 넘긴 연세지만 아직 짱짱하시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 김수영선생의 생전 일화들을 심심찮게 들려주신다.
‘청량리588’전시를 둘러보신 후, 익숙한 풍경이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돌아가신 김수영선생께서 옛 홍등가인 ‘종삼’에 가끔 들리셨다는데,
한 번은 술이 취해, 아끼는 군용 털내의를 두고 나와 통탄해 하셨다고 한다.
어느 집, 어느 방인지도 몰라 안타까워하시기에, 다시 사주겠다며 달랬다는 것이다.
정말 간 큰 남편이고, 통 큰 아내였다.

그 날은 가수 최백호씨와 기와장 오세필씨도 들려 김명성씨와 함께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최백호씨는 축구를 하다 넘어져 한 달 넘게 고생하였다고 한다.

점프를 하다 그만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로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큰 일 날뻔한 사고로, 좋아하는 축구도 이제 못하게 됐다.

 

사진가로는 한정식, 전민조, 변홍섭씨가 오셨고,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사진가 구본상, 이경수, 김봉규씨와 함께 들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 날엔 막차로 서양화가 장경호, 김정대씨가 찾아 와 ‘화신포차’에서 소주 한 잔하였는데,

이 날은 이대훈, 노인자 내외가 늦게 와 염소 고기집에서 소주 한 잔 했다,
옆 자리에는 서양화가 김종숙씨를 비롯하여 김명성, 박인식, 조근숙씨 일행도 있었다.

 

술, 웬수같지만 난 버리지 못한다. 세상이 술 취하지 않고는 살기 힘들게 만드니까.

술, 담배, 섹스, 모두 마약처럼 중독성을 가졌지만,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그 것 다 버리면, 사는 재미가 뭘까?.... 

 

 

글:조문호/사진: 정영신, 조문호

 

 

 


 

 

 

 

 

 

 

 

 

 

 

 

 

 

 

 

 

 

 

 

 

 

 

 

 

 

 

 

 

 

 

 


 "청량리 588"

 

전시일시 : 2015, 2, 25-3,10

전시장소 : 아라아트센터 2층전시실(인사동)

 

 

-작업노트-

 

이 땅의 환부요 시대의 치부로 일컬어지는 청량리588에도

사람이 살았고 따뜻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었다.

전농동을 기록한 오래된 필름 파일을 뒤적이다 그 소녀를 다시 보았다.

그 녀를 잊은 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되었나보다.

그토록 꿈 많은 소녀가 거기까지 가게 된 건, 가난한 부모 만난 죄 뿐이다.
그 때는 나라까지 가난했으니, 시대적 사회적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

당시 한참 고운 이십대였으니 이제 오십대의 아낙이 되었을 게다.
가난 때문에 무작정 상경하여 곳곳을 떠돌다 결국

사창가까지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그녀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몸은 망가져도 끼니 걱정하지 않고 집에 돈까지 보내 줄 수 있어나,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멸시를 견딜 수 가 없었다고 했다.

 

그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가엽다고 동정하지도, 몸 판다고 천대하지도 마라.

동등한 사람으로 함께 사는 깨어난 세상을 바라며 이 사진들을 내 놓는다.

 

그리고 세월에 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역사다.


2015. 2
조문호

 

 

 

'그리움의 연서' 해설 중에서

 

조문호의 사진이 따뜻한 것은 그가 그 대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아서만은 아니다. 대상이 되는 그들이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아서이기도 하다.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그 명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란 순간적 찰라를 포착하는것이 아닌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 사람사는 세상을 기록하는 것,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작은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조문호의 ‘청량리588’은 바로 사라져 가는 작은이들의 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정작 조문호의 ‘청량리588’이 다른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다른 것은 사진가가 그들의 소외된 삶을 도구로 삼아 소외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는 사실에 있다. 감히 사회를 위해, 역사를 위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웅변이 아니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눌변, 그것이 조문호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이다.

-이광수 : 사진비평가-

 

 

-전시장 스케치-

 

 

 

 

 

 

 

 

 

 

 

 

 

 

 

 

 

 

 

 

 

 


                                                                                                    

 

-전시 작품-

 

 

 

 

 

 

 

 

 

 

 

 

 

 

 

 

 

 

 

 

 

 

 

 

 

 




 

[서평]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

"쉬운 노동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대부분"


미디어 오늘 / 장슬기 기자

 

와서 게임만 하다가는 손님이 있다. 다음에 또 와서 게임 하고.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하트를 보내달라고 한다. 가끔은 여자친구 문제, 결혼 생활 상담도 한다. 또 다른 분은 와이프가 바람피우는 걸 알고는 홧김에 온 사람도 있다. 손을 부르르 떨면서 자초지종을 털어놓더니 막 운다. 마음이 약하고, 따뜻함이 필요한 사람들, 그런 분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돈을 내고 성을 사러오는 공간에는 돈으로라도 위로와 공감을 사려는 사람들도 찾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성매매를 ‘남자들이 돈을 주고 남자가 함부로 해도 되는 창녀를 사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성매매특별법이 과연 성노동자들의 삶을 보장하는지, 성매매도 노동으로 인정해야하는지를 공론장에 올려놓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철수와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6번째 인터뷰집인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를 펴냈다. 

 

 

▲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 밀사, 연희, 지승호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인터뷰에 참여한 밀사와 연희는 성노동을 직접 경험해봤고, 성노동의 비범죄화 등 성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운동하는 활동가다. 밀사는 대학에서 국문학과 여성학을 전공하다가 2010년 11월 한 달간 조건만남 후기를 ‘성노동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트위터에 올렸고, 이듬해부터 2014년까지 성노동자 권리모임 GG의 활동가로 참여했다. 

모든 사회개혁운동이 그렇듯이 성노동자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이 실천할 때 더 파급력이 크다. 당사자가 되기 위해 밀사는 성노동에 직접 참여했다. 물론 밀사가 성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자신이 원할 때 성노동에 참여했고, 또 원할 때 성노동을 그만둘 수 있는 상태에서 과연 강제로 혹은 돈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는 성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까? 다만 밀사는 당사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에게 최대한 밀착해본다. 

 

연대할 상대조차 찾기 힘든 외로운 싸움

 

밀사는 성노동 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게 됐다. 성노동 활동가들은 여성주의자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가혹한 비난을 받는다. 성노동자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성매매는 없어져야 할 대상인데 이것을 노동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과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지적 등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자체를 착취당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성노동 역시 없어져야 할 존재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밀사는 다른 노동과 성노동에 대해 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반문한다. 노동이 착취라면 모든 노동이 사라져야 하는데 현실에서 노동이 사라질 수는 없고, 이때 성노동에 대해서만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도 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주장했는데 과연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는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에 밀사는 “옳은 말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성노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진보는 2보도, 3보도, n+1보가 아니고, 진보는 일보”라고 표현했다. 현실에 몸을 두고 당장의 한걸음에 고민하는 밀사에겐 외면할 수도 없지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지적이다. 

 

성노동을 특별 취급하지 말라

 

우리 사회에서 직업은 귀천이 없다지만 성노동을 한다고 하면 바로 낙인이 찍힌다. 사회적 약자는 폭력에도 쉽게 노출된다. 폭력과 비난은 아래를 향한다. 바에서 일하다가 돈을 벌기 위해 미아리 텍사스에서 성노동을 하게 된 연희는 “예전에는 (성노동자에 대해) 우호적인 부분이 있었다. 저 사람은 몸을 팔 정도로 어렵게 사는구나. 하지만 너도나도 먹고살기 힘들다보니 성노동자들이 외려 편하게 일한다는 생각을 하며 함부로 한다”고 털어놨다. 

 

밀사는 성노동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몸만 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성노동 역시 엄청난 감정노동이 뒤따른다. 또한 밀사는 “쉬운 노동이 나쁜건가, 누구나 쉽게 돈 벌고 싶어하는데 성노동만 이런 비난을 받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4년부터 시행된 성매매특별법 이후 성노동 운동은 더 어려워졌다. 성구매자와 성판매자를 모두 처벌하는 바람에 위험부담은 커지고 음성화됐다. 자연스레 성노동자 사이의 계층화가 진행됐다. 마치 노동자들이 대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중소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다양한 층위로 나눠진 것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성노동을 일시적으로 하러 오는 여성도 많고, 투잡을 뛰기 때문에 성노동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다. 
 
성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처럼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것이 옳을지 스웨덴처럼 성구매자(보통 남성)만 처벌하는 것이 옳을지, 성매매여성을 성노동자라고 불러야 하는지, 성매매특별법은 보완할 점이 없는지 등 다양한 논쟁거리가 있다. 하지만 성을 금기시 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문화적 토양에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에게도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이 성노동자들이다. 

 

밀사는 궁극적으로 성평등이 실현된 사회를 꿈꾼다. 성폭력에 대해서도 특별하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폭력에 비해 성폭력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뭔가 훼손됐다고 생각해서다. 정조를 지켜야하는 사회일수록 성폭력 여성의 고통은 커지고 성이 인격으로 이해되진 않을 것이다. 성노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성 평등이 실현된 사회는 성노동, 성폭력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밀사의 주장이다.  

 

▲ 청량리 588/ 조문호 사진집/ 눈빛 펴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몸(노동력)과 시간을 팔아 돈을 벌어 살아간다. 성노동은 매춘의 최극단에 있어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지도 모른다. 성노동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고 우리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약 15만명의 성노동자 여성들을 한번 떠올려보기 위해 이 책과 더불어 의미가 있는 사진집 한권이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씨가 펴낸 <청량리 588>은 지난달 25일부터 3월 10일까지 인사동에서 열리는 사진전 작품을 모아놓았다. 조 작가는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청량리 사창가 일대에서 이곳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사진을 찍었다. 지난 1990년 전시를 했었지만 성을 선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에 실망해 사진을 숨겼다가 최근 다시 선보였다. 조 작가는 사진전을 통해 “비록 몸 파는 창녀일지라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봐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량리588'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시인 강 민, 이행자씨, 서양화가 김영덕, 박불똥씨, 미술평론가 박용숙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오마이뉴스 박 건 시민기자, 전통염색인 이명선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지만,

다른 개인전 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진가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느라 바쁘고, 일하느라 바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우들을 요즘 이산가족 만나 듯 만난다.

그동안 사는 곳은 물론 전화번호까지 몰라 연락주지 못했으나, 어떻게 알았는지 모두들 찾아 온다.

지난 7일에는 대전에 사는 이석필씨와 그의 조카 이주영씨를 비롯하여  박옥수, 양재문, 신동필,

유성준, 최영규씨를 만났고, 사진평론하는 최건수씨는 많은 아마츄어 사진인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지척에서 룩스갤러리를 인수하여 운영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늦은 시간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엄상빈, 이젬마, 김지연씨를 모시고 와 즐거운 주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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