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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북적이고 활기 돋는 장터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정선오일장.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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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경기도 성남 모란역 앞 모란장, 일산역 앞 일산장, 파주 문산역 앞 문산장 등 수도권에 있는 오일장 장터들을 알게 된 건 정영신 작가의 사진집 <한국의 장터>를 읽고 나서다.

특히 아파트들이 빈틈없이 들어선 신도시 일산에선 능숙한 솜씨로 여러 모양의 칼을 다루는 칼갈이 할아버지, 각종 곡식이 담긴 양철통 옆에서 연신 쇠통을 돌리는 뻥튀기 부부, "꼬끼오~" 우렁찬 목소리로 우는 수탉 등의 모습들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외에 강원도 양양장에서 제주도 모슬포장까지 책 속엔 500개가 넘는 오일장터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들을 보며 아직도 전국 동네방네 곳곳에 저마다의 날짜에 맞춰 오일장들이 서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읍은 물론 시골 마을까지 들어선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들의 세상에서 이런 오일장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자생하고 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후 여행 삼아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보곤 했다.

내겐 좋은 여행 가이드이기도 했던 <한국의 장터>의 저자 정영신 작가가 남편인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와 함께 전국의 오일장 522곳을 약 30년에 걸쳐 기록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 전시회 <장에 가자>를 열고 있다(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987년부터 최근까지 전국의 전통 시장을 돌며 사진으로 담아낸 작품 80여 점을 볼 수 있다. 추억 속 장터와, 동네주민이자 장꾼들의 삶, 장터의 변두리 풍경 등이 정겨우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진다.

정겨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우리네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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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보이는 흑백사진은 더욱 진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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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반 이상이 모여 사는 아파트, 모든 것이 편리하지만 이웃 간 소통하고 사는 이는 드문 한국의 도시.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른 도시 생활에 도무지 정이 안 갈 때 찾은 오일장은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해줬다. 유년 시절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시골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유일한 내게 오일장이 펼쳐지는 공간은 고향의 정감을 나눠주는 곳이다.

그런 정경을 기대하고 찾아간 사진전에서 의외의 풍경과 마주쳤다. 아내인 정영신 작가의 감성적이며 푸근한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남편인 조문호 작가의 사진은 마트와 시대에 밀려나고 있는 장터에 드리운 그늘과 스산함을 담아냈다. 승자보다는 패자, 강자보다는 약자에 시선을 돌려 톺아보는 다큐멘터리 사진 앞에서 자꾸만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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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와 시대에 밀려 스러져가는 시골 오일장.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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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생생한 현장감 외에 그만의 내공과 미학이 느껴지는 조문호 작가의 '불편한' 사진들은 묘한 공감과 감동을 전해줬다. 타인의 어려움과 아픔에 동정심보단 혐오를 드러내는 삭막한 시대에 다큐멘터리 사진이 좋은 보루가 되겠구나 싶었다.

전시장은 정 작가의 '희망을 엮는 집어등'으로 시작해 조 작가의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으로 끝난다. 잔돈을 거슬러주며 물건 파는 장꾼의 생동감 있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짐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가는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 사진은 내 부모의 모습 같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컬러 사진 외에 간간이 보이는 흑백 사진 또한 푸근한 장터를 색다르게 느끼게 했다. 화려한 색을 뺀 단순한 흑백 사진이지만, 사진을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여러 감정이 배어 나왔다. 손님이 뜸한 늦은 오후 머리를 맞대고 단출하게 차린 밥을 먹고 있는 장꾼 부부. 사람이 그리워 채소 몇 단, 호박 몇 덩이 가지고 나와 장터 외진 곳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 하루 종일 바람과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도 오일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사진은, 누가 굳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아도 정겨우면서도 아릿했다.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 할 생활 문화 박물관,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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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해 주는 부부 다큐 사진가 정영신, 조문호 작가.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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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70, 1880년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국민이 됐지만, 마을 공동체와 정다운 이웃 사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외국 작가의 말대로 기적을 이뤘지만, 기쁨을 잃고 말았다. 약자를 배려하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던 미풍양속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렇게 경제적 부(富)와 바꾼 것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모여 아직도 이렇게 오일장터가 남아 있게 된 것일 게다.

오일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오일장은 서양의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5일간의 일용할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서구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는 것.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광장이요 소통의 공간이었다. - 정영신 사진집 <전국 오일장 순례기> 가운데

동학 혁명이나 3·1운동도 장날을 참고해 전개됐다 하니, 오일장의 사회적 의미는 큰 것이었다. 두 작가 또한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 문화를 꽃피우는 무대요,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 할 생활 문화 박물관"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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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터 사진 앞에서 옛 추억을 나누는 어르신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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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가면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 오롯이 담긴 사진들은 언뜻 '이런 사진은 나도 찍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는 쉬워도, 사진에 담아내기 어려운 게 장터 사진이다. 생계가 걸린 고된 장터 일을 하는데 낯모르는 타인이 와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장에 정영신 작가가 나와 있길래 어떻게 장터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었는지 몇 가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카메라보다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물건도 사고,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오일장터에 구경 가서 사진을 찍게 될 때 참고해야겠다.

 

 

오마이뉴스/김종성 시민기자 

 

우리시장 기 살리려고 시작한 ‘장에 가자’ 전람회가 이제 마지막 주로 접어들었다.
남은 일주일동안 최선을 다하겠지만, 얼마나 반향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빈털털이 주제에 전시를 열어 애쓰는 두 내외가 안스러운지 전시장을 찾은 친구가 말을 꺼냈다.
‘니~네 앞길도 못 닦으며 장터는 무슨 장터고?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이네!’

'시장 기를 살려야 내 기도 살 수 있고, 네 말처럼 내 앞길도 닦을 수 있다'며 말을 받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기야 전시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내는, 자칫했으면 죽을 번했다.
화장실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이 일을 마무리하라고 살려 주지 않았던가.
정신 나갔던 그 준비 과정을 돌아보니 어떻게 해 냈는지 스스로 신기할 뿐이다.

‘아라아트’대표 김명성씨와 정선군의 후원으로 기본 틀은 짤 수 있었지만,

사진프린트에서 액자제작과 디스플레이, 언론 홍보, 개막 준비 등,

눈 코 뜰 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한 달 동안 이어지는 긴 전시는 한 번도 치루어 본 적이 없는데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초상사진 찍어 준 다는 약속까지 해 놓아 전시장을 비울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관람객들이 꾸준하여, 힘들어도 계속 사진을 찍으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

그중 제일 힘든 일은 언론사의 인터뷰나 촬영에 응하는 일이었다.

인터뷰나 전시장을 스케치하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몇 날 몇 일을 촬영일정에 끌려 다녀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도 힘들지만 안방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데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에 가자’ 프로젝트를 널리 알려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거부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20분짜리 방송을 찍기 위해 3일 동안 시달린 아내의 혈압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 저기 언론사의 취재 요청은 계속 이어지고, 더군다나 50분짜리 휴먼 다큐를 찍자는

제안이 동시에 세 곳에서 왔다. 그건 한 달 동안이나 밀착해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프로 정도는 해야 할 일이지만, 혈압이 달음박질하는 아내 몸이 걱정스럽다.
부귀나 영화 따위야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사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하다 죽는다면 그 보다 더한 보람도 없겠다.

그동안 방송촬영에 응해 주신 강 민, 김가배, 심우성선생, 정선 만지산 이웃들,
주객으로 함께 출연한 송상욱, 김신용, 장경호, 조준영, 서길헌, 이명희씨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사진가 곽명우씨 등 도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겨레신문’ 곽윤섭 기자, ‘세계일보’ 편완식 기자, ‘한국일보’ 강주형 기자,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오마이뉴스’ 박다영기자, 유성호사진기자, 연합뉴스 김정선기자,

'굿 뉴스' 고정연기자, '한겨레21' 정은주기자, SBS 김영아 차장,

KBS 안종호 프로듀서와 김진범, 신광준, 박준수, 현태설기자, JTBC 강나현 기자, KTV 진은선기자 등

취재하느라 고생하신 많은 기자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드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30여년동안 전국의 522개 장을 모두 다니며 촬영한 정선의 향토작가 정영신씨가 촬영하고 글을 쓴 `전국 5일장 순례기'가 눈빛 포토에세이 제5편으로 출간됐다. 이번 책에는 태백 철암장, 동해 북평장, 고성 거진장, 삼척 도계장 등을 비롯해 전국 8도 50곳의 5일장 스토리가 담겨있다.눈빛 刊. 255쪽. 1만5,000원.

최영재기자

 

 

‘우리시장 기 살리기 운동인 ‘장에 가자’ 인사동 전람회가 이제 후반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시장을 사랑하는 관람객들에게 초상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드리기로 했으나
작업량이 많아 계속 지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리할 틈도 없지만,

찍힌 분들의 성함이 헷갈려 계속 혼돈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상착의를 대충 기록해 두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네요.

부득이 지난 2일부터 앱숀 휴대용 프린트를 준비해 두고 현장에서 직접 뽑아드리는데,
사진을 받은 모든 분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는 17일까지 이어지는 ‘장에 가자’ 전람회에 들려 좋은 추억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정영신, 조문호 다큐사진가 부부가 시작한 우리시장 기살리기 운동에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아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천 여명에 불과하지만, 만 명 아니 전 국민이 다 함께 할 때까지 전국 장터를 돌며  힘을 모울 것입니다.

'한국의 장터'와 '인사동 사람들'  블로거에 올리는 사진들은 지인들만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락 주시면 내리겠습니다.

2월17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장터사진전과 함께 펼치는 이 운동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서양화가 정복수씨

 

천상병기념사업회 목영태이사

'공평아트' 관장 신용철씨

 

소설가 임헌갑씨

 

사업가 조창호씨

 

문화기획자 김영태씨

 

KBS 사원 김진범씨

 

서양화가 문영태씨

 

시인 신동명씨

 

소설가 전경애, 사진가 조문호, 언론인 지종학, 연극배우 이명희씨

사업가 전경수씨

 

사진가 이종칠씨

 

KBS 프로듀서 안종호씨

아프리카미술관장 정해광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시인 김가배, 소설가 김현경, 정영신씨

 

KBS 사원 신광준씨

 

'나무화랑'관장 김진하씨

 

인경춘, 송진희부부와 자녀 인지민,인지원양

 

'아시아경제'문화부 오진희기자

 

이다은, 이다혜양

사업가 이희준씨

 

KBS 촬영감독 현태설씨

 

사진가 조영준씨

 

회사원 송기현, 김영옥부부

 

학생 황예랑, 박지유양

 

KBS 카메라기자 박준수씨

 

심지호, 심지윤씨

 

'공아트' 대표 공창호씨

 

콘텐페리님과 김도연양

출판인 이규상, 안미숙 부부

 

이효영,최정희부부와 이태규 이나율군

 

성베네딕도 수도원 에드몬드 수사

 

사업가 김판호씨

 

이미원씨(세실리아)

 

서양화가 길지원씨

 

비디오작가 김도이씨

 

뮤직비디오작가 김종빈씨

 

블랑카, 다연, 아라쿨레, 메르세

 

사진가 윤한수씨

 

사진가 황규태씨

 

인왕산 불국사 정제스님

 

시인 고정애씨

 

시인 정호정씨

 

소설가 김녕희씨

 

서예가

 

 

 

 

 

 




 

담배 값이 장난 아니다.
안 피우면 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담배 값이 오르고 부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돈을 피운다는 생각에 주눅든다.

30여 년 동안 인사동을 떠돌며 구걸했던 ‘까딱이’는 담배 값 인상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 친구는 모르는 사람은 절대 손 내밀지 않고, 아는 사람들만 뜯는다.
만나기만 하면 천 원만 내라는데, 특히 조계사 스님들이 밥이다.
오래 전, 해인사 스님이어 웬만한 스님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거지 노릇도 못해먹겠다며 투덜댄다.
인사동에서 만나기만 하면 돈 달라는 소리대신, 담배 한가치만 달라며 달겨든다.
천원 갖고는 담배 살 수도 없는데다, 스님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고객들이 담배를 안 피우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없어 주워 피울 수도 없고,
재틀이를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인데다, 찾았다 해도 장초 만나긴 힘들단다.

 

담배 값이 오르기 전만 해도 담배 인심 하나는 좋아, 쉽게 얻어 피울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는 사람에게 담배 한 개피 달라기도 머뭇거려지고, 줄 때도 손이 떨린다.

이 이야기는 거지 ‘까딱이’ 만의 고통이 아니라, 가난한 흡연자 모두의 현실이다.
담배를 사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힘든 삶으로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는 서민들이다.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담배 한 대 피워 물며 스트레스 풀고,
글 쟁이들이 뭔가 막힐 때, 한 개피 피워 물며 달래는 것이 담배다.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담배는 끊어야 하고, 팔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번 담배 값 인상도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다지만,
세금 거두려는 속셈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세계적인 추세라 담배 값 인상 자체는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돈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비싸도 피우겠지만,
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옛날처럼 담뱃대에 넣어 피우던 봉지담배나 군인들의 화랑담배 같은

휠터 없는 싼 담배도 같이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중독자 천국이다.
담배나 알콜 중독자보다 컴퓨터나 돈에 중독된 사람들이 더 많다. 
담배나 술이 인정이 오가는 포근한 중독이라면, 돈은 찬바람 도는 비정한 중독이다.

없는 것도 서러운데, 흡연자들을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마라.

 

사진: 정영신 / 글 : 조문호

 

 

 

 

기록사진이란 된장이나 와인처럼 세월이 흘러 숙성되어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어저께 인사동에서 민속학자 심우성선생님과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말씀을 꺼내셨다.

“조군, 내가 두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동생들이 갖고 싶어 하니 몇 장 복사해 주게"라고 하셨다.


사진을 달랬더니, 지척에 있는 집필실(푸른 별 이야기)로 달려가 조그만 사진틀

하나를 갖고 오셨는데, 사진이 너무 좋았다.

 

그 사진은 세월의 두께가 더해져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사진틀 뒤에는 1933년 6월 28일 종로 명륜동 자택에서 라고 적혀 있었고,
당시 명륜동에 있었던 '아리수 사진관'에서 출장 나와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하셨다.

모시 한복 차림으로 앉은 어머니와 어렸던 심선생의 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했다.

80여 년 전, 유리원판 사진이라면 쉽게 찍을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예술 지상주의에 빠져 자기 생각들만 형상화하는 요즘,
다시 한 번 기록사진의 가치를 입증한 순간이었다.

기록사진이란 시사적 사회적 현상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상적 삶의 모습도 소중하다.
바로 이게 우리가 살아 온 역사 아니던가.

역사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 조그만 흑백사진 한 장이 말해 주고 있었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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