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쓸쓸하게 걸어가는 노학자 심우성선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원로 민속학자이자 일인극 배우인 남천 심우성(82세)선생은 요즘 인사동의 ‘신궁장’여관 206호에서 장기 투숙하신다.
인사동 변두리에 있는 ‘화목식당’에서 3천원짜리 식권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유령처럼 인사동 주변을 떠도는 것이다.

 

평소 인사동에서 자주 뵙기는 하지만 말씀이 없어시기에, 왜 제주에서 혼자 올라 와 계시는지 근황을 여쭈어 보았다. 

 

 

남천선생은 원래 충청도 공주가 고향이지만,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인사동 ‘수도약국’ 옆 골목에서 사셨다.

아버님이신 소민선생께서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과 ‘관훈고서방’의 주인 분과 절친했기에,

일찍부터 그 곳을 들락거리며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을 키웠다고 한다.


 


인류학을 전공해 KBS 공채 1기로 아나운서가 되었고, ‘대한뉴스’ 아나운서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직업이 주는 대우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쏠려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민속사 연구에 몰두했는데, 한 때 '공주민속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하셨다.

탈과 솟대 뿐 아니라 민속극에 빠져 꼭두각시를 내 세운 넋전을 수 차례 열기도 했다.

 

['푸른별 이야기' 술집 골방에 마련한 집필실]


고향처럼 정겨운 인사동을 떠나지 못해 여기 저기 전전하시다 경운동 SK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마련한 적도 있었다.

인사동을 출입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시던 어느 날,

인사동에서 '완자무늬‘란 식당을 운영하던 김모 여인에게 마음이 뺏겨 모든 걸 바치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도 잠깐일 뿐, 감당하기 힘든 위암이 전위되어 사경을 헤메게 된다.

남천선생이 병석에 있는 동안 아내인 김여사는 전 재산을 처분해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로 옮겨 버렸다.

얼마 후 회복해 기력을 차린 남천선생은 마음 변한 아내의 속내를 읽고,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민속자료와 모든 것을 남겨 둔 채, 빈손으로 인사동으로 돌아오게 되었단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뒤늦게 절감하게 된 것이다.


 


남천선생의 어려운 사연을 알게 된 연출가 임진택씨와 춤꾼 이애주씨가 가끔 용돈을 챙겨드리기도 하고,

인사동에서 ‘푸른 별 이야기’란 주막을 운영하는 최일순씨가 술집 골방을 비워 선생님 집필실로 제공하기도 했다.

낯에는 골방에서 민속에 관한 글을 쓰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특강을 나가는 등 

마음의 상처를 지우려 애쓰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늘도 거리를 오가며 급속하게 변해가는 인사동을 안타까워 하지만, 각박한 세상 인심은 돌이킬 수 없었다.

몰려드는 인파에 밀려 외각 길로 돌아 다니지만, 죽을 때까지 인사동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에 밀려 난 인사동 문화와 병들어 쓸쓸한 노학자의 모습이 너무 닮았다.

스러져 가는 인사동 낭만, 버림 받은 인사동 터줏대감의 쓸쓸한 모습에서 슬픈 비애를 느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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