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만다라 Meta-mandala

 

전인경展 / JEONINKYUNG / 全仁敬 / painting 

2021_1001 ▶ 2021_1024 / 월요일 휴관

 

전인경_메타만다라 21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48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org

 

 

팬데믹 시대, 컬러플 만다라 ● 2021년 전인경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리기 시작했다. 인류를 걸어 넘어트린 덫, 문명의 훼방꾼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서사를 도상학적으로 풀어내는 야심만만한 연작이다. 조형성의 기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생각이 깊어진 것만큼은 확연히 드러난다. 정방형 캔버스의 4면을 둘러싼 사방문(四方紋)의 등장이 먼저 그러한 인상을 준다. 사방문은 만다라 미학에서 차용한 것으로, 성과 속을 구분하는 기제였다. ● 전인경 회화의 고유한 조형체계가 강렬한 색에 얹혀진 채 쇄도해온다. 「바이러스의 공간과 시간」(2021)은 마치 세폭 제단화의 상징성을 부여하려는 듯,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내용을 세 개의 캔버스에 나누어 담긴다. 이 만다라 세상에선 한낱 바이러스에도 나름의 미와 위엄이 허용된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망각이 아니라면, '별과 바이러스와 인간'은 모두, 의심의 여지 없이 형제요 따라서 동등체이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관계는 악(惡)과 일방적 희생 같은 일방향의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백신이 이 병든 문명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듯, 바이러스가 퇴치해야 하는 괴물인 것도 아니다.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이지 않는 적"으로 간주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동안 사재기, 온라인 통신, 다양한 사회적 제재들을 통해 일상을 마치 군사 캠프와 같은 것으로 만들었다. 이 기간 미국 사회에서 미디어의 선전적인 위력(propaganda power)은 매우 완강한 것이 되었다. 문제적인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탐욕과 야심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 퇴치 이전에 경청이어야 한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는 것, 인간과 바이러스의 '적대적 공생관계(antagonistic cooperation)'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전인경의 만다라 회화론에 부합하는 시대정신이다. ● 이런 맥락에서, 「바이러스의 공간과 시간」의 세폭 회화에서 각각의 바이러스가 노란색과 빨간색, 파란색의 신체를 입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살아있고 역동하는 많은 조형적 요인들에도 정교한 회화적 질서는 흔들림이 없다. 리듬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다. 이 안정적인 리듬이 강렬한 채색의 분방함을 적절하게 조율한다. 이 리듬에 의해, 이 세계는 예컨대 최근에 그린 바이러스 이미지처럼 그 형태의 재현성이 분명한 경우에도 일러스트레이션을 넘어서는 순도 높은 회화성을 획득한다. 사실 이 조율된 내적, 외적 리듬감이 회화성이라는 미적 가치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전인경_바이러스의 시공간 Ⅰ,Ⅱ,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3_2021
전인경_메타만다라 21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116.5cm_2021

전인경의 만다라의 미학 안에서는 모든 폭력의 전조증상인 피아(彼我)의 구분이 무색하다. 미와 추의 분열, 천과 귀의 계층적 구분, 자연과 문명, 동양과 서양, 유색인과 백인, 문명과 야만, 전통과 현대, 남자와 여자의 분리, 이 모든 이분법의 자리는 이 미학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만다라는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없으며 각기 고유한 존재의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상호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을 성찰하는 예술이다."(전인경) 여기서 만다라는 더는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고, 미학도 그것의 세속화된 탐미의 범주로만 머물지 않는다. 여기서 회화는 교환이고 사건이다. 영적인 것은 형태와 색을 옷 입고, 형태와 색은 지난 근대기의 망각을 딛고 정신과 가치의 차원을 스스로 복원하는 교환이다. 여기서 만다라의 영성(靈性)은 시각적 조형성으로 기꺼이 번역되고, 예술은 다시 초월계의 호출 우주의 부름에 귀와 마음을 연다. ● 전인경은 이 재회의 깨달음에 대한 목마름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만다라」 연작에 임해 왔다. 그리고 최근 그의 만다라 회화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실험인 「메타 만다라」로의 나아감을 준비 중이다. 만다라 미학의 근간에서 보면 그 자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되었듯, 그-만다라 미학- 자체가 이미 기존 회화론의 경계 허물기며 교환이고, 공존과 상호호혜의 융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메타 만다라의 미적 융합은 이번에는 디지털 기술, 가상현실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러한 행보는 최근 '디지털 페인팅' 또는 '디지털 코드 페인팅'으로 명명할 수 있을 듯한 실험의 결과물을 보여주어 온, 독특한 경력의 이주행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구현되었다. ● 디지털 코드 페인팅은 수백, 수천 장씩 스스로를 복제해내며, 벨기에의 화가 뤽 튀망(Luc Tuymans. 1958~ )이 말했던 "정말로 좋은 그림은 암기하는 것조차 거부한다"를 비웃는다. 그럼에도 전인경이 메타 만다라, 초월적 만다라로 명명하는 그 미학은 가능성과 비웃음 사이를 초연히 지나면서, 지금껏 '붓의 운행'을 신화화하는 전통적인 회화론에 대한 의미심장한 성찰에 몸을 맡긴다. 작가는 이제 전통적인 운필의 회화론이 구획해온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어한다. 경계를 넘어 자유하기, 그것이 만다라 미학의 더 깊은 심해를 유영하는 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전인경_메타만다라 2105 Ⅰ,Ⅱ,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70cm×3_2021
전인경_메타만다라 2104 Ⅰ,Ⅱ,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72.5cm×3_2021

하지만,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몸뚱이에서 사리가 나오도록 수련을 거듭해도 녹록치가 않은, 만다라는 결코 미학 문법으로 풀어내기에 녹록치 않은 수준의 주제다. 세속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에게 깨달음은 영적 향수요 의지적 지향일 수 있어도, 그 완성형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깨달음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깊은 학습은 그 불구성의 일부를 보완하는 많지 않은 수단 가운데 하나다. 전인경은 요즈음의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미덕인 성실한 학습과 자기성찰을 통해 인간의 몸과 정신에 대한 사유적이고 실체적인 진실에 다가서 왔다. 원자에서 초신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인간의 홍체에서 초신성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긴 스펙트럼을 오가면서 프랙탈 우주론, 존재와 우주의 도상학적 유사성 등, 여정의 흥미진진한 기록을 회화라는 도상학적 결정체로 남긴다. ● 그럼에도 작가가 인용한 바 있는 20세기 초 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ón y Cajal)의 다음의 말을 전향적으로 곱씹어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신경세포는 수 많은 나무들로 가득한 정원과 유사해서,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펴서 매일 더 많은 꽃과 과일을 맺는다." 하지만, 비유는 앞과 뒤를 바꿀 때 더 훨씬 더 조형미학적으로 잠재력을 지닌 진술이 된다. 즉 많은 꽃과 과일이 맺히고 소멸하는 것을 볼(seeing) 때, 실은 우리는 우주의 생성과 마주하는(facing) 것이고, 마주하는 것은 결단코 그것을 가장 잘 아는(knowing) 방법인 것이다.(Seeing is Facing. Facing is Knowing).

 

전인경_메타만다라 008(feat. 이주행)_한지에 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21
전인경_메타만다라 013(feat. 이주행)_한지에 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21

전인경의 회화에 다가서기 위해 핵융합과 초신성 폭발, 인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을의 맑은 대기와 높아진 하늘과 마주하고, 가슴 깊이 초대해 들이는 것은 원소와 초신성 폭발과 성운들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주어지는 미학적 특권이다. 즉, 만다라가 우리로 보게 만드는 만큼이나, 보는 자체가 우리를 만다라의 초입으로 인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무려 31년(1977-2008) 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을 역임했던 필립 몬테벨로(Philippe Montebellow)가 고전 미술사의 빛나는 작품들과 마주하며 했던 말을 생각난다. "위대한 시대의 작품은 우리를 매혹하고 잃어버린 문명 가까이로 데려갑니다." 위대한 시대는 "물질을 넘어 정신적인 가치로 나아간 시대"다. ● 이것이 다시금 절실히 필요한, 전인경의 회화가 그 염원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만다라 시대의 도래, 그 미학의 복원이다. 포스트 휴먼을 노랫말처럼 입에 달고 사는 이 시대이기에, 만다라 미학은 그리 탐탁치 않은 고전극으로의 회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원이라는 거울 없는 탐색과 발견은 한계가 명백한 일일 뿐이다. 뿌리를 잊은 문명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전인경을 따라, 뭉글거리는 생명의 입자들, 질서정연한 원소들의 향연, 코로나 바이러스도 형제가 되는 형형색색의 우주로 초대되는 것으로 충분하기에 그렇다. ■ 심상용

 

 

Vol.20211002g | 전인경展 / JEONINKYUNG / 全仁敬 / painting

 




"미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종교인들의 수행과 닮았다. 끊임없는 붓질이나 망치질, 똑같은 자세로 행하는 선 긋기나 구멍 뚫기 등

같은 동작과 사유의 반복은 108배나 3000배를 하는 것 못지않다. 철저한 고립과 고독의 시간 속에서 주옥같은 작품이 탄생하는 이유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불자 미술인들이 참여한 ‘붓다의 향기’전이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5월4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와 함께 불교예술의 발전과 작가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한국불교미술인협회'가 창립되었다.

발기인은 김선두(중앙대교수), 손연칠(동국대 명예교수), 이승철(동덕여대교수), 이제훈(강동문화아트대표),

김영수(불교박람회 연출감독) 등이다.

전시는 20대 청년작가부터 기성과 원로작가 등 세대를 초월한 예술인들이 참여한 전시로

전통과 현대적 감성의 불화와 조각, 순수미술 등이 주를 이룬다.


참가작가는 신현국(한국미술협회고문), 추경(설미제 미술관장), 김정란 (갤러리란 대표), 홍재연(전 경기대교수), 류종민 (중앙대 명예교수), 김근중(가천대 명예교수), 정경연(홍익대교수), 양태근, 이길우 (중앙대교수), 신하순, 조인호 (서울대 교수), 김성복, 이만수 (성신여대교수), 문인상(추계예대교수), 박종갑 (경희대교수), 임효 (동아미술상 대상), 서용(동덕여대교수), 신장식 (국민대 교수), 이승철, 김대열, 정병국, 류완하, 주도양 (동국대 교수), 하수경 (전주대 명예교수), 강규성(충남대교수), 박주부(한국석조각협회 대표), 고창규(인천대교수), 김일권(전남대교수), 서은경(신라대교수), 강행복(판화가), 박상희(조각가), 전인경(화가), 임채욱(사진가), 박방영(대불대교수)를 비롯해 회화, 조각 등 106점을 소개한다.

이철규(예원예술대 교수) 작가는 ‘상생(相生)’을 주제로 작품을 내놓았다. 108개의 반인반불상의 머리 위에 자연과 기복을 상징하는 꽃과 물고기 등 민화적 소재를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 불성이 삼위일체가 되어 궁극적으로는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를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과 불교신문에서 후원하는 이 전시는 지난22일부터 5월4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늦은 시간에 정영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청진동 술집으로 나오라며 화가 손연칠씨를 바꾸어 주었다.
반갑기야 하지만, 술에 골병들어 술자리는 피하는 처지라 난감했다.
그렇지만, 정영신씨 명을 어찌 거역할 수 있으랴!




술집 위치를 몰라 가서 전화했더니, 손연칠씨가 데리러 나왔다.
날더러 ‘서울문화투데이’와 무슨 일이 있었냐며 캐물었다.
아무 일 없다고 해도 믿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미운 돌맹이’란 카페에 들어가니, ‘서울문화투데이’ 이대표와
화가 전인경, 정영신씨등 여러 명이 왁자지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과메기 안주에 고급 위스키까지 나온 푸짐한 술상이었다.




그 날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해 중 가장 큰 일을 치루고 난 뒤풀이였다.
문화에 한정된 신문이라 광고 얻기도 어려운데,
십일 년 동안 ‘문화대상 시상’을 끌어 온 것이다. 


 

처음엔 술을 사양했지만, 연이은 권주에 못 이긴 척 술잔을 받았다
사나이 맹세 개 맹세되는 건 순식간이지만, 어쩌겠는가?
딱 석 잔만 마시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으로 아껴 마시기는 했지만,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모르겠다.




손연칠씨가 고 노무현대통령 초상화를 완성했다는 소식도 들었고,
‘서울문화투데이’ 이 대표는 왜 나를 싫어하냐며 따져 물었다.
술집에 들어오기 전 손연칠씨의 말과 겹쳐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신문에 글을 쓰지 않는데 따른 오해 같았다.


화가 손연칠씨가 완성한 고 노무현대통령 초상화

처음엔 문화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발행인의 열정에 감화하여 동참한 일이지만,
대가없는 봉사라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 할 일이었다.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자체가 운영을 더 어렵게 하는데, 그 걸 지켜보기도 편치 않았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라고 정한 칼럼 제목도 발목 잡았다.
원고 마감을 앞두고 잘못된 것을 찾아야 하는 절박감도 따랐지만,
스스로의 생각이 빼딱해 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년간의 칼럼 투고를 끝으로 전시리뷰만 쓰겠다며 슬며시 빠져 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작가를 잘 아는 처지라 전시리뷰 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누군 쓰고 누군 안 쓸 수도 없는데다, 아는 사람일수록 잘못을 지적하기 힘들었다.
안 좋은 작품을 좋다고 말하는 것보다 쪽팔리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 쏟고 뭐 데인다는 속담처럼, 힘들게 글 써주고 욕 얻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일 년쯤 하다 전시리뷰도 손을 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야 처음부터 원고료 없이 봉사할 마음으로 나섰지만, 뒤늦게 끌어들인 정영신씨는 달랐다.
수고비도 없는 취재는 물론이고, 사진 찍는 일로 수시로 부려먹지 않았는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하지 않는 일 처리는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도 있다.




나로서는 ‘서울문화투데이’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고, 개인적인 감정도 없다며 오해는 풀었지만,
정영신씨가 하고 있는 전시리뷰도 하루속히 그만두어야 해 걱정되었다.
이 날도 시상식을 촬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불려나간 모양인데,
아무리 좋은 일도 민폐 끼쳐서는 안 된다.




아무튼 ‘서울문화투데이’가 좋은 매체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에 대한 경의”, 연남동 공간41’에서 9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전인경씨는 만다라(Mandala) 안에서는 인간과 우주가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풀어간다.  수많은 핵으로 형성된 윤회적 표현들은 순환과 회귀로 이어지며, 해와 달의 시간성을 나타내기도 한.


그녀는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수행자가 된다. 자신의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마음의 중심을 찾아나서는 내면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 무의식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명상적 기도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에서 부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향해 덧칠해 가며 만다라의 원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는 성신여자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만봉 스님으로 부터 4년 동안 불화를 사사받아, 불화와 단청 학습으로 자신만의 사유 세계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작업해 온 만다라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원으로 표현해 놓아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오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일가를 이루어 펼쳐 온 만다라 작업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뇌과학자의 신경세포 드로잉과 만다라를 결합한 뉴로 만다라연작이었는데, 부제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에 대한 경의라 붙여 놓았다.



 

 

뉴로 만다라전은 100년 전 노벨상을 받은 신경과학의 선구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의 드로잉을 자신의 포스트만다라와 결합하여 새로운 과학예술의 장을 열고자 시도했다. 최초로 신경세포를 관찰하고 기록한 드로잉을 토대로 8점의 오마주 작업을 했으며, 현대 뇌 과학이 밝혀낸 신경세포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 4점도 발표했다.



 

 

이번 뉴로 만다라전에는 신작 12점과 함께 6점의 포스트만다라연작을 소개했는데, 5미터가 넘는 대작 슈퍼노바는 탄소의 탄생을 형상화한 것으로 만다라 연작의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었다. 함께 선보인 작품들도 만다라의 우주적 세계관과 천문학을 결합한 것으로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과학예술로 진화하는 전인경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인경씨의 작업은 세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이후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만다라를 통해 우주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인간 생명의 감추어진 구심점을 찾는 여정을 거쳐 온 것이다. 작년에 가진 두 번의 개인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이나 보여줄 정도로 부지런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성급한 전시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따랐다.



 

 

미학의 뇌를 번역한 심희정 미학박사는 전인경의 작업 뉴로만다라는 예술적 상상으로 그려진 신경 체계에 대한 어떤 상이다. 거대한 은하계, 자연 세계의 어떤 단면을 연상시키며, 신경체들이 이루어내는 화면은 우주 기원, 생성과 소멸, 접촉과 변형을 연상시키며 글자 그대로 수많은 차원과 관계를 말한다고 말했다.



 

 

전인경씨는 시냅스는 시냅스작용이 일어나는 것들끼리 강해지고 굵어지며, 신경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도 관계에서 의해서 일어나고, 우리의 인간사도 만나면 헤어지는 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생로병사의 인간 세계는 신경 세포의 생장과 정지, 연결과 단절은 우주에 있는 별들의 생성과 소멸과 같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 14, 연남동에 있는 갤러리 공간41’를 찾았다.

마침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작가 전인경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심희정, 이준기씨,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 시인 조준영씨, 화가 서길헌씨 등 여러 명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성 구청장과 만봉스님 자제 이인섭선생, 큐레이터 전인미씨 김용국, 김상윤씨가 차례대로

나타나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신작들과 함께 눈에 익은 작품도 더러 보였으나,

5미터가 넘는 대작 앞에서는 입이 벌어졌다.

전인경씨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뒤풀이 장소에는 무세중선생을 비롯하여 김명성, 이광군씨등 많은 분들이 먼저 와 있었다

 

사진, / 조문호











































 

 









 

























성북동 'ARTSPACE H'에서 열리는 전인경씨 ‘비욘드 만다라’전 개막식에 못 갔다.

포항의 포트폴리오 전과 날자가 겹쳐, 지난 3일 가기로 작정했는데,

페북에 올린 정영신씨의 전시리뷰를 본 이광수교수가 전인경씨 전시 보러 오겠다는 것이다.

물론 강제욱씨의 개인전과 수원사진축제의 사진특강으로 올 일은 있지만,

불교문화에 해박한 이교수의 관심에 전시가 더 보고 싶어졌다.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전시장으로 갔더니, 먼저 온 이교수가 전시장을 못 찾아 헤 메고 있었다.

난데없는 뒷길에서 나왔는데, 엄청 반가웠다.

몇일 전 포항 행사에서 만나 신나게 마셨지만, 좋은 사람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 반가운 것이다.






식사하러 갔는지, 전시장 문이 잠겨 있었지만, 이내 그녀를 만나 작품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전인경씨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광수 교수도 만다라 작업에 도움말을 주는 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니 4년 전의 개인전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형식이야 비슷하지만, 세밀한 원들에 기가 서려 보였다.






여지 것 전인경씨가 인사동 모임이나 전시회 오프닝에 잘 나타나지 않아 섭섭하기도 했지만,

작업에 몰입했던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전인경씨는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수행자가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마음의 중심을 찾는 내면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틀림없다.





초대전이라 대관료는 없겠지만, 도록이나 액자비로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두 점이라도 팔렸다니 다행이다 싶다.

이 불경기에 두 점 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전시장에서 나와 이광수교수와 정영신씨는 ‘북서울미술관’으로 갔지만, 난 동자동으로 가야했다.

그 날이 밑반찬 타는 날이기도 하지만, 만날 사람이 있었다.






지하철로 돌아오다, 나도 전인경씨처럼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일 만드는 이 못 말리는 천성을 어찌할까나?
올 겨울만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동자동에 처박힐 것을 다짐해 본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5일부터 성북동 ARTSPACE H에서 11월5일까지 열려
2017년 11월 01일 (수) 03:50:38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신비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색과 원으로 자기내면의 중심과 본질을 찾아가는 화가 전인경의 ‘비욘드 만다라’전이 지난달 25일 성북동 ‘ART SPACE H’에서 열렸다.

작가는 우주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육신을 통하여 생명에 감추어진 구심점을 찾는 작업을 10년 가까이 끌어오고 있다. 다차원의 공간인 우주 속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정신적 구심점을 찾는 것이야 말로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실적 절박함에 호소력을 더 할 수밖에 없다.




▲ ‘비욘드 만다라’전 화가 전인경씨 Ⓒ정영신



수많은 핵들로 형성된 시각적 묘사가 다소 철학적이기도 하다. 또한 전체적 완전성으로 귀결되고 있는 원들의 윤회적 표현들은 순환과 회귀로 이어지며, 무한운동에 의한 해와 달의 시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만다’는 마음의 참, 또는 본질이고, ‘라’는 소유와 성취다. 이 둘의 의미를 결합하면 만다라는 마음속에 참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비의 마음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널리 베푼다는 뜻이다. 그녀는 캔버스 앞에서 수행자가 된다. 자신의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빈공간과 색과 마주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나 마음의 중심을 찾아나서는 내면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 MandaLa 170401, 120x120,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제공:전인미)


아마 무의식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명상적 기도인지도 모른다. 물방울 하나하나를 모아 강을 만들 듯 보이는 것에서 부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향해 색을 덧칠하며 만다라의 원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작업에 임하기 전에는 꼭 화두(話頭)하나를 붙잡는데, 마음의 중심축으로 들어갈수록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작업은 하나의 세포로 시작되었지만, 전체적인 이어짐은 꿈틀거리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의 힘을 얻는다.



▲ 만다라 120901, 150x300, Acrylic on canvas, 2012 (사진제공 : 전인미)


그 근원의 힘에서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고, 마음의 질서를 찾고, 조화로운 자기 자신을 만나는 길을 터득한 것이다.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비합리적 세계로부터 합리적 이해가 가능한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카오스(혼돈)의 세계가 아니라 기하학처럼 질서정연한 코스모스라는 우주의 근본으로 마음의 중심축을 획득한 것이다. 그녀는 작가노트에 ‘만다라(MandaLa) 안에서 인간과 우주는 하나다’ 고 적고 있다.

작가의 만다라는 우리 삶속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혼돈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그 혼돈 속에서 개개인의 방식대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게 해줌으로써 ‘혼돈과 질서’가 공존하는 다양한 열린 해석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작품을 사유하라고 주문한다.


    



▲ MandaLa 170101, 150x150,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제공:전인미)


연극연출가 기국서씨는 “나는 전람회장에 갈 때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러 간다고 생각한다. 전람회장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치열함에 치밀함까지 갖추어서 그토록 예술행위를 하고 있는 배우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화가의 영혼과 정신의 진액으로 창조해 낸 화가 자신의 모습들인 작품들은 비장감이 도는 서사극이거나, 활력이 넘치는 뮤지컬이거나 때로는 여운이 긴 풍자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루 종일, 몇 달 동안, 몇 년 동안 도를 닦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그림 속에 자신을 함몰시키고 그림과 같아지는 경지가 되는 것일까?”

연출가 기국서씨는 배우가 연극무대에서 치열하게 예술행위를 하는 것이나, 화가의 영혼과 정신의 진액으로 창조해낸 작품을 대하는 것이 같은 경지라는 것을 묻고 있다. 예술가들의 고통과 고뇌와 슬픔과 환희를 무대에서 때로는 캔버스에서 승화(Sublimation)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 work 0801, 120x120, Acrylic on canvas, 2008 (사진제공:전인미)


그녀는 만봉 스님으로 부터 4년 동안 불화(佛畵)를 전수받으면서 사유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그녀만의 만다라로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원으로 표현해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불교는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최고의 진리를 표현한다.

중심으로 이어지는 원은 가장 심오한 통찰과 직관의 표현으로 생명의 전체성을 나타낸다. 원을 그리는 것은 자기내면을 향하는 것이고, 자기변화와 정신적 질서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만다라를 그리는 것은 내면의 작업을 위한 수련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관념적인 바닥을 던져버리고 심연을 마주한 채 그 안으로 묵묵히 걸어들어가야 한다.




▲ work 0802, 120x120, Acrylic on canvas, 2008 (사진제공 : 전인미)


비욘드 만다라’전 서문을 쓴 미술비평가 홍지석씨는 “전인경의 <만다라>는 처음부터 무질서, 파국, 카오스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전인경의 작업에 이산적인(discrete) 요소들-정사각형의 질서를 깨트리는 직사각형, 원의 정형을 깨트리는 비정형들-이 점차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Beyond MandaLa>로 명명한 최근의 작업들은 불균형을 아우르는 균형, 완벽한 질서에서 탄생한 무질서를 다루는 회화가 될까?” 라고 평했다.




▲ MandaLa 170903, 200x90,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제공:전인미)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빛으로 환원되는 세계를 꿈꾼다. 빛의 중매로 맺어진 세상의 색은 서로 연분이 있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보면서 불안이나 충동이 소멸되면서 치유의 경험을 느낀다고 한다.

화가 전인경의 ‘비욘드 만다라’전은 성북동 ARTSPACE H에서 11월5일까지 열린다.

(전시문의 : 02-766-5000. 관람시간 : 10:00am~06:00pm)






화가 전인경씨와 큐례이트 전인미씨의 모친 김선례여사께서 지난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많은 추모객들이 모여 들었다.


20일 오후7시경, 장례식장에서 이인섭, 조경석, 김명성, 오세필, 서길헌, 임태종, 정영신,

오세훈, 박성식, 이상훈, 안정민, 강기숙씨 등 많은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골은 지난 21일 양평 하늘 숲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구로구청장 이 성씨와 홍현숙씨의 장남 홍일군의 결혼식이
지난 10월24일 오후6시, 신도림 테크노마트 웨딩시티에서 있었다.


홍일 군은 오래 전에 한 번 보았는데, 너무 어엿하게 자라 있었다..

지금은 '우리은행' 두뇌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한다는 소개도 있었다.
긴 주례사가 이어졌으나, 아무 소리 안 해도 잘 살 커플 같아 보였다.

축하객들이 많았으나 인사동사람으로는 최혁배 변호사 내외를 비롯하여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공윤희씨, 소설가 박인식씨, 화가 전인경씨, 큐레이트 전인미씨를 만났을 뿐이다.

모두들 ‘아내는 왜 오지 않았냐?’지만, 어찌 심사임당 지폐 한 장 넣고,

두 사람이나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벼룩도 낯짝이 있지...

피로연장은 8층에 있는 뷔페식당이었는데, 여러 곳에서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연회장이 얼마나 넓은지, 음식 가지러 갔다가 가방 둔 좌석을 찾지 못해 뷔페식당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함께 있던 공윤희씨가 가방을 들고 다른 자리로 옮겨 버렸는데, 더 황당한 것은 자리는 찾았지만,

챙긴 음식 놓은 자리를 몰라 다시 찾으러 다닌 것이다. 완전 시골 노인 서울서 헤맨 격이었다.

기둥에 적힌 구역번호만 기억했으면 그런 곤욕은 치루지 않았을 텐데...

좀 있으니 이성씨 내외가 식사하러 왔으나, 이곳은 혼주의 테이블도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우리가 일어나고 두 내외가 앉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축하객에게 인사 드리려,

국수 몇 젓가락만 들고 바삐 일어서야 했다.
오늘 같이 경사스러운 날, 한 끼쯤 굶어도 괜찮겠다마는, 왠지 안 서러워 보였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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