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간다고 마시고 경자년 온다고 마신 연말 술로 몸이 말이 아니다.
동자동과 녹번동을 오가며 이부자리 감고 살았던 셈이다.
오래된 년식이라 몸이 삭아 철철하는데도, 겁 없이 마신 벌이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해가 바뀜에 따른 스스로의 자책이었다.
안 좋은 건 모조리 씹어 돌렸으니, 사람을 많이 잃었더라.
잘 못된 것을 고치고 싶은 말이었지만,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이다.
상대의 마음만 다친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다쳤다.
그래서 올해 다짐한 것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보는 습관이다.



지난 토요일에 나선 인사동 외출은 일주일 만이었다.
점등식 한 태화관 터의 ‘3,1독립선언광장’을 재확인할 일이 있어서다. 
나간 김에 인사동을 다시 살펴 볼 속샘도 있었다.

포기했던 인사동이지만, 부정적 시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보고 싶었다.
가는 세월을 누가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안국역 4번출구로 나가니, 한 젊은이가 큰 소리로 구걸했다.
“선생님! 천원만 주세요~. 누님! 천원만 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주지 않았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고 너무 상습적인 냄새를 풍겨서다.
이젠 구걸을 해도 연기를 잘해야 얻어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 거리는 활기찼으나, 골목은 한산했다.
‘인사마루‘의 신나는 풍물소리에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연세 듬직한 분이 드나 들었던 ‘통인가게’에 젊은이들 행열이 이어지는 걸 보니,

이 곳도 서서히 세대교체가 되는 것 같았다.




요즘은 인사동 나와도 전시장에 들리지 않으니 갈 곳이 없다.
반가운 인사동 사람을 만나거나, 전시장에서 작품 감상할 일이 아니라면 인사동이 무슨 소용이랴?




통기타나 마술로 행인들의 관심을 끄는 버스커도 다들 열심히 놀며 살아가더라.
태화관 터 골목어귀에 있는 헌책방이 그나마 옛날 인사동 냄새를 풍겼다.




지난 년 말  ‘3,1독립선언광장’ 점등식에 갔으나, 밤이라 자세히 보지 못해 다시 찾은 것이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비스듬한 광장 바닥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광장 바닥을 걸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광화문광장’으로 행선지를 바꾸려 ‘부산식당’있는 '인사동11길'로 접어드니,

한 동안 부푼 기대와 안타까움을 차례로 안겨 준 ‘아라아트’가 눈에 들어왔다.
김명성씨가 전관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공 들인 건물인데, 결국 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 넓은 전시관에 ‘미래의 꿈, 게임에 담다’는 한 가지 전시만 열리고 있었다.
잠시 지난 날의 회한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반가운 사람이 나타났다.
인사동과 사연이 깊은 사진가 김수길씨 였다.




술 한 잔 하자며 유혹했건만, 그 날은 술이 무서웠다.
'광화문광장' 갈 일로 아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사동을 돌아 다닌 두 시간 동안 아는 분이라고는 김수길씨 딱 한 사람 만난 것이다.




조계사 앞 길에서도 아는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치매환자다.
이제부터 인사동의 오래된 추억은 물론, 악연도 잊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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