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 눈빛 제공

이창성씨의 ‘나는 시민군이다’사진전이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5·18 기념재단‘과 ’눈빛출판사‘가 5,18, 43주년을 기념하여 선 보이는 생생한 기록 사진전이

지난 17일 오후4시 개막식을 가졌다.

 

금남로에서 교통 통제하는 시민군. 이창성 사진

슬픈 역사적 기록이 4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광주 외는 한 번도 전시회를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지만, 그 첫 전시가 인사동에서 열려 더 반가웠다.

 

시민군들. 이창성 사진

사진전 개막 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이미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보도 사진가 이창성씨를 비롯하여 당시 시민군 방송 요원이었던 차명숙씨와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화제의 인물 차복환씨도 와 계셨다.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장남원, 김문호, 김녕만,

윤세영, 정영신, 곽명우, 김 헌, 이명옥씨 외는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전시 작품은 중앙일보 사진 기자였던 이창성씨가 광주에 투입되어 찍은 흑백 30점과 컬러 10점이었다.

5·18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군’으로 압축되었다.

 

방석모와 총기로 무장한 시민군. 이창성 사진

관람객 틈 사이로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눈물이 나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은데, 누가 그들을 폭도라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꽃다운 청춘이라 더 가슴이 미어졌다.

 

의사가 동승한 시민군 구호 지프가 광주 시내를 돌고 있다. 이창성 사진

시민군은 훈련된 군사 조직이 아니라 계엄군 과잉 진압에 맞선 자위 조직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사진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이후의 기록이었는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어 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 세력, 부랑 집단이라는 억지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취재 중인 이창성 기자, 광주 1980. 5

지금까지 외국 기자들의 활동은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국내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절하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창성씨가 찍은 사진이야말로 5·18에 머물지 않고, 시민군의 활동상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더 높게 평가된다.

 

이창성씨는 개막식에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야간 교전중이라 기자들이 숙소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당시의 현장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새벽녘에야 시민군 지휘부를 찾아가 설득한 결과 어렵사리 취재 허락을 받아 냈다고 한다.

시민군 지휘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현장에 뛰어든 공식 시민군 사진가가 되었는데,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그를 사지로 내몬 것이다.

 

“나는 역사의 기록자로서 현장에 있었을 뿐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았던 것은 1980년 5월이 내게 부여한 의무였다.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만 시민군 사진들은 대부분 젊은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순전히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고 말했다.

15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28년만의 약속'이란 사진집을 펴낸 것도 전민조씨의 권유와 소개로 성사되었다며,

찍은 사진 2300컷 중 공개하지 못한 사진을 보완하여 다시 사진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동료였던 고래 사진가 장남원씨는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숨어 찍은 사진이 아니라 대부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이창성씨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당시 방송요원이었던 차명숙씨는 발표된 사진 대부분이 외국 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찍어도 내놓을 수 없는 엄격한 상황에서 당당히 발표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한때 북한에서 남파된 '광수1호'로 지목되었던, 실제 인물 차복환씨도 나와 그날을 회고했다.

기관총으로 무장된 페퍼포그 차량에 올라탄 채 카메라를 째려보는 문제의 사진은,

당시 이창성 기자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며 화를 낸 장면이었다고 했다.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시민군 차복환 씨 1980. 5. 22 광주. 이창성 사진

2008년 이창성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을 펴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인사말에서

“그동안 논란 되어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세력이란 억지를 불식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5,18은 광주만의 행사가 아니라 전 국민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듯 모든 진상은 사진 속에 다 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열린다. 꼭 관람하시어 그 날의 아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창성'28년 만의 약속' 사진집 표지/ 눈빛출판사/ 가격35,000원

 

5,18 영령을 추모하는 날이라 뒤풀이는 생략했지만, 전시관계자들은 '부산식당'에서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2023,5,19작성]

원로 사진가 한정식(86)선생께서 지난 723일 오전6시 무렵 운명하셨습니다.

‘’서초요양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폐렴 증상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40일전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댁으로 돌아가 사모님 곁에서 눈을 감고 싶다던 선생께서

기어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더 가슴 아픕니다.

 

선생께서 인사동 ’SK오피스텔에 계실 때는 인사동 사람들(전 창예헌)‘고문으로 함께하며

인사동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사랑하셨습니다.

사진으로서 만이 아니라 사진 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진가들은 물론 인사동 사람들도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배우자 : 숭수연

아들 : 한계영, 한계륜, 한계림

며느리 : 이종희, 박소영, 정보라

손주 : 한동운, 한세운, 한채운, 한사다운, 한빛다운

 

빈소 :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

발인 : 2022725(월요일) 오전930

장지 : 서울추모공원

 

고 한정식선생 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연구소 수료(사진전공)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졸업

서울, 보성, 휘문고 교사역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 대구예술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중앙대학교 및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개인전)

1977 "나무" 니콘살롱, 일본동경

1988 "나무" 공간화랑, 서울

1988 "거울" 스즈키야화랑, 일본동경

1986 "한정식 사진전" 서울갤러리, 서울

1992 "" 한가람미술관, 예술의전당 서울

1997 "풍경론" 한가람미술관, 예술의전당 서울

1999 "한정식 사진전" camera Obscura갤러리, 프랑스 파리

2002 "고요" 금호미술관, 서울

2007 "이렇게 들었사오니"초대전,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2008 "고요" 초대전, 고은미술관, 부산

2017 “고요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22 ’고요서울 '스페이스22' , 'KP갤러리'

 

(사진집)

"나무" 열화당, 1990

"" 사진예술사, 1992

"풍경론" 눈빛, 1997

"고요" 열화당, 2002

"흔적" 눈빛" 2006

고요2‘ 한스그라픽 2013

고요3‘ 눈빛 2015

한정식국립현대미술관 2017

마구간 옆 고속도로눈빛 2020

가을에서 겨울로눈빛 2021

 

(저서)

"사진예술개론" 열화당, 1986. 4개정판, 눈빛, 2004

"사진의 변모" 1996. 개정판

"사진- 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열화당, 1999

사진과 현실" 눈빛, 2003

현대사진을 보는 눈" 눈빛, 2004

예술로서의 사진눈빛

"사진, 예술로 가는길" 눈빛, 2006

"사진 산책" 눈빛, 2007

 

사진계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23일 한정식선생께서 운명하셨다는 부고를 받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언젠가는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산다는 게 너무 허무할 뿐입니다.

정영신씨를  만나 강남 '삼성서울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장례식장에는 유족과 이일우씨가 조문객을 맞고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진가 전민조씨만 와 계셨습니다.

 

 이일우씨로 부터 그간의 경위를 들어보니, 일찍부터 돌아가실 준비를 하신 것 같습니다.

한정식선생의 모든 사진 관리는 제자인 이일우씨에게 위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대에서 퇴임할 즈음 사진가들로 부터 사들인 작품은

모두 한미미술관에 기증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800여 점이나 된다네요.

 

뒤 따라 사진가 최광호씨가 딸과 함께 조문을 왔습니다.

최광호씨로부터 육명심 선생의 근황도, 돌아가신 이완교선생의 몰랐던 사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육명심 선생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이완교 선생은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모든 의료 기구를 걷어냈다고 합니다.

유서에 최광호, 진동선씨 등 사진가 몇 명을 거론하며, 모든 사진은 그분에게 맡기라고 쓰셨답니다.

사진을 모르는 가족들이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모든 걸 폐기하는 현실을 우려한 것 같습니다.

 

정부가 사료를 수집 관리하지 못한다면 민간단체라도 관리하는 곳이 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귀중한 사진 자료들이 가족들의 무지로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뒤늦게는 동강사진축제에 다녀오신 사진가 구자호씨도 만날 수 있었는데,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김녕만씨 작품만이 아니라 구자호, 고명진, 최재영씨 등의 보도사진도

함께 전시 된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관람 바랍니다.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해 드리며 명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한정식선생의 지난 기념사진을 무작위로 모았습니다.

사진이 너무 많지만, 선생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추억해 주십시요.

 

사진 / 정영신. 조문호

지난 23일 정오무렵,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눈빛출판사’ 북 스토어 '예술산책'에 들렸다.

작년 11월 28일 ‘예술 산책’ 개장과 함께 차려진

장터 사진가 ’정영신의 책상‘을 철수하기 위해서다.

 

'경의선 책거리'는 2016년 마포구에서 조성한 책 테마 거리로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있다.

와우교까지 250m 거리에 마치 기차 객실 같은 책방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정영신씨는 ‘장에 가자’를 펴낸 후 약4개월 가까이

‘예술산책’에서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 닫을 때가 더 많았으나

처음 마련된 책상이라 좋은 경험이었다.

 

책상이 마련되어 여러 차례 들렸는데, 주말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산책코스였다.

책방을 찾는 손님도 제법 많았다.

올 때마다 진열된 사진 책을 둘러보지만,

아무리 보아도 반갑고 흐뭇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이처럼 소중한 사진들이 파묻힐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니,

어렵사리 운영해 온 이규상씨의 노력이 새삼 고마웠다.

 

갈 때마다 새로 나온 사진집도 만날 수 있지만, 몰랐던 사진집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는 이광수교수가 '눈빛사진학개론' 2편으로 펴낸 ‘붓다와 카메라’를 발견했다.

2015년 발간되었는데, 왜 여지 것 몰랐을까?

그래서 이런 전문서적 북 스토어가 필요한 것이다.

그 외도 소장하고 싶은 사진집들이 많았으나

주머니 사정으로 ‘붓다와 카메라’ 한 권만 구입했다.

 

이런 저런 사진집을 살펴보는 중에 이규상대표와 사진가 전민조씨가 나타났다.

전민조씨는 ‘손에 관한 명상’ 재 전시를 앞두고 사진집 재고를 알아보기 위해 왔단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문선호씨 유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정식선생 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영신의 책상' 다음 작가는 다큐사진가 김지연씨다.

연변과 일본 등지에 흩어져 사는 조선인들을 찾아다니며

20여 년 동안 기록해 온 취재기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출판되었다는데,

김지연의 책상은 3월 24일 부터 4월 11일까지 마련된다.

 

지루한 코로나로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즈음, 경의선 책거리에 봄바람 쐬러 가자.

보석 같은 사진집 만나는 기쁨이 봄바람에 비길소냐?

 

사진, 글 / 조문호

 



촛불이 광장을 뒤덮을 때마다 앞장서서 축제의 마당으로 이끄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된 ‘광화문미술행동’이다.



‘시민나팔부대’가 나팔과 풍물로 신명을 끌어 낸다면,
‘광화문미술행동’은 예술 행위로 집회의 격을 높이며 시민 행동에 자긍심을 심어준다.



시민들에게 찍어 주는 판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역사적 사료로 자리 할 것이고,

예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다.




3년 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시작된 ‘광화문미술행동’은 참가 작가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정치적 논쟁만 터지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 사태가 마무리되면 흩어진다.

회비도 회칙도 없는 자생조직이다.



핵심적인 일은 판화가 김준권씨와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맡지만.
80년대 민주항쟁 시절부터 온 몸으로 싸워 온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었다.




1980년대 미술을 통해 현실에 저항해 온 노력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괘를 같이한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민중미술은 역동적이라 온 몸에 피가 솟구친다.
삶의 현실과 직결된 그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심미적 작품과는 격이 다르다.




지난 12일 열린 제9차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평소보다 빨리 나갔다.
광화문과는 달리 장소가 협소하여 군중 속에 파묻히면 찿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전1시 무렵 서초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가는데, 뜻 밖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우리들의 영원한 우상 방동규선생께서 사모님과 계셨는데, 첫 일진이 좋았다.

며칠 전 과도한 중량의 역도를 하다 근육이 파열되었다는 걱정스러운 말씀도 하셨다.


정영신 사진


방동규선생은 팔순을 넘긴 연세에도 아직까지 일하러 다니며 근육운동까지 하는 강골이시다.

백기환, 황석영씨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구라로 꼽히는 협객이다.
존경하는 선생을 촛불현장에서 만났는데, 어찌 인증 샷이 없을소냐.




서초 사거리 중앙에는 ‘광화문미술행동’ 팀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붓글 퍼포먼스를 벌일 대형 현수막 외에도 많은 깃발과 그림 현수막까지 준비해 두었다.

김준권, 김진하, 김 구, 김 억, 이광군, 송용민, 김영배씨가 이른 시간 부터 나와 있었고,

뒤이어 정복수, 김진열, 이흥덕, 김건희씨 등 많은 분들이 나타났다.



여지것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류연복씨는 진천에서 열린 개인전 때문에 나오지 못했지만,

장경호씨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살기에 다들 아파 누웠을까 걱정하더라.



참여 작가들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검찰개혁을 향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후통첩’, ‘악질검사 대청소’, ‘다음은 없다’ 등 다양한 글귀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독수리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경주 정비파씨의 판화를 바탕으로

김 구, 김진하, 송용민씨가 덧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림막 뒤편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니라 김진열 대학총장이 판화를 찍어주었다.

그 판화 작품들은 역사적 무게까지 더하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판화를 얻으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이 날 사진가들도 여럿 참여하였다.

정영신, 하형우, 양시영, 박윤호, 권 홍, 성유나, 임헌수, 김대희씨가 차례대로 나왔고,

뒤늦게는 전민조, 박옥수, 김문호씨도 나왔다. 다들 서초대첩의 종군기자들이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준비한 김밥 한 줄 얻어 먹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구씨 따라 갔더니, 다들 생맥주 집으로 들어갔다.

통풍에는 맥주가 쥐약이라 콜라나 마셨는데, 마침 김문호씨 연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가 김문호, 박윤호, 정영신, 하형우씨와 어울려 지난 주 식사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막걸리를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는데, 밥 값을 하형우씨가 계산해 버렸다.



덕분에 다른 분이 사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나니, 촛불광장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떨어져버렸다.

보조 건전지가 깡통이라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무기 없는 병사는 시체나 마찬가지다.

다음에는 기관총을 가져 올 각오였지만, 이 날이 최후통첩 보내는 마지막 집회가 아니던가?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함께한 동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눈도 어두운데다 귀 까지 어두워 핸드폰도 무용지물이었다.

인파를 헤집고 다니며 얼마나 헤맸는지, 진이 빠져 버렸다.

자리잡고 앉아 검찰개혁이나 외쳤으면 좋으련만, 돌아다니는 찍사의 팔자 아닌 습관을 어쩌랴!



최후통첩 날린 검찰개혁은 이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후통첩도 종료가 아니라 잠정중단으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납득할 만큼의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검찰이 저항하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에 이르기 까지 적폐청산의 길은 아직 멀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때까지 ‘광화문미술행동’은 함께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5일 '눈빛출판사' 창립 3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강남 ‘스페이스22’에서,

두달 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전 AP통신 기자 김천길(1929-2018)선생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김천길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부터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기록해 왔다.

평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민주항쟁 촬영 현장에서 몇 번 뵙고 인사드린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사진기자들이 제일 부러웠다. 생활이나 필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신 사진기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김천길선생의 명성은 익히 들었던지라, 멀리서 보아도 찾아가 인사드릴 정도로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 뒤 흐르는 세월 속에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져 갔는데, 갑작스런 눈빛출판사 이규상씨의 부고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한 것이다.






마침 '눈빛출판사' 창립30주년에 맞추어 선생의 추모식을 갖는다기에 찾아 갔다.

그 날 따라 가야 할 전시오프닝과 겹쳐, 추모식만 참석하려 했으나,

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씨 이야기까지 듣느라 바쁜 걸음 쳐야 했다.






그날 오후4시에 열린 김천길 선생 추모식에는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고인의 차남인 김구철씨,

전 사진기자 정태원, 이창성, 전민조씨와, 현 사진기자로는 한겨레 김봉규씨만 찾아왔다.

눈빛의 안미숙 편집장, 사진가 엄상빈, 양시영, 곽명우씨 등

10여명이 모여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차남 김구철씨의 장례 보고와 후배 사진기자들의 고인에 대한 회고가 있었다.

김천길 선생의 사진집 ‘서울발 사진종합’이 20여년 전에 '눈빛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아쉽게도 절판되어버려 유족과 재출간을 협의 중이라고 한다.






추모행사 후에는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해 온 전 로이터통신 정태원 기자의

‘역사 현장과 삶의 기록’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그 이한열열사의 마지막 모습을 남긴...

흥미진진한 비화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으나, 시간이 지체되어 안절부절 했다.

아쉽게도, 전 동아일보 전민조기자의 ‘오늘의 기념사진’ 강연은 듣지 못했다.






귀중한 사진과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주신 김천길선생께 다시 한 번 머리숙여 추모한다.
먼 이국 땅이지만, 편안히 영면하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부 유명작가의 사진집이야 다른 곳에서도 나왔겠지만,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품들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될 뿐 했다.

그것은 한국사진 역사이기 전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던가?



 


사진관련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눈빛출판사가 태어 난지가 올해로 30주년이 되었다.

창립 30주년 기념전 및 북 페어가 지난 7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지하철 강남역 일번출구에 있는 미진프라자 빌딩 스페이스 22’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그동안 '눈빛출판사'가 출간한 사진 책과 사진가들의 작품, 그리고 눈빛아카이브가 컬렉션한 사진들이 전시된다.

격동의 한국 50년을 기록한 구와바라 시세이, 이한열 열사의 주검을 포착한 정태원, 아바이마을을 찍은 엄상빈,

서울을 기록한 전민조씨 등 눈빛사진집 표지로 쓰인 20인의 사진과 대표작 1점씩이 전시되고,

미군정기의 외국인이 찍은 코다크롬 컬러사진 10점도 전시되었다



 

 


특히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의 사진-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 (이규상 엮음·사진)도 펴냈다.

한국사진사에 대한 개요조차 없었던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80여 명의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며,

한국 현대사진의 경향과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발행한 책이다.



    

 

눈빛출판사는 그동안 700여권의 사진관련 서적을 펴냈다.

2014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58종을 발행한 '눈빛사진가선'은 기성, 신인 구분 없이 사진 완성도 중심으로 제작된

한국사진의 오늘을 보여주는 대표 사진집 시리즈다.






그리고 '눈빛아카이브'로는 격동한국50’, ‘개화기와 대한제국’, ‘골목안 풍경전집, ‘꿈의 공장‘, ’내 마음 속의 한국‘,

노무라 리포트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미군정 3년사‘,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진이 다 말해주었다‘. ’신동삼 컬렉션‘,

일제 강점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한국의 보도사진‘, ’한국의 장터‘, ’한국전쟁‘,

휴먼선집 최민식사진집등이 있다.

   


 



출판된 책들은 대부분 팔리지 않고 제작비만 많이 들어가는 사진집이다.

그것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집 중심으로 책을 만들어 왔는데, 이규상씨가 돈 많은 독지가도 아니다.

3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으나, 아직까지 조그만 사무실에서 월급 주는 직원이라고는 성윤미씨 한 사람 뿐이다.

그의 아내인 편집장 안미숙씨와 딸 이솔 양이 직원의 전부다.

거의 가내공업 수준에서 평균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만들어 왔다는 것은 소명의식에 의한 투지만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사진에 맥락을 부여해 세상에 소개하는 보람으로 견뎌낸 것 같다.



 


그것도 내달라고 기다리는 사진이 아니라, 숨어있는 사진을 일일이 찾아내어 사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역시 가정을 꾸려가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한 권 만들어 팔면 다음 책에 몽땅 쏟아 부었으니, 사는 형편이야 보나 마나다.

책 낼 돈이 없어 장인께 가계수표를 빌렸다는 이규상씨 회고담은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팔리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좋은 사진만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열정과 집념이 이루어 낸 억척스러운 결과다.

창고에 쌓여있는 사진집 보관료도 여간 아닐 것이다.



 


돈 많은 사진가들이야 자비로 책을 만들 수도 있겠으나, 가난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어찌 사진집을 만들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이름 없이 사라졌을 사진가들은 물론, 쓰레기로 태워진 필름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이야 그렇다치고 사진인 조차 사진집을 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끔 사진가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면, 외국사진가들의 수입 서적은 잔뜩 꽂혀 있으나,

국내에서 출판된 사진집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자칫 우리사진보다 외국 사진을 더 좋아하는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는데, 우리를 모르고 어찌 남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사진의 정체성을 잃고, 외국 사진 흉내나 내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규상 대표의 청년시절은 문창과를 나온 문학도 였다는데, 출판도 중요하다는 선생의 말에 따라 열화당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술서적을 많이 내던 그곳에서 서서히 시각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조세희의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도 한 몫 했다고 한다.

한국 사진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찾아다니던 시기에, 삶의 어둠을 조명하는 사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열화당을 그만 둔 이규상씨가 정진국, 여균동, 이영준 씨와 어울려, 1988년 무렵 광화문에 출판사를 차렸는데,

 첫 출판물이 프랑스 사진가 크리스 마커가 기록한 '북녘 사람들' 사진집이었다.

이어 미군정기,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분단문제 등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기록한 국내외 사진을 발굴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이경모, 성두경, 이형록, 김천길, 김기찬, 최민식, 황규태씨'눈빛'을 거치지 않은 국내 사진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창립 30주년 기념전 및 북페어가 개막된 지난 7일에는 김지연씨의 사회에 따라 구와바라 시세이, 윤주영, 정태원, 박현수씨가

차례대로 나와 축사를 했고, ‘눈빛출판사안미숙 편집장과 이규상대표도 인사말을 했다.

마지막에 나온 엄상빈씨가 출품작가의 양해를 받아 냈다며, 전시된 작품 일체를 눈빛출판사에 기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날 참석한 분은 전민조, 오상조, 김보섭, 김남진, 성남훈, 구본창, 김문호, 안해룡, 강제훈, 김봉규, 이주영, 아레아 박, 이한구,

박종우, 이순심, 한금선, 정영신, 이재갑, 장 숙, 이규철, 제이안 리, 김영호, 정진호, 이은숙, 박성태, 마동욱, 곽명우, 하지권, 남 준,

김 헌, 한선영, 곽대원, 김경수, 정명식, 김유리씨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사진인 들이 '눈빛출판사'의 창립30주년을 축하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참석치 못한 분도 있겠지만보이지 않는 사진가들이 너무 많았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도, 잘 못되어가는 사진계를 향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마음 꼬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원로 분들까지 눈치만 보며, 아무도 탓하지 않으니, 어찌 그냥 볼 수 있었겠는가?



 


이 날은 사정상 뒤풀이를 생략한다고 밝혔으나, 어찌 그냥 헤어질 수 있겠는가?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한 사람 두 사람 술집 북촌으로 모여 들었다.

"부어라~ 마시어라~ 눈빛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진, / 조문호



 


눈빛출판사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북 페어는 한국 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사진집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다,

최고50%에서 20%까지 활인 판매가 되고 있으니 사진집을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아래는 전시기간 중 대안미술 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리는 강연 일정이오니,

많은 사진인 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1110()

오후 2- 330/ '대항매체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 / 김성민 경주대 교수

오후 4- 530/ 내가 바라본 격동한국 반세기 /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1113()

오후 4- 450/ 나와 아바이 마을 30/ 사진가 엄상빈

오후 5- 550/ 세계 속의 한국 사진 / 사진평론가 최연하

 

1115()

오후 4- 420/ AP통신 사진기자 김천길선생 추모행사

오후 430- 520/ 역사의 현장에 선 사진가 / 사진가 정태원

오후 530- 620/ 오늘의 기념사진 / 사진가 전민조

 

1117()

오후 2- 330/ 눈빛과 한국현대사진 30/ 사진평론가 진동선

오후 4- 530/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사진의 지평 / 사진평론가 이광수

































































































정영신사진


























 

 





이틀 전 장흥의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시장 계약하러 인사동에 가야하니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김정헌씨 전시오프닝과 겹쳤으나, 한 시간 늦추어 오후7시로 정하고,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리는 김정헌씨 전시장부터 들렸다.

그 깊은 골짜기에 반가운 분들이 엄청 많이 모였더라.

그 분들 만나 사진 찍으랴, 작품 보랴, 술 마시랴, 혼자 바빴다.

 

통풍으로 술을 자제하려 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급히 몇 잔 먹었더니, 대번 취해버렸다. 아예 술잔을 들고 다니며 사진 찍었다.

뒤풀이에서 한 잔 더하고 싶었지만, 머뭇거릴 겨를이 없었다.

급히 인사동 약속장소로 달려갔더니, 사진가 전민조씨와 엄상빈씨도 와 있었다.

늦어 미안함도 잠시뿐, 뜻밖의 반가움에 횡설수설했다.

 

된장 비빔밥집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마동욱씨는 615일부터 일주일간 토포하우스 전시계약을 했다고 했다.

하늘에서 본 장흥이란 주제의 사진전이라는데, 드론으로 촬영하였단다.

시골양반이 첨단을 걷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에 섞어

밥 비벼먹으며 반주도 한 잔 곁들였다.

 

귀천으로 자리를 옮겨 모과차와 커피도 한 잔씩 시켰다.

술이 취해 생각 없는 말들을 마구 지껄였으니, 왜 실수를 하지 않았겠나.

술 못 끊듯이 버릇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냥 죽는 수밖에...

뒤늦은 자책감에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었다.

마누라 핑계대고 도망쳐, 독주를 퍼 마셨다.

 

 사진,글 / 조문호 






































오늘은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의 생신날이다.
이번 생신은 김기찬선생의 미망인 최경자여사께서 오찬을 미리 예약해 두었단다.
약속장소가 지하철 3호선 동대역 6번 출구라기에 내심 어디로 갈지 궁금했는데,
'남산타워 레스토랑'이라는 것이다.

사실 ‘남산타워’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생전 처음이었다.
촌놈 출세한 것이다. 여지 것 마누라에게 구경시켜 주지 못한 게 걸렸으나,
본래 잘 알려진 사람 많은 관광지를 기피하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래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날씨가 받혀주었다.

완연한 봄 날씨였다.
따스한 봄볕에 괜히 마음이 들떴는데, 역시 늙어도 봄은 좋더라.

그 자리는 주인공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최경자, 정영신, 전민조선생과
나까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움직이기 딱 좋은 인원에다 좋은 분들과 만났으니,
봄 사건 한번 엮었으면 좋으련만, 통풍이 도져 금주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모습은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낯설었다.
희뿌연 스모그에 뒤 덮힌 시가지가 햇살에 드러났는데, 서울 같지않았다.
또 촘촘히 들어 선 높은 빌딩과 집들은 얼마나 많은지,
집 없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남산타워는 오래된 탑이라 전망대에 오르는 에리베이터가 벽에 가려져있었다.
서울시가지를 내려보며 오르기를 기대했는데, 탑승료 만원이면 너무 비싸다 싶었다.
오래되어 투자금의 몇 배 이상 벌었을 것이고,
더구나 그 위의 식당예약으로 가는데 말이다.

식당 분위기는 좋았다.
마치 비행기로 하늘에 올라 밥 먹는 것 같았다. 다 좋은데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어쩌랴!
더구나 전민조선생께서 사진 찍는다며 맥주잔을 입에 대는 포즈를 취하라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다른 술 같으면 몰라도 맥주는 더 마실 수 없었다.
통풍에 맥주는 쥐약이니까...

좌우지간 한정식산생의 생신을 기념하는 오찬회는 즐거웠다.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나, 모두들 선생의 생신을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선생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백세까지만 건강하게 사십시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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