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준, 이주용, 이진경, 세 작가가 각기 다른 주제와 방식으로 소리내는 

“충돌하는 이미지들”전이 오는 4월13일까지 후암동 KP갤러리에서 열린다.

 

제목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의 합주지만, 오늘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강한 화음을 이루어 내는 삼중주가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끌어냈다.

 

개막식이 있는 지난 17일 오후4시 무렵, 정영신 동지가 쪽방을 방문했다.

전시 보러 가는 길에 같이 가자며 들렸는데, 마치 내무검열 나온 것 같았다.

 

냉장고까지 열어 보았는데, 미리 청소 해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쪽방에 들어 간 낯선 여인네가 나오질 않으니, 옆 방 사람들 귀가 쫑긋한 것 같았다.

봄 사건 난 줄 알고...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골목을 구경하며 여기 저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전시 열리는 ‘KP갤러리’를 찾아 갔는데,

골목 입구에 붙은 포스터 위에 ‘전 메뉴 포장 됩니다’라는 식당 현수막이 보였다.

전 작품을 포장해 준다는 말로 들려 혼자 씩 웃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이일우, 오혜련, 안준, 이진경, 곽명우씨 등

 작가와 갤러리 운영진 등 몇 몇 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엔 세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다 달라 각자의 작업에 한정해 보았는데,

다 돌아보고 나니 무언의 공통적 메시지가 느껴졌다.

 

우리가 당면한 오늘의 현실이었다.

장엄하고 몽환적인 배경 음악도 메시지를 전하는 보조 역할을 했다.

 

“이 전시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세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배치시켜

만남과 부딪힘으로 인해 작업의 의미가 어떻게 생산되고 증폭되는지를 보여주어,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 내는 전시다.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작업이 서로 어떻게 시각적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내러티브 갖게 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는 기획자 오혜련씨 말이다.

 

물론, 세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도 다르고, 작품이 갖는 미학적 의미도 다르다.

작품들이 한 자리 어울려 불협화음을 내며 부딪히기도 하지만,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기획의도는 관객의 상상력을 끌어내어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다.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안준 작가는 팔당댐 방류 장면을 찍었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물길로 자연훼손에 대한 인과응보를 암시했다.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인 이진경의 검정비닐 초상사진은 물질에 의한 인간성 상실을 말한다.

끝없는 욕망이 만들어 낸 우리들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젊은 두 작가는 오늘의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그와는 달리 이주용씨의 인체 몸짓을 형상화한 홀로그램 이미지는

마치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안하는 것 같다.

사랑과 포용이 느껴지는 몸짓과 환시성을 이르키는 묘한 분위기가 영혼세계로 이끈다.

한 편으로는 마네킹 같은 느낌도 준다.

인간성이 사라진 종말 세상을 암시하는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처한 시대적 풍자전이라

마치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읽는 것 같았다.

 

이 또한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

보는 느낌이나 감성에 따라 다 다르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안 준의 팔당댐 방류 사진은 인간의 욕망으로도 볼 수도 있고,

이주용의 홀로그램 이미지는 고통 받는 인간의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아무 연관도 없는 이미지가 한 공간에서 영향을 주고받아

새로운 볼거리와 의미가 만들어 진다.

보는 이의 상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된 후, 전시 개막에 와 본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날도 전시장 관계자와 작가 등 10여명이 모여 조촐하게 문을 열었는데, 작품보기 딱 좋았다.

일이 생겨 혼자 먼저 빠져나왔으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 동지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주용씨가 늦게 도착했다며, 얼굴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오랜만이라 반가울 수 밖에 없었는데, 어디가서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다.

골목 입구에 있는 ‘속초’ 집으로 이일우씨가 안내했다.

이 동네 구석 구석 돌아다녀도 '속초' 집은 처음 가 보았는데, 음식이 꽤 맛있었다.

시원한 대구탕에 가자미초무침을 곁들였는데, 술 생각이 간절하지만 참았다.

정동지 데려다 주려면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늙어 철 들었나?

 

모처럼 이주용씨와 밥 먹으며 쌍 팔년도 이바구 하다보니, 오래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뒤늦게 사진가 박진호씨도 나타났다.

 

내가 ‘월간사진’에서 일했던 83년 무렵인데,

그 당시 이주용씨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브룩스대학에서 사진공부를 했다.

미국 전역의 전설 같은 사진가들을 찾아 인터뷰하여 오리지널 프린트를 매달 보내왔는데,

너무 고마웠다. 그것도 무려 2년에 걸쳐 그 힘든 일을 댓가도 없이 해 주었는데,

그 일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많은 사진인이 인터뷰기사 보려고 책 나오기만 기다렸다.

 

이주용씨의 회고담에 의하면 유명작가를 찾아다니며 실망한 점도 많았다고 한다.

평소 존경하던 사진가들을 만나보니 알고 있는 내용보다 과대 포장된 것도 있지만,

돈에 집착한 비인간적 면모도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전설에 어찌 허구가 없겠는가?

 

그런데, 몰랐던 소식도 전해 주었다.

그가 소문 없이 벌이는 전시야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서울역에 있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보더리스 사이트'전에도 참여했단다.

 열 여덟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개막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기획전은 신의주·단둥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경계'의 의미를 묻는 전시인데,

이주용씨가 출품한 원경사진 속에 조그맣게 드러난

북한의 전형적인 정치현수막 글귀를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태극기부대 비슷한 보수꼴통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려,

전시장 측에서 작품을 교체해 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서울역 전시장 부근은 노숙인 아지트지만, 주말이면 태극기 부대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그런 몰상식한 인간들의 행패를 받아들여

작품을 교체하는 전시장 관계자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충돌하는 이미지”도 가지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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