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이렇게 오래 누워 있기는 생전 처음이다.

한 달 가까이 누워 있으니 온몸에 좀이 쑤씨지만, 정영신씨가 챙겨주는 밥 얻어먹으니 좋긴 좋다.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할 일이 없다.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 보낸 적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모처럼 쓸데없는 일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보고 싶은 책도 많지만, 눈이 나빠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눈에 아지랑이가 낀다.

그만 눈 감으라는 이야기인가? 빨리 눈에 맞는 안경부터 구해봐야겠다.



지난 2일은 자리에서 일어난 첫 일거리로 순천에 갔다.

‘낙안포럼’에서 마련한 ‘낙안읍성의 유네스코 등재와 민속축제의 효과적 활용’이라는 심포지엄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동영상은 정영신씨가 스틸사진은 내가 맡기로 했는데, 촬영비는 50만원이란다.

그동안 간병한 수고비로 보탤 수 있을 것 같으나, 심포지엄이 열리는 순천까지 갈 일이 아득했다.



나야 기초생활수급자라 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으나,

벌이도 없이 학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정영신씨가 늘 걱정이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올려 달라는 많은 쪽방 빈민들의 요구와는 달리,

기존 수급비를 올리는 것 보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차 상위 빈민들의

수급자를 늘려야 한다는 평소의 내 주장을 반증하는 사례다.



촬영 떠나는 그날따라 태풍이 들이닥쳐, 이른 시간부터 비가 쏟아졌다.

장대처럼 퍼 붇는 빗물이 눈앞을 가렸으나, 늦지 않으려고 냅다 밟았다.



그나저나, 오가는 경비 제하고 나면 30만원 정도 남는데, 15만원 벌기위해 목숨 건 질주를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사는 것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 것이다.



다행히 심포지엄 시작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이란 건물은 엄청 넓었다.

700억이나 들여 지었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시설이 과연 지역현실에 적절한지 의심되었다.

그런데도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는 고장 나 멈춰 있었다.



이런 엄청난 건축물을 짓는 토목공사는 비단 순천만의 일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 대규모 건물을 지어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치적으로 생색내려는 정치인과 건설업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세금이 줄줄 새는 꼴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할까?



‘낙안읍성보존회’와 ‘낙안포럼’에서 공동 주최한 이날의 심포지엄은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낙안포럼’ 사무국장을 맡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대표의 열성과 애살이 돋보였다.

심포지엄이 열리기 전 국악 공연으로 딱딱한 분위기부터 풀었다.



먼저 한창효 낙안포럼 공동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찬조연사로 참여한 김동연 전 부총리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발제자로 나선 이왕기 이코모스한국위원회장의 ‘낙안읍성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개선점과 미래전망’,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낙안읍성 민속축제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활용방안’,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낙안읍성 주민들의 현실과 과제’,

장만채 전 전남교육감의 ‘낙안읍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위성과 효과’란 발제문이 차례대로 발표되었다.



이왕기씨의 발표처럼 문화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황평우씨는 정책집행의 전문성, 개방성, 공공성, 투명성, 신중성이 요구된다며

천박한 상업관광이 판치는 낙안읍성의 현실을 탓하기도 했다.

성기숙씨는 고창읍성과 해미읍성 등 다른 지역과 공조를 이루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은 ‘낙안읍성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개선점과 미래전망’,

이광수 전 곡성부군수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낙안읍성 주민들의 현실과 과제’,

나진억 성동문화재단 교육문화팀장의 ‘낙안읍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위성과 효과’라는 토론문도 발표되었다.



낙안읍성의 현실을 비판한 황평우씨의 발제에 이광수씨가 반론을 재기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으로 발제자나 토론자에게 10여분밖에 발표시간을 주지 못해 제대로 된 토론도 못했는데,

지역 국회의원이란 자가 등장해 입에 발린 공치사로 시간을 끌었다. 어디를 가나 똥파리는 붙었다.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로 돌아왔다. 어두워지면 빗길 운전이 더 힘들 것 같아서다.

폭우 속에 네 시간 넘게 달렸는데,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으면 돌아오자마자 퍼져버렸다.



내일은 인사동과 광화문광장을 들린 후, 한 달 만에 동자동 둥지로 복귀하는 날이다.

서서히 겨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들 감기 예방접종으로 건강한 겨울을 보내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어제는 새해의 셋째 수요일이라, 술 한 잔 하러 인사동 나갔다.

매번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오픈하는 전람회도 돌아보고
반가운 사람 만나 술 한 잔하는 날로 정한지가 오래되었지만,
반가운 사람 만나기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지난 16일은 점심때부터 강민선생님을 만나 뵙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에 들려 김진하관장을 만났다.





이 전시는 전만규씨가 주민들을 설득해 투쟁으로 일궈낸 매향리 폭격장 10년의 기록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으면, 격려의 글을 보낸 편지까지 모아두었더라.
투쟁에 사용되었던 깃발에서부터 시사만평에 나왔던 그림과 탄피에 이르기까지, 그 지난한 세월을 살펴보았다.
매향리에 가해진 폭력과 그 아픈 상처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2월1일까지 전시되는 매향리 기록전을 놓치지 마시길...




 


전시를 돌아보고 있으니 ‘강민’선생님께서 오셨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마다않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선생께선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하셨으니, 그 기록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김진하관장 설명을 들으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셨다.






선생님의 단골집 ‘나주곰탕’에 들려 소주 한 병에 곰탕 세 그릇 시켰다.
짐 때문에 차를 끌고 와 소주는 한 잔으로 끝내야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몸이 불편한지 따뜻한 물에 소주를 회석시켜 두세 잔 드셨다.
얼굴이 붉어져 낮술을 삼가한다는 김진하씨가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고맙게도 밥값까지 내 주셨네.






점심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 하려니,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하셨다.
단골로 가던 ‘인사동 사람들’은 주인도 이름도 바뀐 식당이 되어버렸단다.
하는 수 없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포도나무‘골목의 끝 집으로 향하다
길에서 안숙선 명창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를 만났다.






강민선생께선 ‘창비’에서 낼 시집 원고를 다 넘겼다고 하셨다.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벌써부터 시집이 기다려진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힘없이 앉아계신 선생님 모습이 오늘의 인사동 같았다.


떠나오며, 방향이 달라 신호등 따라 급히 달려간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민예총’ 사무실에 들려 짐 실어 둔 차를 끌고 녹번동으로 떠났다.
차를 놓고 와 술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꾸물대다 시간이 지체되어버렸다.
‘나무화랑’부터 달려 갔으나,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매향리 전만규씨를 만나 보고 싶었으나, 날 샌 것이다.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이 열리는 ‘동덕아트갤러리’로 갔더니,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를 비롯한 일행들은 벌써 나오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작가 백범영씨와 미술평론가 황정수씨를 만났고,
김달진씨와 편근희씨도 만났다.






백범영씨는 '소나무 작가'라 불릴 정도로 소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이번엔 ‘백두대간’이었다.
산 능선을 비롯하여 나무들과 풀꽃 등 자연을 이루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백두대간의 맥을 잡아 그린 산수에서는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이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을 나와 ‘유목민’에서 이인섭선생을 만났다.
전활철씨와 셋이서 소주 한 잔 했는데,
앞으로는 박혜영씨에게 ‘유목민’을 맡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인섭선생께서 비약처럼 넣어 다니는 술 한 잔을 따라주었는데, 58도의 중국술로 이름 하여 ‘오빠’란다.
부드러운 향의 독주 한 잔에 춘삼월이 오가더라.






인사동에서 나주곰탕 한 그릇 드시고 가는 강민선생이나
‘유목민’에서 파적 한 장에 소주 한 병 드시는 이인섭선생이나
이 두 분이 인사동을 지키는 마지막 유목민이 아닌가 싶다.

인사동 풍류도 그렇게 가나보다.

사진,글 / 조문호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










네오록에 소개된 '매향리기록전'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8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





네오록에 소개된 백범영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3














지난 16일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는 셋째 수요일이다.
우중충한 날씨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바쁘게 하지만,
곳곳에서 반가운 분의 환한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갤러리 이즈'에서 나오는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를 만났고,
영화감독 이정황씨와 산악인 반민규씨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낙원동 ‘유진식당’에서 ‘통인가게‘ 김완규씨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기업은행 김재수 지점장, 사진가 정영신씨를 만나 냉면에 소주 말아 마셨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나 갈 곳은 많아 퍼질 수는 없었다.






'갤러리H'에서 열리는 유혜정씨의 ‘색은 속삭이다’를 보러가야 했다.
제목이 야시시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마음 설레며 그림을 둘러보고, 유혜정씨의 미소도 찍었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낮에 조햇님 선거사무소에 같이 갔던
사진가 이정환씨와 성유나씨도 있었고,
길에서 만났던 이정황감독과 김이하, 이산하시인을 만났다.






그런데 안쪽에는 오래된 사우 배병우가 아니라 배병수씨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만나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살아 있으니 만나는 것이다.
오래 전 부여에서 벌인 정액페인팅을 그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인사동 귀신인 불화가 이인섭씨와 전활철, 유진오씨 등

올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더 이상 술잔을 나눌 수가 없었다.
술 땡기는 이 꿉꿉한 날, 구경만 해야지만 어쩌겠는가?

반가운 사람 만나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그 사람들 떠나고 나면, 인사동이 인사동일까?
인사동보다 사람이 더 좋은 이유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문화투데이신문 이름이 예술문화신문으로 바뀌고, 격 주간에서 주간으로 바뀐다.

그리고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는 윤범모 미술평론가가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19,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시상식에서 이은영 발행인께서 전격적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시상식이 끝난 후, 프레스센터 지하에서 열린 뒤풀이에는 이은영씨를 비롯하여 문화대상 선정위원이신 안숙선, 이애주선생,

수상자 김병기화백, 유수정 명창, 문병남, 최광일씨, 그리고 윤범모교수, 화가 손연칠씨 등 여러 명이 함께했다.


  

  



그 날은 특별대상을 수상한 김병기 화백 옆에서 소곡주를 마실 수 있는 횡재도 했다.

처음엔 상 준다고 투덜댔지만, 상이 아니었다면 어디 감히 이런 자리에 앉을 수 있었겠는가?

102세이신 우리나라 최고령의 현역작가 김병기선생 말씀 들으며, 선생의 따뜻한 손을 잡아 기까지 충전시켰다.

2-3분 정도 잡았는데도, 2-3년은 더 버틸 것 같은 감이 들었다.

그동안 윤범모교수의 인터뷰 기사로 한겨레신문에 일 년 동안 연재한 한 세기를 그리다를 통해

100년간의 한국 문화사를 증언한 김 화백께서 특별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맞은 편에는 평소 좋아하는 안숙선명창께서 앉았는데, 예년에 비해 매우 수척해 보였다.

어디 몸이 불편한지 걱정스러웠으나, 얼쑤~라고 추임세 넣는걸 보니 아직 기가 펄펄 살아있었다.



 


춤꾼 이애주선생은 87년도 민주항쟁 때부터 여러 차례 사진도 찍었고 각종 행사장에서도 자주 만났으나,

그날은 모처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콧수염 김영수씨와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진집 제작에 사진모델이 된 이애주선생께서 삼천만원을 냈다는 뜻밖의 이야기도 들었다.

새삼 김영수씨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아생전 성질머리도 지랄 같았지만, 마무리까지 잘 못한 것이다.

평생 작업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들에게 안겨 사장되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이은영씨를 비롯하여 윤범모교수 등 몇 분이 이차를 가자지만, 지레 겁먹고 삼십육계 줄행랑쳤다.

끝장을 보는 두 분의 주량에 두 손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문에 대한 의견들을 많이 나누어, 한국예술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정론지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묵향 그윽한 인사동이 그립다.
예스러운 멋을 간직했던 인사동이 바람난 여자처럼 화냥기를 풀풀 풍긴다.

인사동만의 고풍스러움이나 전통성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제 먹거리마저 따로 놀고 있다.

가게서 파는 우리 물건까지 중국산이라니, 차이나타운이나 다를 바 없다.

인사동을 아끼고 사랑했던 분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자기류의 특이한 서예글씨를 인사동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 선생,

“문디 자슥, 문디 자슥”을 연발하던 ‘귀천’의 천상병시인, 민화를 한국 주요 전통문화로 드러낸 조자용 선생,

백자와 전통문화를 품위 있게 누린 ‘아자방’ 김상옥시인, ‘통문관’의 이겸로 선생 등 많은 분들이 그리워진다.

아직까지는 송상욱 시인 방 하나가 인사동에 꿀단지처럼 박혀 있으나, 그마저 머지않을 것 같다.

인사동의 변절을 안타까워하는 분이야 많지만, 인사동에 유령처럼 떠돌며, 마음 바뀐 여인네 치맛자락 잡듯

안절 부절 하는 분으로는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과 강민 시인을 꼽을 수 있다.


바람난 여인네를 다시 돌려 세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누구를 탓하랴? 다 돈이 유죄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이율곡 집터‘에 남은 하회나무 고목을 서낭처럼 모시고,

경인미술관을 정원 삼아, 골목이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그리고 골목골목의 정취어린 주청에서 반가운 님 만나, 옛 추억이라도 되세기고 싶다.

“인사동아~”
미워도 다시 한 번 불러본다. 사랑했으니까...



사진, 글 / 조문호




사진은 블랙리스트덕에 술 마신 지난 18일 찍은 거리풍경이다.

인사동에 낯선 빌딩도 들어섰더라.

이사 온지 얼마 안 된 서울문화투데이사무실에 들려 이은영씨와 임동현기자도 만났고, ’사동집에 들려 송점순여사도 만났다.































지난 28일 조준영시인과의 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다.
강민 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을 마련한 것이다.
정오 무렵, ‘포도나무집’에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이행자, 조준영, 김상현씨가 나와 있었다.

뒤늦게 장경호씨도 나왔으나, 주문한 음식들이 형편없었다.
주인이 없으니, 제대로 된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인사동에 갈 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다.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대충 허기를 메우고 ‘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민선생의 순례 코스이기도 하지만, 그 곳은 땅콩이 무제한 제공되는데다, 한적해서 좋다.

좀 있으니, 신경림 선생도 오셨으나, 자리가 편하지 않았던지 슬그머니 나가셨다.
강민 선생도 몸이 편치 않아, 먼저 가겠다고 일어나셨다.







그 때부터 김상현씨의 노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신곡이 많았으나, 그의 음색에 잘 맞는 곡이었다.









그 무렵, '경기도미술관장' 지낸 최효준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의 인사동 나들이라 근황이 궁금했는데,
어디 갔다 오는지,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좋은 술이 있다며 배낭에서 술 한 병을 꺼내 주었는데, 감로주였다.

알콜 도수가 40도나 되어 그 자리에서 비우기는 좀 그랬다.
맥주로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었으나,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옮겼더니, 모두들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준영씨는 신학철선생 계신 서울대병원으로 떠나고,
장경호씨는 전시 중인 ‘인디프레스’로 떠나며, 나중에 ‘유목민’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마침, 다음 달 12일까지 연장 전시된 김억의 목판화전이 생각났다.
‘나무화랑’으로 올라가니, 작가는 보이지 않고, 김진하관장과 정복수화백이 있었다.
좋은 작품에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니, 어찌 술병이 고개를 쳐들지 않겠는가?
감노주를 꺼내 마셨는데, 전주가 있어 그런지 금방 올랐다.
전시장에서 내려왔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가 없었다.













저녁 약속으로 다시 나와야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야했다.
몸도 피곤하지만, 아침일찍 일터에 나가던 아내가 부탁한 게 있어서다.
집에 들어와 숨도 고르기도 전에,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이어졌다.






‘유목민’으로 나갔더니, 일터에서 곧장 온 아내도 와 있었고,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편집국장과 임동현기자도 와 있었다.

그리고 마산에서 올라 온 변형주씨와 조준영, 장경호, 공윤희씨 등 여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은영씨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이라며 신문을 보여 주었다.

술 취한 분들이 신문을 무시하는 말을 한 것 같으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돈 안 되는 문화예술계 소식만 다루는 유일한 신문이 아니던가?

잘 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확히 지적하여 시정하도록 해야지,

신문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만든 신문에 시비를 건단 말인가?

난, 어렵게 운영되는 신문을 아끼는 마음에서 원고료도 없이 글을 보내주고 있다.











옆 자리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장성한 아들을 데려 왔는데, 음악을 공부한다더라.
기타를 연주하였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위키리의 ‘눈물을 감추고’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얼마 전, 부친 상을 당한 이은영씨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던 노래라며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술이 취해, 결국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감추우고, 이슬비 맞으며 나 홀로 걷는 밤길...”

사진, 글 / 조문호





 

 

어제는 ‘서울문화투데이’에서 호출령이 떨어졌다.
조사할게 있으니 인사동으로 나오라는 데, 그것도 공범인 아내 정영신과 함께 오라는 것이다.

70년대 취조 당할 땐, 잡힌 현장 부근의 고려호텔에 끌고 가 물고문하였는데,

지금은 적당한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라니, 엄청 민주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뜨거웠다.
관광버스에서는 중국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햇볕에 시달리는 가시적인 것보다,

인사동의 정체성이 사라진 현실이 더 덥게 만들었다.

관청이나 인사동보존회의 사려 깊지 못한 관리에다, 돈만 쫓는 상인들 욕심으로

인사동 본래의 문화와 낭만적 정서가 사라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잡화점에 밀려 난 화랑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취조 당하기 전에, 그 날 끝나는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황세준선생의 개인전부터 들렸다.

에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그 넓은 전시장을 작가 황세준선생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작품을 둘러본 후 “좀 팔렸냐?”고 여쭈었더니,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무 차례나 개인전을 연 베테랑작가의 현실이 비참했다.

 

 

 

 

 

 


조영남 대작사건과 이우환 위작사건이 연이어 터진 요즘은 미술거래가 뚝 끊겼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 모든 예술가들은 국고지원이 따르는 농사나 지어야 할 것 같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게 먼저고 예술은 그 다음이니, 전 국민이 미개인으로 살아야 할 게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심각한 현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정쟁에만 눈이 뒤집혀 있다.

 

 

 

 

 


취조시간이 되어 ‘허리우드’로 내려갔다.
경찰서장급인 이은영 기자가 임동현 기자를 대동하고 나왔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왠 만 한건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아내는 조근 조근 말을 잘했다.

묻지도 않는 말까지 실토했다.

난 최민식사진상 문제를 폭로하고, 춘천기획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거짓 진술은 하지 않았으니, 좋은 판결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

 

 

 

 

 

 

 

 

 

 

술집 “유목민”에서 빨리 오라는 호출이 빗발쳤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노동자시인 김신용씨가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를 했더라.

일찍부터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대작해 술이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인디프레스’에서 열리는 삼인전 보러 나왔다며 주인공 장경호화백도 불러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김명성 시인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모두들 인사동 마지막 등불이 꺼졌다고 한탄했으나,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한 듯 보였다.

그 와중에도 돌아 갈 차비로 신사임당 한 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반가운 벗들과 맘 편하게 마시니 술이 땡겼다. 모두 주량 초과다.
나는 소주를 두병이나 마셨고, 장경호는 막걸리를 두병 초과했고,

김신용씨와 김명성씨가 마신 맥주는 병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지나치던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가 신세진 게 많았던지,

장경호씨를 대접하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더 마실 상황은 아니었다.

 

 

 

 

 

 

 

 

'다우문화' 김각환 대표도 김명성씨로부터 불려 나왔다.

인사 나눈 김신용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경호씨에게 돈 봉투를 돌려주었다.

지난 번 소래포구에서 장경호씨가 찔러 준 돈 봉투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단다.

아무리 어려워도 벼랑에 선 장경호씨의 돈은 쓸 수 없었던가보다. 정말 가슴 아픈 장면이다.

 

 

 

 

 

 

 



그런데, 술판을 마무리 하는 퍼포먼스가 좀 썰렁하지만 재밋다.
김명성씨가 뒤늦게 나온 김각환씨를 장경호씨에게 소개하자, 김각환씨는 장화백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경호의 시비성 답이 김각환씨 염장을 질런 것이다.
“당신이 날 어떻게 아는 데요?” 그 뒤부터 날 선 말이 몇 마디 오가다 모두들 뿔뿔이 헤어졌다.

그냥 헤어지면 재미 없잖아...



사진, 글 / 조문호

 

 

 

 

 

 

 

 

 

 

 

 

 

 

 

 

2016 OCI YOUNG CREATIVES
박석민_이은영展

2016_0623 ▶ 2016_071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623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6_0709_토요일_02:00pm


박석민 『New satellite - 모형 궤도』展

이은영『멀리 있는 산이 가까이 보이면 비가 온다』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박석민-New satellite - 모형 궤도 - 섬광, 일상의 궤도를 위협하는 낯선 구멍 ● 일상의 풍경이나 어떤 상황을 연상시키는 박석민의 그림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작은 섬광들이 존재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가로등이나 먼 곳의 전광판, 혹은 떨어져나간 벽보나 방치된 건축 폐기물 등이 현실에서의 우발적 상상을 부추기는 듯한데, 작가는 이를, "도시 환경 내부의 누락되고 유기된 지점"이라 말한다. 도시의 밋밋한 풍경을 배회하는 작가의 시선은, 오히려 길들여진 거대한 풍경에서 예기치 않게 발견되는 작은 얼룩들에 초점을 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헐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도시 속 공간들은, 특유의 역동적인 변화마저 집어삼켜버리는 스펙터클한 환영 밑에 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소한 변화와 차이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작은 반짝거림으로 거대한 환영을 깨부수려 했던 20세기 아방가르드들의 출현이 벌써 역사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질 만도 한데, 이러한 "시각성"에 대한 불신과 폭로는 동시대의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박석민은 꿈쩍도 하지 않을 도시의 풍경에 맞서, 한 발 뒤 혹은 한 발 앞을 서성이며 풍경의 환영이 붕괴되는 지점을 찾으려 한다. 환영의 질서를 이탈한, 현실의 또 다른 궤도를 탐색하는 그의 시선은 언제고 무심한 풍경 배후에 들어설 찰나의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박석민_Event field_캔버스에 유채_224.4×162.2cm_2016


빛, 응시를 차단하는 낯선 섬광 ● 'New Satellite-모형 궤도'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의 어떤 상황들을 관찰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를테면, 네 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큰 폭의 「Phantom Pain」(2016)은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위치에서 한 장소에 대한 복잡한 응시의 구조를 살피고 있다. 안정된 장방형의 구조는 텅 빈 객석 뒤로 영사기가 놓여있는 극장 내부를 보여준다. 이때 영사기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빛은, 공간 깊숙이 들어가는 화면의 원근감을 상쇄시키며 안정된 현실을 임의로 분할해버리는 비현실적 공간을 창출한다. 박석민은 「끊임없이 도주하는 공간의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기술한 작가노트에서, "물리적인 환경과 비가시적인 영역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구조의 오류"를 형상화하거나 재배치하는 초현실적 상상에 대해 짧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Phantom Pain」은 작가가 말한 경계의 확장과 구조의 오류를 형상화한 예로들만 하다.


박석민_Co-orbit_캔버스에 유채_180.2×200.4cm_2016



빛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은, 3차원의 현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나태한 시선에 모종의 타격을 가한다. 빛은 흔히 누구도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게 차단하면서 철저히 외부로만 시선을 유도한다. 「Phantom Pain」에서, 영사기의 작은 구멍으로부터 공간을 가로지르며 쏟아져 나오는 빛의 구조는 현실의 일부를 감쪽같이 숨긴 채 우리의 시선이 그 주변만 맴돌게 한다. 하지만 박석민은 이내 보는 이의 시선을 빛이 조명하는 현실의 주변부로부터 빛이 차단하고 있는 현실의 이면으로 집요하게 유도한다. 예컨대, 화면 가장 안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부터 뒷벽 양쪽 기둥에 그려진 기하학적 패턴, 천장과 벽면에서 반복되는 건축적 구조, 객석 의자에 적용된 원근감의 표현 등 공간에서 연쇄적으로 반복되는 삼각형 구조가 끝내 응시를 차단하는 빛의 내부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만다. 여전히 그곳은 진공 상태의 밀실처럼 접근 불가이기에, 우리를 눈멀게 하는 낯선 섬광을 응시하는 순간 현실에 길들여진 안정된 시선은 일제히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박석민의 말대로라면,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실재"를 상상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그 시선의 붕괴가 일어나는 지점이 된다.


박석민_공중감각_캔버스에 유채_148×258.2cm_2016


틈, 차이를 매개하는 장소 ● 박석민은 길들여진 응시가 붕괴되는 찰나의 경험을 현실 공간에 내재해 있는 일련의 구조로 시각화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 빛이 구조화 하는 공간들은 일상에서 겪는 시지각적 차원의 모호함과 복잡함을 설명해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실에 출몰한 낯선 섬광들은 스스로 자신의 배후를 철저히 숨긴 채 그 주변을 더욱 선명하게 조명하곤 하지만, 결국 현실과 현실의 이면 둘 다를 의심케 하는 불안정한 틈새의 장소가 된다. 그게 작가가 말한, "도시 환경 내부의 누락되고 유기된 지점"이며 마치 섬광처럼 한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연한 상상의 출구인 셈이다. 「Back Room」(2016), 「The Door」(2015), 「Quiet Room」(2016), 「Fatamorgana」(2016) 등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은, 실제의 현실 공간에 잠재되어 있던 구조를 분석해내 그것을 재구성하고 여러 시점에서 재해석하여 얻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때 현실을 배회하며 작가가 목격한 또 다른 현실의 공간은,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의 경계가 교묘하게 지워진 채 초현실적 공간의 파편화된 구조를 함축한다. 이는 「Phantom Pain」에서 끝없이 연쇄하는 시선의 이동을 말했던 것처럼,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낯선 실체가 일으키는 작은 파열은 현실의 공간을 순식간에 전복시켜 시선을 사방으로 흩어버릴 정도의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석민_Back room_캔버스에 유채_100×70cm_2016


「공중감각」(2016)이나 「Political Corner」(2016)의 경우, 현실에서 배제되거나 누락된 공간에 대한 구조적 접근은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높은 철탑과 건물의 꼭대기에 불안하게 서 있거나 걸터앉은 인물들의 시선은 가파른 공간의 구조를 재차 반복하면서 이 상황에 과도하게 누적되어 있는 불안함의 실체를 상상케 한다. 이처럼 예상지 못한 곳에서 반짝하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현실에 드리워진 이상한 모순이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부조리한 섬광인 것이다. 철탑 너머 혹은 건물 꼭대기의 존재가 현실에 떨어뜨리는 시선은, 보통 박석민의 그림에서 가로등과 전광판의 불빛, 떨어져나간 벽보, 방치된 건축 폐기물처럼 쉽게 응시할 수 없거나 미처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시각적 부조리를 강하게 환기시킨다. 공간의 층이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는 「Event Field」(2016)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그림은, 공간의 논리를 붕괴시킬 만큼 왜곡되고 어긋난 시점들로 한없이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관계들 사이사이를 촘촘히 채우고 있는 얼룩 같은 틈새들 때문에 켜켜이 누적된 현실의 부조리한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는 분명 쉽지 않다. 얼핏 시각적 과잉상태로까지 보이는 박석민의 그림 앞에서, 우리의 시선이 끊임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연쇄하는 이유도 어쩌면 수많은 얼룩과 틈새들이 끈끈하게 맺게 된 새로운 구조적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박석민_Quiet play_캔버스에 유채_100×70cm_2016


이처럼 누적된 일상의 풍경과 그 안팎의 구조를 살피는 박석민은, 흥미롭게도 작업 과정에서 또한 동일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여러 개의 캔버스를 켜켜이 펼쳐놓고 동시에 작업한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상관없는 풍경들이 때때로 캔버스 위를 오가는 그의 손끝에서 느슨하게나마 서로 만날 일이 생긴다. 더러는 물감이 튀어 다른 그림 표면에 예상지 않은 물감 얼룩을 남기기도 하고, 에어브러시를 뿌리다가 통제할 수 없는 돌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애초에는 없던 낯선 섬광들이 익숙한 공간에 돌연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게 잠깐의 반짝거림 때문에 현실의 부자연스러운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도 잦다. 그래서인지 박석민은 더 이상 재미있을 것도 없이 다 비슷비슷해진 일상의 풍경을 계속 오가면서, 마치 섬광처럼 그 현실 풍경의 진부함을 위협할 만큼 찢겨져 나간 작은 구멍들을 찾으려 한다. ■ 안소연


이은영_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_

조형토에 세라믹 펜슬, 벽면에 목탄, 조명_가변설치_2014~5



이은영-멀리 있는 산이 가까이 보이면 비가 온다 - 은유적 단편들 ● 여러 매체들이 상호조응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은영의 작품들은 작가가 섬세하게 접어 넣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를 관객이 그대로 읽기는 힘들다. 관객은 이야기를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할 협력자로 존재한다.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채 연결을 통해서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호)텍스트적이다. 작가가 단순히 자기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시장은 마치 구획된 방들처럼 각각의 영역에서 방점이 달리 찍혀진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자기표현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은영에게 자신은 오히려 타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으로 나타난다. 특히 작가는 타인의 슬픔에 깊이 감정이입 된다. 작품들에는 우리의 민감한 사회적 문제들이 은유적 단편에 실려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예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곧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회적 문제에 무뎌지는 감각을 다시 각성하는 효과를 준다. 적절하게 제기된 질문은 이미 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이은영의 작품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인 경우가 많다. 벽이나 천에 그려지거나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동물형상은 인간을 대신하여 말한다. 목탄과 흑연으로 그려진 2차원 상의 이미지와 고온으로 구워져 단단하게 된 세라믹은 설치라는 현대미술의 보편화된 어법을 빌어 연결된다. 완결 감을 주는 회화이기 보다는 과정 중에 있는 드로잉과 단단한 덩어리들은 그것이 가령 몸통과 머리 같은 관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조차 이질적 접합으로 다가온다. 같은 종류가 나온다면 반복을 통해 이질화된다. 가령 여러 마리의 토끼나 까마귀가 집합되어 있는 이미지는 잠재적인 움직임이 있으면서 분열적이다. 세라믹도 마찬가지여서, 그릇같이 무엇인가를 담는 기능을 가진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동물의 머리처럼 유기체의 일부분이 뚝 떨어져 나온 형태다. 심지어 연속적으로 출렁거려야할 바다도 조각 케익처럼 잘려져 배치된다. 각각은 접합되기 위해 잘려지며, 다른 것과 접합되어 형태나 의미가 작동될 때, 잘린 면은 단절이 아닌 열린 면이 된다.


이은영_이것은 당신의 잘못이다_천에 흑연 드로잉_150×100cm×2_2016_부분


열림은 자유와 동시에 방황을 낳는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예기치 못한 타자들과 대화해왔던 작가에게 이미지의 유목 뿐 아니라, 형식상의 유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작가는 천에 그려 어딘가에 걸려 지고 다시 둘둘 말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놓는 간편한 방식을 유목민으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단편으로 떠도는 이미지들의 결합을 통해 서사를 엮는 방식은 캔버스라는 완결된 형식 보다는 걸개그림이나 벽에 일시적으로 있다가 지워지는 방식 등을 택하게 했다. 그러나 단편들이 있는 그대로, 즉 아무런 방향타도 없이 방치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칠레의 현실참여 시인 네루다의 시 한 문장을 인용한 작품 제목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2015)는 꿈결 같은 낯선 파편들을 융합하여 현실까지도 살펴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은영의 작품에는 숲, 산, 바다, 동물 등 자연의 이미지가 편재하지만, 그 연결망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미지 또는 의미의 단편들은 미로같이 배치되어 있곤 한다. ● 2차원과 3차원 간의 접합은 잠재적인 것이 급작스럽게 현실로 도약하거나 그 반대의 과정으로 다가온다. 풍경이 그려져 있는 벽면에 붙은 동물의 머리는 그 존재방식의 차이에 의해 환상이 현실화된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은 전경과 후경의 관계를 통해서도 실험된다. 현실적인 것이 저 멀리 깔려있을 때도 있고, 종잡을 수 없는 파편들이 전경을 가득 차지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 따라서 말이다. 전시 공간이 넉넉한 경우에는 관객의 동선이 이야기의 순서를 결정짓기도 할 것이다. 관객이 전시공간을 한 바퀴 돌고, 왠지 마음이 동하여 다시 돌게 되었을 때 마치 한 번 더 읽은 시집처럼 행간의 의미가 다시금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예술과 달리 공간예술에서의 서사는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응축적이다. 형태만 보면 기괴하고 징그럽기까지 하다. 무채색의 거친 선들이 동물의 털과 겹쳐질 때 더욱 그렇다.


이은영_망각은 없다_천, 벽에 드로잉, 세라믹_가변설치_2015


관객에게 무엇인가 말하기 위해 등장한 캐릭터들은 돌연변이나 괴물처럼 생겼다. 도약과 비약은 자연은 물론 노동과도 구별되는 예술의 특징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와 비슷한 과정은 우연적 사건이나 꿈에서나 발견될 뿐이다. 얼마 전에 열렸던 '나의 멋진 2014년 운세'전(2014, 제네바)이나 '검은 털 짐승에 관한 꿈' 전(2015, 부산)처럼, 우연이나 꿈은 작업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 잘린 소머리나 토끼들이 바글거리는 이미지 등도 작가의 꿈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해석(또는 해몽)은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작가는 의미를 중시하는데, 관객에게 각기 다르게 다가올 대상들이 떠도는 작품에서 해석은 어디까지 열려있어야 하는 것인가. 의미는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것에서 가능하다. 특히 무의식과 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 해석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분석학일 것이다. ● 정신분석학자 제이 그린버그와 스테판 밋첼이 쓴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 이론』에 의하면, 해석은 잃어버린 부분을 찾기 위한 작업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정신분석학은 본질적으로 해석적 학문이다. 분석과정은 치료자와 환자가 공동으로 환자의 삶을 탐구하는 것이며, 환자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부분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은영은 프로이트나 융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의 꿈에 대한 이론이 너무 환원적이라고 느꼈다. 꿈에 대한 상징주의적 독법은 대중문화에서 곧잘 가져다 쓰는 상투형으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나 예술의 어법은 다르다. 그러나 예술 역시 소통의 과제가 있기에, 너무 멀리 나아가선 안 될 것이다. 소통이란 타자와의 소통을 말한다. 통상적인 타자(너)부터 자기 안의 타자(무의식), 절대적인 타자(신) 등 타자의 계열은 무한하다. 동식물 등 자연 역시 타자화 된 존재이다. 특히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10여 년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학업과 작업을 병행해온 이력을 볼 때, 이은영에게 가장 큰 화두는 타자와의 소통이었을 것이다.


이은영_망각은 없다_천에 흑연 드로잉_210×160cm_2015


동물에 비해 불완전하게 태어나는 인간에게 타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에 의하면 식물이 흙, 물, 햇빛과 접촉하면서 자라나듯이, 자아는 현실 또는 내적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란다. 이은영의 작품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접촉하는 지점들은 타자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타자와의 성공적인 관계를 탐색함으로서 치유를 도모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타자에게 함몰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위니캇)를 고민한다. 이 문제는 기존의 어법을 배우면서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작가가 운명처럼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특히 작품만큼 내가 보는 시점과 타자가 보는 시점이 다른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차이만큼이 의미이겠지만, 대개는 자기 독백으로 끝나고 만다. 해석이나 소통의 문제는 타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에 의하면 '관계들이 위치하는 곳'(코헛)이 자기이며, 안정된 자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응집성, 항상성, 탄력성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타자'(코헛)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열정인 욕동(drive)보다는 관계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욕동보다 관계구조 모델을 중시하는 흐름은 연구의 단위를 개인이 아니라, 중요한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하는 관계적 모체로 본다. 타자와의 완전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은 다정함, 안전함, 그리고 쾌락의 전체성 등으로 간주된다. 대인 관계적 교류는 현실적 자기, 이상적 자기, 현실적 대상, 이상적 대상이라는 네 가지 경험적 요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경험, 자신의 이미지, 이상적인 타자에 대한 환상, 자신에 대한 과대적 환상, 현실과 상상으로부터 나온 내면의 소리 등을 통해 자기의 내용을 구성함을 알려준다. 이은영은 이러한 타자와의 통로를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이미 극복했다고 여겨지는 동물성(자연)을 호출했다.


이은영_2015.04.20._세라믹_11×21×28cm_2015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서 동물이라는 도상은 동물보다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과도한 욕망을 표출한다. 자연은 필요 이상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연을 통해 공감, 또는 거리감을 유도했다. 작가는 의인화, 사물화 된 동물을 통해 무의식적 과정부터 정치철학에 이르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물과 동물의 서식처가 자주 등장하는 이은영의 작품은 사회계약 이전의 단계,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자연적 상태'(홉스)가 감지된다. 근대는 자연을 이성이나 계몽으로 극복해왔다고 믿어져 왔지만, 적정선이라고는 없는 '권력에의 의지'(니이체)는 인간사회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작가는 우화적 형식을 통해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추려내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나라 사람도 알아 볼 수 있는 자연의 형상을 택했고, 누구나 꾸는 꿈과 그 해석과정, 그리고 근자에 우리가 함께 겪었던 사회적 사건을 작업에 들여왔다. 그러나 도상을 알아본다 해도 그 의미가 모두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이은영의 작품은 작가가 몇몇 단서를 던져주면 관객이 나름대로 엮어가는 방식이다. ● 그러나 경계가 부재한 무한한 확장은 동시에 죽음이기도 하다. 너무 열어 놓는다면 무의미에 가까워진다. 현대미학에서는 무의미의 의미도 논해지곤 하지만, 이은영의 작품 내용에 대한 의지는 강력한 편이다. 그녀는 작가의 책임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세월호, 4대강, 쌍용차 사태 등, 해외에 체류해 있는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의식이 작품 곳곳에 박혀있다. 작가의 그러한 지향성이 망명 시인 네루다에 대한 공감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알레고리'(작가)라서 명백하게 읽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동물이 등장하는 상상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우화나 알레고리의 형식을 갖추게 한다. 의미를 향한 징검다리는 적절한 간격으로 놓여 있어야만 한다. 간격은 타자들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도 부여한다. 작가의 설명이 없이는 수수께끼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예언적일만큼 정확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있다. ● 가령 피처럼 붉은 꽃을 두른 돼지 세 마리가 등장하는 「금빛 씨앗」(2013)은 수 년 전 작품이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이 발사되는 요즘의 사건과 결부되어 다시 보여 진다. 자유주의 사회로부터 제공된 원조식량인 옥수수가 자기에게 다시 떨어질 수 있는 미사일로 변모하고, 어리석은 사건을 추동한 권력자들은 죽었지만, 다시 권력의 맛을 본 쥐가 돼지로 변해간다는 우화다. 독법과 이해를 중시하는 작품은 그림책의 형식을 띄기도 한다. 관객이 작가의 세계로 진입해서 그 안을 탐색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이라는 방식도 그렇다. 책이나 방은 다양한 것을 한자리에 묶어낼 수 있는 형식이다. 드로잉, 세라믹 등 여러 형식이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풍경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질적인 것들 간의 어울림을 꾀한다. 설치의 경우,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달이 조명으로 처리되어 다양한 요소들을 풍경으로 응집하는 효과를 준다. 이은영의 작품은 자연이나 우주의 자원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도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갈되지 않은 이야기 거리로 풍부하다. ■ 이선영



Vol.20160623d | 2016 OCI YOUNG CREATIVES-박석민_이은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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