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요즘 반가운 자리를 가급적 피해, 더욱 춥게만 느껴지는 그런 날씨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던 마누라까지 내치고 나온 놈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더 혹독한 겨울을 절감해야 합니다. 보상의 길이 있다면, 이웃들에게 조그만 힘이 되어 주는 것이지요.
처음 나올 땐 사진이 우선이었지만, 그 또한 나 자신을 위한 이율배반적인 짓이라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들어 온 쪽방은 돌아갈 수 없는 나의 마지막 무덤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처음엔 일 년 쯤 작업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 작정이었으나, 그 생각마저 접었거던요.
엊그제 겨울 옷가지와 당장 필요한 자료들을 챙기러 정선 집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무덤 앞에서 술 한 잔 올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한 평생 걱정만 끼친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도 잘 봐 달라며 부탁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작은 쪽방이지만,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정 붙여 사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그래서, 정선에 모아 둔 오래된 전시 포스터를 몽땅 가져와, 쪽방 도배부터 할 생각입니다.
죽고 나면 쓰레기에 불과할 것을 뭐가 중요하다고, 뭉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독거의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중이지요.
그리고 일에 대한 우선순위도 정했습니다.
캘린더에 빽빽하게 적힌 일정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내 일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똥개처럼 쫓아다니며 공술 얻어 마시는 일도 이제 줄일 것입니다.
술 생각나면 주변의 노숙하는 친구들과 마시면 되니까요.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동자동에서 벌어지는 길흉사나 약속들입니다.
그러나 급하게 서둘지 않고, 차근 차근 공부하듯 배워 나갈 것입니다.
두 번째는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올 년 초에 시작한 ‘문화알림방’ 포스팅말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만 받게되면 더 이상 돈이 필요없겠지만,
어려움에 처한 노숙자들에게 막걸리도 사 주어야 하고, 정영신씨도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 병원비에다 학비까지 마련해야 할 처지거던요.
병 주고 약 준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나도 조그만 양심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발 쓸데없는 추측들은 하지 마십시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조문호가 새 여자가 생겨 나갔다느니,
정영신이가 너무 쪼아 나갔다느니, 별의 별 소리가 다 들리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이상 없습니다.
처음, 갑작스런 제안에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전 정영신을 잘 알아, 내 마음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젠 충분히 공감대를 가져 몸은 남이지만, 마음은 늘 함께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관습이나 규칙 따위는 지킬 사람이나 지키라는 것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멋진 데이트도 신청할 작정입니다.
그 외의 시간들은 내 꼴리는 대로 살 것입니다.
이 개 같은 세상, 틈만 나면 신명난 잔치판을 벌이고 싶습니다.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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