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OCI YOUNG CREATIVES
박석민_이은영展

2016_0623 ▶ 2016_071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623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6_0709_토요일_02:00pm


박석민 『New satellite - 모형 궤도』展

이은영『멀리 있는 산이 가까이 보이면 비가 온다』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박석민-New satellite - 모형 궤도 - 섬광, 일상의 궤도를 위협하는 낯선 구멍 ● 일상의 풍경이나 어떤 상황을 연상시키는 박석민의 그림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작은 섬광들이 존재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가로등이나 먼 곳의 전광판, 혹은 떨어져나간 벽보나 방치된 건축 폐기물 등이 현실에서의 우발적 상상을 부추기는 듯한데, 작가는 이를, "도시 환경 내부의 누락되고 유기된 지점"이라 말한다. 도시의 밋밋한 풍경을 배회하는 작가의 시선은, 오히려 길들여진 거대한 풍경에서 예기치 않게 발견되는 작은 얼룩들에 초점을 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헐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도시 속 공간들은, 특유의 역동적인 변화마저 집어삼켜버리는 스펙터클한 환영 밑에 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소한 변화와 차이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작은 반짝거림으로 거대한 환영을 깨부수려 했던 20세기 아방가르드들의 출현이 벌써 역사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질 만도 한데, 이러한 "시각성"에 대한 불신과 폭로는 동시대의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박석민은 꿈쩍도 하지 않을 도시의 풍경에 맞서, 한 발 뒤 혹은 한 발 앞을 서성이며 풍경의 환영이 붕괴되는 지점을 찾으려 한다. 환영의 질서를 이탈한, 현실의 또 다른 궤도를 탐색하는 그의 시선은 언제고 무심한 풍경 배후에 들어설 찰나의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박석민_Event field_캔버스에 유채_224.4×162.2cm_2016


빛, 응시를 차단하는 낯선 섬광 ● 'New Satellite-모형 궤도'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의 어떤 상황들을 관찰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를테면, 네 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큰 폭의 「Phantom Pain」(2016)은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위치에서 한 장소에 대한 복잡한 응시의 구조를 살피고 있다. 안정된 장방형의 구조는 텅 빈 객석 뒤로 영사기가 놓여있는 극장 내부를 보여준다. 이때 영사기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빛은, 공간 깊숙이 들어가는 화면의 원근감을 상쇄시키며 안정된 현실을 임의로 분할해버리는 비현실적 공간을 창출한다. 박석민은 「끊임없이 도주하는 공간의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기술한 작가노트에서, "물리적인 환경과 비가시적인 영역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구조의 오류"를 형상화하거나 재배치하는 초현실적 상상에 대해 짧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Phantom Pain」은 작가가 말한 경계의 확장과 구조의 오류를 형상화한 예로들만 하다.


박석민_Co-orbit_캔버스에 유채_180.2×200.4cm_2016



빛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은, 3차원의 현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나태한 시선에 모종의 타격을 가한다. 빛은 흔히 누구도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게 차단하면서 철저히 외부로만 시선을 유도한다. 「Phantom Pain」에서, 영사기의 작은 구멍으로부터 공간을 가로지르며 쏟아져 나오는 빛의 구조는 현실의 일부를 감쪽같이 숨긴 채 우리의 시선이 그 주변만 맴돌게 한다. 하지만 박석민은 이내 보는 이의 시선을 빛이 조명하는 현실의 주변부로부터 빛이 차단하고 있는 현실의 이면으로 집요하게 유도한다. 예컨대, 화면 가장 안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부터 뒷벽 양쪽 기둥에 그려진 기하학적 패턴, 천장과 벽면에서 반복되는 건축적 구조, 객석 의자에 적용된 원근감의 표현 등 공간에서 연쇄적으로 반복되는 삼각형 구조가 끝내 응시를 차단하는 빛의 내부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만다. 여전히 그곳은 진공 상태의 밀실처럼 접근 불가이기에, 우리를 눈멀게 하는 낯선 섬광을 응시하는 순간 현실에 길들여진 안정된 시선은 일제히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박석민의 말대로라면,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실재"를 상상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그 시선의 붕괴가 일어나는 지점이 된다.


박석민_공중감각_캔버스에 유채_148×258.2cm_2016


틈, 차이를 매개하는 장소 ● 박석민은 길들여진 응시가 붕괴되는 찰나의 경험을 현실 공간에 내재해 있는 일련의 구조로 시각화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 빛이 구조화 하는 공간들은 일상에서 겪는 시지각적 차원의 모호함과 복잡함을 설명해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실에 출몰한 낯선 섬광들은 스스로 자신의 배후를 철저히 숨긴 채 그 주변을 더욱 선명하게 조명하곤 하지만, 결국 현실과 현실의 이면 둘 다를 의심케 하는 불안정한 틈새의 장소가 된다. 그게 작가가 말한, "도시 환경 내부의 누락되고 유기된 지점"이며 마치 섬광처럼 한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연한 상상의 출구인 셈이다. 「Back Room」(2016), 「The Door」(2015), 「Quiet Room」(2016), 「Fatamorgana」(2016) 등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은, 실제의 현실 공간에 잠재되어 있던 구조를 분석해내 그것을 재구성하고 여러 시점에서 재해석하여 얻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때 현실을 배회하며 작가가 목격한 또 다른 현실의 공간은,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의 경계가 교묘하게 지워진 채 초현실적 공간의 파편화된 구조를 함축한다. 이는 「Phantom Pain」에서 끝없이 연쇄하는 시선의 이동을 말했던 것처럼,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낯선 실체가 일으키는 작은 파열은 현실의 공간을 순식간에 전복시켜 시선을 사방으로 흩어버릴 정도의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석민_Back room_캔버스에 유채_100×70cm_2016


「공중감각」(2016)이나 「Political Corner」(2016)의 경우, 현실에서 배제되거나 누락된 공간에 대한 구조적 접근은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높은 철탑과 건물의 꼭대기에 불안하게 서 있거나 걸터앉은 인물들의 시선은 가파른 공간의 구조를 재차 반복하면서 이 상황에 과도하게 누적되어 있는 불안함의 실체를 상상케 한다. 이처럼 예상지 못한 곳에서 반짝하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현실에 드리워진 이상한 모순이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부조리한 섬광인 것이다. 철탑 너머 혹은 건물 꼭대기의 존재가 현실에 떨어뜨리는 시선은, 보통 박석민의 그림에서 가로등과 전광판의 불빛, 떨어져나간 벽보, 방치된 건축 폐기물처럼 쉽게 응시할 수 없거나 미처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시각적 부조리를 강하게 환기시킨다. 공간의 층이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는 「Event Field」(2016)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그림은, 공간의 논리를 붕괴시킬 만큼 왜곡되고 어긋난 시점들로 한없이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관계들 사이사이를 촘촘히 채우고 있는 얼룩 같은 틈새들 때문에 켜켜이 누적된 현실의 부조리한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는 분명 쉽지 않다. 얼핏 시각적 과잉상태로까지 보이는 박석민의 그림 앞에서, 우리의 시선이 끊임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연쇄하는 이유도 어쩌면 수많은 얼룩과 틈새들이 끈끈하게 맺게 된 새로운 구조적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박석민_Quiet play_캔버스에 유채_100×70cm_2016


이처럼 누적된 일상의 풍경과 그 안팎의 구조를 살피는 박석민은, 흥미롭게도 작업 과정에서 또한 동일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여러 개의 캔버스를 켜켜이 펼쳐놓고 동시에 작업한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상관없는 풍경들이 때때로 캔버스 위를 오가는 그의 손끝에서 느슨하게나마 서로 만날 일이 생긴다. 더러는 물감이 튀어 다른 그림 표면에 예상지 않은 물감 얼룩을 남기기도 하고, 에어브러시를 뿌리다가 통제할 수 없는 돌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애초에는 없던 낯선 섬광들이 익숙한 공간에 돌연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게 잠깐의 반짝거림 때문에 현실의 부자연스러운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도 잦다. 그래서인지 박석민은 더 이상 재미있을 것도 없이 다 비슷비슷해진 일상의 풍경을 계속 오가면서, 마치 섬광처럼 그 현실 풍경의 진부함을 위협할 만큼 찢겨져 나간 작은 구멍들을 찾으려 한다. ■ 안소연


이은영_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_

조형토에 세라믹 펜슬, 벽면에 목탄, 조명_가변설치_2014~5



이은영-멀리 있는 산이 가까이 보이면 비가 온다 - 은유적 단편들 ● 여러 매체들이 상호조응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은영의 작품들은 작가가 섬세하게 접어 넣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를 관객이 그대로 읽기는 힘들다. 관객은 이야기를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할 협력자로 존재한다.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채 연결을 통해서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호)텍스트적이다. 작가가 단순히 자기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시장은 마치 구획된 방들처럼 각각의 영역에서 방점이 달리 찍혀진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자기표현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은영에게 자신은 오히려 타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으로 나타난다. 특히 작가는 타인의 슬픔에 깊이 감정이입 된다. 작품들에는 우리의 민감한 사회적 문제들이 은유적 단편에 실려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예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곧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회적 문제에 무뎌지는 감각을 다시 각성하는 효과를 준다. 적절하게 제기된 질문은 이미 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이은영의 작품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인 경우가 많다. 벽이나 천에 그려지거나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동물형상은 인간을 대신하여 말한다. 목탄과 흑연으로 그려진 2차원 상의 이미지와 고온으로 구워져 단단하게 된 세라믹은 설치라는 현대미술의 보편화된 어법을 빌어 연결된다. 완결 감을 주는 회화이기 보다는 과정 중에 있는 드로잉과 단단한 덩어리들은 그것이 가령 몸통과 머리 같은 관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조차 이질적 접합으로 다가온다. 같은 종류가 나온다면 반복을 통해 이질화된다. 가령 여러 마리의 토끼나 까마귀가 집합되어 있는 이미지는 잠재적인 움직임이 있으면서 분열적이다. 세라믹도 마찬가지여서, 그릇같이 무엇인가를 담는 기능을 가진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동물의 머리처럼 유기체의 일부분이 뚝 떨어져 나온 형태다. 심지어 연속적으로 출렁거려야할 바다도 조각 케익처럼 잘려져 배치된다. 각각은 접합되기 위해 잘려지며, 다른 것과 접합되어 형태나 의미가 작동될 때, 잘린 면은 단절이 아닌 열린 면이 된다.


이은영_이것은 당신의 잘못이다_천에 흑연 드로잉_150×100cm×2_2016_부분


열림은 자유와 동시에 방황을 낳는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예기치 못한 타자들과 대화해왔던 작가에게 이미지의 유목 뿐 아니라, 형식상의 유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작가는 천에 그려 어딘가에 걸려 지고 다시 둘둘 말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놓는 간편한 방식을 유목민으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단편으로 떠도는 이미지들의 결합을 통해 서사를 엮는 방식은 캔버스라는 완결된 형식 보다는 걸개그림이나 벽에 일시적으로 있다가 지워지는 방식 등을 택하게 했다. 그러나 단편들이 있는 그대로, 즉 아무런 방향타도 없이 방치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칠레의 현실참여 시인 네루다의 시 한 문장을 인용한 작품 제목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2015)는 꿈결 같은 낯선 파편들을 융합하여 현실까지도 살펴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은영의 작품에는 숲, 산, 바다, 동물 등 자연의 이미지가 편재하지만, 그 연결망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미지 또는 의미의 단편들은 미로같이 배치되어 있곤 한다. ● 2차원과 3차원 간의 접합은 잠재적인 것이 급작스럽게 현실로 도약하거나 그 반대의 과정으로 다가온다. 풍경이 그려져 있는 벽면에 붙은 동물의 머리는 그 존재방식의 차이에 의해 환상이 현실화된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은 전경과 후경의 관계를 통해서도 실험된다. 현실적인 것이 저 멀리 깔려있을 때도 있고, 종잡을 수 없는 파편들이 전경을 가득 차지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 따라서 말이다. 전시 공간이 넉넉한 경우에는 관객의 동선이 이야기의 순서를 결정짓기도 할 것이다. 관객이 전시공간을 한 바퀴 돌고, 왠지 마음이 동하여 다시 돌게 되었을 때 마치 한 번 더 읽은 시집처럼 행간의 의미가 다시금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예술과 달리 공간예술에서의 서사는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응축적이다. 형태만 보면 기괴하고 징그럽기까지 하다. 무채색의 거친 선들이 동물의 털과 겹쳐질 때 더욱 그렇다.


이은영_망각은 없다_천, 벽에 드로잉, 세라믹_가변설치_2015


관객에게 무엇인가 말하기 위해 등장한 캐릭터들은 돌연변이나 괴물처럼 생겼다. 도약과 비약은 자연은 물론 노동과도 구별되는 예술의 특징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와 비슷한 과정은 우연적 사건이나 꿈에서나 발견될 뿐이다. 얼마 전에 열렸던 '나의 멋진 2014년 운세'전(2014, 제네바)이나 '검은 털 짐승에 관한 꿈' 전(2015, 부산)처럼, 우연이나 꿈은 작업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 잘린 소머리나 토끼들이 바글거리는 이미지 등도 작가의 꿈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해석(또는 해몽)은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작가는 의미를 중시하는데, 관객에게 각기 다르게 다가올 대상들이 떠도는 작품에서 해석은 어디까지 열려있어야 하는 것인가. 의미는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것에서 가능하다. 특히 무의식과 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 해석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분석학일 것이다. ● 정신분석학자 제이 그린버그와 스테판 밋첼이 쓴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 이론』에 의하면, 해석은 잃어버린 부분을 찾기 위한 작업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정신분석학은 본질적으로 해석적 학문이다. 분석과정은 치료자와 환자가 공동으로 환자의 삶을 탐구하는 것이며, 환자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부분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은영은 프로이트나 융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의 꿈에 대한 이론이 너무 환원적이라고 느꼈다. 꿈에 대한 상징주의적 독법은 대중문화에서 곧잘 가져다 쓰는 상투형으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나 예술의 어법은 다르다. 그러나 예술 역시 소통의 과제가 있기에, 너무 멀리 나아가선 안 될 것이다. 소통이란 타자와의 소통을 말한다. 통상적인 타자(너)부터 자기 안의 타자(무의식), 절대적인 타자(신) 등 타자의 계열은 무한하다. 동식물 등 자연 역시 타자화 된 존재이다. 특히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10여 년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학업과 작업을 병행해온 이력을 볼 때, 이은영에게 가장 큰 화두는 타자와의 소통이었을 것이다.


이은영_망각은 없다_천에 흑연 드로잉_210×160cm_2015


동물에 비해 불완전하게 태어나는 인간에게 타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에 의하면 식물이 흙, 물, 햇빛과 접촉하면서 자라나듯이, 자아는 현실 또는 내적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란다. 이은영의 작품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접촉하는 지점들은 타자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타자와의 성공적인 관계를 탐색함으로서 치유를 도모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타자에게 함몰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위니캇)를 고민한다. 이 문제는 기존의 어법을 배우면서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작가가 운명처럼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특히 작품만큼 내가 보는 시점과 타자가 보는 시점이 다른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차이만큼이 의미이겠지만, 대개는 자기 독백으로 끝나고 만다. 해석이나 소통의 문제는 타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에 의하면 '관계들이 위치하는 곳'(코헛)이 자기이며, 안정된 자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응집성, 항상성, 탄력성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타자'(코헛)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열정인 욕동(drive)보다는 관계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욕동보다 관계구조 모델을 중시하는 흐름은 연구의 단위를 개인이 아니라, 중요한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하는 관계적 모체로 본다. 타자와의 완전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은 다정함, 안전함, 그리고 쾌락의 전체성 등으로 간주된다. 대인 관계적 교류는 현실적 자기, 이상적 자기, 현실적 대상, 이상적 대상이라는 네 가지 경험적 요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경험, 자신의 이미지, 이상적인 타자에 대한 환상, 자신에 대한 과대적 환상, 현실과 상상으로부터 나온 내면의 소리 등을 통해 자기의 내용을 구성함을 알려준다. 이은영은 이러한 타자와의 통로를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이미 극복했다고 여겨지는 동물성(자연)을 호출했다.


이은영_2015.04.20._세라믹_11×21×28cm_2015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서 동물이라는 도상은 동물보다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과도한 욕망을 표출한다. 자연은 필요 이상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연을 통해 공감, 또는 거리감을 유도했다. 작가는 의인화, 사물화 된 동물을 통해 무의식적 과정부터 정치철학에 이르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물과 동물의 서식처가 자주 등장하는 이은영의 작품은 사회계약 이전의 단계,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자연적 상태'(홉스)가 감지된다. 근대는 자연을 이성이나 계몽으로 극복해왔다고 믿어져 왔지만, 적정선이라고는 없는 '권력에의 의지'(니이체)는 인간사회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작가는 우화적 형식을 통해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추려내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나라 사람도 알아 볼 수 있는 자연의 형상을 택했고, 누구나 꾸는 꿈과 그 해석과정, 그리고 근자에 우리가 함께 겪었던 사회적 사건을 작업에 들여왔다. 그러나 도상을 알아본다 해도 그 의미가 모두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이은영의 작품은 작가가 몇몇 단서를 던져주면 관객이 나름대로 엮어가는 방식이다. ● 그러나 경계가 부재한 무한한 확장은 동시에 죽음이기도 하다. 너무 열어 놓는다면 무의미에 가까워진다. 현대미학에서는 무의미의 의미도 논해지곤 하지만, 이은영의 작품 내용에 대한 의지는 강력한 편이다. 그녀는 작가의 책임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세월호, 4대강, 쌍용차 사태 등, 해외에 체류해 있는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의식이 작품 곳곳에 박혀있다. 작가의 그러한 지향성이 망명 시인 네루다에 대한 공감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알레고리'(작가)라서 명백하게 읽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동물이 등장하는 상상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우화나 알레고리의 형식을 갖추게 한다. 의미를 향한 징검다리는 적절한 간격으로 놓여 있어야만 한다. 간격은 타자들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도 부여한다. 작가의 설명이 없이는 수수께끼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예언적일만큼 정확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있다. ● 가령 피처럼 붉은 꽃을 두른 돼지 세 마리가 등장하는 「금빛 씨앗」(2013)은 수 년 전 작품이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이 발사되는 요즘의 사건과 결부되어 다시 보여 진다. 자유주의 사회로부터 제공된 원조식량인 옥수수가 자기에게 다시 떨어질 수 있는 미사일로 변모하고, 어리석은 사건을 추동한 권력자들은 죽었지만, 다시 권력의 맛을 본 쥐가 돼지로 변해간다는 우화다. 독법과 이해를 중시하는 작품은 그림책의 형식을 띄기도 한다. 관객이 작가의 세계로 진입해서 그 안을 탐색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이라는 방식도 그렇다. 책이나 방은 다양한 것을 한자리에 묶어낼 수 있는 형식이다. 드로잉, 세라믹 등 여러 형식이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풍경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질적인 것들 간의 어울림을 꾀한다. 설치의 경우,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달이 조명으로 처리되어 다양한 요소들을 풍경으로 응집하는 효과를 준다. 이은영의 작품은 자연이나 우주의 자원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도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갈되지 않은 이야기 거리로 풍부하다. ■ 이선영



Vol.20160623d | 2016 OCI YOUNG CREATIVES-박석민_이은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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